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거듭거듭 말해오는 바와 같이 우선 MB(약칭으로 그렇게 부르고 있다)의 시원시원한 집행력에 기대가 크다. 벌써 몇 년 째 골치인 전봇대를 말 한마디로 당장 옮겨버린 상징적인 사건을 국민들은 보고 있다. 그 집행력은 정부와 그 관료 조직의 기강과도 통할 것이다. 아무리 정책이 그럴 듯하면 무엇하나. 집행이 잘 안되고 기강이 느슨하면 실효가 없는 게 아닌가. 아마 낭비의 문제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모든게 노무현 행정부와의 대비에서의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그런데 그런 기대 속에서 부패의 걱정을 떨쳐버리기 어려운 것을 어쩌랴. 인수위 과정부터 산업은행 등의 민영화가 요란하게 보도되는가 하면 한국은행의 독립성 문제로 숙적 간의 감정싸움 비슷한 것도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앞으로 쏟아질 민영화, 그리고 권력 핵심의 행태에서 걱정이 가슴에 와 닿는다. 더구나 무슨 교회인가의 유대가 크게 보도되고 있는 것을 보고는 cronyism(끼리끼리 나눠갖기)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기우이길 바란다.
'통일부 폐지안', 감정적 일격처럼 보여
노무현 정권이 너무 인기가 없어 거기에 대한 거센 반대 여론을 업고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되었기에 무엇이든 노 정권의 것은 부정하고 보자는 기류가 될 수밖에 없다는 역학작용을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니다. 그러나 미국의 부시정부가 클린턴 정부를 부정하기 위해 ABC(Anything But Clinton) 방침을 택하여 실패 하였음을 교훈으로 삼아야겠다.
대표적으로는 북한 핵에 대한 미국의 정책이다. 지금의 부시 정부 정책은 클린턴 정부 말기의 것과 유사하다.
미국에서 보수 쪽으로 분류되고 있는 주간지 <타임>은 요즘의 남북한 관계의 진전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3페이지에 걸친 특집기사를 실었다(2008.1.21). 그런 <타임>의 변화는 사실 놀랍기까지 하다. "이제 부시는 북한의 핵무장 해제에 대한 대가로 일련의 외교적, 경제적 당근을 약속함으로써 거의 사실상 '햇볕정책'을 채택하였다" ("Bush has all but adopted the 'Sunshine Policy'.")
부시가 햇볕정책을 채택하다니, 한국(남한)의 반대파들이 아연실색할 일이다. 물론 정부기구를 축소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인수위의 통일부 폐지안은 감정적인 일격(一擊)처럼만 보인다.
최근 당선인의 미국특사가 가면서 그 동안 한미관계가 '훼손'됐으니 '복원'한다 운운의 말들이 나왔다. 부시의 그동안 일방주의적 강압 외교는 세계가 대다수 반대하던 바다. 그리고 근래 부시는 개심(改心)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훼손, 복원'을 운운하며 왜 우리가 그 책임을 스스로 뒤집어 쓰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만에 하나 노무현 대통령의 경솔한 발언 등 우리에게 잘못이 있다 해도 우리가 그렇게 떠드는 것은 외교의 하지하책(下之下策)이 아닌가.
MB는 대북정책에 적극적 자세를 보여왔고 일반적으로 긍정적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이회창 씨의 당이 MB를 초강경하지 못하고 오히려 유화적이라고 몰아붙이는 바람에, 총선거를 앞두고서의 경합관계에서 MB가 작전상 우편향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그렇게 되면 박근혜 씨 측이나 이회창 씨 측에 비해 상대적으로 개혁적이라는 MB의 이미지는 손상을 입을 것이다.
대운하, 동강댐을 상기해 보라
MB에 관한 또다른 걱정은 대운하에 관해서이다. 여기서 찬반논쟁을 벌일 일은 아니고, 한마디로 결론을 말한다면 대운하를 추진했다가는 잘나가던 MB의 세(勢: 모멘텀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에 큰 차질이 빚어져 그 모멘텀이 한풀 꺾일 것이라는 이야기다. 동강 댐 때의 일을 상기해 보라. 반MB세력 뿐 아니라 환경운동을 비롯한 온갖 NGO세력들이 좋은 구심점이 생겨 모두모두 결속하여 대항할 것이다. 그야말로 긁어 부스럼인 셈이다. 대운하를 계속 연구과제로 남겨둔다고 해서 누가 MB가 공약을 저버렸다고 비난하겠는가. 몇십년의 숙제인 경인 운하를 완공하고 나서 그것을 철저히 평가해보고 그 바탕 위에서 경부운하 등을 재검토해보겠다고 한다 해서 누가 공약위반이라고 핏대를 세우겠는가.
"우리 국민은 지금 운하라는 유령으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했다.……20세기까지 인류는 자연을 대상과 도구로 생각하였다. 자원이 무한하다는 인식 아래 마구 파헤치고 개발하였다. 그러나 무한한 것은 없다. 한번 망가진 자연은 회복되지 않는다"
한 대운하 연구서의 말미에서의 인용이다. 그렇다. 한번 망가진 자연은 회복되지 않는다.
'전경련 프렌들리'는 되지 말았으면...
