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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 명리학 <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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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규 명리학 <322>

미국 이야기 <하>

오늘은 미국의 전체적인 국운 전개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다.

미국은 1783 년에 시작하여 180 년과 그 절반인 30 년을 더한 시점인 1993년 癸酉(계유)년에 그 모습이 절정에 달했다.

1991년 오랜 숙적이던 소련 제국이 붕괴하면서 미국은 사실상 세계 정부에 준하는 역할과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달러가 전 세계 교역에 대한 결제 통화로 확고하게 자리 잡았기에 경제 면에서 세계를 통제하는 것이 가능해졌고, 이어 소련이라는 군사 라이벌이 사라지자 미국은 자국의 군대를 그냥 일국의 군대가 아니라 세계를 다스리는 경찰로 만들고자 했다.

다시 말해서 미국의 군대가 전쟁을 하면 이는 나라와 나라간의 전쟁이 아니라, 세계 정부의 경찰로서 공권력에 도전하는 무장 세력을 진압한다는 것에 있어 그 정통성을 인정받고자 희망했던 것이고 또 그런 방향으로 노력했다.

그런 정책을 시험하고 공인받는 과정에서 가장 만만한 상대로 떠오른 대상은 당초 리비아의 카다피와 이라크의 후세인이었다. 하지만 영리한 카다피는 용케도 피해갔다.

1990 년의 걸프 전쟁은 이라크의 후세인에게 만일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해도 미국이 묵인할 것이라는 사전 신호가 주어졌다는 상당히 유력한 근거가 있다. 그저 음모론으로 치부하기에는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 하겠다.

음모론으로 치면 후세인이 미국에게 걸려든 셈이었다. 이에 미국은 여러 우방의 군대들을 휘하에 모아서 '다국적군'이라는 명칭 아래 이라크를 응징하게 되었다.

미국의 목표는 전쟁에서의 승리-그것은 당연한 것이고-가 아니라 여러 우방의 군대를 자신의 요구에 따라 소집하여 부리는 모습 그 자체, 즉 국제경찰의 영수로서의 위치를 전 세계 국가들로부터 확인받는다는 데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이는 다시 말해 미국이 세계의 정부라는 것을 각인시키고 싶었다는 얘기이다.

그리고 그런 노력은 아버지 부시에 이어 등장한 현 부시 대통령 대에 와서 더욱 노골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른바 '악의 축'이라는 말을 통해, 이라크와 이란, 북한을 미국이 영도하는 국제 사회를 위협하는 대표적인 지역 불량배로 낙인을 찍은 다음, 그 중에서 여전히 가장 만만한 이라크를 대량살상무기 혐의를 씌워 한 번 더 손을 본 것이 2003 년의 이라크 전쟁이었다고 여긴다.

이라크 전쟁이 걸프 전쟁과 다른 점은 여러 나라를 설득해서 연합군을 구성하는 성가신 노력을 들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구촌의 질서를 잡기위해서는 세계 정부인 미국 혼자서도 정당한 경찰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이라크 전쟁은 미국의 정책 목표를 가일층 높인 전쟁이었다 하겠다.

미국의 이런 행동은 기존의 서구 우방국들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았지만, 미국은 이에 대해 당신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곤 비난밖에 더 있냐는 식이었다. 비난은 비난일 뿐, 미국의 행동에 더 이상의 제동을 걸 수 없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것 자체로서 성공이라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미국을 사실상의 세계정부로 굳히고자 하는 이런 노력은 우방들로부터 일방주의라는 비난과 함께 미국 내에서도 많은 논란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국제전략 자문통으로 유명한 '브레진스키'도 저술을 통해 미국이 세계를 이끄는 희망의 등불이 될 것인가 아니면 세상을 바라보는 높은 언덕위에 지어진 고립된 성채로 남을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고 강력한 반대의사를 피력하고 있다.

몇 년간 미국의 무역적자 심화는 미국의 힘이 사양길로 접어든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불러일으켰지만, 사실 미국 입장에서 무역적자는 부담 없는 달러 발행을 통해 다른 나라들로부터 무상으로 물건을 가져다 쓰는 것이기에 문제는커녕 즐기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미국의 힘이 점차 쇠퇴하고 있다는 인상은 그저 인상에 끝나는 것일 수도 있다. 또 중국의 발전과 러시아의 위상 강화 역시 지역강국으로 발돋움하는 것까지일 뿐 아직은 미국의 패권에 도전할만한 정도는 아니다.

앞에서 보았듯이 미국의 위상은 앞서 얘기했듯이 더욱 더 강화되고 있는 면도 있다.

그렇다면 미국은 앞으로도 더욱 전성기를 구가하게 된다는 것일까?

하지만 필자는 이에 대해 부정적이다. 서서히 미국의 절정기가 넘어가고 있다고 여긴다. 가장 강해보일 때는 사실 이미 내부로부터 기세가 허물어지고 있다는 경험을 통해 얻은 직관을 필자는 믿어보기로 했다.

지금의 미국을 필자는 1860 년대의 대영 제국과 같다고 본다.

영국은 1642 壬午(임오)년의 청교도 혁명이 훗날 세계를 호령했던 대영제국의 출발점이었다.

