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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이론이란?

[최무영의 과학이야기] <4> 과학적 지식 <상>

지난 강의에 우리는 과학적 사고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과학적 사고가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고 그 의미가 무엇인지 배웠는데 이번 강의에서는 과학적 지식에 대해 생각해 보지요. 지난 강의 마지막에서 과학적 지식의 성격을 논의했는데 여러 가지 다양한 단편적 지식들을 하나의 체계로 이해하려고 시도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른바 특정 지식들을 묶어서 하나의 보편 지식, 즉 이론 체계를 만들어내려는 것이지요.

특정지식과 보편지식

과학적 지식은 성격상 특정 지식과 보편 지식으로 나눌 수 있겠습니다. 특정 지식이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과학적 사실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진다"는 것은 과학적 사실인데 이것이 바로 특정 지식입니다. 이러한 과학적 사실은 감각 기관을 통해서 얻게 되지요. 눈으로 본다든가, 귀로 듣는다든가, 만져본다든가, 맛을 본다든가 하는 것들은 모두 감각 기관을 통해서 정보를 얻는 겁니다. 직접 육안으로 볼 수 없는 경우에는 다른 기구의 도움을 얻기도 하죠. 아주 작은 경우에는 현미경으로 보기도 하고, 멀리 떨어져 있는 천체를 볼 때는 망원경을 이용해 보기도 하고요. 하지만 결국 감각 기관을 통해서 정보를 얻습니다.

반면에 보편 지식은 이론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여러 가지 과학적 사실, 곧 단편적인 특정 지식을 묶어서 하나의 체계로 이해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지난 강의에서 언급한 중력의 법칙 같은 것을 보편 지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구가 해 주위를 돈다든가, 달이 지구 주위를 돈다든가, 밀물과 썰물이 생긴다든가, 공을 던지면 포물선으로 날아간다든가 하는 것들은 다 특정 지식이지만 그것들을 하나로 묶어서 중력의 법칙이라고 말하면 보편 지식이 되는 것입니다.

과학적 사실의 성격을 조금 더 자세히 생각해 봅시다. 과학적 사실은 이론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이론은 과학적 사실에 바탕을 두고 구성하게 됩니다. 한편 과학 이론이 주어져 있으면 그 과학 이론에 의해서 허용되는 사례를 생각할 수 있어요. 또한 과학적 사실은 과학 이론에 의해서 확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확인할 수 없다면 과학적 사실이라고 볼 수 없는 거죠. 확인은 측정을 통해서 이루어지는데, 직접 측정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지구에서 달까지의 거리가 얼마나 되죠? 38만㎞정도입니다. 지구에서 해까지의 거리는 1억 5000만㎞ 가량 되지요. 그런데 이런 것들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누가 재어봤나요? 확인을 해야 과학적 사실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데 해까지의 거리가 1억5000만㎞라는 것을 어떻게 과학적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느냐는 거죠.

학생: 빛을 보내서 간접적으로 측정하면 되지 않을까요?

좋아요. 그러면, 우주의 나이가 얼마일까요? 우주의 나이는 현재 137억 년으로 생각합니다. 이러한 우주의 나이는 어떻게 측정해서 과학적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직접 측정할 수 없다 하더라도 알려져 있는 다른 과학적 사실들로 추론할 수 있으면 그것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지구에서 달까지 거리가 38만㎞라고 하는 것은 빛이 달에 갔다가 돌아오는 시간을 측정하면 이를 통해 추론할 수 있습니다. 빛의 빠르기는 이미 알고 있는 과학적 사실이기 때문에 이에 따라 달까지의 거리도 과학적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겁니다. 우주의 나이도 마찬가지죠.

