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그날 호르무즈 해협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그날 호르무즈 해협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의혹투성이 美-이란 대치…부시는 적극 '세일즈'

지난 6일 호르무즈 해협에서 벌어진 미국 군함과 이란 쾌속정의 대치 사태는 미국에 의해 왜곡됐거나 과장된 것이었다는 새로운 증거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조지 부시 대통령까지 나서서 "심각한 결과를 빚을 것"이라고 호들갑을 떨었던 이 사건이 과장·왜곡으로 결론지어질 경우 미국은 또다시 이란과의 위기를 조장하려 했다는 의심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은 13일 "이란은 어디서나 다른 국가의 안보를 위협한다"고 주장, 진위가 의심스러운 이번 사건을 이란을 압박하는 국제공조 강화의 명분으로 사용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미 해군 전문지도 '교신은 장난일 가능성' 분석

미 국방부는 9일 사건 당시 장면을 찍은 영상을 공개하며 이란 혁명수비대 소형 보트 5대가 미 5함대 소속 군함 3척을 위협했다고 주장했다.

영상에 따르면 미 5함대는 이란 쾌속정이 미 군함 근처를 선회하자 경고를 보냈으나, 보트에서 "지금 접근하고 있으며 (미 군함을) 폭파하겠다"는 교신이 나오자 사격 태세를 갖췄다.

하지만 이란 보트는 위협만 보낸 뒤 기수를 돌려 돌아갔고, 일촉즉발의 긴장 상황이 끝났다고 미 국방부는 주장했다.
▲ 이 작은 쾌속정이 미 군함을 공격할 수 있었을까? ⓒ미 해군

그러나 이란은 바로 다음날 자신들이 촬영한 영상을 공개하며 '폭파 위협'은 조작이라고 주장했다. 이란 해군이 찍은 영상에 따르면, 이란의 보트와 미 군함은 항해 경로에 관한 일상적인 교신을 주고받았으고 "곧 폭파하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진실 공방이 계속되는 와중에 미 5함대 소속 존 게이 대위는 10일 <AFP>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란이 (미 군함을)위협했던지는 알 수 없다"고 말해 미국의 주장에 문제가 있음을 내비쳤다.

게이 대위는 이어 "이란의 쾌속정이 미 군함을 향해 매우 도발적이고 공격적으로 행동했다"고 말하면서도 "(무전기를 통한 위협이) 정확히 어디서 나온 것인지는 알 길이 없다. 해안선에서 나왔을 수도 있고 부근 해상의 다른 배에서 들렸을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해군 전문지 <네이비타임스>도 '함정을 파괴하겠다'는 요지의 교신을 발신한 주체는 이란 쾌속정이 아니라 교신에 끼어든 누군가의 '장난'일 수 도 있다고 보도했다. 현지에서 '필리피노 몽키'로 불리는 이 같은 장난은 선박과의 교신 사이에 끼어들어 욕설 등을 내뱉는 행위로, 장난의 주체는 한 사람 이상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의문 1. 교신 내용 사실인가?

미국의 안보 문제 분석가인 가레스 포터는 11일 미국 <인터프레스서비스>에 보낸 분석글에서 새로운 정보들을 종합 분석한 결과 이 사건은 그다지 큰 위기상황이 아니었고 미 사령관도 이란 보트에 대한 사격 준비 명령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우선 포터는 미국이 공개한 교신에서 후반부의 "폭파하겠다"는 말은 제대로 들리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미국의 일부 언론들도 지적하는 부분이다.

<뉴욕타임스>는 만약 교신이 이란의 쾌속정 5대 중 한 곳에서 나왔다면 모터소리나 바람소리, 파도소리 같은 게 들려야 했지만 미국이 공개한 녹음 내용에는 그런 잡음이 하나도 섞여 있지 않았다고 10일 지적했다.

또 걸프 지역에 있는 미 구축함에서 근무했었다는 한 퇴역 해군은 9일 <뉴욕타임스> 온라인 칼럼에서 걸프만에서 이뤄지는 배와 배 사이의 통신은 간이무선(CB band radio) 같은 것이라며, 인종주의적 비방이나 협박을 하는데 종종 사용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교신 내용을 듣자마자 이란 쾌속정에서 나온 게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고 썼다.

