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영화배우 윤정희씨입니다. 윤정희씨는 광주 출생으로 1967년 강대진 감독의 '청춘극장'으로 데뷔해 '싸리골의 신화' '순애보' '감자' '내시' '장군의 수염' '만무방' 등 지난 40년간 300여 편의 작품에 출연했습니다. 대종상과 청룡영화상 등 국내외 각종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 25회 수상기록을 보유하고 있고 98년엔 김지미, 최은희, 남정임씨 등과 함께 한국영화 명배우 '베스트10'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청룡영화제와 부산영화제, 몬트리올 영화제, 프랑스 도빌 아시아영화제, 영국 다나르 영화제 등 각종 영화제에서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했습니다.
박인규 :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작년에 데뷔 40주년을 맞으셨어요. 작년 연말에 팬들이 전시회도 열어 주셨는데 우선 40년을 맞으신 소감이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윤정희 : 그렇게 세월이 빨리 흘러버렸네요. 팬들에게 먼저 감사드리고요, 또 저한테 다시 계속 영화를 하라는 용기를 주는 기회가 돼서 전 참 기쁘고, 앞으로 더 제가 영화를 해야겠다 하는 힘이 더 솟아나는군요.
박인규 : 새롭게 영화를 할 수 있는 힘을 얻는 계기가 됐다. 67년도에 청춘극장이란 영화로 데뷔하셨는데 혹시 언제 개봉했는지 기억 나십니까?
윤정희 : 그럼요. 67년도 1월 1일 국제극장에서 개봉했어요. 그래서 제 인생의 변화하는 기점이었잖아요. 그래서 제가 굉장히 긴장을 했었어요. 어떡하나. 손님이 안 들면 어떡하나. 반응이 어떨까. 제가 이 작품은, 우리가 중학교 때 베스트셀러였거든요. 김내성씨꺼. 그래서 제가 오유경이를 참 좋아했는데 제가 그 역할을 잘 소화했나, 이런 걱정으로 잠을 못 이뤘는데 국제극장 주변을 뺑뺑뺑뺑 사람들이 둘러싸 있다고 그러더라구요. 그래서 마음이 놓였죠.
박인규 : 그 당시에는 사실 요즘은 천만이 들어야 대박이라고 하지만 당시는 30만만 들어도 엄청난 히트라고 했을 땐데 한 극장에서만 27만 명이 들었다고 해요.
윤정희 : 네. 그러니까 지금 숫자적으로 볼 때 거의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죠.
박인규 : 엄청난 히트라고 할 수 있는. 데뷔작으로 참 대단하셨던 건데
윤정희 : 그래서 제가 어떻게 영화배우의 생활에서는 고생 없이
박인규 : 처음 스타트부터 바로 스타가 돼서.
윤정희 : 네. 그랬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자만하지 않으려고 노력을 했었죠.
박인규 : 제가 알기로는 그 당시 공개오디션을 거쳐서 2천 명의 경쟁자를 뚫고 영화배우가 되셨다고 알고 있는데, 영화배우가 돼야겠다고 마음먹으신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윤정희 : 저는 학교 다닐 땐 영화배우는 상상을 못했죠. 그런데 제 친구들이, 제가 그때 당시 좀 다른 길을 찾고 있을 때, 너 영화배우 어때? 그리고 제가 아까 말씀드린 대로 오유경 역할을 참 좋아했거든요. 그러니까 그냥 순간적인 그거였어요.
박인규 : 말하자면 친구들에 등 떠밀려서 오디션에 가신 겁니까?
윤정희 : 네.
박인규 : 2천 명이나 왔으면 상당히 엄청난 경쟁률이었는데 뽑힐 거라고 자신하셨어요?
윤정희 : 아니요. 제가 윤정희라는, 이름까지 바꿔가면서 그때 당시 제가 사람들 앞에도 나타나지 못하는, 굉장히 내성적이었어요. 지금 참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그러니까 성격이 많이 변했는데. 그래서 한강에서 스크린 테스트를 하는데요, 소문에 '쟤가 벌써 됐단다' 그래요. 테스트도 하지도 않았는데. 그래서 저는
박인규 : 일반 사람들이 보기에도 딱 눈에 띄었나보군요 윤정희씨가.
