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규 : 어제에 이어서 오늘도 계속 강의를 듣도록 하겠습니다. 설문조사를 보니까 2008년도 직장인들 새해소망 1위가 자기계발이다. 말하자면 실력을 키우겠다는 거겠죠? 많은 분들이 시작을 하는데 어떻게 해야 자기계발이 되느냐를 가지고 고민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박교수께서는 물을 닮아라,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어떻게 물을 통해서 어떻게 자기계발을 할 수 있는 건지
박재희 : 동양사회에서 물은 굉장히 중요한 메시지죠. 농업사회니까 물이 없으면 1년 농사, 경제가 파탄나는 거죠. 모자라도 넘쳐도 문제고, 노자든 장자든 공자든 손자든 물은 굉장히 중요한 동양사회에서 메시지를 갖고 상대방을 설득하는 논리로 작용합니다. 물은 굉장히 중요한 논리의 핵심인데 손자병법은 전쟁을 할 때 물을 닮으라고 얘기해요. 첫 번째, 물에게서 유연성을 배우라고 얘기합니다. 유연성이라는 건, 물은 어느 모습이든 변할 준비가 돼있다는 거 예요. 네모난 지형에 들어가면 네모네지고 세모난 지형에선 세모네지고. 요즘 리얼타임이란 말 하죠. 실시간. 어떻게 보면 변화와 적응이 가장 빠른 존재입니다.
박인규 : 변화에 즉각 적응하라는 얘기군요.
박재희 : 네. 물이 그렇게 다양하게 유연하게 모습을 가질 수 있는 철학적 베이스가, 물은 고정된 모습이 없다. 병법용어론 그걸 수무상형이라고 하는데요. 물 수자에 없을 무자, 물은 없다. 뭐가 없냐, 상형. 항상 상자에 모습 형자. 물은 항상하는 모습이 없다. 이거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많은 분들이 자기 모습을 규정하거든요. 나는 어느 대학 나왔고 학벌이 뭐고 몇 살이고 하는 순간 자기계발은 끝입니다. 새로운 공간, 새로운 스피드, 새로운 지식으로 항해하는 데 겁이 나는 거거든요.
박인규 : 어제 말씀하신 전승불복인가요? 이겼다고 해서 반복하지 마라. 같은 얘기네요. 한 가지만 고집하지 마라.
박재희 : 네. 나를 한 가지로 고집하고 나는 뭐하는 사람, 어떤 사람이라고 규정하는 순간 자기계발은 끝난 것 같아요.
박인규 : 끊임없이 변해라.
박재희 : 그래서 나를 규정하지 말라는 겁니다. 물처럼 다가오는 상황에 맞게끔 내 모습을 유연하게 바꿀 수 있는 그 철학이야말로 나를 계발하고 확장시키고 내 지식의 외연을 넓히는 굉장히 중요한 변화의 철학이라고 얘기해요.
박인규 : 너무 자주 변하면 사실은 줏대가 없다든가 그렇게 비판받는 거 아닌가요?
박재희 : 명분론 쪽에서 보면 그런데 손자병법이라고 하는 사람이 죽고 사는 전쟁터에서는 즉각적으로 변해야 됩니다. 그러니까 명분 때문에, 그래도 우리가 옛날에 명분이 있는데,라고 하는 순간 이미 적의 공격은 감행돼서 우리 조직은 파탄나고 마는 거죠. 물론 인생을 살면서 가족들과 함께할 때 아 뭐 변해야 된다. 마음이 변해서 이혼하고 이건 아니고요, 정말 한 해를 살아가면서 전쟁과 같은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변해야 된다.
박인규 : 주변 상황의 변화에 대해 항상 기민하게 대응해라.
박재희두 번째 물에게서 배워야 될 게 겸손함이랍니다. 물의 두 번째 특징 중 하나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는 거죠. 사실 물은 모든 만물을 다 키워주는 공덕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에서 아래로 흐르기 때문에 강이 되고 바다가 된다는 거예요. 물이 바다가 되는 이유는 낮췄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러므로 승리한 자여 낮춰라, 겸손해라. 그래야 너의 크기가 커진다는 겁니다. 그 긴장감이 너를 크게 할 것이다
박인규 : 제가 신영복 선생한테 말씀을 들었는데, 바다가 왜 바다냐. 모든 걸 다 받아주니까 바다라고 하더라구요.
