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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 문국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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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간첩 문국현?

[기고] 과대망상, 음모론, 자기정당화, 책임전가의 논리

1.
  
  국보법이 악법이라고? 그러면 폐지하자고 외칠 일이다. 하지만 간첩죄는 굳이 국보법이 아니더라도, 모든 나라에서 형법으로 처벌하고 있다. 국보법 폐지론의 핵심도 바로 그것 아닌가? 간첩죄는 형법으로도 얼마든지 처벌할 수 있다는 것. 넘겨준 자료가 별 거 아니라고? 단돈 1000원을 훔쳐도 절도죄는 성립한다. 지은 죄에 비해 형량이 너무 많다고? 그러면 그렇게 주장할 일이다. 이 모든 양보에도 불구하고 남는 것은, 민주노동당의 당직자가 동료들의 신상을 파악한 정보를 북한 정보부에 넘겼다는 사실이다.
  
  그 쪽 변호사 말이 그 자료의 내용은 네이버에 공개되어 있다고 하니,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한번 읽어 보시라. 그 문서는 제 당의 동료들의 사상을 11가지로 분류해 놓고, 각 인물의 장점과 단점, 성격까지 모두 분석해 놓았다. 방북단 관련 문서는 특정한 인물에는 '요주의 인물'이라는 딱지를 붙여놓고, 다른 인물에게는 '특별관리'를 부탁해 놓았다. 또 다른 인물은 만남을 공개에서 비공개로 전환하라고 요청해 놓았다. 손석춘씨에게 묻는다. 이게 당신이 말하는 '인간에 대한 예의'인가?
  
  다시 묻는다. 손석춘씨는 최기영이라는 사람이 이 문서를 작성한 적이 없다고 말할 작정인가? 아니면 작성한 적이 있지만, 별 게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인가? 어느 쪽인지 분명히 답변해 주기 바란다. 손석춘씨는 말한다. 민주노동당에 종북파가 없지는 않을 것이라고. 하지만 김창현씨의 말을 들어 보라. 그는 민주노동당에 종북파는 전혀 없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둘 중의 한 사람은 대중들 앞에서 거짓말을 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손석춘씨는 둘 중에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은가?
  
  그는 '자주파=종북파'라는 등식을 만들지 말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등식은 자주파라는 사람들이 스스로 만든 것이다. 이번 대의원 대회에서 혁신안을 압도적 부켤시킴으로써, 대중들 앞에 스스로 폭로한 것이다. 다만, 어법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민주노동당 인사들의 자료를 빼다가 북한정보부에 갖다 바치는 것을, 또 그런 짓을 한 사람을 제명은커녕 징계하는 것조차 거부하는 것을, 자주파와 손석춘씨는 '자주'라고 부르겠지만, 상식이 있는 대부분의 그것을 '종북'이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기들이 그 짓을 '자주'라 부를 권리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다른 이들이 그 짓을 '종북'이라 부를 권리도 마땅히 인정해 줘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도대체 왜 그가 호부호형을 못하게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고, 형을 형이라 부르는 것이 어법에 맞다. 자기들이야 취향이 독특해 다른 어법을 사용하더라도, 남들이 상식에 맞는 어법을 사용한다고 악다구니를 늘어놓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매도'라는 것은 어떻게 하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가 있어 소개할까 한다.
  
  2.
  
  이런 개그는 어떤가?
  
  "민주노동당의 성장에 겁을 집어 먹은 미국은 지난 2002년 총선 이후 민주노동당을 와해 말살하기 위해 악랄하게 책동하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는 미국은 문국현과 같은 사이비진보세력을 내세워 민주노동당의 성장을 가로막으려 하였으며 대선 이후에도 민주노동당과 진보세력을 와해, 말살하기 위해 악랄하게 책동하고 있다. 이같은 미국의 신지배전략을 바로보지 못하고 조승수, 김형탁, 한석호, 진중권 등 진보진영 내에 반북세력, 사이비진보세력들은 시대착오적인 종북주의 논쟁, 진보판 마녀사냥인 소위 일심회 출당 요구, 진보운동을 내부로부터 와해하는 분당놀음을 벌여 놓고 진보진영의 분열을 획책하고 있다."
  
  일심회 사건의 변호를 맡고, 민노당 혁신안의 부결을 이끌었던 김승교라는 분이 '남북공동실천연대인'라는 단체의 이름으로 내놓은 논평이라고 한다. 이것만 봐도 이들의 정신상태가 어떤지 짐작할 수 있을 게다. 이견그룹을 '미제의 간첩'이라 부르는 이들의 고약한 언어습관이야 하도 많이 듣던 거라 별 인상을 주지 못한다. 독특한 것은, 이번엔 민주노동당과 전혀 관계가 없는 애꿎은 문국현마저 졸지에 미제의 간첩으로 만들었다는 점. 왜 그럴까?
  
  정상적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면 지난 대선 결과를 보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민주노동당이 구태의연한 모습을 보이다가 급조한 창조한국당 수준에도 못 미치는 저조한 득표율로 참패를 했다." 그런데 동일한 데이터를 종북주의자들의 머릿속에 입력하면, 이렇게 출력이 된다. "민주노동당의 성장에 겁을 먹은 미국이 민주노동당을 말살하려고 문국현과 같은 사이비 진보세력을 내세워 민주노동당의 표를 갉아 먹는 바람에 미흡한 결과를 얻었다."
  