요즘 유행어가 '기업 프렌들리(friendly)'이다. 좋은 말이다. '노동 프렌들리'라 해도 또다시 '좋은 말'이라고 할 것이다. 프렌들리에 나쁠 것이 없지 않겠는가. 그런데 문제는 '전경련(全經聯) 프렌들리'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재벌-경제관료-조중동 복합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들려오지 않는가.
CEO가 인기 절정이라 해서 기업CEO가 곧 바로 정치CEO가 되어야 한다는 등식을 요구해서는 안된다. 정주영 씨, 정몽준 씨를 거쳐 이명박 씨가 CEO의 대권도전에 성공했다. 문국현 씨도 CEO로 신선하게 등장해서 주목을 받았다. 대학에서는 MBA의 시대이고, 사회에서는 CEO의 시대이다.
긴 이야기를 짧게 하자면, 태국의 CEO 탁신 수상도, 이탈리아의 CEO 베를루스코니 수상도 뒤끝이 안 좋았다. 기업의 목적이 오로지 이윤이라고 하면 정치의 목적은 국민의 행복으로 목적부터가 다르지 않는가. 마침 <동아일보> (1월 21일자)의 <맹자> 소개를 보니 이런 구절이 나온다. "왕이 나라의 이익만 생각하면 그 아래 신하는 '어떻게 하면 내 집안을 이롭게 할 수 있을까'만 생각하고, 선비와 서민들은 '어떻게 하면 내 한몸을 이롭게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만을…" 요는 공공성이 희박해진다는 말일 것이다. 그러니 평생을 이윤만을 목적으로 하던 기업 CEO가 정치CEO가 될 때 대단한 영재라 하더라도 일을 그르칠 우려가 있는 것이다.
비근한 예 하나.
"노사분규가 심한 기업의 노동자가 (태안 기름유출 사고현장의) 봉사자 같은 기분으로 자세를 바꾸면 10% 성장이 어렵겠느냐."
신문에서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그 인식과 현실과의 엄청난 괴리에 아연실색 할 수밖에…그런 표현을 쓴다면 너무 지나칠까. 여하간 감각의 무딤을 느낀다.
'하나님께 봉헌' 운운의 실수는 하지 말기를
대통령의 말은 정말 '중천금(重千金)'이다. 노태우 대통령은 모든 말을 참모가 숙고하여 써준 '말씀자료'에 의지해서 했다. 그래서 말씀자료를 써주던 참모가 이임하는 자리에서 한 말이 바로 그 참모가 마지막으로 써준 말씀자료대로 였다는 촌극까지 있었단다. 그렇다고 노태우 대통령을 그런 일로 하여 낮게 평가하는 사람은 없다. 좀 심했다 싶기는 하지만 말이다. 오히려 '참을수 없이 가벼운' 입 때문에 나오는 대로 말을 하여 실수를 일삼은 노무현 대통령이 문제가 아닌가. 부디 MB는 꼭 말씀자료에 따라 발언을 하여 말로 인한 실수가 없기를 바란다. 서울시장때 '하나님께 봉헌' 운운의 큰 실수를 한 전력이 있지 않은가.
국가사회의 지향점을 모델이라 한다면 미국(앵글로·색슨)모델이 한쪽에 있고 북구(스웨덴 등)의 모델이 다른 한 쪽에 있으며 그 중간에 여러 모델들이 있다. 진보파들은 북구 모델을 선호하는데 MB는 아무래도 미국 모델 쪽인 것 같다. 그런데 그 중간에 그런대로 양호한 일본의 하이브리드 모델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기 바란다. 외래 문화를 흡수하여 절충·소화하는 데 뛰어난 일본인들은 그런대로 살 만한 사회를 가꾸었다. MB의 관심이 미국에서 스웨덴으로 바뀌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겠고, 일본쯤으로 눈을 돌리는 것을 기대할 수는 있지 않겠는가.
최근 한 잡지의 좌담기사를 읽다 보니 이런 말이 눈에 띈다.
"대통합신당이 크게 대패한 것을 국민 앞에 인정했으면 특검을 취소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무리하게 통과시켜 검찰수사를 믿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말이 안 되죠. 선거가 끝나고 국민 심판이 내려져있는 상황에서 이명박 씨의 비리, 부정부패가 드러나면 그것대로 다르게 접근해야 합니다. 국민들이 심판을 내리고 쳐다보고 있는 상황에서 뭔가 연장전을 통해 득을 보려고 한다면 또다시 혼날 것입니다"
이른바 이명박 특검을 취소하라는 이야기인데 그럴듯하기는 하지만 균형이 맞지 않는다. 지금 노무현 대통령도 이른바 삼성특검에 포함되어 걸려있지 않은가.
나는 얼마 전 전직 국회의장 한 사람을 만난 자리에서 이런 부탁을 한 적이 있다. "대통령 당선자도 특검에 걸려있고 현직 대통령도 특검에 걸려있고… 나라 꼴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전직 국회의장이면 국가의 원로가 아닙니까. 이럴 때 국가의 원로들이 나서서 지혜를 발휘할 때라고 봅니다. 양쪽 모두 특검에서 풀어야 합니다"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원로들이 그런 지혜로운 수습을 하는 것을 가끔 보았었다.
그러는 데 대해 이의가 있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법리만 따르면 그럴 것이다. 그러나 나라 꼴이 이게 무언가. 정말 대국(大局)을 볼 때가 아닌가 싶다.
* 이 글은 잡지 <헌정>에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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