박재희 : 그 철학입니다. 정말 클 수 있는 사람은 낮추는 사람입니다. 자기 지식에 정말 연연하지 않는 사람인 거죠. 그래서 물에게서 배울 여러 가지 철학 중 세 번째는 진퇴유절이라. 나아가고 물러남에 마디가 있다. 다시 말해 판단을 해야 되는데, 진. 지금 나아가야 할지. 퇴. 잠시 물러나서 나의 실력을 다져야 될 땐지 그 판단을 못하면 경거망동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물은 흐르다가 웅덩이에 갇히면 웅덩이를 채우고 흐른답니다. 웅덩이를 비워놓고 흐르다간 결국 거기 때문에 물이 다 꺼지거든요. 때를 기다리고 실력을 쌓을 때 쌓고 나아갈 땐 목숨걸고 앞으로 나아가랍니다. 그리고 네 번째로 물에게서 배워야 될 게 여유랍니다. 흐르다가 바위를 만나면 우회할 수 있는 여유. 강자의 여유라는 거예요. 약자는 우회 안 한 대요. 누가 나 모욕하면 소리 벅벅 지르는 사람들, 용서하세요. 불안해서 그러신 분들이니까. 강한 사람은 소리 안 지르죠. 이렇게 해서 물의 유연성을 배워라. 겸손함을 통해서 너의 크기를 키워나가라. 진퇴에 대한 판단능력을 배워라. 그리고 물에게서 강자의 여유를 배워라. 이런 것들이 한 해를 살아가면서 손자병법이 얘기하는 자기계발의 굉장히 중요한 물의 원리들입니다.
박인규 : 어제 전쟁이라는 건 말하자면 확인하는 거다. 이겨 놓고 확인하기 위한 거라고 말씀하셨는데 전쟁을 안 하고도 승리하기 위해선 설득, 협상에 관한 교훈도 있나요?
박재희 : 상대방을 설득하고 협상하는 건데, 손자병법에선 그걸 시형법이라고 얘기합니다. 보일 시자에 모습 형자. 내 모습을 자유자재로 보이게 하는 거예요. 상대방한테 내가 큰 모습으로 보이게 하려면 큰 모습으로 보이게 할 수도 있고 별 볼일 없는 사람으로 보이게 하려면 별 볼일 없는 사람처럼 보이게 할 수 있는 것이 시형법이죠. 항상 강하게만 보이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시형법에선 하수들입니다. 때론 똑똑한 사람처럼 때론 바보처럼. 중국인들이 자주 쓰는 말 중에 난득호도라고 해서, 호도라는 게 중국말로 어리석은, 바보란 뜻인데, 어려울 난자에 얻을 득자. 그러니까 난득호도 하면 똑똑한 사람이 바보처럼 보이긴 어렵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상대방을 설득할 때 내가 항상 똑똑하게 보이는 것만 설득에 중요한 건 아니라는 거예요. 때론 바보처럼 보여서 상대방의 긴장을 늦추게 한 다음 내가 원하는 목표를 달성한다든지. 저는 이런 설득의 철학들 보면 정말 손자병법에서 얘기하는 것이 결국 뭐냐면 굉장히 유연함을 담보하고 있는 겁니다.
박인규 : 아무리 자기가 준비를 많이 하고 대처한다 하더라도 어제 말씀하신 것처럼 백전백승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실패할 수도 있고 위기에 닥칠 수도 있는데 그땐 어떻게 해야 되는 겁니까?
박재희 : 병법에 그런 말이 있어요. 무중생유. 무중생유란 말 들어보셨죠? 없을 무자에 가운데 중자. 때로는 없는 가운데서 생유, 유를 창출하라. 무에서 유를 만들란 얘기거든요.
박인규 : 어려운 얘긴데요 사실은
박재희 : 때로는 정말 하다하다 안 되면 다 부숴버리고 다시 시작하래요. 왜 요즘 아파트 리모델링보다 재건축이 빠르다면서요.
박인규 : 이른바 창조적 파괴를 하라, 그런 얘기로군요.