윤정희 : 아니 제가 아니고 딴 사람이. 그래서 저는 조금 자존심으로 사는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전, 아 내가 왜 여기 있을까. 난 그냥 가버렸어요. 그랬더니 조연출자가 막 쫓아와서 저를 잡아요. 절대로 가지 말라고. 내가 볼 땐 당신이 된다. 그 조감독 때문에 제가
박인규 : 어떻게 보면 그 분이 아니었으면 영화계에 데뷔 안 하셨을 수도 있겠네요.
윤정희 : 그렇죠. 제가 가버렸을 테니까. 그래서 저는 그 분을 항상 고맙게 생각해요. 이경윤 감독이라고
박인규 : 67년 1월 1일에 청춘극장을, 첫 데뷔작이 개봉했는데 엄청난 히트를 쳤고 그 뒤로 계속 어떻게 보면 순탄하게 가셨는데 7년 동안 자그마치 280편의 영화. 저희는 약간 상상이 안 가는데 1년에 40편, 힘드시지 않았습니까 그 당시에?
윤정희 : 그렇죠. 그래서 저는 그때의 힘든 저희 생활이 지금 제 인생에서 많은 도움을 주고 있거든요. 어지간한 어려운 일이라도, 내가 옛날에 이렇게 고생했는데 이거 하나 못해? 하는 힘이 저를 항상 지켜주고 있는데요. 저희들 잠을 못 잤어요. 차 안에서 잠자고, 그리고 다른 거 힘든 거보다도 현대극 하고 사극 할 때 머리 바꾸는 거. 사극 할 때는 기름을 발라서 그냥 딱 붙이잖아요. 현대극은 풀어야 되니까. 또 샴푸해서 또 하고 이런 저희들의 노력은 상상할 수 없었어요.
박인규 : 그 당시엔 코디라든가 이런 게 없고 혼자 다 했다고
윤정희 : 그럼요 없었죠. 저희들이 다 했고요, 그래서 저는 지금 옆에서도 코디가 제 옆에서 설치면 저는 피곤해요. 저는 제 주위에 누가 있는 거. 제 얼굴 제가 더 알기 때문에 한 번은 결혼한 후에 할 때는 메이크업 해주는 사람이 해줘도 저는 도망갔어요 하지 말라고. 왜냐면 제 얼굴은 제가 더 잘 아니까. 그 역할도 제가 코디보다는 성격을 분석을 더 많이 했을 테니까. 거의 지금도 제가, 앞으로도 제가 할 거예요.
박인규 : 작가나 배우한테 이런 질문은 실례라고 하던데 280편 중에 어떤 작품이 가장 애착이 가느냐라든가 가장 기억에 남느냐. 어떻게 보면 참 예의에 어긋나는 질문일 수도 있는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작품이라면 어떤 게 있습니까?
윤정희 : 물론 청춘극장은,
박인규 : 데뷔작이시니까
윤정희 : 네. 그리고, 첫 오프닝을 어디서 했냐면, 청평에 있는 그 보트 타는, 신성일씨하고. 그 장면이 저는 지금도 생생해요. 왜냐면 또 제가 얼마나 떨렸겠어요, 긴장하고.
박인규 : 말하자면 영화로는 첫경험이셨으니까
윤정희 : 네. 그리고 안개라든가 장군의 수염, 감자, 내시, 분례기가 또 전 참 마음에 들어요. 불행하게도 그게 필름이 없어졌다고 하는데요 그걸 좀 빨리 찾았으면 좋겠어요.
박인규 : 이번에 사실 윤정희씨의 전성기라고 하면 67년부터 74년까지. 그 이후론 프랑스로 가셨으니까요. 그런데 아직도 팬들이 많으신가봐요. 팬들이 모여서 40주년 기념행사를 해줬다는 걸 보면 참 팬들이 많으셨다는 느낌이 드는데
윤정희 : 제가 참 행운아라고 생각해요. 저도 놀랐었거든요. 그래서 어느 날 하루 그 분이 안규찬씨라는 팬클럽 회장이 만나자고 해서 만났더니 그런 기획을 얘기하더라구요. 그래서 고맙다고. 그런데 또 어떻게 이 분은 저보다도 저에 대해서 더 너무나 많은 걸 다 알고 있더라구요.
