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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중계, 돈냄새 아닌 땀냄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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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중계, 돈냄새 아닌 땀냄새를!"

[TV와 수다] 황금 시간 핸드볼 중계, 그 예외성!

말 그대로 '의외'였다. 저녁 7시에서 9시 사이에 지상파 방송에서 여자 핸드볼 경기를 보게 되다니. 그것도 올림픽 결승이 아니라 올림픽 진출이 걸린 '예선'을 말이다. 중동의 '오일 머니'로 인한 편파 판정과 억울한 패배, 한-일전, 그리고 무엇보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여자 핸드볼 팀 실화를 영화화 한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흥행이 이런 의외의 편성을 이끌어냈다. 상업주의가 판을 치는 한국의 스포츠 중계에서 모처럼 만에 이야깃거리가 있는 중계였다. 결과도 제법 윈-윈이었다. 29일의 여자 핸드볼 중계는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즐긴 시청자나 15% 이상의 시청률로 짭짤한 이익을 얻은 방송사 모두에게 나쁘지 않은 결과였다.

텔레비전과 스포츠의 '행복한' 공생?

오늘날의 스포츠는 텔레비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스포츠 대중화와 상업화는 텔레비전과 함께 이루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스포츠의 상업화와 함께 텔레비전 중계는 스포츠의 가장 주요한 수익원 중 하나가 되고 있다. 축구, 야구 등 인기 종목의 경우에는 막대한 TV 중계권료 수입이 한 해 농사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 스포츠가 텔레비전에 끼친 영향도 크다. 스포츠 중계는 막대한 광고수익, 부가수익을 통해 텔레비전에 '돈'을 벌어다 주었다. 뿐만 아니라,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을 카메라에 담은 레니 리펜슈탈의 다큐멘터리 <올림피아> 이래, 스포츠 중계는 항상 영상 기술의 진보를 불러왔다. 올림픽, 월드컵 등의 국제 대회 중계는 다양한 영상, 촬영 기법의 실험장과도 같다.
▲ 한국 여자핸드볼 대표팀의 맏언니 오성옥(36)이 29일 오후 일본 도쿄 요요기체육관에서 열린 2008베이징올림픽 아시아예선 재경기 중 일본 선수들 사이에서 슈팅을 시도하고 있다. ⓒ뉴시스

스포츠와 텔레비전의 '공생'은 한국도 마찬가지다. 텔레비전 스포츠 중계가 라디오 중계를 대체하기 시작한 1970년대 이후, 텔레비전은 스포츠가 보여주는 땀, 열정, 몸의 스펙터클을 즐길 수 있는 최상의 공간이었다(경기장을 제외한). 또한, 프로 스포츠 붐, 박찬호, 박세리, 박지성 등의 '해외파' 경기, 월드컵, 올림픽 등의 국제 대회는 한국 방송사들에 막대한 수익을 안겨줬다. 스포츠와 텔레비전의 '공생'은 행복하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말이다.

한국에서 스포츠와 텔레비전의 관계는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빈익빈 부익부.' 월드컵 중계권을 사기 위해선 수백억을 투자하고 종일 편성을 하는 것도 마다 않는 방송사들이 수영, 핸드볼 등의 소위 '비인기 종목'에는 1분 1초 내주는 것을 아까워한다. 2006년 독일 월드컵 당시 무려 20시간 가까이 월드컵 관련 프로그램으로 편성표를 도배하는 '엽기'를 보여준 방송사들은, 박태환 선수가 한국 수영 사상 첫 세계 대회 1위를 한 작년 3월의 멜버른 세계수영선수권 대회 생중계를 1시간이 아까워 외면했다.

비인기 종목의 문제만은 아니다. 야구, 축구 등의 인기 스포츠도 국내 대회는 국제 대회와 비교해 철저하게 찬밥 신세이다. 지상파 방송 3사 모두가 중계하는 '전파낭비'를 보여준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4강 중계와 달리, 언제부턴가 프로야구 중계를 지상파에서 보는 건 '특별한 일'이 되어버렸다. 어쩌다 중계를 해도 '시간 관계상' 잘리기 일쑤이다. 그나마 야구는 행복한 편이다. 핸드볼은 텔레비전 중계의 '성은'을 받기 위해 경기 시간을 '웬만해선 보기 힘든' 평일 낮 2~3시로 바꿔야 한다.

그들의 공생. 사랑이 아닌 돈!

이 모든 문제의 원인은 간단하다. 바로 '돈'이다. 방송사들이 굵직한 스포츠 중계권에 목숨 걸고 특정 대회, 종목에 중계를 편중하는 이유는 돈이 되기 때문이다. 월드컵 등의 '잘 나가는' 스포츠 중계의 경우 광고 수입이 막대하다. 2006년 월드컵 한국-토고 경기의 회당 광고료는 2500만 원이 넘었다. 심지어 새벽 4시라는 'C급' 시간대에 중계된 한국-프랑스, 한국-스위스 경기도 회당 1600만 원 이상이었다. 작년 최고의 드라마 광고료를 받은 <태왕사신기> 광고료가 회당 1500만 원 선인 걸 감안하면, 스포츠 중계가 벌어다 주는 돈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 뿐만이 아니다. 스포츠 중계를 통한 수익은 지상파 방송 광고 수익에 한정되지 않는다. 방송 매체의 확대와 함께 중계권은 지상파 방송뿐만 아니라 케이블, 위성방송, DMB, IPTV, 인터넷, 모바일 등 뉴 미디어 전반을 아우르는 형태로 판매되고 있다. 게다가 타 방송사나 타 매체에 비싼 가격을 받고 중계권을 '재판매'하는 것도 가능하다. 2006년 SBS는 자회사인 SBS 인터내셔널을 통해 2010년부터 2016년까지의 여름, 겨울 올림픽 중계권을 약 700억 원에, 2010년, 2014년 월드컵 중계권을 최소 1250억 원으로 추정되는 액수에 사들이며 '싹쓸이' 했다. 하지만 SBS가 중계권을 싹쓸이했다고 시청률의 '보고'인 월드컵을 MBC, KBS에서 포기하겠는가. SBS를 비난하는 것과는 별개로 비싼 돈을 들여 SBS로부터 중계권을 구입할 게 틀림없다.