박재희 : 그렇죠. 디스럽티브 이노베이션이라고 하나요. 완전 파괴를 해놓고 무를 만들어놓고 그 다음에 유를 만들어라. 저는 쾌도난마란 말도 참 좋아합니다. 실을 풀다가 잘 안 풀어진다고 고민하지 말고 칼을 빼들고 한 칼에 쳐버리고 다시 풀어내란 얘기죠. 저는 부수는 것이야 말로 새로운 창조적 원천이 된다. 항우라는 사람 아시죠. 초나라의 항우가 이런 전술을 잘 썼대요. 특히 파부침주라고 해서 깨뜨릴 파자에 솥 부자. 일단 전쟁터에 도착하면 솥부터 깨뜨렸답니다. 그리고 침주. 침몰시킬 침자에 배 주자. 이번 전쟁에서 지면 밥 해먹을 그릇도 돌아갈 배도 없다. 파부침주요.
박인규 : 오직 이기기 위해 싸워라.
박재희 : 전 때로는 이런 배수의 진을 치고 한 번 전쟁에 나가면 정말 무를, 다 부숴놓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이런 전략도 올 한 해 굉장히 중요한 전략이 아닐까 싶어요.
박인규 : 지난해에 나온 신조어 중에서, 무슨 골드미스다, 알파걸이다 이래서 부와 실력을 갖춘 여성들이 많이 늘어났다. 이런 사회현상을 반영했는데요, 그렇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여성들이 직장이나 이런 데서 승진 같은 건 아무래도 좀 어렵다. 유리벽 같은 걸 느낀다. 갑갑하다 말씀하시는데 여성들의 사회진출에 있어서 나름대로의 전략이랄까요. 그걸 손자병법의 관점에서 보자면 어떤 조언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박재희 : 골드미스란 말이 옛날 올드미스에서 바뀐 거죠? 그 올드가 골드가 된 거죠. 돈도 있고 실력도 있고. 손자병법에선 여성들에 대한 얘기는 안 나오지만 제가 동양고전의 한 가지 예를 들어볼게요. 중요한 건 뭐냐면 여성이든 남성이든 자기가 세상을 바라보는 맥락이 중요합니다. 영어로 이걸 컨텍스트라고 하죠. 내가 바라보는 관점, 가치가있는 거죠.
박인규 : 자기의 뚜렷한 주관이 필요하다.
박재희 : 그렇죠. 똑같은 물건이라도 내가 보는 관점이 다르면 그 물건의 본질이 바뀌는 거죠. 그 부분에 대해선 장자에 그런 말이 나옵니다. 송나라에 빨래하는 집안이 있었대요. 빨래만 해서 먹고 살다 보니 겨울철에 물에 손 담그면 손이 트잖아요. 그러다 보니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 손이 안 트는 약을 개발해서 그 약을 바르고 경쟁력을 높였대요. 다른 빨래하는 직업보다 훨씬 더 경쟁력이 있었겠죠. 어느 날 그곳을 지나가던 나그네가 빨래하는 사람한테 그 기술을 팔라고 요구합니다. 그러니까 그 집안이 회의를 열면서, 야 우리가 빨래만 하면서 먹고 살았는데 누가 이걸 백금이나 준단다. 기술 팔고 농사 짓자. 그래고 팔기로 결정하고 팔아요. 그 과객이 그 기술을 갖고 오나라 왕 함려를 만나러 갑니다. 함려에게 그런 제안을 해요. 나는 기술이 있다. 겨울에 아무리 물에 손을 담가도 안 트는 약이 있다. 그때 마침 월나라 군대가 오나라에 침공을 해옵니다. 겨울이었어요. 양자강이라는 물에서 싸우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그러니까 오나라 왕이 이 사람을 장군으로 뽑아서 내보내요. 그 손 안 트는 약을 무제한 만들어 병사들에게 지급하고 결국은 전투력이 높아져서 월나라 군대를 대패시키고 금의환향합니다. 왕은 그 자리에서 그 과객한테 땅을 분봉하고 제후로 올려버립니다. 장자가 자기 친구 해자한테 그 얘길 해요. 똑같이 손 안 트는 약인데 누가 쓰면 평생 빨래만 해서 먹고 살고, 누가 쓰면 그걸 가지고 새로운 토지를 얻고 제후가 되고. 아마 여기서 결국 사물의 본질은 그 자체가 결정하는 게 아니라 누가 쓰느냐에 달려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여성 분들. 특히 골드미스든 알파걸이든 세상을 보는 컨텍스트, 내 맥락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거기에 귀 기울이지 말고 내가 바라보는 그 물건의 효용성이 있잖아요. 삶에 대한 방식들이요. 그 맥락을 굉장히 중요시 여기고 내 나름대로 그걸 어떻게 쓸 것인가를 고민해 본다면 아마 당당하게 사회생활을 해나갈 수 있는 골드미스, 알파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박인규 : 자기 나름대로 세상을 볼 수 있는 눈, 주관이 필요하군요.