그러자 미 국방부도 그 교신이 다른 곳에서 온 것일 수 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뉴욕타임스>에 인정했다.
▲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이란 쾌속정으로부터 폭파 위협을 받았다는 미 군함과 같은 기종의 군함 ⓒ로이터=뉴시스

의문 2. 소형 보트가 대형 군함을 공격?

소형 쾌속정 5대가 미국의 군함을 공격할 능력이 있었는지도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포터는 이란의 보트는 기껏해야 2~3명 밖에 태울 수 없고, 그런 배에 실을 수 있는 기관총은 미 군함의 표면에 흠집밖에 낼 수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당시의 사진을 확대해 보면 미 군함쪽에서 볼 수 있는 보트는 무장이 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5함대 사령관인 케빈 코스그리프 중장은 이란 쾌속정에 대함 미사일이나 어뢰가 있었냐는 한 기자의 질문에 그런 무기가 없었다면서 "내가 받은 보고서에는 이란 보트들을 두려워 할 만한 근거가 없었다"라고 답했다.

의문 3. 이란 배들이 바다에 기뢰를 던졌다?

쾌속정이 미 군함을 향해 돌진하긴 했냐는 의문도 제기된다. 영상을 통해서는 돌진 여부를 판명하기 어려울뿐더러, 코스그리프 중장 역시 그런 주장을 하지 않았다. 그는 이란 배들의 "행동 방식과 교신 내용, 수상한 물체를 바다에 던지는 행위" 등을 종합해 볼 때 "무모한 도발"을 하는 것으로 보였다고만 말했다.

코스그리프 중장은 또 그들이 바다에 던졌다는 물체에 대해 "흰색 박스 모양으로 물에 떴다"라고 설명했다. 이는 그 물체가 수중지뢰(기뢰)가 아님을 증명한다. 기뢰는 색깔이 검고 물에 던지자마자 가라앉기 때문이다.

이란 측의 공격 기미가 보이자 미군들이 사격 직전까지 갔다는 국방부의 초기 발표도 사실을 심각하게 왜곡한 것으로 보인다고 포터는 평가했다. 코스프리스 중장은 기자들의 질문에 "지휘관들은 경고 사격을 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고 답했다.

포터는 코스프리스 중장의 설명이 이처럼 미 국방부의 초기 설명과 상충하는 부분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한 언론도 자신들의 초기 보도를 수정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부시의 5함대 방문, 잘 짜인 시나리오의 하이라이트?

이처럼 의혹투성이임에도 불구하고 부시 대통령의 중동 순방 직전 불거진 이 사건은 중동 국가들을 대(對)이란 공조체제에 편입시키려는 부시 대통령의 노력에 훌륭한 명분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 국방부와 언론들이 이란 쾌속정이 혁명수비대 소속임을 강조하는 것도 혁명수비대를 국제 테러단체 명단에 올리려는 미국 행정부와 의회의 움직임과 무관치 않다는 평가다.
▲ 13일 바레인에 주둔중인 미 해군 5함대를 찾아 병사들과 함께 식사를 준비하고 있는 부시 대통령 ⓒ로이터=뉴시스

마침 부시 대통령은 13일 이번 사건의 미국 쪽 주인공인 미 해군 제5함대 기지를 방문함으로써 사건의 효과를 극대화했다.

부시 대통령은 이후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수도 아부다비에 도착해 셰이크 칼리아 빈 자예드 알-나흐얀 UAE 대통령 겸 아부다비 지도자와 정상회담을 갖고 대 이란 공조를 논의했다.

부시 대통령은 정상회담 뒤 "이란의 행위는 어디서나 다른 국가의 안보를 위협한다"며 "미국은 걸프의 우방과 오랫동안 지속한 안보 책임을 강화하고 너무 늦기 전에 이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세계의 우방을 결집하고 있다"고 대 이란 공조를 강조했다.

그는 이어 "이란은 테러를 지원하는 세계 제1의 국가"라며 "이란은 자국민이 경제 침체에 허덕이는 데도 전세계 극단주의 세력에 수억 달러를 보내는 나라"라고 비난했다.

이에 대해 이란 외무부의 모하마드 알리 호세이니 대변인은 "미국의 일부 정치 세력이 중동에서 '이란 공포증'을 유포해 부시를 도우려고 하는 모험을 감행하고 있다"며 "미국 정부는 이란과 중동 국가, 미국 국민에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