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는 개혁세력을 자처했지만 노 대통령 스스로 '좌파 신자유주의'를 천명하고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을 제안하면서 이미 정권은 소위 '좌파'에서 '우파'로 교체됐다.
한국에서는 좌우가 뚜렷하게 정의되어 있지 않아서 누가 좌고 누가 우인지 헷갈리는 상황이지만 자본주의 사회의 좌우 구분은 자본주의 시장에 대한 사고와 세계관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상식이다.
아주 단순히 말하면 자본주의 경쟁에서 밀려나는 약자를 강조하고, 독점세력 견제를 위해 시장에 대한 규제와 정부 주도의 복지를 강조하는 쪽이 좌라면, 시장에 대한 규제를 최대한 풀어 경쟁에 이기는 강자를 중심으로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세력은 우라고 볼 수 있다.
한국에서는 민주세력은 개혁세력이고, 곧 좌파라는 매우 부정확한 등식이 성립되어 있었는데, 사실 개혁적이지 않은 민주세력도 있고, 개혁적인 우파도 존재한다. 또 개혁적인 반민주세력도 있고, 반민주적인 좌파도 있다. 노무현 정부는 민주세력임에는 틀림없으나 그다지 개혁적이지 않았고, 경제정책과 시장에 대한 태도를 보면 매우 우파적인 정권이다.
그 우파성을 가장 현란하게 보여준 것이 바로 한미 FTA의 추진과 그 추진의 배경을 설명하는 논리들이다. 가장 신자유주의적인, 즉 시장을 최대한으로 풀어 놓는 미국식 자본주의를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는 정부, 그리고 거기에 사활을 거는 정부를 좌파라고 한다면 이는 뭔가에 홀려도 단단히 홀린 것이다.
사실 사람들이나 언론이 노무현 정부를 좌파라고 하는 핵심적인 이유는 대북정책, 그리고 부동산 및 교육정책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이 좌파정부가 되는 근거라면 미국의 부시 행정부도 좌파정부여야 한다. 또 한국의 부동산 및 교육정책도 실패한 정책이지만 선진국과 비교할 때 좌파정책이라고 할 수 없다. 오히려 땅값과 사교육비를 올려주었다. 토지공개념이나 사교육 규제 및 공교육 부활을 목적으로 하는 확실한 좌파정책도 아니었다.
따라서 노무현 정부의 성격 규정을 지금 이 시점에서 한다면 초기에 정부에 합류한 좌파적 개혁세력이 힘을 잃고, 후반에 급격하게 신자유주의 관료들와 대기업에 포위된 '우파대리정권'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경제는 그 규모와 성숙도에 비해 4%가 넘는 '고도성장'을 해왔다. OECD 국가 중 한국과 같은 성장을 하는 국가를 찾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그 성장의 결실은 복지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그리고 다른 좌파정책을 위해 사용된 게 아니라 소수 상위의 자산소득과 사교육비 지출로 이어졌고, 그 소수에서 제외된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동시장 유연성'이라는 신자유주의의 이름으로 언제든지 처분 가능한 부품과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1997년 금융위기의 원인이 재벌과 국가의 유착, 그리고 부실한 재벌의 거버넌스 구조 등이었다는 기사와 논문에 대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삼성 비자금이 정부와 사회 곳곳에 파고들어 왔고, 심지어 정부의 정책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는데, 어느 좌파정부에서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가?
그래서 이번 대선의 결과를 한마디로 평가하자면 스스로 개종한 우파대리정권을 우파의 주류세력이 직접 접수한 '우파정권의 재창출'이다. 달리 말해 이번 대선은 비주류우파에서 주류우파로 바뀐 정권재창출로 보는 것이 맞다.
'신뢰'라는 사회자본(social capital)의 붕괴
우파대리정권의 정책이 대부분의 국민들을 양극화와 실업 상태로 몰아넣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왜 우파정권의 재창출을 지지하게 되었을까? 그 이유 중 하나가 노무현 정부의 이중성에 있다. 겉으론 좌파지만 속으로는 우파인 이중성(좌파 신자유주의) 때문이다.
우파정부의 정책으로 인해 양극화와 실업 문제가 심화됐지만 자타가 노무현 정부를 좌파정부라고 불렀기 때문에 양극화와 실업 및 여타 경제, 교육문제가 좌파의 실정이 돼버린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스스로를 좌파 신자유주의 정부로 불러 좌파를 무능한 세력으로 붕괴시켰고, 정책적으로 더욱 우파적인 주류 우파에 정권을 넘겨주는 정치를 했다. 좌파의 입장에서 볼 때 최악의 결과인 것이다. 좌파를 안팎에서 무너뜨린 셈이다.
물론 노무현 정부 자체의 문제뿐만 아니라, 매우 조직적으로 오랜 기간 준비한 우파의 반격도 우파정권 재창출의 매우 중요한 이유이다. 우파는 좌파가 권력에 취해 방심하고 있는 동안에 매우 끈질기게 전략적으로 담론시장을 장악해 버렸다. 보수 주류언론과 지식세계는 노무현 정부를 좌파정부로 규정하는 것(framing)에 성공했고, 그로써 권력의 중심을 더욱 오른쪽으로 옮겨 놓는데 성공하였다.
물론 이렇게 단순한 프레이밍에 몰두한 탓에 보수의 상상력과 담론의 깊이 및 질은 현격히 떨어졌다. 또한 언론도 본래의 사명인 사실보도와 탐사보도에 충실하기 보다는 프레이밍의 일관성과 지속성을 지켜내는 데에 더 충실했다.
