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从(종)ㆍ比(비)ㆍ化(화)ㆍ北(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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从(종)ㆍ比(비)ㆍ化(화)ㆍ北(북)

[한자가 그렇게 만들어졌다고?] <12>

두 사람이 걸어간다. 친구 사이라면 나란히 가겠지만 지위에 차이가 있다면 한 사람은 앞서서, 또 한 사람은 조금 뒤처져 따라갈 것이다. 사람인 人(인)을 둘 겹친 从(종)은 나중 경우다(<그림 1>). 그래서 의미도 '따르다'다.
从은 지금 우리에게 낯익은 從(종)의 옛 모습이다. 본래의 从자가 오른쪽 위로 밀려 올라가고, 彳(척)과 止(지)의 두 요소가 더해졌다. 彳과 止는 모두 이동을 나타내는 의미 요소인데, 하나씩만 들어가기도 하지만 이 경우처럼 둘이 '세트'로 들어가는 경우도 많다. 그 '세트'는 나중에 辵=辶(착)이라는 한 글자로 합쳐졌고, 자전 편제상 부수자로 선택될 만큼 중요한 글자가 됐다. 辶은 우리가 흔히 '책받침'이라고 부르는데, '받침'이란 합성 한자에서 왼쪽 요소가 오른쪽 요소의 아래쪽까지 뻗쳐 있는 형태고 그 발음이 '착'이라는 얘기니 '착 받침'이 변한 말이겠다.

어떻든 從은 从에 의미 요소를 보강해 그 뜻을 이어받은 후계자다. 彳과 止 부분은 대세에 따라 辶으로 합쳐질 만도 하련만, 고집스럽게 옛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徒(도) 정도가 얼마 남지 않은 그런 '보수파' 친구다. 그 고집 때문에 현대 중국에서는 글자 대접도 받지 못하고 있다. 중국이 간화자를 만들면서, 은퇴했던 옛 글자꼴 从을 컴백시키고 복잡한 從은 퇴출시켰다.

'나란하다'의 뜻인 比(비)도 두 사람의 모습이라고 한다(<그림 2>). 서두의 얘기에서 전자의 경우다. 지금은 匕(비)자가 둘 겹친 모습이지만 그 匕를 人의 변형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보자면 문제가 생긴다. 똑같은 두 사람의 모습을 놓고 '종'과 '비'의 두 가지로 읽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 경우는 그나마 전회에 다뤘던 長(장)-老(로)의 경우보다 낫다. 의미는 차이가 있으니 문맥으로 판단할 여지는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무리한 얘기다. 人과 匕가 똑같이 사람을 그렸다지만 人과 匕의 발음 차이도 예사롭지 않다. 人과 匕는 별개의 글자로 봐야 무리가 덜하고, 또 실제로 별개의 글자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从은 人을 둘 합친 글자, 比는 匕를 둘 합친 글자로 전혀 별개의 글자다. 글자를 보고 나란히 선 것인지 앞뒤로 선 것인지 판단이 서지 않아 고민할 필요가 전혀 없다.

사실 그런 그림만 보고 나란히 선 건지 앞뒤로 선 건지를 판단하는 것은 주관이 많이 개입돼 의사 소통에 상당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따라서 그런 식의 문자 만들기는 비현실적이다. 人과 匕가 별개의 글자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두 사람의 모습을 그렸다는 글자는 또 있다. 똑바로 선 사람과 거꾸로 선 사람을 함께 그렸다는 게 化(화)자고(<그림 3>), 北(북)은 두 사람이 등을 맞대고 있는 모습이라고 한다(<그림 4>). 化자는 재주 넘는 사람의 모습이어서 '요술부리다'가 본뜻이라거나, 거꾸로 된 모습을 죽은 사람이라 해서 삶과 죽음의 변화를 나타냈다는 식의 설명이다. 北은 등을 맞댄 모습이어서 '등지다'가 본뜻이고, 우리가 북쪽을 등진 채 생활하기 때문에 '북쪽'의 뜻이 파생돼 나왔다는 것이다(한자가 남반구에서 만들어졌다면 北자는 '남녘 남'이었겠다).

그러나 이런 얘기들은 모두 '장면 상형'의 굴레를 벗어나기 어렵다. 从과 比도 기존 설명은 장면 상형이어서 문제가 있지만 이들은 人과 匕라는 별개 글자의 중첩자로 이해해 줄 수 있다. 반면 化와 北은 똑같은 人자를, 방향만 달리해 별개의 글자를 만들었다는 얘기여서 더욱 신빙성이 낮다. 초기 한자에서 구성 요소의 위치나 방향이 다르다 해서 별개 글자가 되지는 않았다는 일반론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도 역시 人과 匕가 별개의 글자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化는 같은 요소가 방향을 달리해 합쳐진 것이 아니라 人과 匕라는 별개의 두 요소가 합쳐진 것이다. 이 가운데 匕가 발음기호로 보인다. 초성이 ㅂ에서 ㅎ으로 변한 것인데, 영어의 F 발음을 중간에 넣어 보면 그런 변화의 가능성을 인정할 수 있다.

人은 의미 요소겠다. '변하다'라는 변한 뜻을 본뜻으로 보고 꿰맞추려다 보니 이상한 설명들이 나오는데, 본뜻은 '죽다'인 것으로 보인다. 지금 '죽다'의 뜻으로 널리 쓰이는 死(사)와 발음이 비슷하다. 초성 ㅎ/ㅅ은 兄(형)-先(선)의 경우에서 봤듯이 쉽게 변하는 발음이다.

死도 한 사람(匕)이 죽은 사람의 뼈(歹) 앞에서 애도 또는 절하는 모습이라는 식의 '장면 상형'으로 설명되고 있으나(<그림 5>), 이것 역시 匕를 발음기호로 하는 형성자로 보면 깔끔하다. 본래 '죽다'의 뜻이었던 化가 다른 뜻으로 옮겨져 쓰이자 의미 요소만 좀더 분명한 것으로 바꾼 死자가 만들어져 대타로 쓰였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北 역시 人을 둘 합친 것이 아니라 한쪽은 人, 한쪽은 匕여서 본래 化와 같은 글자였다가 분리된 것으로 보인다. 발음은 초성이 匕와 같은 대신 받침이 튀어나왔다. 北 자신이 '배'로 읽히기도 하고 파생자 背(배) 같은 경우를 보더라도 그것이 匕에서 멀리 떨어진 발음이 아님은 쉽게 알 수 있다. 化의 본뜻인 '죽다'는 세상을 '등지다'여서 의미 역시 통한다.

사람이 죽으면 北邙山(북망산)에 묻는다고 한다. 北邙山이라는 구체적인 이름을 가진 장소는 후대의 얘기겠지만, 더 먼 옛날에도 背山臨水(배산임수)의 터전이 일반적이었다고 보면 죽은 이들을 묻는 뒷산은 북쪽이었을 것이다. 北의 '북쪽'이라는 뜻은 북쪽을 '등지고' 살았기 때문에 그런 의미가 나왔다는 게 기존 설명이지만, '등지다'가 본뜻이 아니니 근거가 없어진다. 北=化의 본뜻이 '죽다'였다면 바로 죽은 이들의 세계가 '북쪽'에 있었기 때문에 그런 의미가 나왔다고 볼 수 있다. '등지다>북쪽'이 아니라 '죽다>북쪽>등지다'의 순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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