그 이후 1720 년대에 가서 월폴 내각에서부터 내각책임제가 정착되었던 바,
이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권력이 피를 흘리지 않고도 넘어가는 출발점이 되었으니 인류사의 대 발명이자 발전이었다.

이어서 청교도 혁명으로부터 120 년이 지난 1762 년으로부터 서서히 영국은 기술의 진보가 산업의 급격한 발전을 야기하는 이른바 '산업혁명'을 통해 새로운 경지로 들어갔고 그로써 최강자의 위치에 오르게 된다.

이런 흐름은 1642 년 청교도 혁명으로부터 210 년 무렵인 1851년에 '런던세계박람회'를 개최하면서 절정을 구가하게 된다. 바로 이 시기가 대영제국의 최고황금기였다.

이 박람회는 오늘날 우리가 엑스포라 부르는 것으로서 영국이 제1회 대회를 개최한 이래, 우리나라는 1993년에 개최했고 오는 2012년 여수에서 다시 개최한다.

영국이 세계박람회를 통해 절정의 힘을 과시했지만, 1880 년대에 남아프리카에서 식민지 자치를 요구하는 보어 전쟁이 발발했고, 이에 국력을 낭비한 대영제국은 서서히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돌아와서 오늘의 미국은 영국이 1851 년에 박람회를 개최하면서 그 위상을 과시했던 때로부터 10 년이 지난 무렵과 같다고 여긴다.

영국은 1642 년으로부터 210 년 무렵이 1852 년이고, 미국은 1783 년 독립으로부터 210 년이 1993년이니 그렇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영국은 1642 년으로부터 270 년이 약간 지난 1914 년 제1차 세계대전을 고비로 절대 강자의 위치에서 내려와야 했다. 이를 미국에 대입하면 1783 년으로부터 270 년이 지난 시점이니 2053 년이 된다. 지금이 2008 년이니 미국의 위세는 아직도 40 년 이상은 유지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리고 그 때가 지난 후의 미국은 여전히 강국이겠지만 오늘날과 같이 전 세계를 좌지우지할 정도의 영향력은 소멸될 것이라 본다. 그리고 서서히 쇠락해 갈 것이다.

2050 년대 중반 어떤 일이 발생할 것인지는 현 시점에서 전혀 알 수가 없다. 다만, 미국의 퇴조가 전 세계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필자가 가장 두렵게 여기는 일은 절대 강자가 사라지면, 그 또한 보통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대영제국에 이어 미국이 길고 긴 투쟁을 통해 소련을 물리치고 지구촌의 패권을 잡은 오늘날이다.

그렇다면 2050 년대 중반 이후 미국이 쇠하게 되면 또 다른 후보들이 패권 경쟁을 벌리게 될 것인가? 그 후보가 중국과 러시아일까?

그렇지 않다면 유력한 후보마저 없는 상태에서 지역별로 강자를 가리는 경주가 진행될 것인가? 이 시나리오는 사실 가장 염려스럽다, 자칫 전 지구가 전쟁터로 변할 수도 있기에.

가령 미국의 힘이 사라진 동북아시아에서 일본과 중국이 패자를 가리는 경쟁에 들어간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중국에 붙어야 하는가 아니면 일본에 붙어야 하는가? 아니면 동북아의 균형자로서 역할을 하겠다고 하면 과연 가능할 일일까?

물론 비관적인 시나리오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인류가 한 단계 더 진보해서 세계 전체를 관장하는 연합정부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유럽연합(EU)과도 같은 것 말이다.

하지만 유럽연합이 과거 로마제국과 기독교라는 공동의 유산을 지녔기에 가능한 것이었다면 세계연합정부가 가능할 것으로 보기에는 여전히 요원하게만 느껴진다.

더하여 유럽연합 역시 오늘날 미국의 절대적인 군사적 우위가 가져온 평화 로 인해 지금의 적은 방위비, 큰 복지비를 유지할 수 있다고 볼 때, 미국이 사라진 세계에서 여전히 유럽연합이 유지될 것이지 불투명하다.

세계연합정부가 어렵다면, 동북아시아만이라도 한일중이 협력하고 그를 통해 동남아까지 연결하는 공동체를 창출해낼 수 있다면 어쩌면 그를 통해 지구를 영도하는 새로운 세력이 될 가능성도 있다고 여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일중은 그간의 오랜 갈등과 舊怨(구원)을 서로마다 앞장서서 푸는 것이 첩경이 될 것이다. 그런 면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동해를 '평화의 바다'로 하면 어떻겠느냐 했던 제안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고 여긴다.

일본에 대한 반감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면서도 흉중에는 양국 간에 나아갈 방향을 잊지 않는 리더의 모습이었다.

음양오행으로 세상의 흐름을 설명하고 내다보겠다는 것이 필자의 오랜 연구이고 노력이지만, 미래는 여전히 우리 시야의 저 편에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하겠다. 그저 분명한 한 가지는 인류가 역사를 통해 아직은 진보하고 있다는 점이다.

몸살로 인해 글이 늦어졌다는 말씀 드리면서 글을 맺는다.

(전화:02-534-7250, E-mail :1tgkim@hanmail.net)
김태규의 명리학 카페 : cafe.daum.net/8c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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