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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임덕 3인방'이 중동평화를 이룬다고?

협상재개 선언...'평화가 아니라 내전 초래' 비관론 우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내년말까지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창설을 목표로 평화협상을 타결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부시 대통령은 27일(현지시간) 미국 아나폴리스 해군사관학교에서 열린 중동평화회의 개막 연설을 통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측이 '모든 핵심 현안들을 예외없이 해결하는 평화협정을 체결하기 위해 양자 협상을 즉각 개시하기로 합의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러한 합의는 예상대로 지난 2003년 제시된 로드맵을 이행하기 위한 회담을 재개하는 수준에 불과한 것이다. 미국과 유럽연합, 러시아, 유엔 등 4자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측과 협의를 거쳐 마련한 이 로드맵은 2005년 초까지 이행하기로 시한이 설정되었으나 즉각 유명무실화된 바 있다(☞관련 기사:"기껏해야 회담 재개를 위한 회담").

이번에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측은 협상을 즉각 재개하겠다는 합의를 했을 뿐, 핵심 쟁점들에 대해서는 논의 자체를 회피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번 평화협상이 2008년 1월로 임기가 끝나는 부시 대통령을 다른 지도자들이 해내지 못한 일을 성사시킨 위대한 지도자로 만들기 위한 쇼에 불과하다는 비난이 벌써부터 터져나오고 있다.
▲ 부시 대통령이 올메르트 총리(사진 왼쪽 끝), 압바스 수반과 함께 중동평화를 위한 새로운 합의에 대해 기뻐하고 있다.ⓒ로이터=뉴시스

영토 문제 등 민감한 내용 없는 합의

부시는 연설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2개 국가로 자리잡도록 한다는 목표 달성이 쉽지는 않겠지만, 팔레스타인인들은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를 창설하고, 이스라엘은 '유대인 국가'로 존속할 것"이라며 미국의 지지를 다짐했다.

하지만 이날 발표된 공동성명에는 이스라엘이 요구한 '유대인 국가'라는 표현과 팔레스타인 측이 요구한 "1967년에 시작된 점령을 종식한다"는 문구 등 민감한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유대인 국가'라는 표현은 이스라엘 건국 당시 쫓겨난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귀환이 보장돼야 한다는 자신들 주장을 포기해야 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팔레스타인 측이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반면 "1967년에 시작된 점령을 종식한다"는 표현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게 동예루살렘 등 상당한 영토를 넘겨주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스라엘 측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핵심 쟁점이다.

이처럼 팔레스타인 독립국가의 국경선과 동예루살렘의 지위, 팔레스타인 난민 귀환권 등 핵심 현안들에 대해서는 명시적인 언급이 없다.

다만 "평화와 안보 속에 공존한다는 2개 국가의 목표 아래, 기존 합의들에 명시된 대로 모든 핵심 이슈들을 포함한 일체의 현안들을 해결하는 평화협정을 타결하기 위해" 협상을 개시하기로 했다는 개괄적 원칙만 천명된 것이다.

이번 합의에 대해 일말의 기대를 거는 쪽에서는 미국 등 핵심 당사국 지도자들이 강력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는 점을 내세운다. 이러한 의지를 과시하듯,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측은 평화협상을 실질적으로 이끌 운영위원회 첫 회의를 다음달 12일 개최하고, 올메르트 이스라엘 총리와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은 협상 진전에 필요한 모든 지원을 제공하기 위해 격주마다 만나기로 하는 등 발빠른 일정을 제시했다.

60년 묵은 문제 해결에 나선 '레임덕 3인방'

하지만 핵심 당사국 지도자들의 의지가 어느 정도 지속가능한 것인지부터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부시, 올메르트, 압바스 모두 자국 내의 정치적 기반이 무너지고 있는 처지이기 때문이다(☞관련 기사: "아나폴리스 회담은 실패로 끝날 운명").

이에 따라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래 60년 간 해결되지 못한 팔레스타인 문제가 '레임덕 3인방'이 주도한 1년여의 협의를 통해 해소될 것이라는 전망은 신기루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이번에 합의한 평화협상의 목표는 1967년 발발한 제 3차 중동전쟁 이전의 상황으로 되돌리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스라엘은 3차 중동전쟁 때 팔레스타인이 미래의 독립 국가 영토로 삼으려는 가자지구, 요르단강 서안 및 동예루살렘과 시리아의 영토인 골란고원, 시리아와 레바논이 영유권 다툼을 벌이고 있는 셰바 팜스를 점령했다.

이스라엘은 이후 이들 대부분의 지역에 대규모 정착촌을 건설해 자국 영토화를 시도했고, 2005년 9월 철수한 가자지구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서는 정착촌이 유지되고, 또 확장돼 왔다.

압바스 수반은 아나폴리스 회의 개막 연설에서 "우리는 수도로 동예루살렘을 필요로 한다"며 이스라엘이 반환을 거부하고 있는 동예루살렘을 수복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올메르트 총리는 "중동 평화를 위해 팔레스타인 측과 고통스런 타협에 나설 용의가 있다"며 일부 점령지의 반환 가능성을 시사했지만, 이미 이스라엘에서는 올메르트 총리가 일방적인 양보를 하고 있다며 정치권과 시민들의 반발이 거세다. 팔레스타인 난민 400만 명의 처리 문제도 협상 진전의 큰 걸림돌이다.

