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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차베스 신봉자들은 왜 개헌을 반대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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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차베스 신봉자들은 왜 개헌을 반대했나

[베네수엘라 개헌실패 바로보기] ③·끝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추진했던 개헌에 대해 서방의 언론들은 차베스가 헌법을 뜯어고쳐 장기 독재를 구축하려 한다고 비난했다. 개헌안이이 국민투표에 의해 거부되자 베네수엘라의 민주주의가 승리했다고도 평가했다.

그러나 미국의 진보적 시사주간지 <네이션>은 최신호에서 서방 언론들의 그같은 시각은 정치적으로 편향된 것임을 지적하면서, 차베스 개헌의 긍정성과 문제점을 다양한 각도에서 분석하는 전문가들의 논평을 연속 게재했다.

<프레시안>이 마지막으로 요약 소개할 논평은 차베스 시절에 강화된 베네수엘라의 민주주의가 그의 개헌을 무산시키는 과정을 분석한 그렉 그랜딘 예일대 역사학 교수의 글이다.

그러나 그랜딘 교수가 설명하는 베네수엘라 민주화의 '모순'은 '미국이 중동 국가들에 강요한 민주주의로 인해 반미적인 정권이 들어서는 모순'과는 다른 것이다.

그는 차베스 반대파들이 가진 신자유주의적 사고방식의 위험성이 여전하다고 경고하면서, 오늘의 차베스를 있게 한 사회운동 세력들이 그간 스스로 구축하고 활성화시킨 참여와 책임의 민주주의 제도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
☞원문 바로가기)

차베스주의와 민주주의

베네수엘라 국민들은 69개의 개혁안을 담은 개헌안을 부결시켰다. 국내외의 비판자들은 차베스 대통령이 제안한 개헌안에 대해 폭군의 권력 강탈 시도라고 비난했다. 언론에는 벼랑끝에 몰린 민주주의를 구해내기 위해 봉기한 베네수엘라 국민들의 지혜를 찬양하는 헤드라인과 분석으로 넘쳐났다.

로저 노리에가 미 하원 의원(플로리다, 공화당)은 성명서에서 "자유의 승리"라고 환영하면서도 (앞으로) 차베스가 "닥치는 대로 날뛰고 또 다른 위기를 조장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노리에가는 2004년 당시 조지 부시 행정부의 중남미 당당 차관보로서 아이티의 진 버트란트 아리스티데 정부를 전복시킨 쿠데타의 배후 인물이었다.

그러나 차베스는 투표 결과 발표 후 TV에 나와 "베네수엘라의 민주주의가 성숙해가고 있다"며 담담히 받아들였다. 그같은 태도가 진심이건 마지못해 한 것이건, 지속되건 일시적인 것이건 국민투표는 차베스가 대통령이 당선된 후부터 정착시키려고 노력해왔던 책임정치의 일반 모델이 승리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고, 심의민주주의(deliberative democracy)가 무엇인지를 보여준 것이었다.

책임정치는 구심력 없는 정당정치에서 탈피해 행정부의 권한을 강화하고 시민들의 참여와 권한을 확대시켜 권력을 순환케 하는 것이다. 차베스 집권 첫 해 채택된 헌법은 자유무역협정(FTA) 등 주권과 관련된 모든 조약에 대해 국민투표를 하도록 했고, 선출직 정치인에 대한 소환(탄핵) 시스템을 도입했다.

차베스는 최소한 유권자들에게 자신의 계획을 미리 밝힌다. 그는 지난해 대통령 선거운동에서 자기가 대통령이 되면 재선을 또 한 번 할 수 있는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분명히 밝혔었다.
▲ '개혁은 계속된다'라는 차베스 정부 광고판 ⓒ로이터=뉴시스

'독재의 길'이라는 개헌안 바로보기

차베스의 적들은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할 수 있는 대통령의 권한을 확대한 것에 대해 독재로 가는 수순이라고 주장한다. 반대로 차베스 옹호자들은 그 권한은 국회의 승인을 전제로 한 것으로, 미국의 지원으로 일어난 2002년 쿠데타 같은 불안 상황에서 베네수엘라를 지켜내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말한다.

