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차세대전투기사업(KF-X)이 중단 위기에 처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지난 5일 이 사업의 경제적 타당성이 부족하다는 최종 검토결과를 방위사업청에 통보한 것이다. 이른바 '보라매 사업'으로 불리는 KF-X는, 우리 기술로 F-16을 능가하는 전투기를 만들겠다는 계획 아래 2001년부터 우리 군이 독자적 추진해 온 10조원 규모의 전투기 개발 사업이다.
폐기 직면 KF-X
KDI 측의 평가는 10조원을 들여 사업을 추진한다 해도 산업파급 효과는 크게 잡아야 4조~5조원대가 고작이고. 수출 가능성마저 희박해 자칫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되기 쉽다는 지적이다. 국방연구원(KIDA) 측도 "개발비용 및 획득비용이 상당히 많이 소요되기 때문에 국내 소요만 갖고 사업을 추진하기는 상당히 어려운 실정"이라고 KDI의 평가에 동의하고 있다.
하지만 KDI와 KIDA 측 견해는 심각한 허점을 안고 있다. 아니 중요한 부분을 간과하고 있다. 바로 보라매 사업이 지니고 있는 기술 안보적 측면의 의미다.
바야흐로 세계는 항공우주 분야에서 첨예한 각축을 벌이고 있다. 이 코너에서 몇 번 다룬 우주 경쟁은 일단 제쳐놓고라도 항공 분야, 특히 군용 항공 분야의 경쟁은 그 자체가 전쟁이다. 미국은 스텔스 기능을 가진 F-22(일명 랩터)와 F-35(일명 라이트닝II)를, 러시아는 수호이-37과 PAKFA 등으로, 프랑스와 스웨덴, 일본 등도 잇따라 자국 개발 모델을 내놓고 있다.
개발 중지시 무기 체계 독립 요원
그런 가운데, 우리는 건국 이후, 아니 공군 창설 이후 줄곧 미국 전투기종을 받아쓰는 형태의 전투기종 종속 형태를 유지해 오고 있다. 여기서 두 가지 문제가 파생됐다.
하나는 무기 다변화 전략에 심대한 타격을 입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한ㆍ미 무기간 호환성을 내세워 미국 무기의 구입을 당연지사로 밀어붙여왔다. 그런 가운데, 실제로 판매자 우위(seller's market) 형태로 구매가 이뤄짐에 따라, 가격은 비싸면서도 장비 수준(무기는 옵션에 따라 엄청난 차이가 난다)은 저급한 난맥상이 계속돼 왔다.
더욱 심각한 것은 그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가 크다는 점이다. 두 차례의 차세대 전투기 사업으로 우리 공군이 들여온 F-16(한국 버전 KF-16)과 F-15(한국 버전 F-15K)을 보자.
지난 1997년 이후 10년 동안 KF-16은 무려 10대가, KF-15는 한 대가 각각 추락했다. 이중 2006년 6월 7일 경북 포항 앞바다에서의 F-15K 추락사고만이 중력 가속에 의한 조종사 의식상실에 따른 것으로 판명 났을 뿐, 추락한 KF-16 기종은 모두 엔진 또는 기체 이상으로 판명됐다.
전투기종 美 종속 심각
그렇다고 F-15 기종이 안전한 것도 아니다. 본토인 미국에서 F-15 기종은 애물단지다. 작년 11월 미주리 상공을 비행하던 미 공군 F-15의 조종석이 떨어져 나오면서 기체가 공중에서 두 동강 났다. 미 공군은 모든 F-15 기종의 비행을 전면 중지하고 정밀 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F15A에서 D까지 구형전투기 450대중 162대가 동체를 지지하는 빔에 금이 간 것으로 드러났다.
우리 공군은 지난 한 달 제작사인 보잉과 함께 보유중인 F-15K 전투기 29대 전체를 대상으로 기체 결함 여부 전수조사를 실시했다. 참고로 F-15기종은 미 공군에선 더 이상 추가 취역하지 않고 있는 폐기종이다. 하지만 우리 공군은 앞으로도 더 도입할 예정이다.
그런데 최근 보잉 측이 정말 희한한 제안을 해 왔다. 지난 1월 20일 열린 F-X 2차 사업 협상에서 보잉 고위 간부가 F-15K 1대를 더 제공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한 것이다. 2년 전 추락한 F-15K를 보전해주겠다는 취지라는데, 무슨 국화빵도 아니고 대당 1천억원을 웃도는 고가의 장비를 덤으로 한 대 더 주겠다는 속내, 자국에서 심대한 결함이 있는 것으로 판명된 폐기종을 추가로 팔면서 덤까지 주겠다는 제안, 과연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채산성 여부 다시 꼼꼼히
다시 보라매 사업으로 돌아가 보자. 단군 이래 최대의 연구개발(R&D)사업인 KF-X는 우리의 기술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신수종분야다.
이미 우리는 성능이 입증된 국산고등훈련기(T-50)와 이를 베이스로 경공격기(A-50)와 경전투기(F-50)를 통합한 F/A-50를 개발에 들어갔을 정도로 항공 산업에 익숙해 있다. 이를 토대로 볼 때 보라매 사업이 반드시 채산성 없는 사업이라고 볼 수도 없다.
작년 가을 성남비행장에서 열린 2007서울에어쇼에서 영국ㆍ독일ㆍ프랑스ㆍ스페인 등의 컨소시엄인 유럽항공방위우주산업(EADS)은 스스로 'KF-X의 잠재적 파트너'라고 지칭하면서 러브콜을 보냈다.
EADS의 적극적인 태도는 무얼 말하는가? 최강 라이벌인 보잉과 한국과의 사이를 벌이기 위해서일 수 있겠지만, 과연 채산성이나 전망이 없는데도 무턱대고 덤벼들었을까?
기술안보 깊이 생각해야
설령 채산성이 떨어진다 치자. 그래도 보라매사업은 추진해야 한다. 앞서도 지적했듯, 무기와 관련한 우리의 대미(對美) 종속은 위험 수위를 넘어서 굴종 수준이다. 적어도 동등한 위치에서 거래가 이뤄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여태껏 우리 자의로 기종, 특히 전투기종을 결정한 사례는 단 한번도 없었다.
그런 측면에서도 보라매 사업은 긴요하다. 기술 안보가 채산성에 우선하기 때문이다.
작년 9월 20일 이란 관영 IRNA통신은 "첨단 국산전투기 '사에게' 기종 2대의 시험비행에 성공했다"고 보도했다. 이날 모스타파 모하마드 나자르 국방장관은 "연구에서 설계, 제작까지 국내 기술로 만들어진 이 전투기들은 이틀 후부터 실전 배치될 것이며 산업생산 단계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사에게는 미 F-18기종과 비슷하면서도 강력한 기능을 갖고 있다고 이란 측은 주장했다.
이란이 사에게를 개발한 것은 물론 채산성을 겨냥했다기보다 엄혹한 국제안보 상황에서 기술 안보를 확보하기 위한 눈물 겨운 몸짓이라고 하겠다. 기술 안보 확보의 당위성과 시급성, 우리라고 다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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