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건양대 김원중 교수입니다. 김원중 교수는 1963년 충북 보은 출생으로 86년 충남대 중문과를 졸업했고 94년 성균관대학에서 중문학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95년 건양대 중국언어문화학과 초대학과장으로 부임해 근무하고 있고 중국문학이론의 세계와 중국문화사 등의 10권의 저서와 삼국유사, 사기 본기와 열전, 정사삼국지 등 10여권의 번역서를 출간했습니다.
박인규 : 저희가 1월 1일에는 손자병법에서 배우는 21세기 리더십에 관해서 말씀을 들었고 오늘은 사기에 관해서 얘기를 들어볼까 하는데요. 요즘은 사실 현대시대고 엄청나게 빨리 변화하는 시대인데 우리가 고전 하면 상당히 변하지 않는... 옛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요즘 사기열전이나 고전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어디 있는 것 같습니까?
김원중 : 고전이라는 것이 1000년 전 또는 2000년 전에 쓰여진 것인데, 따지고 보면 사람이 살고 있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똑같거든요. 그래서, 특히 사기열전 같은 경우는 그 당시가 춘추전국시대 때인데 그 당시의 생존의 역사를 담은 것이라 지금처럼 어려운 시대에 모든 부닥치는 문제들이 똑같기 때문에 아마 이런 사기열전이나 손자병법 같은 이런 것에 주목하는 것 아닌가
박인규 : 사람 사는 것의 근본은 예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다. 오히려 동양 고전에 삶의 지혜나 근본이 담겨있다. 보통 사기라고 하면 고등학교 국사 시간에 사마천이 지은 기전체 역사서라고 알고 있고, 열전은 그 중에 위인전 같은 거다 이런 식으로 알고 있는데요. 우선 사기가 어떤 책인지 좀 소개해 주시죠.
김원중 : 사기는 사마천이 아까 말씀하신 대로 황제 때부터 한무제 때까지 약 2000년의 역사를 담은 통사체 정서입니다.
박인규 : 한무제라면 그게 기원 이전이죠?
김원중 : 기원 이전이죠.
박인규 : 제 기억으론 한무제라는 사람은 고조선을 침범해서 한4군을 설치한 사람인데
김원중 : 맞습니다.
박인규 : 굉장히 옛날 역사책이군요...
김원중 : 대단히, 약 2000년 정도 전에 쓴 책이 사기입니다.
박인규 : 사기가 예전의 역사서긴 합니다만, 반고의 한서라고 해서 한나라 역사를 다룬 책도 있는 걸로 아는데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김원중 : 반고의 한서는 철저히 유가에 입각해 만든 관찬, 정부에서 명해서 만든 책이고. 사마천의 사기는 사찬입니다. 아버지의 유언이 있었지만 사마천이 역사서설의 필요성을 느껴서 만든 것이 사찬이고 철저히 황노 계열, 도가 계열로 보는 것이 적절합니다. 그래서 역사를 보는 시각이 반고의 한서와는 많이 다르고. 사실 반고의 한서는 사마천의 사기가 나오고 나서 약 90년 후에 나왔으니까 동시대면서도 동시대에서 약간 벗어난 책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박인규 : 중국의 정사를 24사 또는 25사라고 해서 각 나라별로 정리하고 있는데, 사기를 으뜸으로 친다고 해요. 그 이유는 어떤 겁니까? 개인이 지은 역사서인데도.
김원중 : 노신이, 사가의 절창 무음의 이소라는 말. 그래서 역사로 치면 최고의 책이고 그러면서도 문학적 내용도 상당히 담고 있다고 하면서 중국 정사의 정본으로 많이 평가받은 걸로 생각하는데요. 다른 정사들은 대부분 다 관찬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내용이 상당히 경직돼 있고, 사실 열전을 주목하고 또 사기를 주목하는 이유가 역사를 담당하는 사람들이 제왕이나 제후들에만 국한된 게 아니거든요, 그런데 사마천은 골고루, 정말 도둑 또는 일반 광대 이런 사람들까지 다 다루면서 어떤 역사의 담당하는 주체, 영역을 상당히 확장한 데 기인하지 않았나 이런 생각이 드네요.