박재희 : 네. 다른 사람의 가치에 연연할 이유가 없는 거죠. 장군도 손자병법에서 보면, 고독하다는 거예요. 병사들이 이해 못한대요 내 전략을. 상대방한테 이해시킬 이유도 없고. 그래서 자기만의 전략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요즘 또 청년실업 문제가 굉장히 심각해서, 예전엔 이태백이었다가 요즘엔 이구백. 20대 90%가 백수다. 요즘엔 청백전이란 말도 나왔어요. 청년백수전성시대라고 하는데.
어떻게 직장을 잡아야 손자병법을 활용도 할 텐데, 아직 직장을 못 잡은 청년들에게 어떤 좋은 말씀 해주실 수 있습니까?
박재희 : 어떤 좋은 말도 의미가 없을 텐데 한 가지 안타까운 건 그겁니다. 사실은 어쩌면 제가 기업체 CEO들 만나보면 사실 구인난에 시달리는 회사들이 많아요. 물론 다 중소기업들이죠. 대기업에 취직하려는 사람들이 많지, 중소기업은 굉장히 열려 있더라구요. 물론 열악하긴 하지만. 손자병법에 그런 말이 있어요. 위대한 장군이 되기 위한 조건 중에 현장에 대한 경험을 얘기합니다. 그래서 일명 산에서 싸우는 전투현장. 산전. 물에서 싸우는 전투현장, 수전. 손자병법에 나오는 얘기거든요. 정말 위대한 장군이 되려면 산에서도 싸워보고 물에도 빠져보고. 택전. 늪 택자입니다. 늪에 발목 빠져서 허우적거려 보기도 하고. 육전, 편평한 육지에서 누구 하나 도움 청할 데 없는 곳에서 정말 고민해 보는, 그런 산전 수전 택전 육전 다 겪은 자만이 전쟁터에 나가서 누구도 생각할 수 없는 자기만의 전략을 만들어내고 자기만의 타이밍을 찾아내고 스페이스를 찾아낸다는 겁니다. 전 그래서 이 시대의 이태백이든 청백전이든 간에, 전 모르겠어요. 제 인생을 돌이켜봐도 저는 산전수전 싸웠던 것 같아요. 제가 동양철학을 하면서 정말 그냥 연구실 안에서만 했다면 해석하고 끝났겠죠. 정말 가장 전성기 때 전 모든 걸 다 버리고 중국 유학을 떠났었고, 정말 밑바닥에서부터 무중생유라. 다시 시작해본 경험이 있는 저로서는 산전 수전 택전 육전 가리지 말고 정말 밑바닥에서부터 실력을 쌓아나간다면 언젠가 그것이 그 분의 인생에서 굉장히 중요한 대안이 되지 않을까. 결국 자기 맥락이 없는 거예요. 어느 기업에 다니고 월급은 얼마 받고 연봉 몇백만원 더 받고 이거에 연연하다 보니까 이태백이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박인규 : 처음부터 좋은 직장에 들어가려고 할 것이 아니라 눈을 낮춰서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걸많이 해봐라. 그러면서 경험을 쌓으면 뭔가 된다. 그런 말씀이시네요?
박재희 : 이 시대 성공하신 분들 다 그렇게 사신 분들 아닌가요?
박인규 : 알겠습니다. 우리 청년들이 들어봐야 할 얘기 같습니다.
개인적인 질문도 드려볼까 합니다. 사실 동양고전 하면 2, 30년 전만 해도 좀 고리타분한 것. 밥 굶기 딱 좋은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동양고전 쪽을 공부하시게 됐습니까?