특정 지식이 과학 이론에 의해 영향을 받는 사실을 지적했는데, 그 반대도 가능합니다. 과학 이론을 확인하고 실증적으로 검토하는 과정에 특정 지식을 이용하는 겁니다. 어떠한 과학 이론을 우리가 받아들일 것인가를 판단하는 데 과학적 사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미 알려져 있고 믿을 수 있는 과학적 사실, 즉 신뢰할 수 있는 특정 지식이 있다고 합시다. 거기에다가 이론, 즉 보편 지식을 더하면 새로운 과학적 사실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중세 서양에서 티코 브라헤(Tycho Brahe)라는 사람이 평생을 걸려서 밤하늘의 천체를 관측했습니다. 특히 행성을 많이 관측해서 엄청나게 많은 관측 자료를 만들었다고 하지요. 그 자료는 모두 과학적 사실, 곧 특정 지식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브라헤의 제자로 널리 알려진 케플러(Johannes Kepler)가 이 방대한 관측 자료를 검토해서 '케플러의 세 가지 법칙'을 얻게 됩니다. 케플러의 세 가지 법칙이 뭐죠? 첫째 법칙은, '모든 행성은 태양을 한 초점으로 하는 타원 궤도를 돈다'는 것이고 둘째는 '행성의 운동에서 넓이 빠르기는 일정하다.' 다시 말해서 행성이 해에 가까이 있을 때에는 빨리 움직이고 멀리 떨어져 있을 때는 천천히 움직인다는 거예요. 타원이니까 찌그러진 궤도를 따라 돈다고 할 수 있잖아요. 초점에 해가 있고 행성이 타원 궤도로 도는데 같은 시간에 움직이는 거리가 해에 가까울 때 더 크다는 거죠. 세 번째 법칙은, 행성의 주기, 곧 행성이 궤도를 한 바퀴 도는 데에 걸리는 시간이 그 행성에서 '1년'인데 이러한 주기의 제곱이 타원의 긴반지름의 세제곱에 비례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수성의 주기가 제일 짧습니다. 수성의 '1년'은 얼마나 되죠? 수성이 태양을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88일입니다. 지구의 '1년'은 물론 365일이고, 화성의 '1년'은 대략 지구의 2년 정도입니다. 그리고 더 멀리 가서 해왕성 정도 되면 거기의 '1년'은 지구로 따지면 수백 년이 될 겁니다. 그 곳에 인간 같은 생물이 있다면 자기 생일을 평생 한 번도 맞지 못하겠네요.

아무튼 케플러의 세 가지 법칙은 순전히 브라헤의 관측 자료를 분석해서 얻어낸 것입니다. 참 놀랍지요. 엄청난 양의 자료를 끈기 있게 분석해서 규칙성을 찾아냈으니까요. 나 같은 사람은 생각조차 할 수 없지요. 한 발 더 나아가서, 뉴턴은 운동의 법칙, 그리고 중력의 법칙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뉴턴의 이론체계를 고전역학(classical mechanics)이라 부릅니다. 케플러는 순전히 자료 분석을 통해서 세 가지 법칙을 얻어냈습니다. 귀납적 추론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뉴턴은 거꾸로 보편 지식 체계를 만든 다음에 그런 체계에서 이러한 과학적 사실들이 어떻게 이끌어질 수 있는지 생각했습니다. 연역적 방법이지요. 그런데 고전역학이라는 이론 체계는 행성들의 운동을 설명하는 데서, 다시 말하면 케플러의 법칙들을 설명하는 데서 지극히 혁명적입니다. 고전역학이라는 보편 지식 체계에서는 불과 몇 줄의 추론을 통해 케플러의 법칙을 얻어낼 수 있는데, 거짓말처럼 놀라워서 이것을 고전역학의 꽃이라고 부릅니다.

이론 구조

지금까지 특정 지식에 대해 배웠고, 다음으로 보편 지식에 대해 얘기해 볼까요? 보편 지식, 곧 이론은 대체로 두 가지 요소로 이뤄져 있습니다. 개념(concept)과 진술(proposition)이지요. 그런데 여기서 개념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의미와는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물리학에서 많이 사용하는 '힘'이라든가 '일'이라든가 하는 것들이 그렇습니다. 이러한 용어들은 일상에서 쓰는 개념을 차용해서 쓰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물리학에서 쓰일 때는 그 개념이 다를 수 있으니 조심할 필요가 있어요. 역사적으로 이론 체계는 여러 과정을 거치며 변화하는데, 흥미롭게도 개념도 이론과 함께 변천을 겪게 됩니다.

진술은 이론에서 개념들 사이의 관계를 규정지어 주는 요소를 말합니다. 뉴턴의 운동 법칙을 예로 들어 보죠. 힘 F, 질량 m, 그리고 가속도 a 라는 개념들 사이에 F=ma라는 관계가 성립합니다. 즉, 어떤 물체가 힘을 받으면 가속도가 생기는데, 이 때 힘은 질량과 가속도의 곱과 같다는 운동의 법칙이 바로 진술에 해당하지요. 이같이 이론에는 여러 가지 개념들이 있고 그 사이의 관계가 진술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일상의 말로 나타낸 진술과 식으로 쓴 것을 비교해 보면 수학이 얼마나 편리한 언어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진술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기본적 진술로서 '기본 원리(basic principle)'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이것에서 이끌어 얻어지는 진술(derived proposition)이 있지요. 보통 기본 원리는 가설(postulate)의 형태를 띠게 되지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개념과 기본 원리는 임의 요소라는 사실입니다. 임의성이 있다는 뜻이죠. 다시 뉴턴의 운동 법칙을 예로 들어 설명하지요. 힘과 질량, 가속도 세 가지를 모두 개념이라고 정의하면 이들 사이의 관계가 진술이 되지요, 그러나 가속도와 힘을 개념으로 받아들이고 질량은 미리 정의하지 않았다면 힘과 가속도, 질량 사이의 관계는 진술이 아니라 질량 자체의 정의식이라고 간주할 수 있습니다. 즉, 두 개의 개념에서 출발할 수도 있고, 세 개의 개념에서 출발할 수도 있는 거지요. 개념을 어떻게 정할 것인지는 임의성이 있습니다. 기본 원리도 마찬가지죠.

