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臣(신)과 身(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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臣(신)과 身(신)

[한자가 그렇게 만들어졌다고?] <5>

임금 앞에 신하가 서 있다. 임금을 똑바로 쳐다보는 것은 불경스런 행동이기 때문에 당연히 고개를 수그리고 있다. 그러나 땅바닥만 보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고개를 수그린 채 눈은 임금 쪽을 향하고 있다. 이렇게 치켜 뜬 눈의 모습을 그렸다는 글자가 臣(신)이다.

'신하'의 뜻인 臣자가 엉뚱하게도 '눈'과 관련된 글자라는 사연이다. 갑골문을 보면 臣은 영락없는 눈의 모습이다(<그림 1, 2>). 본래 눈을 그린 것은 目(목)자인데, 이와 비교하면 단지 눈알이 조금 튀어나와 있다는 게 다를 뿐이다. 눈을 그린 글자가 두 개라는 게 마음에 걸렸던지, 근세 중국의 한 갑골학자가 臣은 엎드린 포로의 올려 뜬 눈을 그린 것이라고 目자와의 차별성을 설명한 이래 그런 주장이 널리 유포됐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지금처럼 활자로 찍어내던 것도 아니어서 같은 글자를 쓴대도 모양에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을 텐데, 같은 대상을 약간 다르게 그려 별도의 글자로 썼다는 건 납득키 어렵다. 차라리 目자에 어떤 부호를 추가해 다른 글자로 썼다면 모르지만, 올려 뜬 눈과 보통 눈을 구별해 그 특징을 집어냈다는 상황 설정은 아주 무리하다.

目자가 초기에 가로 형태였던 데 비해 이 글자가 주로 세로 형태로 나온다는 점을 강조해 봐도 역부족이다. 초기 한자들이 가로-세로나 좌-우를 크게 구별하지 않았음을 생각하면 고개가 갸우뚱거려진다. 目자도 나중에는 세로 방향으로 모양을 바꾸어 지금 모습이 만들어졌는데, 세로 방향의 눈을 그린 글자가 따로 있었다면 가능한 일이었을까?

그런데 臣의 옛 모습을 다시 들여다보면 놀라운 점이 발견된다. 그 모습은 바로 身(신)의 옛 모습과 흡사하다(<그림 3, 4>). 臣과 身은 우리말 발음이 똑같은데, 두 글자의 연관성을 강력히 시사하는 대목이다.

身은 아이를 밴 사람의 모습을 그린 것이라는 설명이 일반적이다. 아닌 게 아니라 사람의 옆모습인 人(인)자를 뼈대로 해서 배 부분을 불룩하게 그리고 거기에 점까지 찍어 아이 밴 모습을 확실하게 표시한 듯도 하다. 그러나 임신과는 상관이 없고 단순히 '배'를 가리킨 글자였다는 주장도 있다. 아이를 배는 '특권'을 가진 여자가 女(녀)라는 별개의 글자로 표현되고 人은 주로 남자-어른-지배층의 뉘앙스를 지녔다는 점을 생각하면, 나중 주장도 솔깃하다.

身에는 '몸'이라는 뜻과 함께 '임신하다'의 뜻도 있다. 우리말의 '몸'에도 그런 뉘앙스가 있어 사고의 유사성을 느낄 수 있다. '임신' 설은 身에 이런 뜻이 있기 때문에 생긴 오해로 보이며, '배'에서 의미가 파생돼 '아이를 배다'의 뜻까지 생겼다고 추측할 수 있다.

그 문제야 어떻든, 身의 발음이 人과 비슷한 점이 눈에 띈다. 人은 몇백 년 전 우리말 표기에서 초성이 반치음(△)이었는데, 이는 ㅈ/ㅅ과 그리 멀지 않다. 身자의 맨 위 점과 ㄱ자처럼 구부러진 오른쪽 획을 人자로 볼 수 있고 거기에 ㅌ자 형태의 추가 요소가 붙어 身자가 됐다고 보면 人이 발음을 나타내는 부분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다시 살펴 보면 ㄱ자 중간에 삐침획이 하나 걸쳐 있다. 이를 두고, 아이를 가져 무거운 몸을 지탱하기 위해 다리를 벌린 모습이라는 제법 그럴듯한 설명을 붙이기도 하지만, 그 전제 조건인 '임신' 설이 미덥지 않다. 또 이렇게 복잡한 내용을 담은 글자 만들기가 과연 현실적일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 삐침획에 주목하면 人과 삐침획을 합친 千(천)이 발음을 나타내는 부분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身은 별도의 상형으로 볼 게 아니고, 人자가 의미를 확장하면서 파생된 의미에 맞추어 ㅌ자 형태의 장식이 붙어 분리됐으며, 나중에 발음이 다소 달라지자 人보다는 가까운 발음인 千자를 뼈대로 삼았다고 추측해 볼 수 있다. 물론 애초부터 사람 모습에 배 부분을 그려 넣어 지사자 형태로 만들었을 가능성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人과 身이 발음이나 의미 면에서 연관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파생-변형 쪽에 무게가 실리는 듯하다.

이제 다시 臣자로 돌아가 보자. 눈을 그렸다던 臣자에서 눈동자로 생각됐던 중간의 둥그런 부분은 바로 身의 '배' 부분과 똑같다. 가운데 점이 찍혀 있는 경우엔 더욱 분명하다. 나머지 테두리 부분은 身자에서 뼈대 역할을 한 千자의 변형으로 볼 수 있다. 발음이 身과 일치하고 글자꼴도 비슷한 臣은 결국 身자에서 분화한 글자로 보인다.

의미상으로도 臣은, 目과 관련된 부분은 없지만 身과는 연결이 가능하다. 중국 商(상)나라 때의 갑골문에는 小臣

(소신)이라는 말이 나온다. 고위직 관원을 일컫는 말이어서 뒷날의 大臣(대신)에 해당하는 말이다. 그런데 고위 관원의 수식어로 왜 大가 아닌 小를 썼느냐가 의문이고, 이의 상대 개념도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 추론한 대로 臣과 身이 같은 글자라면 이 문제는 해결된다. 小臣은 바로 小身이어서 왕에 비해 신분이 낮은 자 곧 '신하'를 일컬었다는 얘기다. 大臣이라는 말은 臣자가 身에서 완전히 분리돼 '신하(小身)'의 뜻으로 독립한 뒤 小臣이라는 말의 논리적 허점을 피하기 위해 대체된 말이 아닐까 싶다. 또 身 자체가 人의 변화된 모습이었다고 보면, 옛날 사회에서 임금 아래의 지배 계층을 나타내는 말이었던 人과 臣이 같은 개념인 것도 이해가 된다. 人=身=臣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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