박재희 : 남들이 안 하니까 했는데요 결국은. 어려서부터 저희 조부님이 글방 선생님이시라, 훈장님이셨죠. 그래서 한학을 전수받았는데, 어떻게 보면 어렸을 때 집안 토양이 굉장히 중요했던 것 같고. 그래서 대학을 선택할 때부터 이 과가 성균관대학교 하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오로지 이것이 하나가 정답이라고 생각했고, 그 뒤로는 추워도, 평생 저는, 많은 분들 그러시더라고요. 요즘 직업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업을 선택해야 한다.
박인규 : 업을, 평생 할 것을
박재희 : 네. 직이라는 건 끊임없이 변하니까 결국 내가 뭘 하고 살 거냐가, 요즘 100세 120세까지 산다면서요. 직을 선택했다가는 40세 되면 끝나잖아요. 업을 선택한 사람은 120년 내내 쓸 수가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는 업을 선택했단 생각이 들어요. 전 사실 이걸 선택하면서 밥 먹고 살겠냐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와서 보니까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많은 분들이 이런 동양적인 콘텐츠랄까요, 한학이랄까 동양 얘기에 관심이 많아 하시더라고요. 전 그 부분에 대해서 그런 생각이 들어요. 요즘 잭 웰치니 이런 사람도 많은데 왜 하필이면 손자병법 얘길 듣고 싶고 하필이면 동양 얘기를 듣고 싶을까, 하다 보니까 나름대로 제가 생각이 든 게, 첫 번째는 이제는 동양에 대한 콤플렉스가 좀 없어진 것 같아요. 왜 옛날엔 영어 한 번 섞어야 되고 외국에서 누가 해야 폼잡던 시대가 있지 않았습니까?
박인규 : 동양은 낡은 것 뒤떨어진 것, 그런 생각이 많았죠.
박재희 : 네. 그런데 이제 요즘 반도체, 우리 조선 1위 아닙니까. 결국 이제 좀 자신감이 생겼어요. 한류도 그렇고. 어느 정도 동양에 대한 콤플렉스를 벗어나서 우리 것을 아는 거야 말로 굉장히 지적인 세련됨이다 하는 공감대요. 그래서 요즘 사극 같은 것도 유행하는 거 보면 아마 그런 것 같아요. 두 번째는 중국이 뜨고 있다는 거죠. 다들 공감하는 내용이겠지만 결국 중국이란 나라가 이 시대 주역으로서 뜨고 있기 때문에 중국의 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 이런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요즘 동양문화, 동양철학, 동양고전, 사극, 이런 열풍들이 저는 그런 콤플렉스에 대한 해소, 그리고 중국에 대한 새로운 기대와 무관하지 않다고 봅니다.
박인규 : 조금 전에 산전수전 말씀하시면서, 박교수께서도 중국 가서 여러 가지 고생하셨다고 말씀하셨는데, 언제 가시게 되고 어떻게 가시게 된 거예요?
박재희 : 제가 서른, 95년도에 제 인생에서 굉장히 큰 결단을 했죠. 결혼해서 아이는 지금 한 살 밖에 안 됐는데 한참 돈 들어가야 될 땐데 강사생활하면서 그나마 알량하게 강사비라도 받아서 먹고 살고 행복했거든요. 어느 날 갑자기, 아 여기서 뭔가 나를 부수지 않으면 새로운 단계로 넘어서지 못하겠단 생각이 들더라구요.
박인규 : 파부침주를 하신 건가요?
박재희 : 예. 솥을 깨뜨리자. 그리고 돌아갈 배를 침몰시키자. 그리고는 처갓집에 가서 맡겼죠. 내 잠깐만 밖에 나가서 나를 좀 부수고 올 테니까 좀 맡아 달라고요. 혼자 떠났죠. 그리고는 중국 가서 인민복 하나 딱 사 입었어요 일단. 그리고 중국 사람들처럼 겨울에 도착했는데 한 한 달간 머리 안 감을 작정하고 조그만 방 하나 얻어서 북경대에 처음 있다가 사회과학원에 가서 다시 처음부터 시작했죠. 그게 제 인생에서 한 2년 조금 넘었거든요. 그때 기간이
박인규 : 말하자면 동양고전의 본토, 본고장이라고 할 수 있는 중국에 가서 공부를 해보자.
