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刃(인)과 亡(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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刃(인)과 亡(망)

[한자가 그렇게 만들어졌다고?] <4>

刀(도)는 칼을 그린 글자라고 한다. 모양이 조금 변하긴 했지만, 옛 글자꼴을 보면 손잡이까지 달린 칼의 모습으로 볼 수도 있을 듯하다. 이 글자에 지사부호를 더해 만들었다는 글자가 '칼날'인 刃(인)과 '죽다'인 亡(망)이다.

刃은 칼(刀)의 날 부분에 지사부호인 점(丶)을 찍어 '칼날'을 표현했다고 한다. 刀와는 발음이 상당히 다른데, 칼날을 가리키는 말이 따로 있었고 그것을 나타내는 글자를 이런 식의 지사자로 나타냈다고 보면 이해는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런 설명의 논리적 모순이다.

刃이 칼날 부분에 지사부호를 더한 것이라면 刀는 왼쪽 부분이 칼날이다. 그런데 刀자의 옛 모습을 보면, 지금 가로획으로 정리된 획의 앞부분이 위로 구부러져 올라가 있다(<그림 1>). 그게 칼의 손잡이다. 刃자를 놓고 보자면 손잡이가 칼날의 연장선상에 붙어 있는 셈이다<그림 2>.

그러나 이런 칼은 있을 수 없다. 칼날 부분은 칼등 부분에 비해 얇다. 칼등에서부터 점차 얇아져 칼날은 날카롭게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칼의 무게중심은 칼등과 가까운 쪽에 있다. 따라서 칼의 손잡이는 칼등의 연장선상이나 그에 가까운 쪽에 달려야지, 이 그림처럼 칼날의 연장선상에 달릴 수 없다. 특히 정육점 칼처럼 무게가 나가는 칼이라면 더욱 그렇다. 刃이 앞서 말한 대로 지사자라면 칼날을 가리킨 글자가 아니라 칼등을 가리킨 글자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刃이 그런 식의 지사자라는 설명은 믿기 어려워진다. 다른 글자가 '칼날'이라는 뜻으로 가차돼 쓰이다가 변형된 글자꼴로 아예 독립했을 가능성이 높은데, '원본'이 된 글자는 분명치 않다. 발음과 모양이 비슷한 글자들을 찾아 보면 乃(내)나 卩(절) 같은 글자가 후보가 될 수 있다. 乃(<그림 3>)의 오른쪽 ㄋ은 刀 부분과, 왼쪽 丿은 점과 대응한다. 卩(<그림4>)은, 나중에 다룰 기회가 있겠지만, 乃의 변형일 가능성이 있다. 刃은 乃의 발음을 이어받은 孕(잉)·仍(잉) 등과 비슷한 발음이어서 발음도 가깝다.

刀 역시 칼을 그린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지만, 설사 그것이 칼을 그린 것이라 해도 刃이 칼날에 점을 찍은 지사자일 수는 없다. '칼날'과 '칼'이라는 의미의 연관성으로 보아, 乃에서 '칼날'이라는 가차 의미를 떼어 刃으로 분화하고 거기서 다시 '칼'이라는 의미가 刀로 분화했을 가능성도 있다. 乃-刃-刀의 필획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 刀자는 아랫부분이 터져 있는 모습인데, 칼을 그렸다면 이 부분도 여며져 있는 게 정상이다. 굳이 터 놓아야 할 이유가 없는데 터져 있다는 것은 칼의 모습이 아니었다는 시사일 수 있다.

亡은 칼날이 부러진 모습이라고 한다. 刀의 날 부분에 선을 그어 부러진 상태를 나타냈다는 것이다. 지금 글자꼴은 칼을 90도 돌려 놓은 셈인데, ㄷ자 부분이 칼이고 거기에 지사부호인 점이 더해져 있다(<그림 5>). 그러나 刃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점은 칼등 부분에 찍혀 있다. 따라서 부러진 칼날을 표시했다는 설명은 성립하기 어렵고, 이는 지사자 설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진다.

더욱 큰 문제는 刃과의 관계다. 둘 다 칼날 부분에 표시를 한 것이라면 두 글자를 구분할 방법이 없다. 지금 글자꼴은 칼의 방향이 90도 돌려진 형태로 정형화돼 그것을 구분점으로 삼을 수도 있지만, 구성 요소의 위치나 방향이 달라져도 같은 글자로 인정됐던 초기 상황으로 보면 별개의 글자로 보기 어렵다. 초기 모습은 각도 자체도 그리 다른 게 아니다.

그러면 亡은 刃과 같은 글자였을까? 칼날에 점을 찍었다는 설명에서 접점이 생겨 그런 의문이 드는 것이지만, 그런 설명이 허구라고 보면 꼭 그렇게 볼 이유도 없다. 두 글자를 지사자로 보는 설명 때문에 생기는 의문일 뿐이다. 亡은 刃과는 또 다른 글자의 변형인 듯하다.

역시 발음과 모양을 고려해 가능성 있는 글자를 찾아 보자.

ㄢ(함)이라는 글자는 지금 죽은 글자지만, 犯(범)·範(범) 등의 㔾 부분이 그 변형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亡의 어떤 모습을 보면(<그림 6>) 乚 부분이 꼬리를 내리고 있기도 한데, 이는 ㄢ의 아랫부분과 같은 형태다. ㄢ의 윗부분은 ㅓ자 형태였던 亡의 윗부분과 대응한다. 발음에서 초성 ㅎ>ㅂ의 변화는 犯·範이 그 발음을 이어받은 데서 입증되고, ㅂ/ㅁ은 발음 부위가 같아 쉽게 바뀐다. 받침 ㅁ/ㅇ은 ㄴ과 더불어 쉽게 바뀌는 발음이다. 우리말로 ㅁ 받침의 발음은 현대 중국말에서 모두 ㄴ이다.

또 하나의 가능성은 勿(물)자다. 勿의 옛 형태(<그림 7>)에서 ㄷ자 위-아래에 찍힌 두 점을 직선으로 연결하면 亡자가 된다. 勿이 부정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亡도 본래 無(무)의 뜻으로 쓰여 부정의 의미를 지녔고 '죽다' 같은 의미도 그 언저리에 있다. 亡은 '무'로도 읽혔는데, '물'은 '무'와 '망'의 중간쯤에 해당하는 발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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