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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의 실패,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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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정동영의 실패, 왜?

'정치공학의 과잉'-'오락가락 정체성'이 패인

정동영 후보가 '3기 민주정부' 등정에 실패했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와의 경쟁에서 역전은커녕 치열한 접전도 벌인 적 없는 무기력한 선거전의 연속이었다.

이해찬 선대위원장은 지난 11월 말 신당이 일방적으로 끌려가는 선거 국면을 우려하면서 "선거는 주도하는 사람이 이긴다"며 "92년, 97년, 2002년 대선 모두 그랬다"고 말했다. 그의 우려대로 2007년 대선도 하나의 사례가 됐다.

정치공학의 과잉

왜 정 후보와 대통합민주신당은 이명박-이회창 보수 세력에게 일방적으로 끌려가는 선거를 치르게 됐을까.

이에 대한 가장 상식적인 답은 '노무현의 덫에 걸렸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의 실정에 대한 일방적인 분노가 이번 선거의 알파요 오메가였다는 것. 민병두 전략기획본부장은 "정권교체 프레임이 이번 선거의 가장 유력한 틀이 되면서 이를 돌파하기가 애초에 어려운 선거가 됐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선거구도는 지난 5년간 열린우리당이 각종 재·보궐선거에서 '40:0'으로 참패하는 등 누차 예고되어 왔다. 이에 범여권은 열린우리당을 해체하고 각종 신생정당을 잇따라 만드는가 하면 고건, 정운찬, 문국현, 손학규 등 제3의 후보를 물색하면서 이 틀을 벗어나기 위해 애를 썼다.
▲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가 19일 광주 5.18 국립묘지를 굳은 표정으로 참배하고 있다.ⓒ연합뉴스

하지만 '노무현의 덫'이 정당정치를 파괴한 '탈색용 정당', '선거용 정당'의 급조로 해결될 만큼 느슨하지는 않았다. 이 과정에서 자신이 창당해 당 의장을 두 번이나 지냈던 열린우리당 해체에 정 후보가 앞장서는 모순이 발생하기도 했다.

한 재선의원은 "집권하고 몇 달을 빼놓고는 '죄송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 것 같다"며 "사과는 충분히 하지 않았으냐"고 항변하기도 했지만 책임을 회피하는 듯한 정치공학이 앞선 셈이다.

더욱 큰 문제는 이러한 이합집산의 과정에서 자칭 민주개혁진영이 한나라당 등 보수진영에 대해 내세웠던 정치적, 도덕적 우위가 무너지고 '똑같은 기득권 세력'으로 인식되게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년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정치인들의 '생존욕'은 다시금 정치공학에 골몰하는 쳇바퀴를 굴렸다.

노무현을 궁극적으로 극복하지 못한 정 후보와 신당 다수의 반노 행보는 그런 측면에서 자기 파괴적이었다는 평가다.

'노무현 정부 계승? 교체?'갈팡질팡

이로 인해 정 후보는 선거 기간 내내 '정권교체냐 연장이냐'는 대선의 핵심적인 질문에 대해 확고한 태도를 정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했다.

정 후보는 '책임론을 피해야 한다'는 '정치공학적 목표'와 현 정부의 집권세력이라는 '실존' 사이에서 계산만을 거듭하며 오락가락하다가 대선을 주도할 독자적 의제를 구축할 틈도 잡지 못하고 말았다.

정 후보는 대선 후보로 선출된 직후엔 '친노 세력까지 포함하는 통합'을 지향하며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자제하다 곧 "노무현과 나는 다르다"며 각을 세웠고, 이에 대해 '반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현 정부의 공은 모두 노 대통령의 것이며 과는 모두 내 책임"이라고 방향을 바꿨다. 그러다 최근 BBK 수사결과 발표로 검찰과 각을 세워야 하는 상황이 되자 '노명박'이라는 말까지 써가며 노 대통령과 다시 각을 세웠다.

'정권교체냐 연장이냐'는 대선의 핵심적 이슈에 뚜렷한 대답을 내놓지 못한 정 후보가 내놓은 경제, 교육, 노동 등의 각론 정책이 실현성과 진정성을 담은 공약으로 다가오지 못한 것은 필연적인 귀결이었다. 게다가 진보개혁적 시각을 차용해 내놓은 공약들은 과거 정 후보가 취해온 '실용 노선'과 충돌하면서 진정성에도서 높은 점수를 받지 못했다.

