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口(구)/囗(성)/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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口(구)/囗(성)/凵(감)

[한자가 그렇게 만들어졌다고?] <15>

口(구)는 입 모양을 그렸다는 글자다. 입 모양이 왜 네모꼴이냐 하는 의문이 들겠지만, 초기 한자가 갑골, 즉 거북 껍데기나 소뼈 등에 새겨졌고 그런 딱딱한 재질에 칼로 둥그런 모양을 제대로 그리기 어려웠으리라는 점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해를 그린 日(일)이 네모꼴인 것도 마찬가지 사정이다.

口는 초기에 ㅂ 형태로 썼는데(<그림 1>), 웃을 때 양쪽 입꼬리가 올라간 것으로 생각하면 훌륭한 표현일 수 있다. 이것은 또 같은 둥그런 모양의 日과 구분하는 포인트일 수도 있다. 입은 양쪽 끝을 올려 ㅂ 형태로, 해는 가운데 점을 찍어 ㄖ 형태로 구분한 셈이다.

사실 초기에는 둥그런 모양의 수요가 많았을 것이다. 달도 둥그렇지만 중복을 피해 초승달을 그렸고, 별도 작은 점이어서 동그란 모습이어야 하지만 이는 작은 동그라미 세 개로 나타냈다. 마지막까지 남은 해와 입 모양은 이렇게 조금 다른 특성을 반영하는 수밖에 없었다고 이해할 수 있다.

다만, 口는 凵(감) 같은 글자와 관련이 있을 가능성도 있어 입 모양을 그렸다는 종래설을 무조건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凵은 옛날 주거지로 판 구덩이의 모습을 그렸다고 하는데, 口자와는 윗부분이 터졌느냐 아니냐의 차이다. 옛 해석으로는 이것 역시 입을 벌린 모습이라 해서 口와 비슷하게 설명된다. 凵은 다시 윗부분을 조금 오므린 형태를 '거' 발음의 별도 글자로 보기도 한다. 이 글자는 나무로 만든 밥그릇을 그렸다고 한다.

여기서 구덩이나 밥그릇 등은 상형 대상으로 좀 부적절하다. 세 글자는 세 가지의 별개 상형이 아니라 같은 글자였을 가능성이 있고, 일단 상형 가능성으로 볼 때 입 모양을 그렸다는 게 가장 유력한 후보다.

세 글자의 관련성을 시사하는 요소는 발음이다. 초성은 모두 같고, 받침에서 凵이 다소 달라 보인다. 그러나 口를 둘 겹친 吅(훤)이나 셋 겹친 品(품)에서는 받침이 나타나고 그것은 凵의 받침과 비슷하다. 口를 넷 겹친 글자도 있는데, 이것이 허구의 글자가 아니라면 그 발음은 받침이 떨어져나가는 중간 단계로 볼 수 있다. 결국 口의 발음은 凵의 발음에서 받침이 떨어져나간 것이다.

團(단)이나 圖(도)에서처럼 글자의 외곽에 위치한 경우의 口는 보통 '큰입구'로 불린다. 이 경우는 글자를 좀 크게 쓰고, 國(국)이나 圍(위)의 초기 글자꼴로 보는 게 일반적이다. 도시를 둘러싼 성벽을 나타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활자 시대가 아니라면 '큰 것'과 '작은 것'의 구분은 상당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고, 그런 식으로 글자를 구분한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당장 國·圍 속의 작은 口도 城邑(성읍)을 나타낸 것이라는 설명이어서, 글자 속에서의 위치나 크기로 둘을 구분했다는 얘기는 성립할 수 없는 주장이다.

그런데 이 네모 형태의 글자는 갑골문에서 엉뚱하게도 丁(정)자다(<그림 2, 3>). 지금의 丁자와는 모양상 전혀 연결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갑골문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고 글자의 해독에도 착오의 가능성이 전혀 없는 간지자의 하나여서 그 네모꼴이 丁자라는 것은 부정할 수가 없다. 딜레마다.