여기서 생겨나는 문제가 바로 사회적 신뢰의 문제이다. 사회적으로 구성원들이 진실과 거짓을 구별해 진실을 진실로 믿고 거짓을 거짓으로 믿을 수 있는 신뢰의 문제가 바로 사회적 신뢰의 문제이다. 오피니언 리더와 사회의 지도층이 진실의 문제보다는 프레이밍의 문제에 더욱 집중하다 보니, 그리고 선거에서의 승리에 집착하다보니 의도적으로, 혹은 비의도적으로 이러한 신뢰의 문제를 경시하게 됐다.
누구의 말이 진실이고 옳은 것인지 구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신뢰를 생산해야 할 집단 스스로가 불신을 과잉생산해 버렸다. 정치권, 검찰, 언론, 학계모두가 이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마치 황우석 사태 2탄을 보는 것 같았지만 정치의 세계는 자연과학의 세계와는 달리 진리가 깨끗하게 증명되지 못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첫 기자회견에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 선진화로 가자고 했지만 선진화의 기본은 사회적 신뢰다. 경제성장도 중요하지만 사회통합을 이루면서 선진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이제 어떻게 신뢰를 회복하고 선진화를 이뤄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자유주의 공동체'를 주장하는 소위 선진화 세력도 자유주의와 공동체에 공히 필수적인 신뢰가 깨져나가는 것을 보면서 아무런 언급, 논평, 시정요구를 하지 않았다. 이는 소위 선진화 세력과 우파의 담론 및 고민의 단순성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제 우파는 신뢰를 회복하고, 자본주의의 천민성을 꿰뚫어 보는 혜안을 되찾고, 또한 보다 고급의 담론을 생산해 내어야할 과제를 안게 되었다.
'이명박 대통령'과 권력의 트릴레마(trilemma)
국제경제학에는 'Mundell-Fleming의 조건'이라는 트릴레마(3중위기)가 있다. 국가는 (1)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 (2) 고정환율, 그리고 (3) 통화정책의 자율성이라는 세 가지 모두를 다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1)과 (2)를 가지면 (3)을 포기해야 하고 (2)와 (3)을 가지면 (1)을 포기해야 하고, (1)과 (3)을 가지면 (2)를 포기해야 한다.
한 국가의 최고 권력자의 권력과 관련해서도 그런 트릴레마가 있다. 권력자의 시각에서 볼 때 (1) 권력의 유지 (2) 권력의 투명성 (3) 권력 행사의 자유를 모두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권력자의 일거수일투족을 투명하게 보여주는 투명성과 권력의 유지를 동시에 가지려고 한다면, 권력자는 자기 마음대로 자유롭게 권력을 행사할 수 없다. 투명성 때문에 항상 감시되고 있어 권력행사의 임의적 자유는 포기해야 한다. 대신 원리와 원칙, 민주적 절차에 의거해 투명하게 권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 (1)과 (2)의 선택을 하는 대통령이 가장 민주적인 대통령이라고 할 수 있다. 노무현 정부는 (1)과 (2)에 더하여 (3)까지 가지려고 하다가 (1)을 잃어버리고 (2)와 (3)만을 갖게 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반면 비판세력과 도덕성 등에 개의치 않고 권력을 자유롭게 자의적으로 행사하고자 한다면 (1)과 (3)을 선택하고 (2)인 투명성을 죽이게 될 것이다. 이는 전형적인 권위주의 대통령이라고 할 수 있는데, 진실과 신뢰의 문제를 안고 출발한 이명박 정부 및 한나라당은 아마도 (2)를 포기하려는 유혹에 가장 빠지기 쉬울 것이다.
그러나 이미 정보화, 세계화, 민주화가 이루어진 상황에서 투명성을 죽이는 것은 매우 어렵고, 자칫 잘못하다가는 큰 스캔들을 여러 개 생산하는 결과를 초래할지 모른다. 이명박 당선자는 언론통제 및 지식사회에 대한 통제가 심했던 과거 권위주의로 돌아가려는 유혹은 절대 피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2)와 (3)을 선택하게 되면 권력을 유지하지 못하게 된다. 권력사용을 임의적, 일방적으로 오만하게 하고, 동시에 자기 권력에 대한 투명성을 유지하면 결국 그 정권은 힘이 빠지게 되어 있다. 노무현 정부가 그랬고, 미국의 부시 행정부도 결국 이라크, 이란 문제에서 투명성을 통제하지 못하면서 힘이 빠진 케이스다.
이러한 트릴레마에 봉착해서 새로 출발할 이명박 정부는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 투명성과 권력의 유지를 선택하고 임의적 권력사용, 일방주의적 권력사용을 버려야 한다. 그 길이 바로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고 국가를 선진화시키는 길이다. 세 가지를 다 가지려고 하면 결국 권력을 잃어버리는 길로 들어서게 된다.
이를 위해서 언론, 학계, 지도층이 비판세력으로서 기능해 차기 정부가 가질 수 있는 임의적 권력사용의 유혹을 철저히 견제해야 한다. 새 정부가 한국을 제대로 된 방향으로 이끌 수 있도록 지식세계가 비판하고, 견제하고, 제대로 된 담론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식세계의 철저한 반성과 고민, 그리고 보다 창의적인 노력 또한 필요하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