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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초 만난 모랄레스의 잉카제국 재건 야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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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초 만난 모랄레스의 잉카제국 재건 야망

김영길의 '남미리포트' <291> 더욱 치열해진 빈부 대결

"우리는 볼리비아의 역사를 바꾸기를 원한다. 잃어버렸던 우리의 역사를 되찾는 데는 500년이 걸렸지만 이를 500년 이상 지켜나가겠다."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이 지난 2006년 1월 22일 취임식에서 잉카제국의 재건을 약속하면서 한 말이다.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의 이 말은 지난 500여 년 동안 기득권세력, 다시 말해서 귀족화된 지주들과 기업인들에 의해 다스려져 온 볼리비아 공화국의 주권을 되찾아 명실 공히 볼리비아의 주인이었던 토착원주민들에 의한 정부를 만들겠다는 약속이었다.

취임 초부터 잉카제국의 재건을 염두에 두었던 모랄레스 대통령이 마지막 승부수를 던졌다. 원주인인 원주민들의 권리가 무시된 헌법을 인정할 수 없다면서 전체 국민의 60%에 해당하는 다수의 원주민들이 주인이 되는 신헌법 제정을 추진한 것이다.

모랄레스가 내놓은 신헌법의 핵심은 농지개혁과 자원국유화다. 지난 500년 가까이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유산인 토지부터 가진자들과 힘있는 기득권층들로부터 되찾아오자는 것을 명문화했다. 조상들의 유산을 강제로 빼앗겨 머슴살이에 불과했던 다수의 원주민들이 공동 혹은 개인적으로 토지를 소유할 수 있도록 헌법으로 보장해주자는 것이다. 또한 볼리비아 내의 모든 천연 혹은 지하자원은 모두가 국가소유라는 것을 헌법으로 정해 정권이 바뀌어도 더 이상의 자원착취를 막아보자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 파업중인 수끄레시 외곽을 순찰하고 있는 볼리비아 경찰 ⓒ볼리비아 <라 라손>

이를 토대로 모랄레스는 지난해 8월부터 제헌의회 소집을 시도했지만 야권의 반대로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번번이 의사당이 야당 의원들과 학생들에게 점거 당해 신헌법 논의는커녕 제헌의회 소집마저도 불가능한 상황이 된 것이다.

신헌법의 통과를 기다리다 지친 모랄레스는 최근 여당만이라도 제헌의회를 소집해 신헌법을 통과시키라고 강력하게 주문하기에 이른다. 이에 따라 전체 255명의 의원 중 136명의 여당 측 의원들은 지난 24일 밤 초급장교 군사학교 교정에 모여 만장일치로 신헌법을 통과하게 된다. 야당의 눈을 피해 기습적으로 이른바 '날치기 통과'를 감행한 것이다.

볼리비아 제헌의회는 오는 12월 14일 제3의 장소에서 신헌법(안)을 문안 별로 통과시키는 절차를 끝으로 임무종료를 선언하게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 통과된 신헌법은 국민투표를 거쳐야만 헌법으로서 그 효력을 인정받을 수 있다.

'빈부의 대결, 두 개의 정부 탄생 부추길 수도'

신헌법이 여당 단독으로 통과되자 1년 이상 제헌국회 소집을 완강하게 반대했던 야권과 학생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여당 단독으로 소집된 제헌의회와 이를 통해 논의된 신헌법은 원천무효라는 주장을 펼치면서 과격시위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시위진압을 위해 투입된 경찰병력과 시위대가 무력충돌을 빚어 4명이 사망하고 130여명이 부상을 당하는 대형 유혈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이번 볼리비아 사태를 자세히 살펴보면 지난 2005년 6월 빈부의 충돌로 내전 상황 직전까지 갔던 유혈 폭력사태를 연상케 한다. 다만 당시에는 힘없는 다수의 원주민들이 자신들이 빼앗긴 권리를 되찾으려고 기득권층 정부에 대항을 했다면 이번에는 소수의 기득권층들이 그동안 누려왔던 특혜를 지켜보겠다는 필사의 저항인 게 다르긴 하다. 상황은 바뀌었지만 이번 사태도 빈부의 충돌인 것만은 분명하다는 얘기다.

현재 원주민들과 기득권층들간 신헌법에 대한 찬반시위가 교차되면서 과격시위는 소강상태로 들어갔다. 과격시위가 계속돼 무정부상태가 되면 기득권층들에게는 결코 유리할 게 없다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빈부의 양대 세력은 신헌법 찬반을 놓고 누가 기선을 제압하느냐 하는 치열한 기 싸움 양상을 보이고 있다.

현지의 일부 언론들은 이와 같은 대립구도가 지속될 경우 볼리비아 사태는 자칫 두 세력이 서로 다른 정부형태로 갈라서게 될지도 모른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기득권층들이 모랄레스 정부의 신헌법을 인정하지 않고 기존 헌법 고수를 고집할 경우 또 다른 정부가 탄생될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문제는 볼리비아는 비록 소수지만 이들 기득권층들에 의해 전체 경제가 움직인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현지 정치평론가들 사이에서는 "볼리비아 건국사상 최대 위기의 순간" 이라는 말도 회자되고 있다. 결국 볼리비아 내의 기득권층들을 설득하지 못한다면 모랄레스 정부는 집권 이후 최대의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다수 원주민세력들의 지지 속에 잉카제국 재건을 추진하고 있는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이 경제권을 쥔 소수 기득권층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이 위기를 어떻게 넘길 것인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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