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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을 통한 북핵 해결', DJ와 MB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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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을 통한 북핵 해결', DJ와 MB의 차이

[기고] 실용도 전략도 없는 구상

이명박 당선자의 대북전략이 지난 1일 한-미-일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비로소 드러났다. 무척이나 흥미로운 것은 유럽연합(EU)를 통한 대북접근 방식이다.

이 당선자는 "지금까지 6자회담 참가국들이 여러 이야기를 했지만 북한이 100% 믿지 않기 때문에 진전이 잘 안되고 있다고 본다. 그래서 북한이 사회주의적 정당을 통해 신뢰를 맺어온 유럽연합(EU) 국가들이 북한을 설득하는데 역할을 해야 한다. 6자회담의 틀은 깨지 않되 EU 국가들이 개입하면 시너지 효과를 가져 올 수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아직 구체화 된 것 같진 않지만 6자회담 방식과는 별개 혹은 연계로, EU의 개입을 통한 북핵문제 해결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모르긴 몰라도 미국 부시 정권의 외교안보팀들은 자신들의 귀를 의심했을 것이다. 철저히 미국의 세계전략에 맞춘 외교안보노선을 선택할 줄 알았던 이명박 당선자의 외교안보 정책이 미국의 노선과 달라질 수 있음을 시사한 최초의 발언이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의 북핵문제 해결 방식은 '6자회담 틀 내에서의 양자대화 방식'이며 '말 대 말'의 단계를 넘어서 '행동 대 행동'이라는 단계적 방식을 추구한다. 북한은 북미간의 일대일 직접대화를 통한 포괄적이면서 일괄적인 타결방식을 원한다. 미국이 대북적대시 정책을 포기하고 북미수교만 이루어준다면 얼마든지 핵을 포기하겠다는 식이다.

미국은 양자대화를 지양하고 다자간의 틀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다자주의적 접근이지만, 그렇다고 그 이상의 다원적 접근방식을 선택하고 있지는 않다. 북핵문제의 지나친 국제화가 도리어 북핵문제 해결의 걸림돌이 될 가능성, 이를테면 역으로 북한에 대해 핵보유국의 지위를 인정해버릴 위험성 등을 고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명박 당선자는 북핵문제 해결 방식의 하나로 6자회담의 틀을 뛰어넘는 또 다른 방식을 고려하겠다는 정책의 일단을 내 놓은 것이다. 이런 방식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구상과 일정부분 맥을 같이하는 대목이라 흥미롭기까지 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7년 5월 독일 베를린자유대학 자유상 수상연설을 통해 '6자회담이 북핵문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한 후 6자회담이 상설화 되었을 때'라는 전제조건을 달아, EU가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이 기구에 참가하는 것이 동북아 평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 주장했다. 이는 6자회담이 동북아안보협력기구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자칫 벌어질 수도 있는 미국과 중국 사이의 경쟁에 대한 EU의 균형자 역할을 기대했던 것으로 이해된다.

물론 차이는 있다. 이명박 당선자의 구상은 6자회담과는 공존, 혹은 별개로 북핵 문제를 해결해가는 과정의 하나로 EU의 참여를 언급한 점이다. 그렇다면 EU는 공식적인 회담 기구에는 참여하지 못하고 단지 북한을 설득만하는 수준의 주문에 만족하고 말 것인가.

일반적 상식과는 다르게 EU는 북핵문제 해결에 대한 자신들의 관심을 결코 놓아둔 적이 없다.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왔다고 보는 편이 맞다. 1994년 시작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북한 경수로 사업을 보자. 이때 EU는 이사국으로 참여해 8%의 비용을 분담했었다. 왜 그랬을까? EU는 당사자적 지위를 보유하고자 했다.

같은 정책적 흐름에서 EU는 미국과 중국이 주도한 6자회담 창설 당시 회담 당사국으로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희망했었다. 2003년 제2차 6자회담과 2005년 제4차 6자회담을 앞두고는 6자회담 참여를 공식적으로 요청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EU는 결과적으로 참여하지 못했다. 6자회담 관련국, 특히 미국의 거부에 가까운 신중한 입장이 핵심 요인이었다.

아직 개념 수준의 이야기라 논평하기가 쉽진 않지만 EU를 통한 북핵문제 해결 구상은 어쩌면 국제관계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해프닝일 가능성이 높다.

北에 옵션 하나를 더 주는 셈

가정법으로 경우의 수를 따져보자. 첫째, EU에게 단지 북한에 대한 설득만을 요청하는 수준이라고 하자. 이는 당연히 EU에게서 거절당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불필요하게 우리에 대한 미국의 불신을 초래할 것이다. 나머지 6자회담 참가국 또한 6자회담을 사실상 무력화 시키는 시도로 이해할 가능성도 있다. 북한에게 쓸데없는 지렛대를 부여하는 셈이 될 수도 있다.

이쯤에서 상식적인 의문을 던져보자. 이 당선자의 말대로 EU를 통해서 설득할 바에야 우리가 설득하는 것이 더 쉽지 않을까? 같은 사회주의 국가이고 최고의 동맹인 중국조차도 설득할 수 없는데 과연 EU는 북한을 설득할 수 있을까?