박인규 : 윤정희씨가 출연한 작품 한 100편을 갖고 있다고 하던데요
윤정희 : 네. 그러면서 또 그걸 DVD로 다 해서 저한테 주시고요. 그 은혜를 어떻게 갚을지 모르겠어요.
박인규 : 계속 좋은 영화 만드셔야지요
윤정희 : 그러는 수밖에 없겠죠?
박인규 : 그 자리 김수용 감독도 나오시고 신성일씨도 나오셨다는데
윤정희 : 네. 그리고 안성기씨도 고맙고 김동호 위원장도 오시고 참 분위기가 좋았어요.
박인규 : 280편 나오신 가운데 가장 많이 출연하신 배우가 아마 신성일씨라는 생각이 드는데. 99번 같이 출연하셨다면서요? 그 분이 이번에 나오셔서 100번째를 같이 한 번 찍어보고 싶다는 말씀도 하셨다는데 혹시 같이 하실 용의가 있으십니까?
윤정희 : 아니 그 분이 말씀하시기 전에 제 남편도 그랬고 안규찬씨도 그랬고, 100회를 같이 하자. 이렇게 해서 또 그 분도 흥분하셔가지고. 얼마나 좋아요? 그런 좋은 주제가 있으면 지금 다들 생각하고 연구하고 있고 어떤 분은 쓰고 있는데요. 빨리 좋은 작품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박인규 : 조만간 그러면 신성일, 윤정희 주연의 영화가 나올 수 있겠군요.
윤정희 : 할머니 되기 전에
박인규 : 외국에서는 헨리 폰다하고 캐서린 헵번인가 두 분이 나이 들어서 나오신 영화가 황금연못인가요? 굉장히 기억에 남는데, 명작을 한 번 기대해 보겠습니다.
윤정희씨 활동하실 때는 문희, 남정임씨하고 여배우 트로이카라는 얘기들이 많았는데 그 당시 서로들 가까이 지내셨습니까?
윤정희 : 그럼요. 옆에서는 무슨 경쟁 경쟁 하지만 저희들이 워낙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만날 시간은 거의 없었어요.
박인규 : 1년에 40편씩 찍으셨으니까
윤정희 : 네. 그쪽도 그랬을 테니까. 그런데 신성일씨가 자기 집에서 파티를 가끔 했어요. 그럴 때는 모든 스케줄을 다 스톱하고 다 모여서 한 잔씩 했죠.
박인규 : 그 당시에도 신성일씨가 중심이셨군요 그런 모임에서는
그 세 분들을 요즘은 혹시 만나실 기회가 있으신가요?
윤정희 : 불행하게도 정임이가 세상을 떠났는데요. 남정임씨가 세상 떠나기 전에 유난히 어떤 선배가 저녁을 내... 제가 서울에 왔다고 다 모였는데 이 친구가 2차, 3차를 가자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2차 갔다가 3차는 자기 집에서 라면을 끓여 먹으면서, 유난히 정임이의 모습보다 더 인간적인 모습이 나오더라구요. 그래서 우리 참 즐겁게 밤새도록 시간을 보냈거든요. 알고 봤더니 암 선고를 받고. 본인이 알고, 저희들한테는 그때 얘길 안 했고. 그래서 제가 파리에서 그 세상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어떻게 마음이 아팠던지요. 그렇잖아요. 그때 얘가 왜 이런 모임을 갖게, 막 저한테 조르고 그랬어요. 손 끌어가지고 우리 집에 와서 좀 더 지내자고. 그런 생각이 나고. 또 제가 와서, 대부분 제가 제 남편 음악회 때문에 오거든요. 그러니까 음악회 스케줄 뭐 이렇게 해서 친구들 만나고 싶은 친구들을 마음대로 못 만나요.
박인규 : 그러시군요. 사실 윤정희씨나 문희씨나 말하자면 미모의 배우로서 한 시대를 풍미하셨는데, 여성으로서 나이 든다는 것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갖고 계세요? 약간 두려워하시는 분들도 있다는 얘기도 있던데
윤정희 : 그런데 어떻게 해요. 현실을 받아들여야지요. 그걸 받아주지 않을 때는 자기만의 괴로움과 고민이 쌓이면 피곤하잖아요. 그렇지만, 제가 좀 얼마 전에 TV 나온 걸 보니까 제가 요즘 좀 살이 빠졌어요. 약 9kg 빠졌거든요. 은근히 속으로는 좋아요. 몸이 가볍잖아요.
