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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중심의 지역통합을 위한 ASEAN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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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중심의 지역통합을 위한 ASEAN의 교훈

[동아시아 NOW] 다양성은 지역공동체의 적인가

2015년 ASEAN경제공동체(AEC) 출범을 앞두고 ASEAN은 난항을 겪고 있다. 공동체의 최고규범으로 민주주의의 강화, 인권과 기본적 자유의 옹호 등이 담긴 'ASEAN헌장'을 만들고 모든 화원국이 여기에 조인했다. 하지만 헌장에 담긴 내용들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회원국 간의 공유와 협력이라는 현실적인 문제에서는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이제까지 ASEAN은 착실하게 지역공동체로의 길을 밟아왔으며 EU 다음으로 지역블록에 성공한 사례인 듯 보였다. 실제로 1997년 아시아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ASEAN 국가들은 과거 20년 사이에 눈부신 성장을 이뤘고, 일본을 제외한 동아시아 GDP의 약 20%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회원국 간의 정치적 이념 대립으로 실질적인 공동체 건설이 늦어지고 있다.
  
  버마 문제로 드러난 회원국의 정치적 입장 차이
  
  지난 11월 중순 싱가포르에서 열린 ASEAN정상회의에서는 반정부집회를 무력으로 탄압한 버마 군사정권에 대한 대응이 쟁점이었다. 바로 여기서부터 'ASEAN헌장'의 근간이 뒤흔들리고, 각각 다른 입장을 표명하는 회원국들로 인해 회의는 시작부터 논란의 연속이었다.
  
  의장국인 싱가포르는 정상회의 종료 후 한국, 중국, 일본, 인도 등이 참석한 동아시아정상회의에서 간바리 유엔 특별 고문을 보고자로 초청했다. 그러나 버마 정부는 이에 격렬하게 반대했고 결국 특별 고문의 회의 참석은 취소되었다. 버마 정부는 유엔 특별 고문의 참석을 ASEAN에 대한 간섭으로 받아들였다. 반면 인도네시아, 필리핀, 말레이시아 정부는 "버마문제는 이제 전 세계적 관심사가 되었고 ASEAN만의 문제로만 볼 수 없다"고 반발했다. 특히 필리핀 정부는 오래 전부터 버마 정부가 민주화지도자인 아웅산 수지를 석방하고 민주화에 진전을 가져올 것을 요구해왔다며, 헌장에 조인하고 나서도 버마 정부의 방침에 변화가 없다면 필리핀 의회가 헌장을 비준하지 않을 수 있다고 견제했다.
  
  버마 문제를 둘러싸고 ASEAN 내부에서 의견대립이 나타나는 이유는 회원국 간의 정치적 이념 차이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현재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 의회는 단일 정당 독점 하에 있고, 베트남은 사실상 공산당의 독재 하에 있으며, 태국은 군사정권, 브루나이는 군주제로 인권이나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나라가 여전히 많다. 그리고 국내에서의 인권침해 문제로 외부로부터 자주 지적을 받고 있는 베트남이나 라오스, 캄보디아는 회원국의 내정에 간섭하는 선례를 만들고 싶어 하지 않는다. 따라서 버마에 대한 엄격한 대응을 지지하기 보다는 경제협력에 초점을 둔 느슨한 형태의 ASEAN을 바라고 있다.
  
  그런데 ASEAN으로서는 AEC 건설을 더 미룰 수 없는 상황이다. 현재 중국과 인도의 급성장으로 국제정세는 격변하고 있으며, 이러한 가운데 국제적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한층 더 나아간 ASEAN으로의 개편이 필요하다. 그러나 세계는 버마 문제와 이에 대한 ASEAN의 대응을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 현재 상태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ASEAN의 국제적 신뢰성을 떨어뜨리고, 결국 지역기구로서의 균형도 잃게 만들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대목이다.
  