  여기서 이들의 정신 상태를 읽을 수 있다. 첫째는 과대망상의 병증이다. 미국이 할 일 없냐? 그 덩치 큰 나라가 조그만 한국 땅에서조차 "한 줌도 안 되는"(손석춘) 민주노동당에 겁을 집어먹고 와해 책동이나 벌이게. 자기들이야 대미항전을 벌인다고 비장해 할지 모르나,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남조선 자주파는 그냥 존재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이들은 자신의 존재에 과도하게 중요성을 부여 한다. 하긴, 그 환상에 취해 살아가는 이들이 아닌가.
  
  둘째는 음모론의 사고다. 한 마디로 세상 모든 일이 미국의 음모에 따라 돌아가고 있다는 거다. 이명박이 대통령 된 것도 미제의 음모, 문국현이 출마한 것도 미제의 음모, 민노당이 참패한 것도 미제의 음모. 객관적으로는 우스운 허구일지 모르나, 주관적으로는 비장한 진실이다. 웃지 말라, 추종자들은 이 개그를 정말 진지하게 믿는다. 이 종교적 사고방식은 세상 모든 일의 배후에 사탄의 역사가 있다고 말하던 중세 사람들을 연상시킨다.
  
  셋째는 자기정당화의 논리다. 상황을 이런 식으로 묘사해면 자기들 입장에서는 심기가 편해질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들이 주도한 대선의 패배는 자주파 노선에 대한 국민의 심판이 아니라, 졸지에 미제의 모략책동에 따른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자기들은 잘못한 것 없고, 그저 미제의 모략에 맞서 싸웠으나 역부족이었다는 얘기다. 대의원 대회에서 "참패"라는 말이 "실망스러운 결과"로 바뀐 데에는 이런 사고의 메커니즘이 깔려 있다.
  
  넷째는 책임전가의 전략이다. 이래 놓고서 애먼 사람 '미제의 간첩'으로 둔갑시키는 것이다. 도대체 문국현이 뭘 잘못했단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티슈 만들다가 얼떨결에 대선에 출마한 것 밖에 죄가 없다. 여기서 문국현은 그냥 자기들의 정치적 오류를 뒤집어쓰고 대신 속죄할 희생양으로 선택됐을 것뿐이다. 이래 놓고서는, 자기들이 만든 비대위의 혁신안을 자기들이 거부해 놓고, 나가는 사람들 또다시 '미제의 간첩' 삼을 작정인가 보다.
  
  우리야 저런 소리를 그냥 개그로 듣고 웃어넘기지만, 북조선에서 저런 논리로 그 동안 얼마나 많은 이들이 희생됐을지 생각해 보라. 저 개그의 주인공 김승교라는 이는 변호사인 모양이다. 인터넷에 북에 보낸 보고서들이 공개되어 나도는 판에 법원에서 이미 판결이 확정된 사건에 대해서는 여전히 '증거'를 요구하는 그가, 문국현에게 '미제의 간첩'이라는 선고를 내릴 때에는 굳이 증거가 필요 없다. 그게 주체의 법철학인가 보다.
  
  자기 동지들을 정치적 색깔에 따라 11개 파로 가지런히 분류해 놓고, 방북단 성향을 분석해 '요주의 인물'이니, '특별한 관리가 필요'하니, '만남을 공개에서 비공개로 전환해야 한다'느니, 몰래 이런 보고서나 써서 북한 정보부에 바치면 위대한 민족해방운동의 동지가 되고, 티슈 만들다가 얼떨결에 대선 출마하면 민족을 짓밟은 이민족의 간첩이 된다. 이것이 자주파들의 머릿속의 두뇌회로이며, 그들이 건설할 통일조선의 운영원리다.
  
  혁신안의 통과를 바란 이들은 일심회 사건을 '행위의 문제'로 봤다고 한다. 한 마디로 자기 당의 정보를 몰래 빼내서 다른 당에 갖다 주는 것을 해당행위로 보고, 그 행위에 대한 처벌만을 주장한 것이다. 반면, 그 최소한의 혁신안까지 부결시킨 이들은 그것을 무엇보다 '신념의 문제'로 봤다고 한다. 맞다, 그것이 그들의 신념이다. 민주노동당 활동하며 북한 정보부에 보고서 올리는 것이 바로 당을 깨서라도 지켜야 할 그들의 '신념'의 정체다. 오, 반석 같은 베드로의 믿음이여....
  
  추신)
  
  아, 그 동안 또 하나의 개그가 있었던 모양이다. '다함께'라는 곳에서 얼마 전에 "민주노동당 전체를 자주파로 매도하지 말라"는 제목의 성명을 냈다. 그 동안 내가 관찰해 온 바에 따르면, 민주노동당의 '자주파'가 소라면, 내가 아는 한 '다함께'라는 그룹은 늘 거기에 매달려 가는 '달구지'의 노릇을 해 왔다. 따라서 그 성명의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민주노동당 전체가 소라고 부르지 말라. 민주노동당 전체는 소달구지다', 정도가 되겠다. 해 맑은 길을 삐그덕, 삐그덕. 코미디를 해라. 그 소의 고삐는 누가 쥐고 있는지는 굳이 말할 필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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