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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영정도 못 챙기고 속옷 차림으로 내동댕이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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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영정도 못 챙기고 속옷 차림으로 내동댕이쳐졌다"

[현장] 넝마공동체, 서울시청 로비서 농성한 까닭

25년간 생활해오던 서울 강남구 개포동 영동 5교에서 쫓겨난 넝마공동체 주민들이 영하 10도를 밑도는 엄동설한 속에서 잠잘 곳을 찾아 헤매고 있다. 넝마공동체는 노숙자, 출소자, 도시빈민 등으로 구성된 빈민 자활 공동체다.

이들이 영동 5교 다리 밑에서 쫓겨난 이유는 강남구청(구청장 신연희)이 '불법시설물 정비'라는 명목으로 주민 거주시설을 강제철거했기 때문이다. 특히 이 강제철거를 새벽 혹한 속에 행한 탓에, 구청이 인권을 짓밟았다는 비판이 나온다.

▲ 서울 강남구는 지난 15일 개포동 영동5교 다리 밑 넝마공동체 거주지를 강제 철거했다. ⓒ연합뉴스

"속옷 차림에 맨발로, 아버지 영정도 못 챙기고 끌려나왔다"

강남구청은 우선 지난 10월 28일 영동 5교 넝마공동체 주거시설을 강제철거했다. 당시 구청과 합의한 5명 정도는 세곡동 임시 작업장으로 거처로 옮겼다. 그러나 나머지 주민들은 대치동 2번지 탄천 운동장으로 구청의 철거를 피해 옮겨갔다.

그러나 거주지를 옮긴 지 10여일 만인 지난달 15일 새벽 4시, 구청은 또다시 이들의 거주시설을 일부 철거했다.

주민들에 따르면 강남구청은 이날 새벽 4시 용역직원 100여 명과 포클레인을 동원, 비닐하우스와 천막, 텐트 등을 부수고 물과 전기 공급을 통제했다. 더는 주거시설을 마련하지 못하도록 웅덩이를 30여 군데에 파두기도 했다고 했다.

2차 철거는 지난달 28일 빗속에서 이뤄졌다. 이날 오전 6시, 구청 직원들이 용역 100여 명을 대동, 잠을 자고 있던 주민들을 길바닥으로 내몰았다고 주민들은 주장했다.

주민 박순자(가명,66) 씨는 당시 "속옷 차림에 맨발로 길거리에 내동댕이쳐졌다"며 "돈, 안경, 지갑 등 소지품을 하나도 챙기지 못하고 쫓겨난 사람들도 있다"고 전했다.

박 씨는 "당시 용역들이 주민 대표 얼굴에 침을 뱉고, 주민을 도우러 온 시민단체 활동가에게도 상스런 욕을 했다"고도 말했다.

주민 한나눔(가명,51)씨는 "아버지의 유일한 유품인 영정을 가지고 나오지 못했다"며 "영정이 시위용품이 될 수도 없는데, 돌려달라고 아무리 용역들에게 말해도 돌려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나서 '잠잘 곳'을 제공하라"

주민들은 지난달 28일 이후 길거리와 찜질방 등을 전전하고 있다. 경찰서 민원실에서 쪽잠을 자기도 하고, 경기도 모 교회에서 몸을 녹이기도 한다고 했다.

그러다 12일 이들은 "서울시가 우리에게 잠잘 곳을 마련하라"며 서울시청 1층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앞서 이들은 지난달 28일 최근 출범한 서울시 인권위원회에 넝마공동체 강제철거 사태를 진정접수하기도 했다.

현재는 인권위가 강제철거 당시 인권유린 및 빈민차별 행위가 있었는지를 조사 중이며, 곧 조사결과가 발표될 예정이다. 이번 넝마공동체 건은 지난달 27일 발족한 서울시 인권위원회에 접수된 제 1호 진정사건이다.

이날 시청 로비에서 만난 박 씨는 "여기 로비는 쪽잠 자던 경찰서 민원실에 비하면 호텔"이라며 "서울시도 우리를 외면하는 어디로 가야 할 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 넝마공동체 주민들이 12일 서울시청 1층 로비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넝마공동체 제공
이날 만난 주민들은 지난달 28일 이후 제대로 휴식과 수면을 취하지 못해, 상당히 지쳐 있는 상태였다.

한편, 이날 시청 로비에서 이들이 자신들의 요구를 담은 현수막을 펼치자, 경찰들이 나타나 현수막을 빼앗아 가는 일도 있었다. 주민 한 씨는 "경찰들이 현수막을 펼치고 있으면 시민들이 보기에 안 좋다고 가져가야 한다고 했다"고 전했다.

당초 주민들은 서울시와 강남구청이 대체 거주지를 마련할 때까지 이곳에서 숙식을 이어나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시청 건물은 이날 오후 7시부로 모든 난방이 중단될 예정이라 농성을 이어가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에 주민들은 서울시로부터 박원순 시장과의 조속한 면담과 상황 중재 노력을 약속받고, 오후 5시 반 경 서울시청을 빠져나와 경기도 모 교회로 발걸음을 옮겼다.

주민들은 시가 약속과 달리 시장 면담 요구에 응하지 않고, 대체 거주지를 제공하지 않으면 다음주중 시청 로비에서 무기한 농성을 재개할 방침이다.

또 서울시 인권위가 조사 결과를 발표한 후에는, 강제철거 과정에서 폭행·폭언을 한 용역직원들을 검찰에 고소할 예정이다. 이 외 가능한 법적 조치들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 이들과 함께 준비하고 있다.

이날 시청을 빠져나오기 전, 한 주민은 "강남구청 눈에는 우리가 더럽고 힘없는 거렁뱅이로 보이겠지만, 우리도 사람"이라며 "최하위 1%의 삶이라도 이 땅에서 온전히 살아갈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강남구청은 적법한 절차에 따라 필요한 행정대집행을 했다는 입장이다. 구청 주택과 관계자는 "행정대집행 과정에서 옥신각신 수준의 싸움만 있었을 뿐, 얼굴에 침을 뱉거나 상스런 욕을 하는 등의 폭력은 없었으며, 분실물은 이미 다 찾아간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또 "추위라는 건 주관적"이라며 "마지막 행정대집행이 있었던 날(지난달 28일)은 기온이 영상이었고, 극악한 폭력을 행사한 것은 구청이 아니라 주민들"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탄천 운동장은 무단 점유할 수 없는 시 행정시설"이라며 "이들이 생떼를 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위험한 가스 시설 등을 갖춘 불법 주거지를 철거하는 것은 구청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며 "그(넝마공동체) 중에는 중국 교포 등 외부 세력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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