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자의 설명에는 '빌다'인 祝(축)자가 꼭 끼여든다. '입을 강조한 사람 모습'만으로는 '맏이'라는 의미를 끌어내는 데 무리가 많기 때문이다. 祝의 왼쪽 示(시)는 제사 지낼 때의 제삿상 또는 신주라고 하고, 兄 부분은 제사를 지내는 사람의 모습이다(<그림 4>). 입 부분이 강조된 것은 축문을 읽거나 기도를 올리는 것을 상징한다.
그렇다면 祝자는 지난번 休(휴)자의 경우에서 말했던 '장면 상형'이고, 兄자는 그 장면에서 한 부분을 떼어내 만든 글자가 된다. '형'이라는 뜻은 제사를 주관하는 사람이 한 집안의 대표인 '맏이'였기 때문이란다. 祝자와 관계 없이, 집안 식구들에게 명령(口)을 내리는 존재로서의 '맏이'를 나타낸 회의자라는 약간 다른 설명도 있다.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그럴 듯도 하다. 그러나 '장면 상형'이라는 글자 만들기 방식 자체가 미심쩍다. 지금의 의미에서 거꾸로 찾아들어가며 꿰맞추기를 한 느낌이고, 그나마 매끄럽지 못하기 때문에 祝자까지 끌어들여야 했다. '입'(口)과 '사람'(儿=人)이라는 두 가지 힌트만 던져 주고 '맏이'라는 의미를 끌어내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다.
발상을 바꿔 보자. 단독 사물의 상형이 아닌, 글자를 합쳐 새로운 글자를 만드는 방식이라면 회의자보다는 형성자 쪽이 훨씬 가능성이 높다. 兄자도 口와 儿의 두 부분으로 구성된 게 맞다면 그 가능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口나 儿은 어느 쪽도 '형' 발음과 좀 멀다.
그런데 口 부분의 옛 모습은 한글 ㅂ자처럼 돼 있다. 이것을 놓고도, 하늘에 대고 비는 것이기 때문에 하늘을 향해 입을 벌린 모습이라는 식으로 설명한다. 하지만 입을 나타낸 口자 자체가 옛 모습에서 거의 ㅂ자 형태기 때문에(<그림 5>) 이는 '오버센스'임이 분명하고, 그 ㅂ자 형태는 다른 가능성을 열어 준다.
亡(망)자의 옛 모습(<그림 6, 7>)을 보면 위쪽 亠 부분이 ㅓ 형태다. 亡자는 전체적으로 ㅂ자와 비슷하지만 ㅓ 부분이 아래 乚 부분과 약간 떨어져 있을 뿐이다. 兄의 윗부분이 亡의 변형이라고 봐도 큰 무리가 없다.
이런 생각은 발음을 보면 더욱 굳어진다. 亡의 발음을 이어받은 글자들 가운데는 荒(황) 같은 글자가 있고, 兄 쪽에서는 況(황)이 있다. 亡과 兄의 발음에 접점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兄은 口=ㅂ=亡을 발음기호, 人을 의미 요소로 하는 형성자로 볼 수 있다. 막연한 두 개의 힌트로 '맏이'라는 의미를 끌어냈다는 회의자 설이나, 祝자까지 끌어들이고도 어설픈 '장면 상형' 설보다 이게 훨씬 깔끔하다.
그렇다면 祝자는? 역시 '장면 상형'이 미덥지 않다면 祝은 示와 兄으로 이루어진 합성자다. 祝의 의미가 '빌다'이니 示는 의미 요소가 분명하고, 兄의 '맏이'라는 의미를 '빌다'와 연관시키는 건 아무래도 억지스럽다. 그렇다고 형성자로 보자니 선뜻 발음기호를 골라내기 어렵다.
역시 글자의 변형 가능성을 생각하는 게 '묘수'다. 兄 부분은 '형'이 아니라 只(지)의 변형으로 보면 그게 발음기호일 수 있다. '빌다' '저주하다'의 뜻인 呪(주)자와 함께 놓고 보면 발음도 조금씩만 변했음을 알 수 있다. 祝에는 받침이 살아 있는 반면, 呪와 이들 글자의 발음 뿌리인 只에서는 받침이 떨어져나갔다. 祝·呪는 兄이 아니라 只를 발음기호로 하는 형성자지만 모양과 발음이 약간씩 변해 엉뚱하게 글자 분석이 된 것이다. 물론 況은 본래의 兄을 발음기호로 하는 형성자다.
祝·呪의 발음기호인 只 역시 설명이 어설프다. 말할 때 기운이 입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모습이라는 알쏭달쏭한 <설문해자>의 설명 외에는 뚜렷한 주장도 보이지 않는다. 역시 글자 모양의 변형을 생각한다면 八 부분은 几(궤)라는 글자의 변형으로 그게 발음기호가 아닐까 싶다. 几의 중국말 발음은 '지'여서 只의 발음과는 한글로 표기할 수 없는 미세한 차이밖에 없다.
다시 祝·呪로 돌아가 보면 兄 부분의 아래 儿은 형태상 几와 거의 구분하기 어렵다. 只의 八 부분이 본래 几에서 변한 것임을 알려 주는 또 하나의 근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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