박인규 : 이른바 권력자만이 아니라 다양한 인물군상을 보여주면서 그 시대를 보여줬다, 이렇게 말할 수 있겠군요. 저희가 보통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지만, 사마천이라는 분이 궁형이라는 남자로서는 인간으로서는 견디기 어려운 치욕을 딛고 사기를 썼다. 그렇게 알고 있는데 사마천시 사기를 쓰게 된 과정이 굉장히 드라마틱하더군요. 그것 좀 설명해 주시죠.
김원중 : 원래 두 가지 관점에서 볼 수 있는데요 사마천은 아버지 사마담의 유언에 따라서 자기가 사기를 역사를 저술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사마천이, 친구 이릉이 그 당시 흉노정벌을 갔다가, 결국은 한무제가 무모하게 파견하는 바람에 갇히게 됐습니다. 나중에 이릉이 다시 돌아왔는데, 그런 이릉이 흉노한테 당한 것이 어찌 보면 중과부적의 문제지 이릉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는 식으로 변을 하다가 결국 한무제의 노여움을 샀죠. 그래서 그 당시 한무제가 요구한 것이 그겁니다. 너 죽음을 당할 것이냐 아니면 돈을 낼 것이냐, 궁형을 당할 것이냐 이런 식으로 얘기했는데 결국은 사마천이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면서 내가 피로 한 번 써서, 책을 쓰겠다 하면서 그걸 발분저서라고 얘기하는데요. 그래서 만든 책이 사기가 아닌가 이렇게 생각합니다.
박인규 : 내가 비록 치욕은 당하지만 이 역사책만은 꼭 써야겠다
김원중 : 그렇죠. 자신은 구우일모에 불과하지만 나중에 역사로서 명성을 떨치겠다는 의식이 있었던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박인규 : 사마천이 사기를 몇 년에 걸쳐서 쓴 겁니까?
김원중 : 20여 년 동안의 시간에 걸쳐서 사기를 썼다고,.. 20년 정도는 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박인규 : 오늘 말씀을 나눌 것은 사기열전인데요. 가시는 기전체라고 해서 본기다 세가다, 여러 가지 역사서술의 틀이 다른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약간 소개를 좀 해주시죠. 사기의 편제를
김원중 : 사기는 원래 본기, 서, 세가, 열전, 표, 이렇게 다섯 개 부분으로 나눠져 있는데 그 중에서 우리가 가장 주목하는 것이 열전이지만 본기와 세가, 열전은 하나의 자매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표는 연표고. 서는 팔서... 해서 그 당시 천관이라든지 천문, 지리, 역사, 이런 것에 대한 총괄적인 부분입니다. 제도사라는 측면이고. 본기 같은 경우는 제왕의 역사를 전기로 쓴 것이 본기고. 세가는 제왕 바로 밑에 있는 제후 왕들의 전기를 쓴 것이 세가고. 그 다음에 열전은 제왕과 제후를 도와서 그 밑에서 일했던 수많은 모사라든지 논객들, 식객 이런 사람들을 총망라한 것이 바로 열전에서 다뤄지고 있죠
박인규 : 그 사람들이 살았던 당시의 지위를 보면 본기는 왕이고 세가는 제후니까 그 분들이 더 권력자인데 열전에 더 관심이 많다고 해요. 그 이유는 어떤 데 있다고 보십니까?
김원중 : 다양한 인물이 분포돼 있죠. 첫 번째 나오는 백이열전에서는 백이와 숙제의 이야기가 나오고. 맹상군 열전에서 보면 그 당시 대단한 식객을 거느린 맹상군이 나오고, 여부리열전에서는 진시황의 생부로 알려져 있는 여부리가 나오고. 이런 식으로 수많은 인물들에 대해서 다양한 시각으로 다뤄져 있기 때문에 열전에 주목하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박인규 : 오히려 그 시대를 알 수 있는 여러 가지 모습들이 나온다.