  그러나 ASEAN은 버마를 완전히 쫓아내고 싶어하지는 않는다. 천연가스 등의 천연자원이 풍부한 버마가 중국에 종속되어 경제적, 전략적 거점으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을 경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재 버마에서 천연가스를 수입하고 있는 태국도 자원 확보에 위협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버마의 ASEAN 탈퇴를 바라지 않는다. ASEAN은 버마 문제 때문에 진전할 수도 후퇴할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져 들었다.
  
  미적지근한「ASEAN헌장」에 대한 시민사회의 비판
  
  현재 이와 같은 ASEAN 지도자들의 미적지근한 태도에 신랄한 비판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 지역 언론과 시민사회이다. 예를 들면 <아시아타임스>는 정상회의 후 보도한 기사에서 'ASEAN헌장'은 버마 정부의 자세를 전환시킬 수 있는 어떠한 효력과 알맹이도 담지 못했다고 비판하였다. 기타 언론도 「ASEAN헌장」 채택을 두고 환영보다는 실망의 목소리를 더 많이 내고 있다.
  
  그리고 헌장 초안이 언론이나 시민사회에 일찍부터 공개되지 않았던 헌장 작성과정의 불투명성 역시 문제가 되고 있다. 겨우 11월 초에서야 태국 독립미디어 <Prachatai> 외의 기타 지역 언론이 초안을 입수하여 공개할 수 있었다. 이렇듯 각국의 시민들의 폭넓은 논의를 거치지 못한 채 소수의 지도자들에 의해서만 채결된 헌장은 ASEAN 회원국의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회원국의 일부 지도자나 엘리트를 위한 것으로 만들어버렸다는 평가가 많다.
  
  지역 언론이나 시민사회가 「ASEAN헌장」을 비판하는 핵심 지점은 다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우선 각국의 인권상황을 감시할 인권기구 설치에 대해 기구 조직 구성이나 운영방법에 관한 언급이 없었던 점과 회원국가의 주권 존중이나 만장일치, 내정불간섭 등 원래의 느슨한 ASEAN방식을 답습하고 있는 점, 마지막으로 「ASEAN헌장」의 이념인 민주주의나 인권 등을 침해하는 일탈 행위를 저지른 회원국에 대한 제재나 추방조치 등에 대한 자세한 규정이 없다는 점이다. 스스로가 정한 민주주의나 인권 실현 등에 대한 아무 구속력이 없이 어떻게 지역적 통제와 공동체의 의식을 키울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이 나오고 있다.
  
  ASEAN 회원국 지도자들의 공동보조가 좀처럼 이뤄지지 않는 가운데, 지역 시민사회의 역할이 더 확대되고 있다. 현재 아시아 지역에서 'ASEAN헌장'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단체들 중 아시아 지역의 인권문제와 씨름하고 있는 시민사회단체 30개 이상의 연합체인 <Solidarity for Asian People's Advocacies, Working Group on ASEAN>(SAPA-ASEAN)의 시도는 ASEAN 회원국의 민중을 위한 보다 대안적인 ASEAN 통합을 제기하고 있다. 특히 <저명인사그룹>을 비롯해 기타 'ASEAN헌장' 초안 작성 과정부터 스스로의 대안을 제시해왔던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ASEAN을 인간중심의 공동체로
  