둘째, 6자회담을 확대 개편하는 수준, EU에게 최소한 옵저버 자격이라도 부여하는 수준이라고 하자. 이 또한 실익측면에서 타당성이 떨어지고 미국이나 일본으로부터 거부당할 가능성이 거의 확실하다. 북핵문제의 다자주의화를 넘어선 북핵문제의 국제화를 6자회담 당사국들은 결코 찬성할 리가 없다. 동북아에 있어서 EU의 영향력 확대를 반길 만한 나라가 미, 일, 중, 러 중 어느 한 나라라도 있을 성 싶은가. 특히, 6자회담을 동북아 안보전략의 중 장기적 틀로 구상하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찬성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미국의 네오콘과 북핵문제에 대한 인식을 동일시하는 미 의회조사국 래리 닉시 박사의 언급은 앞선 단언에 대한 유력한 논거이다. 닉시 박사는 2005년 EU의 6자회담 참여와 관련하여 "만약 북한이 유럽연합의 회담 참가를 적극 지지한다면 미국의 입장에서는 이를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2005년 3월 11일 자유아시아방송(RFA) 인터뷰) 김대중 전 대통령이 EU의 6자회담 참여를 '북핵문제가 해결되고 6자회담이 상설화된 이후'로 제안한 것도 EU의 6자회담 참여가 협상체계의 혼란과 그에 따른 협상의 지연을 가져올 수 있음을 미리 예상하고 발언했던 것과 결코 다르지 않다.

셋째, 북한의 입장에서 한번 살펴보자. 북한은 EU의 개입이 결코 싫지만은 않을 것이다. 앞서 본바와 같이 북한에게 있어 EU의 개입은 북한으로 하여금 또 하나의 옵션을 부여잡게 되는 의미가 있다. 주요 핵 강대국들이 포함된 EU의 개입은 북한으로 하여금 핵보유국으로서의 지위를 강화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는 북한의 주장대로 '북핵 불능화 협상'을 '핵 군축협상'으로 전환시키는데 용이한 틀을 제공한다.

EU가 갖는 정책결정 과정의 특수성은 북한에게 시간을 유동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또 다른 옵션이다. 이 당선자가 결코 의도할리는 없었겠지만 시간적으로나 핵전략 상으로 EU의 6자회담 참여는 북한에게 있어 결코 불리할리 없는 구상이다.

그렇다면 EU를 통한 북핵문제 해결 구상의 타당성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 현재로서는 구체적이지도, 실용적이지도, 실현 가능성이 있을 것 같지도 않다.

선핵폐기론, 김정일의 결정권만 높여줄 뿐

그렇다면 이 당선자의 북핵 전략은 어떠해야 할까. 지나치게 경직된 선(先) 핵포기 정책에서 스스로 자유로워져야만 할 것이다. 통일지향적인 평화 프로세스라는 단계적이고 중장기적인 접근만이 해법이다. 6자회담을 통한 북핵문제 해결, 다자주의적 접근을 통한 동북아 안보구상, 6자회담 틀 내에서의 북미 간 대화와 수교, 정전협정 체제를 넘어선 평화체제 협정의 담보, 남북한 간의 인적, 물적, 경제적 교류의 확대, 상호 신뢰에 기초한 군축 등이 포괄적이고 종합적으로 진행될 때 북핵은 자연스럽게 폐기되고 북한은 개혁개방의 길로 나아갈 것이며 3세 승계가 갖는 정치적 불확실성이 낮아진다. 통일이 좀 더 앞당겨질 가능성이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당선자는 오로지 북한의 선 핵폐기만을 요청함으로써 남북문제나 북핵문제의 주도권을 김정일 위원장의 결단에 맡겨버림과 동시에 이 모든 문제에 대한 주도적 결정권을 김정일 위원장에게 넘겨주고만 것이다. 결국 새 정부가 북한에 대해 할 수 있는 일은 김 위원장의 '대결단'만을 촉구하는 일이다. 역설적이게도 이는 위원장의 전지전능함과 독재적 결단을 강화시켜주고 만다.

또 하나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이 당선자의 인식과는 달리 남북관계와 한미관계는 선택의 문제가 아닌 선순환의 문제라는 점이다. 이 당선자의 인식대로라면 남북관계는 철저히 한미관계에 종속되고 말 것이다. 이는 우리에게 있어 남북관계의 당사자성을 포기하고 사실상 구경꾼의 지위로 전락함을 의미한다.

한반도 문제를 '평화 프로세스'로 보지 않고 적과 아의 '대립의 문제', 남북관계와 한미관계를 '선택의 문제'로 바라보는 냉전적 사고에서 기인한다. 필자는 언론 기고를 통해 한반도 문제가 선택의 문제가 아닌 프로세스의 문제임을 강조해 온 것도 그 때문이다.("'비핵화 vs 평화', '자주 vs 동맹' 이분법을 넘어")

물론 대안은 어렵다. 더구나 김정일 위원장과 같은 예측 불가능한 정책결정자를 상대로 전략을 구사하기는 쉽진 않다. 경제에서의 실용만큼 대북전략에 있어서도 실용을 이야기 할 때이다. EU를 통한 북핵문제 해결 구상은 또 하나의 실용일 수는 있다. 그렇지만 이미 시도되었고, 검토되었고, 사실상 거부당한 선례까지 있는 사안을 다시 실용의 방편으로 이야기할 때에는 좀 더 신중해야 한다. 그렇다고 이러한 접근 방법이 갑자기 나타난 독특한 방식인 양 비판 없이 보도하는 일부 언론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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