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休(휴)와 朽(후)는 같은 글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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休(휴)와 朽(후)는 같은 글자였다

[한자가 그렇게 만들어졌다고?] <2>

초여름. 아직 무더위라고 할 수는 없지만 오전 내내 김매기 하는 농부를 괴롭혔던 땡볕은 더욱 강렬해졌다. 점심 요기를 한 농부는 그 땡볕을 피해 나무 그늘 아래서 잠시 눈을 붙인다. 꿀맛 같은 휴식이다.

'쉬다'라는 뜻인 休(휴)자의 탄생담은 바로 이런 장면을 상정하고 있다. '사람'(亻=人)과 '나무'(木)의 두 개념이 모두 의미 요소로 쓰인 회의자라는 얘기다. 그러나 앞서와 같은 특정한 '장면'에 대한 상정 없이 '사람'과 '나무'라는 두 개념만 늘어놓아 '쉬다'의 뜻을 이끌어낸다는 것은 엄청난 비약이다. 따라서 회의자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어떤 '장면'의 상형인 셈이다. 회의자로 설명되고 있는 글자들 가운데 상당수는 이런 '장면 상형'이다.

<그림 1>을 보자. 休의 옛 글자꼴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썩다'인 朽(후)의 옛 모습이다. 어찌 된 일일까?

朽는 丂(고)를 발음기호로 쓴 형성자다. 丂는 단독으로는 이미 죽은 글자지만 考(고)·巧(교) 같은 글자의 발음기호로 낯이 익다. 朽는 의미 요소가 木(목)이어서 '썩은 나무' 또는 나무가 '썩다'가 본뜻이겠다. 그런데 <그림 1>은 木의 위치가 오른쪽으로 바뀌었고 나머지 부분은 丂가 아니라 亻=人(인)이다. 지금 글자꼴로는 영락없이 朽가 아니라 休라고 할 수밖에 없다.

수수께끼의 해답은 발음에 있다. 休와 朽는 거의 비슷한 발음이다. 현대 중국말 발음으로는 아예 똑같이 '슈'다. 아주 먼 옛날의 발음은 같았을 것이다. 그런 발음의 일치를 전제하고 朽의 발음기호 丂의 옛 모습을 더듬어 보면 亻과 비슷한 글자꼴이 섞여 있음을 알 수 있다(<그림 2>). 休의 亻 부분도 丂의 변형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발음과 옛 글자꼴이 같다면 의미는 어떨까? '썩다'는 정상적인 활동 또는 기능의 정지 상태다. '쉬다'와 연결될 수 있는 의미다. 두 의미는 파생 관계로 볼 수 있다. 休는 朽의 변형된 모습인데 의미의 중점을 약간 달리해 쓰이면서 별개의 글자로 굳어진 것으로 보인다. 다만 朽의 지금 글자꼴에서 두 구성 요소의 위치가 바뀌었는데, 옛날에는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구성 요소가 같으면 그 위치가 달라도 같은 글자였다.

따라서 休는 丂를 발음기호로 하는 형성자고, '사람'인 亻=人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 글자가 변형돼 우연히 그런 모습을 띠게 됐을 뿐이다. 앞서의 '나무 그늘' 얘기는 멋들어지게 꾸며진 한바탕 허구에 불과하다. 철석같이 믿었던 회의자도 아니다. 休의 옛 모습(<그림 3>)을 朽의 옛 모습(<그림 1>)과 구별하기 어려운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같은 글자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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