박인규 : 특별하게 다이어트를 하셔서 그런 겁니까?
윤정희 : 아니요. 그냥 그렇게 됐어요. 그런데 화면을 보니까 좀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조명도 안 좋고 그렇더라구요. 그런데, 그럴 때는 아, 좀 더 조명을 신경을 써서 더 실물보다 좋게 나왔으면 하는 바람은 있죠. 하지만 실질적으로 저 그렇게 신경 안 써요. 받아들여야지요
박인규 : 연륜에 맞는 연기가 나올 수도 있는 것이고
윤정희 : 그리고 또 저는 친구들한테도 얘기했지만 물 흐름에 따라서 가야지 편안한 인생이 되는 거죠. 그걸 거꾸로 헤엄치려고 하면 얼마나 힘들어요.
박인규 : 영화배우로서는 정말 전성기를 구가하시다가 74년도에 어떻게 보면 돌연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가셨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었습니까?
윤정희 : 저는 돌연이 아니고요 첫 데뷔 때부터 밖에 나가서 공부 좀 하고 싶었어요. 옛날 인터뷰를 보면 아시겠지만 저는 5년 뒤에는 미국 유학을 가겠다. 나는 5년만 영화배우 하겠다, 그런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데 그게 7년으로 됐죠. 그리고 제가 미국 대신 불란서로 가게 됐고. 그렇지만 제가 결혼하고도 20작품을 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아마 지금도 팬클럽과 모든 지방에서 그때 20일에 많은 분들이 오셨잖아요. 제가 아마 계속 영화를 하기 때문에 그런 좋은 친구들이 있는 것 같아요.
박인규 : 바깥에 스튜디오에 부군 되시는 백건우 선생님도 와 계시고 두 분이 굉장히 금슬이 좋은 것 같은데요. 2006년도에 결혼 30주년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혹시 두 분이 어떻게 만나게 됐는지, 많이 소개가 됐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간단하게 말씀을 좀 해주시죠.
윤정희 : 소개가 많이 됐을 거예요. 그때는 뭐 제가 신상옥 감독의 심청이를 갖고 72년 뮌헨 올림픽 때 문화페스티벌 있을 때 갔고요. 제 남편, 피아니스트 백건우씨는 윤이상 선생님의 심청이 오페라를 오페라하우스에서 했거든요. 그때 거기서 만났어요. 거기서 만나가지고 두 번째는
박인규 : 만나자 마자 두 분이 감정을 느끼신 겁니까?
윤정희 : 당연하겠죠? 그리고 두 번째는 우연히 파리에서 만나서 그 날부터는 항상 같이 있었어요.
박인규 : 따님도 바이올린을 하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지금 어디서 활동하고 계십니까?
윤정희 : 불란서에 있죠. 불란서의 챔버오케스트라와 활동하고 가르치고. 그런데 그 친구는 영화를 뭐 저보다 더 좋아하고요. 또 음악을 너무 좋아하고. 그래서 양쪽을 다 닮은 것 같아요.
박인규 : 영화를 좋아하면 혹시 바이올리니스트 하시다가 영화배우로 나오는 건 아닙니까?
윤정희 : 아니요. 그 친구는, 우리 딸은 바이올린 없으면 자기 인생은 없다 할 정도로 음악을 좋아하는데, 어렸을 때부터 단편영화를 하나 만들고 싶은 꿈은 있어요. 언젠가는 단편영화 만들 수도 있겠죠.
박인규 : 파리에서 세 분이 함께 사시나요?
윤정희 : 지금은 다 컸으니까 독립을 했죠. 불란서에서는 부모하고 오래 있으면, 이걸 뭐라고 해요? 이걸 끊지 않았다고
박인규 : 배꼽
윤정희 : 네. 친구들이 놀리죠.
박인규 : 한국에는 자주 들어오십니까?