박재희 : 네. 그때 솥을 깨뜨려서 제 인생에서 굉장히 중요한 계기가 됐던 것 같아요. 그 뒤부터 지금 한 10년이 넘게 지났는데 제가 그때 결심한 게 10년에 한 번은 깨뜨려야 한다.
박인규 : 말하자면 자기쇄신이 중요하다.
박재희 : 예. 나를 부수고 새로운 나를 만들려면 부숴야 된다고 고민하고 있는데 요즘 이제 깨뜨릴 때가 된 것 같아요. 한 10년 지났으니까요. 그래서 지금 한 번 영미 쪽으로 가서 동양철학을 한 번 해볼까, 그런 깨뜨릴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손자병법을 강의하신 건 얼마나 되셨습니까?
박재희 : 솔직히 얘기하면 제 전공 아닙니다. 손자병법은 2002년도 1월 2번째 주 월요일 저녁 10시부터 시작했어요.
박인규 : 정확하게 기억하시네요. 어디 교육방송 같은 겁니까?
박재희 : EBS TV 기획시리즈요. 한창 김용옥 교수님이 노자와 21세기로 뜨셨잖아요. 동양고전이 조금 보편적으로 대중성을 가지면서 EBS측에선 아마 손자병법 강의가 좋겠다는 생각이 든 모양이에요. 그래서 젊으니까 와서 해봐라. 그래서 달려들어서 한 게 그때 처음이었죠. 42시간 했어요. 36시간 계약서 썼다가 반응들이 좋더라구요. 그때 같은 시간대에 SBS 여인천하 MBC 상도, KBS 겨울연가 할 때 정말 그래도 그나마 교양인들이 제 방송을 들어주셔서 42시간 동안 손자병법을 강의하고. 그 전에 물론 책을 한 두 권 썼고 손자병법에 인연을 맺어서 그걸 화두로 손자병법을 강의하지만 손자병법은 화두고 동양문화 전반적인 콘텐츠를 갖고 이 시대의 생존전략, 인간관계, 자기경영 이런 것들을 계속 현대화시키고 있습니다.
박인규 : EBS 강의를 계기로 해서 기업체라든가 공공단체에 강연을 많이 다니신다고 하던데요. 보통 일 년에 몇 번이나 하십니까?
박재희 : 기억이 안 날 정도로 많이 다닙니다. 잘 조절을 하고 있습니다. 때론 과감하게 한 달간 쉬기도 하고요.
박인규 : 그렇게 강연을 다니시면 직장에 계신 그런 분들이 주로 어떤 질문들을 하시던가요?
박재희 : 다들 생존에 대한 고민들입니다. 다들 처절하신 모양이에요. 그러니까 어느 업계든 처절하지 않은 업계를 못 봤어요. 한 번은 일산에 사법연수원 특강을 한 번 나갔어요. 그런데 정말 엄청나게 많이 뽑아놨더만요. 정확히 986명. 36기생들이었는데 986명이 앉아있대요. 제가 하도 기가 막혀서 관계자한테 물어봤거든요. 저렇게 천 명씩 뽑아서 2년 뒤 어떡하실 거냐고. 그 분이 간단하게 얘기하시더군요. 우리도 대책 없습니다.
박인규 : 예전에는 사법시험 되면 그야 말로 출세가 보장됐다고 생각했는데
박재희 : 아, 인생행복 시작이었죠.
박인규 : 요즘은 검판사 되려면 최소한 한 2,300등 안에 들어야 된다던데요
박재희 : 글쎄요 등수를 떠나서, 변호사 분들도 등수 좋으신 분들 많은데 결국은 아마 옛날처럼 고시 붙었다고 해서, 의사가 됐다고 해서 이렇게 생존이 녹록치는 않은 것 같아요. 많은 분들이 CEO는 CEO대로, 자격증 있는 사람은 자격증 있는 사람대로, 현장에 있는 분들은 현장에 있는 분들대로 다들 고민이 생존입니다. 어떻게 살아남아야 될 거냐, 그 생존에 대한 고민들이 가장 많은 것 같아요.
박인규 : 어떤 분들은 요즘 많이 팔리는 책이 주로 자기계발서 아닙니까. 말하자면 생존, 경쟁을 위해선데 그러다 보니 너무 좀 살벌해지는 거 아니냐, 자기만 살겠다고 하는 거 아니냐. 그런 생존과 아까 말씀하신 상생과 조화가 가능한가요?