열전이 70편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대략 몇 명이나 되는 인물이 나옵니까?
김원중 : 130명 정도의 인물이 수록돼 있는 걸로...
박인규 : 그냥 말하자면 요즘으로 치면 위인만이 아니라 자객열전,
김원중 : 유림열전, 유협열전, 그리고 서남이열전, 흉노열전, 동월열전, 남월열전, 조선열전 이런 것들이 있어서 그 사마천이 중국역사를 보는 시각이 상당히 중국의 본... 화민족이라는 것에 주목하면서도 그 주변에 이민족의 역사도 함께 아우르려는 생각이 강하고. 또 그런 면에서 아까 말씀드린 반고의 한서와는 많이 다른 측면이 있죠.
박인규 : 다양한 인물들이 나오는 거로군요.
김원중 : 그렇죠. 다양한 인물과 개념, 부류들. 이민족의 역사까지도 두루 섭렵하려는 시각의 균형감각을 좀 읽을 수 있지 않을까.
박인규 : 한나라 시대라면 유교를 관학이라고 합니까? 국교로 삼았는데 사마천이 이런 식으로 주변나라들도 하고 자객이다 화식이다 해서 돈벌이하는 사람들도 하고, 이런 분들까지 집어넣은 건 그 당시의 한나라의 국가방침과는 어긋난 거 아니었습니까?
김원중 : 네. 그런 면에서 사실 사마천의 태사공자서 맨 말미에 보면 이 책의 정본은 명산에 두고 부본은 선비들과 군자들의 일람을 권한다, 일독을 권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사실 우리가 유협 하면 어깨들이죠 세칭. 그리고 자객 같은 경우도 형가라든지 조말이라든지 이런 사람들인데
박인규 : 킬러죠.
김원중 : 따지고 본다면 킬러죠. 그런데 이런 사람들을 다룬다는 것 자체가 사실 정통유가 쪽에서 보면 상당히 이단시되는 걸 느낄 수 있는데, 아마 이것은 사마천이 한무제한테 당한 궁형과도 연관성이 없다고는 할 수 없죠
박인규 : 그렇다면 사마천이 그런 여러 가지 다양한 인물들을 열전에 집어넣은 이유, 또는 결국 예전이나 지금이나 사람살이가 똑같다고 한다면 어떤 관점에서 그런 사람들을 자기 열전에 포함시킨 걸까요?
김원중 : 사마천이 열전에 포함시킨 이유는 세상에 쓸모없는 인간은 하나도 없다는 거죠. 그래서 맹상군이 위기에 닥쳤을 때 계명구도. 닭울음소리를 내는 식객의 도움으로 결국 목숨을 건진 것이, 우리 속담에도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는 말이 있지만. 역사를 구축하는 인간의 문제는 아까 말씀드린 대로 제왕이나 제후라든지 이런 사람들에 국한되는 게 아니라는 거죠
박인규 : 사기열전에 70편인데 그 중에 첫 편이 백이열전이에요. 그걸 첫 편에 둔 건 사마천이 나름대로 사마천이 뜻한 바가 있을 텐데 어떤 의미입니까?
김원중 : 사마천이 백이열전을 앞에 둔 것은 아주 의미가 큰 겁니다.