윤정희 : 거의 일 년에 한 번 이상은 들어오죠.
박인규 : 이번에 들어오신 건 남편 되시는 백건우씨의 베토벤소나타 완주, 그것 때문에 들어오신 건가요?
윤정희 : 네. 얼마 전부터 소원이 베토벤 32개 소나타를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연주하는 게 꿈이었어요. 그래서 그걸 몇 년 동안, 물론 베토벤을 어렸을 때부터 했지만 그런 기획을 갖는 건 한 3,4년. 그런 꿈을 가진 건 6,7년. CD녹음을 하기 시작해서 중국에서부터 먼저 시작했어요. 서로 먼저 하려고 하더라구요. 중국에서는 욕심쟁이잖아요. 우리가 세계 첫 번째를 하겠다. 그런데 우연히 스케줄이 그렇게 돼서 끝나고 이제 여기서. 그래도 참 예술의 전당이 참 고마운 게, 한 연주자한테 7일간을 빌려준다는 건 쉽지가 않잖아요. 그렇지만 이게 스페셜 기획이니까 기꺼이 마련을 해주셔서 7일 동안 8회 연주를 했어요. 그런데 어떻게나 청중들의 반응이 정말 눈물 날 정도로 좋았구요 다들 운 분들이 많았어요.
박인규 : 윤정희씨는 항상 자신이 백건우씨의 첫 관객이자 비서이자 사진사, 미용사다, 그런 말씀을 하신다는데 그런 내조를 하시느라 본인의 본업이라고도 할 수 있는 영화에 약간 소홀해졌달까, 그런 아쉬움은 없으십니까?
윤정희 : 저는 절대로 그것 때문에 소홀한 적은 없어요. 왜냐면 제 남편이 영화 하지 마라, 내 일만 위주로 봐라, 이러면 제가 참 희생하는 거잖아요. 그렇게 되면 억울하잖아요. 전혀 그게 아니거든요. 모든 걸, 저한테 자유를 주고 좋은 작품이 있으면 저보다 더 좋아하니까요. 그리고 시나리오를 받으면 저하고 같이 연구하고 의상도 같이 사러 다니고, 저보다 더 흥분하니까 저는 그런 비서 때문에 소홀한 적은 전혀 없어요.
박인규 : 남편의 일을 돕기 위해서 자신의 일을 못한 적은 없다.
윤정희 : 없죠. 그리고 저는 또 남편의 일을 제 일 이상으로 즐거워 하니까요
박인규 : 언론보도를 보니까 대개 부인 되시면 굉장히 귀한 손님일 수도 있고, 연주회 하시면 맨 앞에서 보실 것 같은데 항상 뒤에서 보시거나 무대 뒤에서 보신다고 하더라구요. 특별한 이유가 있으십니까?
윤정희 : 저는 무대 뒤에서는 본 적이 없고요, 객석 맨 뒤에서 보는 이유가... 제가 맨 앞줄에 있거나 가까운 줄에 있으면 본인한테도 방해되잖아요.
박인규 : 부담이 되실까요
윤정희 : 물론이죠. 또 저도 긴장이 돼서 도저히 있을 수가 없고요. 그래서 맨 뒷자리가 저희 가장 편안한 자리고, 또 청중들의 어떤 반응이랄까, 어떻게 이 음악을 듣고 있는가 이런 것도 제가 편안하게 볼 수가, 쉽게 볼 수가 있고. 저는 뒷자리가 너무 좋아요.
박인규 : 음악팬으로서 음악가, 음악팬으로서 백건우씨의 피아노 연주를 말로 표현한다면 어떻게 표현하십니까? 특징이랄까
윤정희 : 그렇잖아요, 남편이 아내 자랑하고 아내가 남편 자랑하면 좀
박인규 : 보통 뭐 팔불출이라고 합니다만
윤정희 : 그렇죠. 그런데 저는 아내를 떠나서 한 사람의 팬으로서 정말로 음악에 빠져 있는, 또 음악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자기를 나타내지 않는 그 작곡가를 앞으로 내세우는 그런 모습과 태도로서... 일등 피아니스트 같은데요?
