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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통

[한윤수의 '오랑캐꽃']<606>

필리핀 남자가 와서
여친의 퇴직금을 받아달란다.
"안 돼. 본인이 와야 돼."
"필리핀 갔어요."
"이름이 뭔데?"
"제니."
직원들이 놀라서 외쳤다.
"그 제니?"
고집이 세기로 유명한 여자다!

혹시 퇴직금 못 받을지도 모르니 해외송금계좌를 만들라고 했을 때
제니는 강력히 반발했다.
"안 만들어요."
"왜?"
"가기 전에 사장님이 돈 꼭 주신다고 했거든요."
"주면 좋지! 그러나 만일 안 주면?"
"내가 제일 싫어하는 단어가 그 '만일'이에요."
"왜 싫어?"
"있지도 않을 일을 가정하는 거잖아요!"
"있지도 않다니? 사장님을 그 정도로 믿어?"
"직원이 사장님을 못 믿으면 누굴 믿어요?"

음메, 기죽어!
나는 얼른 입을 닫았고,
반면에 그녀는
화끈하게도
돈 못 받을 경우에 대비한 어떤 서류도 남기지 않았다.
사람 일이란 알 수 없는 건데!

결국
사장님이
출국 전에 돈을 주기는커녕
필리핀 간지 석 달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묵묵부답으로 나갈 줄
어찌 제니가 알았으랴.

"어떡하죠?"
안타까워 묻는 남친에게
나는 최고로 차갑게 답했다.
"사장님한테 얘기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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