박인규 : 우선 백이. 숙제가 어떤 분인지 소개를 좀 해주시고요
김원중 : 백이, 숙제는 고죽국이란 나라의 두 아들인데. 그 아버지가 죽으면서 둘째 아우인 숙제에게 자기의 자리를 잇게 할 작정이었거든요. 그런데 아버지가 죽자 오히려 숙제는 형이 있는데 내가 왜 왕의 자리를 받아야 되냐면서 양보를 했어요. 그랬더니 형이 또, 백이가, 무슨 소리냐, 아버지의 명이니까 따라야 된다고 얘기하니까. 결국 둘이 서로 양보를 하다가 그냥 그럼 우리 서로 맡지 말자. 그래서 고죽국에서는 다른 아우를 왕의 자리에 있게 했고 두 사람이 바로 그 당시 서백창이란 사람을 찾아갔어요. 찾아갔는데 마침 또 서백창이 죽고 없네요. 그래서 몸을 맡기려고 했는데 그 당시 서백창의 아들인 무왕이, 문왕이 그때 막 죽은 지 얼마 안 됐거든요. 그런데 아버지의 위패를 들고선 그 당시에 상당히 폭군으로 어지러운 정치가들. 주왕을 정벌하러 가니까 결국 그때 백야, 숙제가 무왕의 말고삐를 잡고 얘기했죠.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장례도 치르지 않고 어떻게 군사를 일으키느냐 하니까 그 옆에 있는 군사들 측근들이 목을 베려고 했죠. 그러니까, 아니다 저 사람들은 의로운 사람들이니까 놔둬라. 그래서 놔뒀고 결국 그들을 보호해서 백이 숙제를 돌려보내는데. 결국 무왕이 천하를 평정했죠. 그러나 백이숙제는 그 주나라의 나는 곡식은 더럽다면서 먹지 않고 그 당시 수양산에 들어가서 결국 아무 것도 먹지 않고 고사리만 뜯어먹다가 결국 죽었죠. 죽었는데 그들의 죽음 그 자체에서 사마천은 뭘 봤냐면 그들은 분명 원망하는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어떤 천하의 대의명분을 지키려고 하다가 죽었지만 내심에는 원망하는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사마천은 자기도 궁형을 당해서 살아가고 있지만 내심의 그런 울분, 원망이 있는 건데 이런 것들을 밑자락에 거의 다 깔고 있는 것이 인간사다. 그래서 이 백이열전이 열전의 첫머리거든요. 그리고 나서는 맨 뒤에 태사공사저가 열전의 끝머립니다. 백이열전은 백이 숙제를 다뤘지만 태사공자서는 결국 사마천 자신의 이야기거든요. 그래서 그 두 편이 하나의 자매를 이루면서 역시 사람의 밑바닥의 정서는 원, 원망이다. 그리고 비극이다.
결국 자기 자신을 얘기하는 것이 백이열전이라고 할 수 있죠. 그래서 여기서 사실 백이열전에서 두 사람 얘길 하고 있지만 조금 있다가 다시 하는 말이 뭐냐면 공자의 제자 안연 같은 경우는 그렇게 착하게 살았지만 불과 28사레 죽었고,, 그에 비해서 도척 같은 도둑놈은 천수를 누리다가 죽었거든요. 그러고 보면 세상의 도가 과연 착한 자의 편이냐, 그건 아니라는 거죠. 결국 자기 자신을 얘기하는 거죠. 그래서 천도시비론이 바로 여기서 나오는 건데, 하늘의 도가 옳으냐 그르냐. 나는 확신할 수가 없다. 세상만사 잘 모르겠다라는 것이 사마천의 관점이라, 사기열전을 보면 상당히 드라마틱하거든요. 그것이 바로 사마천이 갖고 있는 어떤 역사해석의 틀을 정해진 규범에 따르지 않고 상당히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는 데 있는 거죠.
박인규 : 저희가 보통 권선징악, 아니면 옳은 일을 하면 보답을 받고, 그런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
김원중 : 그것을 사마천은 부정하는 거죠
박인규 : 꼭 그렇지만은 않다. 상당히 심오한 데가 있군요.
백이 숙제 같은 경우는 주나라의 창건을 반대해서 굶어죽은 사람들 아닙니까. 그런 분들을 앞에 올려놨어요.
그렇다면 열전에 큰 일을 이루고 리더에 해당되는 그런 분들은 없습니까?
김원중 : 리더에 해당되는 사람들이 많이 있죠.
박인규 : 혹시 생각나시는 분 있으시면 말씀해 주시죠.
