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하지 않겠다. 굴복할 수 없다."
13일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한 대통합민주신당 손학규 대표의 얼굴은 잔뜩 굳어있었다. 작심한 듯 15분여 정부조직법 개편안에 대한 강경한 의지를 설파했다. 전날 전화통화로 설전을 주고받은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에 대한 비판도 거칠었지만 신당의 '강경론'을 "국정 발목잡기"로 간주한 이날 자 보수 일간지 사설에 대한 불만이 더욱 강하게 느껴졌다.
한 달 전 '손학규 실용노선은 경쟁력이 있다"며 자신의 취임을 누구보다 반겼던 보수 일간지들이 매섭게 돌아선데 대해 손 대표가 느끼는 심적 압박이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총선만 생각하면 눈 딱 감고 싶어"
손 대표는 "이명박 신정부가 일방적으로 언론플레이를 하고 있다"며 "이런 여론몰이가 정부조직법 개편안 처리에 기본이 된다면 처리에 협조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인수위 측에서 알지도 못하는 이명박 당선인과 손 대표 간의 면담 계획을 일방적으로 흘린 데 이어, 양 측 간의 전화 통화도 마치 손 대표가 만나주지 않아 이 당선인이 전화를 걸었다는 식으로 언론플레이를 하고 있다는 것이 손 대표 측의 불만이다.
손 대표는 "이 당선인은 통화 말미에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통해 실무선상에서 깊이 있는 논의를 하자'고 제안해 놓고 대변인을 통해서는 '설득했다'고 말했다"며 "진정성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손 대표는 "정부조직법 개편안 처리 지연에 대한 부담은 우리가 더 크다. 총선만 생각한다면 눈 딱 감고 처리해 주고 싶다"며 여론에 대한 부담감을 솔직히 털어놓기도 했다. 손 대표는 "아무리 우리에게 좋은 명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정치적 부담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며 "모든 언론이 사설을 통해 우리를 압박하고 있다"고 했다.
당내 의원들을 향해서도 "인수위와 한나라당이 시간적 급박성을 담보로 협박하듯 밀어붙이고 있지만 여기에 굴해서는 안 된다"며 "표 계산 염두에 두고 몇 개 부처를 살리려 한다는 공세가 있지만 여기에 휩싸여 떠밀려 가서는 절대 안 될 것"이라고 당부했다.
조중동 파상공세 시작
손 대표로서 '국정 발목잡기'란 비판은 애당초 각오했던 부분이었다. "'국정 발목잡기'란 비판에 발목 잡혀선 안 된다"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주문은 '정면 돌파' 기조를 세우는 디딤돌이 됐다.
영어몰입교육에 대한 비판 여론이 인수위의 공신력을 갉아 먹으면서 설 연휴 이후 신당 내에 '맞서면 해볼 만하다'는 여론이 비등하기 시작했다. 숭례문 화재와 이 당선인의 성금 모금 제안에 대한 역풍도 신당 내 강경론을 더욱 굳게 했다.
"서로 대화로써 협의가 안 되면 우리는 원안을 갖고 갈 수밖에 없다"는 이 당선인의 고강도 압박에도 손 대표가 결연한 자세를 다잡을 수 있는 뒷심의 배경이다.
그러나 이날부터 보수언론이 신당 비판에 가세한 만큼 손 대표가 부분조각까지 감수하며 끝까지 버틸 수 있을지는 장담키 어렵다.
<조선일보>는 이날 자 사설은 "야당이 정부가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그 포석부터 제대로 못하게 막는다는 것은 야당이 해야 할 견제 역할이라고 할 수 없다"며 손 대표를 달래는 투였고, <중앙일보>는 "지금 신당의 태도는 '새 정부 발목잡기' '총선용 전략이라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하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동아일보>는 "해당 부처 존폐의 당부(當否)를 떠나 오직 어떻게 하면 여성, 어민, 농민 표를 한 표라도 건질 수 있을까 하는 총선 전략밖에 없는 듯한 태도"라고 비판하며 "민주당과 통합을 성사시킨 손 대표가 과연 정부 조직 개편안을 제대로 들여다볼 정신이나 있었는지 의심스럽다"고 비아냥대기도 했다.
행여나 조중동의 파상공세에 힘입어 수도권 의원들을 중심으로 "총선에 어려워지는 거 아니냐"는 불안 여론이 형성될 경우, 손 대표는 울며 겨자먹기로 이 당선인의 '밀어붙이기'에 길을 터줄 것이란 전망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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