기하학과 비교해 볼까요? 하나의 직선이 있고, 직선 밖의 한 점을 지나면서 그 직선에 평행인 선은 몇 개가 있을까요? 한 개가 있다고 알고 있을 겁니다. 직선, 평행선 등의 의미들은 기본 개념으로 주어져 있는데, 직선 밖의 한 점을 지나면서 그 직선에 평행인 직선이 한 개뿐이라는 명제는 사실 증명할 수 없어요. 이끌어지는 진술이 아니지요. 그냥 받아들이고 출발해야 하는 겁니다. 이러한 것을 수학에서는 공리(axiom)라고 부릅니다. 수학에서 공리는 자연과학의 이론 구조에서 가설, 즉 기본 원리에 해당합니다.

이같이 기본 원리는 가설 체계이고, 개념은 임의 요소이므로 절대적으로 정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겁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어떤 영어 낱말의 뜻을 몰라서 사전을 찾아본다고 합시다. 영어를 처음 배울 때인데 'teacher'라는 낱말을 영영사전에서 찾아봤더니 모르는 영어로 설명이 되어 있더란 말이에요. 그래서 또 그 낱말들을 찾아보았더니 역시 모르는 낱말들로 설명이 되어 있어요. 그러다 보면 끝이 없겠지요. 아무 것도 알 수 없을 거예요. 결국 가장 기본적인 낱말 몇 개는 알아야 사전을 사용할 수 있지요. 마찬가지로 기본적인 것 몇 가지는 전제해야 그 다음 이야기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바로 임의 요소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사전을 사용할 때 몇 가지의 기본 낱말을 알아야 하지만 그 기본적인 몇 가지가 미리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임의 요소라는 것은 어디서 출발할 것인지 선택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물론 임의성이 있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택하는 것은 아니고 적절하게 택해야 편리하겠지요.

임의성에서 극명하게 보듯이 이론이라는 것은 인간의 창작물입니다. 하느님이 아니라 인간이 창조한 것이지요. 중요한 것은 상상력에 의해 창조됐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개념과 기본 원리 또는 가설 등은 상상력에서 출발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상상력에 의해 창조했다는 점에서는 예술과 다를 게 없습니다. 그러나 과학 이론은 물론 상상력만으로 다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요. 진술을 이끌어내고 자연과학의 구조를 정립하려면 당연히 논리 체계가 더해져야 합니다. 논리적인 정합성이 유지되어야 함이 중요하지요.

예로서 널리 알려진 뉴턴의 중력 법칙을 생각해 봅시다. 질량이 각각 주어진 두 물체 사이에는 서로 끌어당기는 힘이 작용하는데, 주고받는 힘 F는 두 물체의 질량의 곱(m1m2)에 비례하고 물체 사이의 거리 r의 제곱에 반비례한다는 내용이지요. 그러니 거리가 두 배가 되면 힘은 4분의 1로 줄어듭니다. 이 관계를 등식으로 표현하려면 단위를 맞추기 위해서 적절한 비례상수 G를 넣어서 F=G(m1m2/r2)라고 쓸 수 있습니다.

여기서 G는 중력 상수라고 부르며, (-)부호는 힘이 서로 끌어당기는 방향임을 뜻합니다. 이러한 뉴턴의 중력 법칙은 아주 훌륭한 이론 중의 하나지요. 그런데 이러한 법칙은 어디에 존재할까요? 지구와 태양 사이에 있나요? 아니면 우리와 지구 사이에 있나요? 다시 말해서 자연에 내재하고 있는 것인가요? 자연과학의 법칙이라고 하면 보통 자연에 내재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엄밀히 말해서 이론 체계라고 하는 것은 자연에 내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디에 존재하는 걸까요? 바로 우리 머리에, 곧 생각에 존재합니다. 물론 크게 보면 우리의 생각도 자연의 일부라고 할 수 있겠지만.

