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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風도 美風도 없었다

북핵 해결 국면과 미국의 자기관리가 '변수' 돌출 차단

2007년 대통령 선거에서 나타난 특징 중 하나는 북풍(北風)이 없었다는 것이다. 또한 여중생 사망사건으로 2002년 대선에서 두드러졌던 미국 변수는 더더욱 없었다. 미풍(美風)은 힘을 발휘하지 못한 게 아니라 이슈 자체가 없었다.

최대 쟁점으로 여겨졌던 경제마저 'BBK 블랙홀'에 빨려든 마당에 대외 변수가 명함을 내밀 틈은 없었다. 하지만 대선 때마다 빠짐없이 불었던 북풍이 잦아들었다는 것은 남북관계가 그만큼 안정됐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북한발 바람만 '조금'…그나마도 미풍(微風)

과거 북한 변수를 뜻하는 북풍의 양상은 두 갈래였다. 1992년 대선에서의 중부지역당 사건이나 97년 총풍처럼 남한 내 정치세력이 의도적으로 북한 변수를 개입시켰던(개입시키려 했던) 게 하나였다. 다른 하나는 87년 대한항공 858기 폭파사건이나 2002년 북핵위기 등 객관적으로 주어진 정세를 각 후보 진영이 활용하는 경우였다.
▲ 1987년 대선 전날 KAL기 폭파범 김현희의 압송 장면 ⓒ연합뉴스

그러나 이번 대선에서는 어떤 양태도 나타나지 않았다. 10월 남북정상회담이 있었지만 2000년 정상회담에 비해 감흥이 떨어졌고, 덕을 봤다면 그건 노무현 대통령의 몫이었다.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가 평화경제론을 역설했지만 그건 눈앞에 나타난 구체적인 정세와 관련된 것이 아니었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유불리를 떠나 북풍 자체를 꺼린 것으로 보인다. 이회창 후보는 대북정책에서의 보수적 선명성을 부각시키려 했지만 정 후보처럼 정세와는 무관한 것이었다.

북풍적인 현상을 굳이 꼽자면 북한의 '반보수대연합' 주장이었다. 북한은 올해 신년공동사설에서 "남조선의 각계각층 인민들은 반보수대연합을 실현해 대통령 선거를 계기로 친미 보수세력을 매장해 버리기 위한 투쟁을 더욱 힘차게 벌여나가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남한의 특정 대선후보를 향한 북한의 비난은 2002년에 비해 급증했다. 2002년 11월 중순을 하루 1~2건에 불과했던 북한의 비난 보도물은 올해 같은 시점 하루 7~8건으로 늘어났다. 특이한 것은 북한의 공격 대상이 11월 14일부터 이명박 후보에게서 이회창 후보로 완전히 옮겨졌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남북관계를 갑자기 경색시키거나 진전시키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위기 해소 상황에 웬 북풍?

북풍이 사라진 이유는 한반도 정세의 핵심 이슈인 북핵 문제가 2.13합의와 10.3합의 등을 거치며 해결 국면에 있다는 객관적인 정세에 기인한다. 6월 대북 쌀지원 재개 이후 회복되기 시작한 남북관계는 정상회담을 거치며 전인미답의 길을 걷고 있다.

그렇다고 북한이 핵을 완전히 포기한 것도 아니다. 6자회담은 현재 미국의 대북 테러지원국 삭제 불이행과 북한의 핵 프로그램 신고서 미제출로 공전 중이다. 그런 미적지근한 상황에서 북한과의 대결을 부추기는 후보는 시대착오적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고, 반대로 완전한 해빙을 추구하는 것은 실현 불가능하다.

북풍이 잘 '듣지' 않는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다. 과거 같으면 대북 강경론자에게 유리했을 2002년 북핵위기가 햇볕정책 계승을 주장하는 노무현 후보에게 유리했고, 2000년 총선에서 남북정상회담을 득표로 연결시키려던 계산이 실패로 돌아가는 등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북풍을 굳이 끌어들이는 것은 리스크만 키울 뿐이다.

승기를 잡은 것으로 보이는 이명박 후보에 대한 북한의 판단도 중요한 요인이 됐다는 분석이다. 서재진 통일연구원 북한인권연구센터 소장은 "이명박의 '비핵개방 3000' 공약은 기본적으로 북한과 비즈니스를 하겠다는 것으로 북한도 이를 인정한 것 같다"며 "북한은 남한 정세를 어느 정도 판단하고 있어서 이명박이 돼도 무난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의 철저한 자기관리

반미감정이 불어 표심을 자극하는 경우는 더더욱 없었다. 미국 정부의 김경준 송환, 자이툰 부대의 이라크 주둔 연장 등 '미국 변수'로 분류될 만한 것들이 없지는 않았으나 잠시 거론만 됐을 뿐 이내 사라졌다.

대선 때마다 불었던 북풍과는 달리 미풍은 여중생 사망사건이 메가톤급 이슈가 됐던 2002년 대선에서나 나타났던 특이한 경우였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서재진 소장은 "노무현 후보와 386세력들이 월드컵으로 민족주의가 고양된 분위기에서 반미감정을 이용한 것인데, 그 때만 있었던 특수한 경우였다"고 분석했다.

반미 바람을 차단하려는 미국의 철저한 '자기관리'도 한몫했다. 미 행정부의 관리들은 김경준 송환에 대해 철저히 함구로 일관하는 한편 엄격한 법집행 차원에서 송환 절차를 진행했다.

지난 11월 초 방한한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이 당시 계획된 평택 미군기지 기공식에 참가하지 않은 것도 반미감정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심지어 버웰 벨 주한미군사령관의 기공식 참가마저 재검토할 정도로 몸을 사렸다.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 대사와 벨 사령관은 한국에서 활동하는 자국의 외교관과 정보요원 등에게 '반미정서를 자극할 수 있는 어떤 언행도 삼가라'는 지침을 내리고 틈만 나면 강조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자이툰 주둔 연장 요청도 매우 비공식적으로 이뤄졌고, 주둔 연장안에 반대하는 대통합민주신당이 대선 후로 국회 표결을 미뤘다고 판단되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미국이 이같은 태도를 보인 것은 지지율 상위 랭커 누가 대통령이 되건 미국과의 관계에 있어 별다른 변화가 있을 것 같지 않다는 판단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익명을 요구한 미 행정부의 한 관리는 17일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한국의) 기본적인 정책은 똑같을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나는 다른 어떤 정책을 말하는 후보를 본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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