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표…자부심 가지라"
김 전 대통령은 이날 취임인사차 동교동 김대중 도서관을 찾은 손 대표를 맞아 "손 대표께서도 이 세력의 대표로 민주적으로 선출된 사람 아니냐. 자부심을 갖고 이 세력을 끌어달라"고 당부했다. "손 대표는 한나라당에 있을 때에도 극우보수는 아니지 않았냐"며 "햇볕정책을 지지하고 국보법을 폐지하자고 했다"고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이 손수 족쇄를 풀어준데 대해 손 대표는 "격려해 주셔서 감사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날 발언록을 전한 우상호 대변인은 "두 사람이 한 시간을 대화를 나누는 동안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얘기는 한 마디도 나오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러나 전날 천호선 대변인이 정부조직법 개편안 거부권 행사를 비판한 손 대표를 향해 "정치지도자 자질이 의심스럽다"고 공격했던 데 반해, 김 전 대통령은 손 대표의 '정통성'을 인정한 셈이 된다.
이는 '노무현 색깔'을 벗고 전통적 지지층을 기반으로 재기를 모색하려는 '손학규 체제'의 방향과도 맞아 떨어진다.
"야당의 존립 가치를 국민 앞에 보여야"
김 전 대통령은 총선 전략과 관련해서는 "국회의원선거까지 대패하면 이제 야당의 존재가 어떻게 될지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강력한 야당의 재건"을 훈수했다. 이 과정에서 김 전 대통령은 과거 야당 생활과 손 대표의 민주화 운동 경력을 거론했고 비장한 분위기 속에 손 대표와 배석했던 박지원 비서실장이 눈시울을 붉히기도 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 전 대통령은 "내가 최근에 김훈이 쓴 <칼의 노래>라는 소설을 읽었는데 그때 이순신의 결심은 '필생자 필생, 필사자 필사'였다. 반드시 이긴다는 계획과 소신으로 국민의 선두에서 사기를 진작해서 이겼다"며 "국민을 감동시키고 잘하는 구나라는 말을 국민에게 듣는다면 50년 전통이 살아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전 대통령은 특히 "이번 임시국회 한 달이 신당으로서는 야당의 존립 가치를 보여야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며 "국민들이 강력한 야당이 필요하다고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또 "통일부는 통일에 대한 열망을 갖고 노력하고 있다는 상징이라 할 수 있다"며 통일부를 폐지하겠다는 인수위 측의 방침에 대한 강한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은 "통일부를 없애지 않으면 나라가 망하는가"라고 했다.
김 전 대통령은 '발목잡기'에 대한 우려를 의식한 듯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한다는 비판이 두려워서 정당한 비판을 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며 "국민들이 잘 느낄 수 있는 논리와 근거를 갖고 국민들을 잘 설득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386은 민족적 자산"
김 전 대통령은 대선 이후 공격을 받고 있는 386 출신들을 향해서도 "국민들이 386에 대해 비판적이라고 하지만 거부 대상으로 삼은 것은 아니다"며 "기대한 만큼 못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니 만회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격려했다. 이날 손 대표와 함께 동교동을 찾은 신계륜 사무총장, 이기우 비서실장, 우상호 대변인 등은 정치권 내 386그룹의 중심으로 꼽힌다.
김 전 대통령은 "그 동안 잘 했으면 386이 중심이 된 정치판으로 변화됐을 것"이라며 "지난 대선 때 공개적으로 열심히 다니라고 독려했는데 잘 안 된 것 같다"며 지난해 386 세대에 대한 공개 비판을 해명하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지난 총선에서 국민들이 전폭적인 지지로 386세대 정치인들을 국회의원에 당선시켜줬는데 국민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고 비판한 바 있다.
김 전 대통령은 "학식과 젊음과 민주화의 소중한 경험을 갖춘 386은 민족적 자산"이라며 "잘 다듬어서 좋은 인재로 만들어 달라"고 손 대표에게 당부했고, 이에 손 대표는 "유능한 진보세력으로 보일 수 있도록 당에서 열심히 키워 나가겠다"고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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