최초에 만들어진 개헌 초안을 보면 행정부의 권한을 지나치게 확장했다는 우려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국회의원들은 국가비상사태에 관한 국제적 일반 규범을 따르는 방향으로 그 내용을 수정했다. 국가비상사태시 국민의 자유 제한에 관해 국민투표에 실제로 부쳐진 개헌안은 미국이 라틴 아메리카의 모델이 되어야 한다고 추켜세웠던 1961년 베네수엘라 헌법과 실질적으로 차이가 없다.

전문가인 그레고리 윌퍼트는 "대부분의 보도와 판이하게 국가비상사태시에도 변론권, 재판권, 교신권, 고문을 받지 않을 권리 등이 보장된다"며 "이는 최근 통과된 군사위원회법에 따라 대통령이 적당한 절차도 없이 사람들을 구금시킬 수 있는 미국의 현재 상황보다 낫다고 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행정권의 강화에도 불구하고 차베스주의는 민주주의와 달리 유약하다. 선거를 통해 권력을 잡은 사회운동 세력은 군부, 정치적 기득권 세력, 일반·교육·외무 관료집단 등과 타협해야 했다. 차베스는 종종 자신이 전능한 것처럼 행동하지만 실제 그가 이끄는 정부와 정치운동 세력은 매우 약하고 균열되어 있다.

개헌안 중 가장 논란이 됐던 부분들은 지역 정당 보스들, 그리고 친차베스 계열 주지사·시장(市長)의 권력 남용을 막거나 그들의 무능력을 보충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대통령 임기 제한 철폐, 일부 관리들에 대한 대통령의 직접 임명 허용 등이 그런 조항이다. 행정 및 예산에 대한 권한을 지역·지방정부 관리들에게서 주민자치위원회·노동자평의회 등으로 넘기는 것도 있다.

이번 개헌안에는 1999년 헌법 개정을 위해 보수파나 중도파들과 타협해야 했던 많은 부분을 바꾸고 차베스 집권 초기 이루지 못한 정치·경제적 질서를 확립하는 내용들이 포함됐었다. 선거 연령을 18세에서 16게로 낮추고, 성·인종·장애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며, 선출직 공직 진출에서 양성평등을 이루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도 사회보장을 제공하며, 대학의 자율을 보장하고, 주당 노동시간을 44시간에서 36시간으로 단축하며, 사회적·공동체적 소유 형태를 인정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차베스주의는 포퓰리즘이라는 주장에 대해

차베스 비판자들은 그에 대한 지지는 대중들의 감정에 호소하는 포퓰리즘의 산물일 뿐이라고 평가 절하한다. 작년 대선에서 차베스 낙선 캠페인을 주도한 테오드르 펫코프라는 사람은 차베스가 가난한 유권자들 앞에서 싸구려 혜택을 흔들어 보이며 그들의 넋을 빼앗는 방식으로 빈곤층에 대한 "마술 리얼리즘적인" 장악력을 행사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차베스에 대한 지지를 약화시키기 위해 수백만의 빈곤층에게 매달 450달러를 쓸 수 있는 직불카드를 국고에서 지원한다는 반대파들의 공약은 더 포퓰리즘적이다.

대다수의 국민들이 보다 체계적인 재분배 시스템에 찬성하면서 반대파들의 그같은 제안을 거절했다는 것은 그들이 신중한 고민 끝에 차베스를 지지하는 것이지 포퓰리스트적 주장에 홀려서 그러는 것이 아님을 확인케 해준다.

실질적인 민주주의의 향상

차베스의 정치적 기반이 되고 있는 사회운동 세력을 "차베스주의"라고 표현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왜냐하면 많은 사회운동 조직들은 차베스가 정치적으로 부상했던 때보다 먼저 나타났기 때문이다.

지난 몇 년 간 베네수엘라 도시 지역에서 현지 조사를 수행한 많은 사회과학자들은 중앙정부와 지역 시민단체 간 시너지 효과가 커져왔고 민주주의가 활기를 띠고 있음을 확인시켜 준다.