박재희 : 저는 히딩크라는 사람을 계속 떠올리게 돼요. 그 분은 정말 어디든 가면 실적이 좋아요. 한국 대표팀을 맡으니까 세계 4강. 아인트호벤팀인가요 네덜란드의? 유럽 4강, 호주팀은 32년 만에 본선진출 16강까지요. 실적이 좋아야 됩니다. 좋은 방법들을 제가 쭉 몇 가지 손자병법으로 보면 그는 따뜻한 휴머니즘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 사람이 가면 23명 선수들의 눈빛이 따뜻해지는 겁니다. 출신지가 다르면 밥도 같이 안 먹고 그런 조직이 한 사람이 바뀜으로써 정말 가족이 되고 형제가 되는 따뜻한 휴머니즘이요. 실적 좋아야 되고 승리해야 됩니다. 그러나 그 방법에 있어서는 저는 굉장히 중요한 것이 바로 휴머니즘모드가 아닌가 싶어요. 다소 관념적이지만 요즘 그런 얘기들 많이 하더군요.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존중. 그것이 그들의 마음을 끌어내고 그들이 나를 신뢰하게 만들고 그들과 함께 가는 조직의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특히 리더분들, 생존에 대한 고민을 하시는 분들이라면 이걸 상생과 연결시킨다면 상대방에 대한 따뜻한 말 한 마디 배려요. 제가 참 겁나는 분이 그래요. 내가 월급 주고 일 시키는데 하라면 하지. 정말 답답해집니다. 장군은 그런 사람 아니거든요. 정말 병사들이 어디가 힘든지, 그들이 왜 저렇게 어깨가 처져 있는지, 다가가서 그들이 가슴을 어루만져 줄 수 있는, 결국 그랬을 때 그 사람 마음이 다가오고 조직의 생존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전 그런 손자병법적 사유구조가 있어요. 다 죽이고 이긴 승리가 아니라 안 다치고 이길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 전 이것이 요즘 나온, 요즘 말하는 트렌드를 반영한 생존전략서와 차별화된 손자병법만의 따뜻한 생존전략이 아닌가 싶어요.
박인규 : 자기만 살자고 하는 게 아니라 경쟁이나 전쟁을 하더라도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 말씀으로 요약될 수 있겠네요.
강의를 마치시면서 마지막으로 청취자들에게 하실 말씀 있으시면 간단하게 부탁드리겠습니다.
박재희 : 2008년도의 화두를 제 나름대로 꺼낸 게, 도광양회라는 말입니다. 도가 감춘다는 뜻이고 광은 빛 광자죠. 빛을 좀 감추고 기를 양자에 그믐 회자라고 하죠, 어두울 회자. 어둠 속에서 실력을 기르라는 얘기죠. 이게 삼국지에 나오는 얘기죠. 제갈공명이 천하삼분지계를 세워놓고 유비한테 지금 사천성 촉당에 들어가서, 지금은 빛을 감추고 실력을 키워야 할 때다. 도광양회라, 함부로 빛을 드러낼 때가 아니라고 얘길 합니다. 저는 2008년 화두요, 1980년 등소평이 개혁개방을 하면서 외쳤던 게 바로 도광양회거든요. 중국이 아직은 나설 때가 아니다. 한 20년 간 우리 빛을 감추고 실력을 길러보자. 지금 중국이 큰소리치잖아요. 미국의 항공모함이 들어오더라도 정박을 거부하는, NO라고 얘기하는 실력을 갖췄습니다. 저는 너무 한국이 샴페인 일찍 터뜨린 것 같아요. 올해부터라도 좀 내 빛을 감추고 때를 기다리면서 어둠 속에서 실력을 기르는 도광양회를 2008년도에 애청자 분들과 같이 화두로 삼고 싶습니다.
박인규 : 올해는 대한민국도 마찬가지고, 또 대한민국 국민들도 뭔가 은근히 실력을 키우는 한 해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박재희 : 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오늘은 어제에 이어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의 박재희 교수를 초대해 손자병법이 제시하는 보편적인 가치와 그 내용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삶의 지혜에 대해 얘기 나눴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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