앞서 말했듯이 이론 체계라는 것은 창조물인데 눈에 보이는 창조물이 아니고 정신적인 창조물입니다. 우리 머리에 있을 뿐이고, 그 밖에 실재성(reality)은 없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를 잘못 이해하고 있지요. 창조물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모형(model)'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다시 강조하면 이론 체계는 기본적으로 우리가 만들어낸 모형이고 자연에 실재하지는 않습니다. 자연과학이 이같이 인위적인 창조물이고 상상력에 의한 것이라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몇 가지 개념들이 있고, 그들 사이의 관계를 규정하는 몇 가지 기본 원리들에서 출발해서 전개해나가는 창조물로서 이론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또는 어떻게 정당성이 있을까요? 출발은 임의적인데 그것에 어떻게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을까요? 정당성이 없다고 한다면 자연과학은 아무 의미가 없는 거죠.

학생: 실험으로 검증이 되잖아요.

좋은 지적이네요. 임의 요소 몇 가지를 전제해서 이론을 구성했다고 합시다. 개념들과 몇 가지 기본원리를 생각하고 그런 가설에서 진술을 이끌어내었습니다. 이것들을 묶어서 이론을 하나 만들었다고 한다면, 그 이론에 정당성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그 이론이 말해주는 결과가 현실성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그리고 현실성은 측정을 통해 판정할 수 있습니다. 측정의 중요한 요소는 관측인데 이는 결국 우리의 감각기관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직접 보든 망원경으로 보든 결국은 우리의 감각 기관과 연결하는 거죠.

정리하면 이론이라는 것은 개념과 진술로 이루어져 있는데, 개념과 기본 진술(가설)은 임의 요소지만 그로부터 이끌어지는 진술은 논리적인 정합성을 가지고 있어야 하지요. 그리고 중요한 것이 우리의 감각 경험과의 연결입니다. 이론은 우리의 머리에만 있는 것이고 아무런 실재성이 없는데, 감각 경험을 통해서 현실 세계와 접하게 됩니다. 이론과 감각 경험은 관측, 다시 말해 측정을 통해서 연결됩니다. 측정(관측)이 유일하게 이론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과정이며 이것이 없다면 이론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이론을 만들어나갈 때 적절한 개념과 가설에서 출발할 텐데 이것은 임의 요소니까 어떤 개념을 선택하느냐, 기본 원리를 어떻게 출발하느냐에 따라서 여러 가지 다른 이론이 있을 수 있습니다. 선택한 개념이나 기본 원리가 과연 정당한지에 대해서 검토는 하겠지만 일반적으로 감각 기관과 관측을 통해 연결할 때 현실성이 있는 이론이 단 하나뿐일 이유는 없습니다. 서로 다른 여러 가지 이론들이 감각 경험과 연결되어서 똑같은 현실성을 보일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지구 중심설'이냐 '태양 중심설'이냐 하는 문제에서 여러분들 대부분은 지구 중심설은 틀렸고 태양 중심설이 옳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네요. 그러나 사실 두 가지 모두 훌륭한 이론 체계라 할 수 있습니다. 기본 원리는 다르지만 관측을 통해 감각 경험과 연결하면 두 가지 모두 현실성이 있습니다. 행성의 운동을 설명할 때, 대부분 태양 중심설이 친숙하겠지만 지구 중심설로도 잘 설명할 수 있습니다.

좋은 이론

일반적으로 어떤 현상을 설명하려고 할 때 여러 가지 이론이 있을 수 있는 겁니다. 그러면 그 중에서 어떤 이론을 선택해야 할까요? 취사선택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위의 예에서 우리는 왜 지구 중심설을 버리고 태양 중심설을 택했을까요? 둘 다 현실성에서는 문제가 없는데 말이죠.

숭례문이 국보 제1호지요? 흥인지문은 보물 제1호고요. 생각 난 김에 왜 흥인문이 아니라 갈 지(之) 자를 넣었는지, 그리고 현판이 숭례문은 세로로 되어 있는데 흥인지문은 가로로 되어 있는지 아는 사람 있어요? 아무튼 일반적으로 국보가 보물보다 급이 높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숭례문이 흥인지문보다 더 우수한가요? 예술품을 보면 어떤 것은 아주 좋고, 어떤 것은 상대적으로 좀 떨어진다는 등의 평을 하죠. 이러한 평의 기준이 무엇이냐에 따라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말이죠.