이는 정 후보 뿐 아니라 다종다양한 세력이 결집한 신당의 본질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한 초선의원은 "현재 우리당이 참여정부의 계승을 표방하는 정당이냐 차별화하는 정당이냐에 대해 일관된 메시지를 주지 못하는 것 같다"며 "관점을 전혀 다르게 보는 구성원이 내재하고 있어 왔다갔다 하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라고 인정했다.

이명박 '경제'에 맞설 의제제시 실패

정 후보는 한편 노무현 정부에 대한 반감의 핵심을 이뤘던 '경제' 이슈에서 눈에 띌 만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이명박 후보의 '경부대운하'에 대응하는 '대륙철도공약', 분배와 복지를 중요시하는 '가족행복시대'를 전면에 내걸었지만 이 후보의 '성공시대' 공약에 대한 비판 지점으로만 기능했다.

그리고 이명박 후보의 경제정책의 대안으로 주목받을 만한 비전은 문국현 후보에게 선점당했다. 정치컨설팅 회사 '폴컴'의 이경헌 이사는 "문 후보가 제시한 '진짜 경제와 나쁜 경제'의 프레임은 약소 후보가 제시했기 때문에 선거 구도로 정착되지 못했지만 어느 정도 정치세력을 가지고 있는 후보가 내걸었으면 일정 정도 대립각이 세워지고 대선의 의제도 다시 규정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에서 '개혁과 실용'으로 나뉘어 대립할 때 '실용'을 주장하며 각종 개혁정책의 후퇴를 주도했던 정 후보가 금산분리 유지, 비정규직 해소, 중소기업 육성에 주안점을 둔 '진짜 경제론'을 제시했다고 해서 얼마나 폭발적 호응이 있었을지는 미지수다.

이런 면에서 민병두 본부장이 "민주개혁세력은 정치개혁과 남북관계 이슈에서 리더십을 구축해왔으나 그 다음 전선인 경제에서 지도자를 키워내는데 어려움을 겪었다"며 '동력 자체의 한계'를 자인한 것은 이번 대선에서 정치적 대안세력으로서 '사망선고'를 받은 민주개혁세력의 자성으로 받아들여진다.
▲ 19일 방송사 출구조사 결과 발표를 신당 선대위원장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자기중심적 후보단일화의 실패

선거전 막판까지 시도했던 후보단일화의 실패는 뼈아픈 대목. 정 후보는 막판까지 '공동정부 구성' 카드를 열어놓고 이인제, 문국현 후보와의 단일화를 시도했으나 성사되지는 못했다.

무엇보다 정 후보가 앞장섰던 민주당과의 통합협상이 '지분 협상'으로 얼룩지며 끝내 좌초되면서부터 범여권 단일화는 '야합'의 징후를 보이기도 했다. 문국현 후보와의 단일화 논의마저 잇따라 실패해 정 후보의 정치력의 한계도 노출됐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문국현 후보를 단순히 자신의 지지율을 높여 일방적으로 흡수할 대상으로 대할 것이 아니라 노무현 정부의 실정에서 자유로운 정치세력이라는 장점을 살려 오히려 더 키워줬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는 "후보를 둘러싼 그룹이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이 자신들 중심으로 왜곡되어 있는 것 같다"며 "국민이 원하는 대안을 제시하지 못할 수밖에 없는 자신들의 정치적 한계를 인정하지 않고 권력욕만을 드러냈다"고 비판했다.

정 후보는 범여권 내부통합 실패는 서부벨트와 개혁 성향층으로 대표되는 전통적 지지층 결집에 장애로 작용했다. 이로 인해 정 후보는 호남후보의 한계에 갇혔으며 호남을 제외한 전지역을 '이명박-이회창' 보수 후보들에게 넘겨주고 말았다.

'폴컴'의 이경헌 이사는 "이는 고착화된 지지층을 확장하지 못한 독자적 리더십을 확보하는 데 실패한 후보의 한계라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며 "정 후보의 리더십은 호남지역에서 신당의 경선을 통해 뽑힌 후보기 때문에 지지할 수밖에 없다는 소극적 지지를 이끌어내는 수준에 그쳤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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