지난 2000년 7월 당시 클린턴 대통령의 중재로 이뤄진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평화협상이 이스라엘 측의 거부로 결렬된 주된 이유도 동예루살렘과 난민 문제였다. 당시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수반과 에후드 바라크 이스라엘 총리도 합의하지 못한 쟁점을 이들에 비해 훨씬 취약한 정치 기반을 갖고 있는 현 지도자들이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합의 이행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조건들

올메르트 이스라엘 총리는 지난해 레바논의 시아파 무장정파인 헤즈볼라와 벌인 전쟁에서 사실상 패전하고, 여러 비리에 연루된 의혹을 받고 있어 2010년까지인 임기를 채울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되는 형편이다. 특히 최근 이스라엘 정치권은 우파의 주도로 동예루살렘의 지위를 변경하려면 의회에서 3분의 2 찬성이 필요한 법률을 통과시켰다. 올메르트 총리가 협상을 통해 어떤 합의를 한다고 해도 이행하기 힘든 사안이 된 것이다.

압바스 팔레스타인 수반은 이번 협상의 대표성마저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의 합법적 정부를 구성한 주체는 지난해 총선에서 압승한 무장정파 하마스다. 친서방인사인 압바스 수반은 지난 6월 내각을 해산하고 비상내각을 출범시켰으나, 하마스는 무력으로 가자지구를 점령해 버려 현재 압바스는 요르단강 서안지구만 장악하고 있는 상태다.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으로 구성된 팔레스타인 자치지구가 두 동강이 난 것이다.

이때문에 하마스는 압바스 수반이 팔레스타인을 대표할 권한이 없다며 압바스 수반이 주도하는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상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압바스 수반이 올메르트 총리와 어떠한 합의를 이루더라도 이 합의가 이행되기 어려운 게 현실인 것이다.

올메르트 이스라엘 총리 역시 하마스가 장악한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을 겨냥한 로켓 공격이 중지되지 않는 한 어떤 평화협정도 체결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은 것은 이러한 현실을 의식한 발언이다.

팔레스타인에 평화가 아니라 내전 초래할 로드맵

게다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협정을 체결할 때까지 이행해야 할 조건들로 인해 오히려 이번 합의는 더 큰 유혈참극을 촉발시키는 불씨가 될 것이라는 비관론까지 대두되고 있다.

아나폴리스 공동성명에 담긴 로드맵 1단계는 팔레스타인 무장단체가 이스라엘에 공격하지 못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하마스를 포함해 이스라엘의 점령에 강경하게 맞서는 팔레스타인 세력을 척결하라는 주문이다.

압바스 수반이 이 합의에 따라 미국과 이스라엘의 지원을 받아 가자지구를 장악하고 있는 하마스를 와해시키기 위한 본격적인 작업에 나설 경우 팔레스타인은 내전의 소용돌이에 휘말려들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평화협상 타결에 이르는 길목에 중요한 당사자들이 빠진 것은 이번 합의가 맥빠진 것이며, '부시의 송별 잔치'라는 비난에 직면한 결정적인 이유다.

특히 이번 회의에 '중동 시아파의 맹주'로 불리는 이란은 초청조차 받지 못했다. 이란은 미국과 유럽 등 서방국가들이 테러단체로 지정한 하마스, 헤즈볼라 등을 지원하고 있다는 이유로 최근 미국은 이란의 혁명수비대도 테러단체로 지정했다.

중동의 불안을 배후에서 부추기고 있다는 이란을 제외한 아나폴리스 회담에서 어떠한 합의가 나온다고 해도 오히려 중동 전체를 내전에 휩싸이게 할 뇌관으로 작용할 뿐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 때문에 이란은 아나폴리스 회담이 중동평화를 위한 회담이라기보다는 이란을 고립시키기 위해 아랍국가들을 대거 초대해 '반 이란 연합전선'을 구축하기 위한 자리였을 뿐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주목되는 것은 이란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온 시리아가 이번 회의에 참석하면서 이란-시리아 사이에도 긴장이 조성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란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하메네이의 보좌관인 호세인 샤리아트마다리는 27일 런던에 본사를 둔 아랍 신문인 <알샤르크 알아우사트>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시리아의 태도에 놀랐다"고 말했다.

시리아 역시 미국이 주도하는 이번 회의를 비난하면서 이스라엘과 타협하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골란 고원 반환 문제가 의제에 포함된다는 데에 이스라엘이 반대하지 않자 전격적으로 회의 참가를 결정했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는 벌써부터 수 만명의 주민들이 거리에 쏟아져 나와 압바스 수반과 아나폴리스 회담에 참석한 아랍국가들을 비난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서안 지구에서도 주민들의 시위가 이어지고 있고, 이 과정에서 주민 1명이 보안군에 의해 살해되고, 수십 명이 부상을 당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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