이론에서도 '좋은 이론'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다 같은 것이 아니라 어느 것이 더 좋은 이론인가 하는 것을 말하는데 몇 가지의 기준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술품에서 "이 작품이 저 작품보다 좋다"는 것은 어떤 뜻으로 말하는 거죠? 고등학교 때에 미술 시간이 있었고 그림도 그렸겠지요? 학생들이 모두 똑같은 풍경을 그렸는데 미술 선생님께서 어떤 학생의 그림은 좋다고 하고 어떤 학생의 그림은 그에 비해 좋지 않다고 하셨다면 그 기준이 뭘까요? 구체적인 상황이야 모르지만 아마 미술 선생님은 더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작품을 좋게 평하셨겠지요. 무엇이 아름다운가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고 여러 가지 요소들이 있겠지만요.

좋은 이론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것이 더 아름다운가 하는 문제라 할 수 있어요. 그러면 그 기준이 무엇인가? 정확성이라든가 보편성이라든가 다산성이라든가 하는 요소를 생각할 수 있지만 핵심적인 것 두 가지만 설명하지요. 먼저 이론에서 임의 요소가 있는데 될 수 있으면 너무 많지 않아야 합니다. 임의 요소가 너무 많으면 이론의 의미가 없어지지요. 몇 가지의 임의 요소로만 출발하되 경험과 연결할 때 최대한 넓은 관측의 결과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좋은 이론'의 중요한 첫 번째 조건입니다. 관측을 통해서 감각 경험과 연결하는 것이 이른바 실증적인 검증 과정인데, 이 때 가능한 한 넓은 관측 범위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보편성이 클수록 좋다는 거지요. 다른 한 가지 조건은 관측 결과를 명확히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좋은 이론이 되려면 일어난 일에 대한 설명을 잘 하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이것의 핵심은 앞에서 이야기했던 반증 가능성이지요. 결과를 명확히 예측했는데 실제로 관측해보니 예측과 다르다면 반증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만약에 어떤 이론이 관측 결과를 명확히 예측하지 않고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고 한다면 반증할 수 없을 겁니다. 그런 것은 반증 가능성이 없으므로 좋은 이론이 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앞날을 기억(예측)하는 능력을 지녔다는 사람들에게 가서 미래에 어떤 일이 생기겠냐고 물어본다고 합시다. 그런 사람들은 대체로 명확하게 말하지 않지요. 알 수 없는 말을 한참하고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다고 적당히 두루뭉수리 이야기하는데 그렇게 말하면 반증할 수 없지요. 나중에 이러니까 맞았다고 하는데 다르게 했어도 맞았다고 할 수 있는 겁니다. 이는 명확한 예측을 하지 않기 때문이고, 따라서 반증 가능성이 없도록 만드는 거지요. 이런 것은 과학 이론이라 할 수 없지요.

이른바 유사 과학, 더 확실하게는 사이비 과학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결국 이러한 두 가지 조건 중에 적어도 한 가지는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실증적 검증이 되지 않거나 명확한 예측을 하지 못하거나 하지요. 사이비 과학이냐 아니냐는 이를 잘 생각해보면 금방 판단할 수 있을 겁니다. 요새는 재미있게도 말로는 과학의 시대라서 여기저기마다 뒤에 과학을 붙이지요. 무슨무슨 과학이라고, 하기야 침대도 과학이라고 하니까요. 구체적인 예를 들기는 곤란하지만 신과학이니 창조과학이니 하는 야릇한 과학이 많은데 그런 것이 사이비 과학의 범주에 들어가는지 아닌지는 이 두 가지만 냉정하게 판단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정리하면 좋은 이론이 되려면 넓은 범위의 관측 결과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보편성이 있어야 하는데, 따라서 과학의 발전이란 보다 보편적인 이론체계를 구성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겠네요. 고전역학의 역사를 살펴보면, 갈릴레이의 낙하의 법칙이라든가 관성의 문제 등에서 태동해서 이런 것들을 더 보편적인 이론 체계로 확장한 것이 뉴턴의 고전역학 체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를 더 보편적인 이론 체계로 확장한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많이 들어봤을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의 상대성 이론(theory of relativity)입니다. 그러니까 갈릴레이에서 뉴턴으로, 그리고 아인슈타인으로 가는 것이 바로 더 보편적인 이론체계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지요.

과학 이론은 기본적으로 상상력과 논리가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지요. 일반적으로 상상력에서 출발해서 논리적인 정합성을 유지하면서 이론을 구성해 가는데, "상상력이 지식보다 더 중요하다(Imagination is more important than knowledge)"가 바로 아인슈타인이 한 말이지요. 상상력이 논리 체계를 포함한 지식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 겁니다. 나중에 더 논의하기로 하지요.

(매주 화, 목, 금 연재)

* 이 연재기사는 지난 2008년 12월 '최무영 교수의 물리학 강의'라는 제목의 책으로(책갈피 출판사) 출판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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