김원중 : 우선 그 중에서 소진열전과 장의열전에 나오는 소진과 장의를 꼽을 수 있죠. 소진 같은 경우는 그 당시 합종책. 말하자면 그 당시 가장 강력한 슈퍼파워 미국과 비슷한 나라가 진나라거든요. 소진 같은 경우는 서쪽에 있는 진나라가 자꾸만 동쪽 정벌을 하려고 하니까 소진은 동쪽에 있는 6개 나라가 종적으로 연을 맺어서 합종. 종적으로 힘을 합쳐서 진나라의 무력을 대항하자는 쪽이고, 결국 성공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진나라가 이쪽으로 쳐들어오지 못했고. 그것에 대해서 진나라가 고민하다가 결국 소진과 친구지간인 장의라는 사람을 임명하면서, 장의는 진나라가 옆에 있는 횡적인 나라와 개별적 관계를 맺어서 또 다른 나라를 공격하는 방식의 연횡책을 제시하죠. 저는 이 두 사람이야 말로 그 당시의 우리가 말하는 책사, 모사, 이렇게 얘기하지만 사실은 외교전략가거든요
박인규 : 요즘으로 치면 키신저 같은 외교전략가군요
김원중 : 네. 우리가 리더의 기준을 삼을 때 제왕과 제후만 리더가 될 수 있는 게 아니라 이런 사람들. 말하자면 바로 그 밑에서 핵심전략가, 핵심브레인으로서 나라의 운명을 좌우한 이런 인물들이 진정한 리더의 모습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죠.
박인규 : 70편의 열전 중에 굉장히 많은 인물들이 나오는데 그렇다면 사마천이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인물은 누구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아까 말씀하신 백이 숙제인가요?
김원중 : 그런데 비중도가 워낙 많이 달라서. 어떤 부분은 지금 말씀드린 소진과 장의도 있고. 그래도 회음후한신, 그 다음 이사에 상당히 주목했죠. 이사 같은 경우는 진시황을 도와서 진나라를 반석에 올려놨다가 결국은 나중에 유서를 같이 조고와 진시황의 아들인 호해와 유서를 조작을 해서 결국은 나중에 죽게 되죠. 그러나 이사가 갖고 있는 걸 많이 인정했고, 그러면서 비판적으로도 보고 두 가지 면. 그 다음 여부리라든지 이런 사람들도 상당히 주목한 인물들이죠.
박인규 : 저희가 중국역사를 얘기할 땐 춘추전국시대. 말하자면 혼란했긴 하지만 혼란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제자백가다, 그런 사상이 나왔다는 말씀도 하는데. 오히려 그때 어떻게 보면 흥미있는 인물들이 많이 나왔을 것 같아요. 혹시 그 시대에 소개해 줄 만한 인물이 있다면 어떤 인물들이 있을까요?
김원중 : 자객들의 이야기가 상당히 흥미있죠. 우리가 오늘날 말하는 단순한 킬러는 아니고요. 상당히 의리와 명분을 가지고 자신의 개인적인 일이 아니라 국가대사를 위해서 일종의 특명을 받은 사람을 자객으로 얘기하죠.
박인규 : 말하자면 우국지사로군요.
김원중 : 그렇죠 지금으로 따지면 그런 개념이 더 적절할 것 같아요. 특히 그 당시 진나라의 공세에 상당히 직면했던 연나라. 연나라는 북방에 있는 나란데 연나라의 태자 단이 진시황을 암살하지 않고선 도저히 연나라가 버틸 수 없다고 판단해서 그 당시에 자객인 형가를 찾아가죠. 형가를 만나서, 형가한테 태자 단이 간곡하게 부탁합니다. 그러면서 당신이 좀 내 부탁을 들어달라. 형가는,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자를 위해서 목숨을 바칠 수 있다고 하면서 태자단의 명을 받아 진시황을 암살하러 갑니다. 암살하러 가서, 그 당시 진시황이 필요로 한 것은 연나라의 지도죠. 그 당시 연나라의 지명인 독항의 지도를 들고선 찾아가서 지도 속에다가 단검, 비수를 갖고 가서 진시황 앞에서 지도를 쫙 펼치면서, 딱 보니 칼끝이 보이는 거죠. 그걸 보고선 진시황이 칼집에 있는 칼을 뽑으려고 했는데, 그 사이 이미 형가는 진시황을 찌르려고 했는데 결국 옷소매, 진시황이 사실 두 번의 암살시도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굉장히 조심하고요. 그래서 그 당시 죽이지 못하고 진시황이 결국은 칼집을 등에 메서 칼을 뽑아서 형가의 팔을 자르죠. 그리고 나서 그 옆의 측근들이, 진시황은 그 측근들한테도 무기를 소지 못하게 했거든요. 누가 죽일지 모른다는 일종의 공포심 때문에. 결국 나중에 형가가 죽음을 당하게 되는 거지만 그 당시 형가가 오로지 자신을 알아주는 태자단의 말을 듣고 잔시황을. 형가는 이미 죽을 줄 알고 간 거죠. 그런 것들이 상당히 좀 흥미진진하게 다뤄지고 있죠.