생각을 바꿔보자. 간지자는 모두 다른 글자를 꿔다 쓰는 가차자다. 의미는 전혀 관계없고 발음만이 중요하다. 22개의 간지자가 모두 처음부터 지금까지 '멤버 체인지' 없이 내려온 것이라면 그 네모꼴은 丁자일 수밖에 없지만, 중간에 교체가 있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모양이 전혀 연결되지 않는 丁자와 갑골문의 네모꼴은 다른 글자일 수 있는 것이다. 발음만 같은 별개의 글자다.

'큰입구'인 囗은 다른 글자의 구성 요소로 쓰일 때 '성읍'이라는 의미로 주로 쓰였다. 國·圍에 들어간 안팎의 크고 작은 口나, 원래 네모꼴이었지만 一로 간략화된 正(정)의 윗부분이 모두 그런 뜻이다. 囗이 國 또는 圍의 옛 글자꼴이라는 얘기도 그것이 '성읍'과 관련된 글자임이 인정되고 있기 때문에 나온 추측들이다.

그런데 囗이 간지자로서는 丁 대신 쓰였다면 발음이 '정'과 비슷해야 하는데 國이나 圍는 많이 다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여기서의 囗은 城(성)의 본래 글자일 가능성이 높다. '성읍'이라는 의미와 '정' 비슷한 발음의 두 조건을 모두 만족시키고 있는 것이다. 囗은 丁과 관계없는 별개의 글자로 초기에 네 번째 천간 글자로 쓰였는데 나중에 이것이 丁자로 교체된 것이다. 박지성이 선발 출장했다가 부상으로 전반만 뛰고 후반에 이천수로 교체된 축구 경기를 생각하면 된다.

교체 이유는 뭘까? 아무래도 '입'인 口(구)와 모양이 같은 점이 문제였을 것이다. 둘 다 자주 쓰이는 글잔데 모양이 같았다면 여간 골치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림 3>처럼 네모꼴 안쪽을 까맣게 칠한 모습이 나오는 것은 口(구)와 구분해 보려는 고육책이었던 듯하지만 신통찮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간지자로는 발음이 비슷한(당시로서는 '같은') 丁을 대타로 투입하고, '성읍'이라는 본래 의미 쪽은 당시 이미 실용화된 글자 만들기의 '신기술' 형성자 방식으로 城자를 만들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따라서 그 囗의 발음은 '국'이나 '위'가 아니라 '성/정'이다.

여기서 다시 凵을 끄집어내 보자. 지금 우리에게 凵과 같은 발음으로 남아 있는 感(감)·減(감)의 발음은 咸(함)에서 나왔고, 咸은 아래 口 부분이 발음기호로 보인다. 초성 ㅅ/ㅎ이 가깝고 받침 ㅇ/ㅁ이 가까운 발음임을 생각하면 이 口는 '성/정' 발음인 囗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囗(성/정)의 발음이 感·減까지 이어졌다면 囗(성/정)과 凵의 옛 발음은 같았을 가능성이 있다. 의미도, 凵이 주거지를 나타내고 囗(성/정)이 성읍을 나타냈다면 통하는 데가 있다.

凵=囗(성/정)이라면 囗(성/정)과 모양상 구분이 되지 않는 口(구)를 凵과 같은 글자로 보지 못할 이유가 없다. 앞서 제기됐던 口(구)=凵의 가능성이 중간의 囗(성/정)을 매개로 확인되는 것이다. 口(구)=凵(거/감)=囗(성/정)이다. 凵의 위쪽이 터진 것은 <그림 1>처럼 ㅂ자 형태인 口(구)의 옛 모습에서 안쪽 가로획이 약화되거나 아래쪽으로 합쳐진 모습일 수 있다.

다만 그것이 본래 무엇을 그렸는지는 분명치 않다. 앞에 나온 네 가지 가운데 하나일 수도 있고, 전혀 엉뚱한 것일 수도 있다. 상형 가능성으로만 보자면 '입' 쪽이 가장 앞서는 듯하고, 그렇다면 나머지는 가차 의미에 현혹된 설명들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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