박인규 : 알겠습니다. 우리 영화에 대한 이야기도 간단하게 좀 여쭤봐야 될 것 같은데요. 40년 동안 영화활동을 하셨고 최근에는 심사위원도 많이 하셨으니까. 40년 전에 활동하실 때하고 요즘 영화계하고 굉장히 많이 달라졌죠? 요즘 영화계 보시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윤정희 : 저는 지금 현재는 영화 현장에 없잖아요. 귀로만 들리잖아요. 그런데 어떻든 엄청난 제작비와 엄청난 인원들로 해서 참 많이 발전했다고 생각해요. 카메라도 그렇고 조명도 그렇고 연출, 연기 다 발전을 했는데요. 그래서 지금 밖에서는 굉장히 환영을 받고 있어요. 제가 제 남편 연주 때문에 이태리, 스페인, 독일 다 다니잖아요. 거기서 연주 끝나고 한 잔씩 마실 때 뭐 김기덕, 홍상수, 누구누구 뭐 한국 이름을 정확하게 발음할 정도로. 그리고 그렇게 팬들이 많고. 그런데, 참 좋아요. 그런데 저는 조금 걱정이 뭐냐. 작년에 제가 청룡상 심사를 쭉 하고 있잖아요? 자만은 아니고 조금 안이하게 생각하지 않나. 이러면 안 되는데... 하는 걱정은 좀 생기더라구요.
박인규 : 어떻게 보면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뜨린 건 아닌가
윤정희 : 뭐 그렇게까지는 얘기할 순 없지만 좀 더 노력해서 남들한테 실망하지 않는 좀 더 좋은 단계로 올라갔으면 좋겠어요.
박인규 : 94년 만무방으로 여우주연상 받으신 이후로는 아직 출연하신 작품이 없어요. 10년이 넘었는데, 팬들이 많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데 혹시 가까운 시일 내에 출연할 영화라든가 그런 계획은 없으십니까?
윤정희 : 그러니까 10년 이상이죠? 제가 계속 기다리고 있는데요.
박인규 : 아직도 계속 찾아보고 계십니까?
윤정희 : 물론이죠. 계속 프러포즈는 받고 있어요. 시나리오를 제가 계속 받고 있죠. 그리고 지금 현재 실질적으로 시나리오를 고치고 있는 건 두 개가 있고요. 그리고 또 다른 분들이 쓴다고 하고. 그러니까 저는 지금 제 입장에서는 옛날같이 일 년에 40편씩 못하잖아요.
박인규 : 뭔가 엄선을 해서, 맘에 드는 걸로
윤정희 : 네. 그러니까 정말로 지금 내 나이에, 우리 가정, 집안 식구가 자랑할 수 있는 그런 작품을 기다리고 있어요.
박인규 : 지금 말씀하신 쓰고 있다는 시나리오 두 개는 출연을 염두에 두고 보고 계신 겁니까?
윤정희 : 네. 그렇지만 시간이 너무 걸리네요.
박인규 : 올해 안에는 보기가 어려울지도 모르겠네요.
윤정희 : 장담할 수 없어요
박인규 : 기다려 보겠습니다. 하여튼 무엇보다도 40주년을 맞으면서 영화를 제대로 해보겠다는 힘을 얻으셨다는 말씀을 하셨기 때문에 기대가 되고요. 마지막으로 국내에 계신 팬들에게 못다 하신 말씀 있으시면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윤정희 : 정말로 아직까지 저를 잊지 않고 참 생각하고 아껴주시는 분이 의외로 많더라구요. 지방을 다녀보면. 그 분들게 제가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영화배우가 어떤 역할인가. 꼭 20대, 30대만이 아니잖아요. 저는 정말로 70대라도 제가 마음에 드는 작품, 또 여러분들이 원하는 작품 있으면 저는 언제나 보답하기 위해서 끝까지 출연할 거예요.
박인규 : 젊었을 때의 연기가 열정이 바탕이라면 나이 들어서는 원숙함이 중요하다던데요, 앞으로 원숙한 연기를 한 번 보게 될 날을 기다려 보겠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윤정희 : 감사합니다 초대해 주셔서.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오늘은 데뷔 40주년을 맞은 영화배우 윤정희씨를 초대해 그녀의 40년 연기 인생을 되돌아보고 우리 영화계에 대해 얘기 나눴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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