박인규 : 자객열전에는 형가 외에 또 어떤 자객들이 나옵니까?
김원중 : 조말 같은 사람도 있는데 사실 자객열전의 핵심은 바로 형가라고 할 수 있죠.
박인규 : 요즘 현대국가에서의 상식은, 사실은 이게 암살인데 암살이란 건 국가경영이나 외교로서는 적절치 않은, 좋은 방법은 아니라는 게 상식인데 자객열전을 열전에 포함시킨 이유는 뭘까요 사마천이.
김원중 : 그런데 아까 말씀드린 대로, 지금은 국가 간의 예의가 있는 거죠 사실은 어찌 보면. 그런데 그때는, 오로지, 원래 주나라가 붕괴되면서 50개의 제후국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전국시대 때 살아남은 것이 7개 나라에요. 전국7웅이라고 하잖아요. 7개 나라로 줄면서 결국 그때는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지 서로 외교 간에 너희들, 우리가 예의를 갖춰서, 원칙이라는 게 없는 거죠. 누가 죽이면 죽는 거고. 그런 측면에서는 정말 처절하게 살다 간 생존의 문제와 관련되기 때문에 지금과 비교하는 건 약간 무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인규 : 사기열전을 보면 아까도 말씀하셨지만 역사라는 것이 왕이라든가 제후라든가 권력자에 의해서, 리더 한 사람에 의해서 좌우되지 않는다는 나름대로의 사관이 있는 것 같아요
김원중 : 그렇습니다. 사기열전에서 다루는 사람들은 참 다양합니다. 여불위 같은 경우도 사실은 여불위가 진시황의 생부일지 모른다는 건데, 여부리는 그 당시 상당한 재력가였죠. 여불위가 가장 아끼는 첩이 자기 씨를 임신했는데, 그 당시 진시황의 아버지가 첩을 보고선 반하니까 첩을 줬어요. 주니까 거기서 애가 태어났는데 그것이... 여불위라는 거죠. 그런 역사에서 쉽게 다룰 수 없는 사람들도 영역 속으로 끌어들여서 다루고 있죠.
박인규 : 사기열전에 우리말로 번역된 게 거의 1000페이지에 달하는 것으로 두 권이던데 쭉 번역을 하시면서 많이 음미하실 테니까. 혹시 이걸 읽는 분들에게 좀, 어떻게 읽는 것이 좋겠다, 그런 조언의 말씀을 마지막으로 부탁드리겠습니다.
김원중 : 사기열전은 아무 데나 펼쳐서 읽어봐도 재밌습니다. 특히 소진, 장의라든지 오자서, 아까 말씀드린 이사열전, 여부리열전, 회음후열전, 그 다음 화식열전, 관안열전, 다들 지금 읽어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태와 상당히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 것이 많습니다.
박인규 : 네. 다음 시간에 한 번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고요, 오늘 순서 여기서 일단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말씀 고맙습니다.
김원중 : 고맙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오늘은 사마천의 사기열전을 번역한 건양대 중국언어문화학과 김원중 교수를 초대해 사기열전에서 배울 수 있는 21세기 리더십과 삶의 지혜에 대해 얘기 나눴습니다. 내일도 김원중 교수와 함께하겠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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