베네수엘라 다수 주민들이 국가의 정치 현안에 이처럼 많이 관여했던 적은 일찍이 없었다. 베네수엘라 전역에서는 농민조직, 협동조합, 여성·동성애자의 권리를 주장하는 조직, 토착원주민 조직, 환경운동가들, 지역자치위원회, 문화단체 등이 차베스주의의 가능성과 한계, 위험성에 대해 토론을 벌이고 있다.

지역의 수많은 라디오·TV 방송국들은 지역 주민들의 참여 하에 운영되고 있다. 이런 방송국들이 또 하나의 주민 통제수단이라고 비판하는 이들도 있지만, 실제로는 검열이 거의 혹은 전혀 없는 언론 자유, 정부에 대한 자유로운 비판, 풀뿌리 단체들의 무제한적인 참여 등이 보장된다는 증거가 있다.

지난달 나온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베네수엘라 국민들은 민주주의를 보장하는 여러 제도에 대해 우루과이 사람들 다음으로 만족감을 표하고 있다. (라틴 아메리카 국가 평균 만족도 37%, 베네수엘라 59%)

한 연구팀의 조사 결과에 의하면, 베네수엘라 국민들의 대다수는 민주주의적 다원주의에 충실하고, 갈등이 평화롭게 해결될 수 있다고 믿고 있으며, 자신들이 속한 조직이 "수평적으로" 운영되도록 노력한다.

그런 경향은 차베스의 공식 정당 조직 멤버뿐만이 아니라, 비록 그런 조직에 적대적이지만 차베스주의를 신봉하는 이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1980년대 니카라과에서 나타났던 현상과는 상반된 모습이다. 니카라과에서는 산디니스타 정당에 반대하면서 자신을 혁명가라고 여기는 것이 불가능했었다.

그러나 베네수엘라에서는 개헌안의 일부 사항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많은 이들은 단지 투표 불참을 선택했을 뿐이었다. 여러 보도들에서 "나는 차베스주의자다, 그러나 나는 개헌에 반대한다"라는 식으로 말하는 목소리를 듣는 것은 일반적이었다.

차베스주의자들이 얻어야 할 교훈

이론적으로 볼 때 이번 개헌 실패는 사회운동으로서의 차베스주의를 두 가지 방법으로 강화시킬 수 있다.

첫째, 정부가 범죄 예방이나 부패 척결 같은 문제에 보다 관심을 기울이게 했다. 정치학자 스티븐 엘너가 <뉴욕타임스>에 썼듯이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기보다 이상만을 지나치게 강조했던 것이 차베스를 다치게 했다." 개헌안 중 많은 훌륭한 조항들은 향후 법으로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사회운동이 차베스의 정치가적 수완에만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했다. 거기에는 (20여 개 사회주의 및 친여 정당들을 하나로 묶으려는) 새로운 베네수엘라사회주의연합당(PSUV)이 어떻게 해야 차베스주의를 이루는 다양한 조직과 성향을 진정으로 대표·중재하게 하고, 새 세대 지도자들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도 포함된다.

베네수엘라, 미국 정부, 미 금융가에 있는 신자유주의자들은 국민투표 부결을 차베스에 대한 공격의 발판으로 삼을 것이다. 차베스를 반대하는 블로그에서는 이미 5년이나 남은 차베스 재임 전에 그를 제거해야 한다는 승리의 나팔이 울려 퍼지고 있다.

머지않아 차베스 반대파들이 결집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사회적 정의", 참여 민주주의, 경제적 재분배라는 용어들을 전략적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을 볼 것이다.(그것은 차베스주의가 자신들에게 정치적인 위협요소라고 여길 때 까지만 그럴 것이다)

그러나 실수해선 안 된다. 그들의 목표는 단지 차베스를 쫒아내는데 있지 않다. 그들의 목표는 구호기관, 협동조합, 주민자치위원회, 토지개혁을 폐지하고, 독립적인 대외정책을 끝내며, 지배층이 원래부터 자신의 것이라고 여겼던 석유를 빼앗아 가는 것이다.

<베네수엘라 개헌실패 바로보기>

① "차베스 반대파, 이제야 민주주의 배웠다"

② "대중 참여 없이 '혁명'을 하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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