스포츠 중계는 이런 단기적 수익뿐만 아니라 장기적 수익에도 도움이 된다. 굵직한 스포츠 중계는 방송사의 새로운 프로그램 홍보를 위한 최고의 수단 중 하나이다. 29일 MBC 여자 핸드볼 중계만 봐도, 핸드볼 중계와 동시에 MBC에서 준비한 2008년 스포츠 중계 전체를 홍보했다. 여기에 올림픽 등 장기 중계의 경우, 올림픽 중계 기간에 확보한 시청률이 대회가 끝난 후에도 상당 기간 해당 채널 시청률로 이어지는 효과도 지니고 있다. 방송사들이 비난을 감수하며 중계권 확보에 달려드는 건 다 이유가 있어서다.

피해보는 건 오직 시청자 뿐

텔레비전과 스포츠의 '돈놀이'로 인한 최대 피해자는 시청자다. 치솟는 중계권료를 보상받기 위해 방송사는 월드컵, 올림픽 관련 프로그램을 주야장천 틀어댄다. 시사교양, 예능, 드라마 등의 프로그램 시청자에게는 좀처럼 선택권이 주어지지 않는다. 심지어 뉴스조차 '월드컵 특집' 등으로 주요 기사가 단신으로 처리되는 경우.도 많다.

사회적으로 올림픽, 월드컵에 많은 관심이 쏠리는 게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20시간 편성, 지상파 방송 3사 동시 중계를 합리화할 수는 없다. '온 국민의 관심'이라 이름 붙이지만, 그것은 실상 '폭력'에 가깝다. 벌써부터 올 여름을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거린다. 또 얼마나 지겹게 올림픽 특집 프로그램 홍수에 시달릴지.

그런 와중에 텔레비전이 충족시켜줘야 할 '다양성'과 '시청자의 선택권'은 보장받지 못한다. 케이블TV 보급률 70%,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 90%의 시대라 지상파 방송이 아니더라도 다양성과 선택권이 보장되나? 케이블TV에 나오는 프로그램의 대부분이 지상파 방송의 '재탕'에 불과하고 2002년 월드컵 시리즈 방송은 2007년 월드컵이 끝난 이후에도 케이블TV에서 심심치 않게 나왔다.

올림픽, 월드컵, 국가대표 축구 경기에 편중된 최근의 지상파 스포츠 중계 행태는 다양한 즐길 권리와 정보 제공이라는 지상파 방송 본연의 역할과도 배치된다. 작년에 중계되지 않은 주요 대회만 해도 동계 아시안 게임, 박태환 선수가 출전한 세계수영선수권, 축구 FA컵 결승 등이 있다. 또한, 소위 '비인기 종목'이라는 취급을 받는 대다수 스포츠에 지상파는 좀처럼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올림픽-월드컵 '24시간 특집', 지겹다

이러한 '시청률 지상주의'는 단지 스포츠 중계 뿐 아니라 방송 전반에서도 확인된다. '비인기 종목'이라는 이유로 철저하게 외면하는 것은 인기가 있고 돈을 벌어줄 수 있는 것만 방송하겠다는 태도에 다름 아니고 '비인기 종목'을 '시사교양', '사회고발' 프로그램으로 이름을 바꿔도 마찬가지다.

콘텐츠의 다양성은 시청자의 폭넓은 선택권 뿐 아니라 사회 각 계층의 목소리를 내는 것과 연결된다는 점에서 심각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방송을 즐기는 주체로서의 시청자의 권리인 동시에 사회 마이너리티에게 '말할 수 있는 공간'을 내어주는 태도와도 연결되는 것이다. 편중된 스포츠 중계의 문제를 단순하게 넘길 수 없는 이유다. 철저한 상업주의에 입각해 편성되는 스포츠 중계는 한국 방송사들의 구조적 문제를 드러내는 하나의 예일 뿐이다.

스포츠 중계는 종종 배타적 애국주의를 부추기고 집단주의에 봉사한다는 비난을 받지만 한계에 도전하는 인간의 숭고함과 열정, 그리고 땀이 얽혀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순간'과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훌륭한 매개임은 분명하다. 사람들은 그런 감동의 순간을 좀 더 다채롭고 다양하게 볼 권리가 있다.

24시간 내내 '온 국민이 하나 되길 강요하는' 획일적인 방식의 올림픽, 월드컵 중계는 부담스럽다. 그보다는 "연금을 받기 위해 필사적으로 뛰었다"는 임오경 해설위원의 재치 있는 멘트와 함께 30대 중반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필사적으로 달리고 막는 오성옥 선수와 오영란 선수의 땀방울을 텔레비전에서 보는 일이 좀 더 많았으면 좋겠다. 그 생생한 긴장감, 그리고 감동은 스크린에서 볼 수 있는 것과는 분명 다른 종류의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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