  <SAPA-ASEAN>의 이번 'ASEAN헌장'에 대한 평가를 간단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인권옹호에 대해서는 그 서문과 제1장에서 인권과 기본적 자유를 옹호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인권선언이나 기타 인권에 관한 국제협약의 평가에 대해서 뚜렷한 언급이 없다는 점과 국가주권의 인정이 오히려 인권의 기준과 가치를 모호하게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즉 인권옹호를 각각 회원국의 책임으로 돌리지 말고 보편적이고 양도 불가능한 인권으로서의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SAPA-ASEAN>는 또한 헌장의 지나친 시장주의 경제 경향에 대해서도 경고하고 있다. 시장주의 경제는 ASEAN의 심각한 빈부격차에 대한 답을 제시하지 못하며, 지역의 환경 보호 차원에서도 지속가능한 방식의 경제발전모델이 필요하다는 비판이다. 더구나 자본가나 전문직 노동자의 지역 내 이동에 대해서는 더 많은 규제완화를 보장하면서도, ASEAN 내부의 큰 노동력 흐름을 형성하고 있는 비숙련 이주노동자의 권리에 대해서는 아무 언급이 없었다. 현재 ASEAN 내부에서는 비숙련노동자의 이동은 제한적인 반면 특정 기술을 가진 엘리트 노동자에게는 더욱 많은 기회와 혜택이 주어지고 있다.
  
  그리고 굶주림, 빈곤, 질병, 사회적 배제 등으로부터 사람들을 해방하고자 하는 개인의 안전보장과 이주노동자나 인신매매, 환경오염 등 국경을 넘는 문제에 대한 지침이 취약하다는 지적도 제기한다. 마지막으로 <SAPA-ASEAN>은 ASEAN의 민중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는 헌장으로 바꾸기 위해 헌장작성 과정의 시민사회의 참여를 요구하고 있다.
  
  ASEAN은 전 세계 어느 지역기구보다도 가장 큰 5억 7,700만 명 인구를 안고 있다. 그리고 이슬람교가 주인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브루나이와 불교가 주인 태국, 캄보디아, 버마와 기독교가 주인 필리핀 등 종교와 언어가 아주 다양한 지역이다. 게다가 국민 일인 당 소득은 싱가포르의 경우 연 29,500달러, 인도네시아의 경우 1,600달러에 이르지만 버마의 경우 200달러 정도로 경제발전 수준도 아주 큰 차이가 난다. 이런 ASEAN을 EU처럼 하나의 공동체로 묶는 일은 아주 대단한 도전인 셈이다.
  
  향후 동아시아지역통합 과정에서 짚어봐야 할 문제들
  
  그런데 다양성이 정말로 지역공동체 건설의 적일까? 어디까지를 공생 가능한 다양성의 범위로 인정할 것인가? 서로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과 내정불간섭의 원칙이 같은 것으로 취급되는 것이 옳은 것일까? 아시아에서는 이 문제가 자주 쟁점이 되어왔다. 권위에 대한 순종과 너그러움이 아시아의 전통이라고 주장하며 서양국가의 정치적 개입을 막으려고 한 아시아의 역대 지도자들이 떠오르는 상황이다.
  
  인도의 경제학자 아마르티아 센은 서로의 문화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 현대 세계에 있어서 아주 소중한 태도이지만, 어떤 문화를 아시아적 가치 혹은 서양식 가치로 아주 단순화하고 이분법화 시키는 것은 오히려 인권이나 민주주의에 혼란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아주 위험하다는 권고를 내렸다. 현재 버마 문제를 비롯해 아시아의 인권침해 상황에 대한 서양국가의 비판은 인권을 앞세운 제국주의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더불어 다양성 존중 혹은 내정불간섭의 원칙이 개인의 인권과 생명을 보호하는데 과연 얼마나 효과적인지 다시 한 번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는 <SAPA-ASEAN>의 주장대로 'ASEAN헌장'을 통해 ASEAN을 법칙으로 규정된 조직으로 바꾸고 민중과 커뮤니티에 더 많은 혜택을 줄 수 있는 형태로 개편하는 것은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지역통합에 있어서 국익에 크게 좌우되지 않는 시민사회의 개입을 더욱 증대시켜야 한다.
  
  역설적이게도, 현재 ASEAN의 어려운 상황은 우리로 하여금 자유무역협정(FTA) 중심으로 진행되는 통합의 방식을 재고하고 앞으로 시민사회가 어떤 방향을 선택하며 어떤 이념을 지역통합의 중심에 두어야 할지 돌아보는 기회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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