조현욱 논설위원은 이 글에서 "부동산 투기 의혹을 받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국무위원 후보자들이 너무 '정직'해서 사태를 악화시키는 듯하다"며 "'유방암이 아니라는 판정을 받은 기념'으로 남편이 오피스텔을 선물로 사주고, '자연을 사랑해서' 절대 농지를 구입했다는 해명이 그렇다"고 주장했다.
이어 조 위원은 "불리한 결과를 뻔히 예측할 수 있는 데 굳이 그런 해명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게 '사실'이어서 그대로 밝혔다는 해석이 나온다"면서 "공직자는 정직해야 하지만 때론 거짓말을 하는 능력도 필요하다. 정직이 불필요한 상처를 국민에게 주는 경우에는"이라고 당부했다.
없는 자들에게 불필요한 상처 주지 말아라?
이른바 국내 5대 일간지 중 하나로 꼽히는 신문에서 공직 후보자에게 '청문회에서 거짓말 하는 능력을 키우라'는 당부를 하는 칼럼을 내다니, 어느 누리꾼의 지적대로 '해외 토픽감'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거짓말을 하는 능력을 키우라'는 자극적인 주문 덕택에 다소 가려진 감이 있지만 이 칼럼이 웅변하고 싶었던 핵심은 '불필요한 상처를 국민에게 주는 경우'라는 표현에 담겨 있다.
이번 논란에서 드러난 '불필요한 상처'란 무엇일까? 아마 이명박 정부의 출범에 더불어 권력의 핵심에 자리잡게 될 이들이 서민의 상식을 뛰어넘는 부를 축적하고 있다는 사실과 이들의 인식 또한 일반인의 상식과는 전혀 동떨어져 있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공개되는 것을 말하는 듯싶다.
'불필요하다'는 표현은 이런 사실을 '국민이 알 필요가 없다'는 주장을 함축하고 있다. 결국 이 문장을 재구성하면 이들 공직자들이 어떻게 재산을 형성했든 그 '사실'을 국민들이 굳이 알 필요가 없는데 이들이 "너무 정직"해서 국민들에게 '상처'를 줬다는 의미가 된다.
이런 속내 탓에 평소 '정론'을 표방해온 언론이 공직 후보자에게 '거짓말을 하라'는 주장까지 하게 된 것이다. 이런 과감한 주장 속에는 "불필요한 상처" 때문에 공직 후보자들이 대변하는 '강부자(강남 땅 부자)' 기득권층이 권력에서 물러나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원하는 바람까지 읽힌다.
이러한 시각을 보여주는 더 솔직한 표현은 다음날 '분수대'에 나왔다. 거짓말을 촉구하는 전날 칼럼에 대한 여론의 비난이 따가웠던지 <중앙일보>는 다음날 28일에도 장관 후보자의 재산 논란에 대한 칼럼을 냈다. 이 신문이 같은 주제를 '분수대'에서 이틀 연속 다루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일종의 '해명성 칼럼'이라고 볼수 있겠다.
유광종 국제부문 차장은 '투기'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일단 "재산 증식을 위해 어떠한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면 이들은 분명 공직에 몸 담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런 점에서 새 정부가 이미 투기 전력이 드러난 사람들을 물린 것은 바람직하다"고 못을 박았다. 전날의 칼럼이 당일 낙마한 공직 후보자들을 옹호하는 것처럼 비춰질까 경계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칼럼에서도 <중앙일보>는 끝내 자신의 시선을 숨기지는 못했다. 유 차장은 "그러나 새 정부 인선을 향해 공세를 취하는 측도 나머지 대상자의 투자 행위까지 문제삼는 경우가 있어 개운찮다"면서 "있는 자에 대한 없는 사람들의 불만에 편승한다면 그것도 일종의 투기다"라고 비판했다.
유 차장이 쓴 '있는 자에 대한 없는 사람들의 불만'이라는 표현은 이번 이명박 정부의 조각 실패 논란을 바라보는 이 신문의 시각의 핵심이 아닐까.
'재력'은 보이고 '민주주의'는 안 보이나?
<중앙일보>가 '대의제'를 기본으로 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 부족과 '부자들에 대한 옹호', '없는 사람들에 대한 경계'를 드러내 온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번 사태와 내용상 연결되는 '부자 대통령'이라는 제목의 지난해 7월 31일 '분수대'를 보자.
이 글을 쓴 홍승일 경제부문 차장은 청와대 고위관료가 당시 이명박 후보자를 겨냥해 "'경제 대통령'은 아마 '부자 대통령'인 모양인데, 경제란 돈을 버는게 아니라 민생을 챙기는 것"이라고 비판한 것을 지적했다.
홍 차장은 "'부자 대통령'이란 표현이 야당의 특정 후보를 겨냥한 것이라면 정치 공세로 치부해 그만이다. 다만 부자라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식으로 잘못 읽히지 않았으면 좋겠다"면서 "출신이 '통나무집'이건 '부잣집'이건 중요한 것은 후보 자신의 능력과 덕망이니까"라고 했다.
여기까지는 무리가 없다. 그런데 앞서 홍 차장은 링컨 대통령을 비롯한 역대 미 대통령들이 역사적으로 알려진 것보다는 좀더 부유한 편이고 한국이나 미국 모두 정치인들이 '서민 대통령', '통나무집 대통령'을 가장한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왜 그럴까. 삶이 고단한 이들에겐 대통령의 출신 성분이 보잘것 없을수록 자기 위안이 되기 마련이다"라고 분석했다.
이참에 물어보자. <중앙일보>는 삶이 고단한 이들은 자기 위안을 얻기 위해 투표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혹시 삶이 고단한 이들이 자신의 삶을 대변하는 정치인을 뽑고자 하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하는 것일까? 한국이나 미국에서 대통령을 뽑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혹시 '민주주의'라는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본 일은 있었을까?
내친 김에 충고하자면 <중앙일보>도 너무 '정직' 해서 사태를 악화시키는 듯하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