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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음악적으로 읽는 풍속'에 외국인들 감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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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책을 음악적으로 읽는 풍속'에 외국인들 감탄"

박인규의 집중인터뷰[11/22] 우리시대 마지막 이야기꾼 정규헌 선생

안녕하십니까? 박인귭니다. 우리는 흔히 책을 읽을 때 소리를 내지 않고 눈으로만 읽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데요 60년대 초반만 해도.. 우리나라에는 글 모르는 서민들을 위해 책을 읽어주던 이야기꾼, 전기수가 있었다는 사실 아십니까? 전기수들은 재미 있는 이야기 속에 교훈을 전하는 문화적 존재로 무엇보다 고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큰 위안이 되곤 했는데요 오늘 박인규의 집중인터뷰에서는 우리 시대 마지막 이야기꾼인 전기수 정규헌 선생을 초대해 점점 잊혀져가는 우리의 풍습 전기수에 대한 이야기와 그들의 이야기 속에 담겨있던 삶의 위안에 대해 얘기 나눠봅니다.

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우리시대 마지막 이야기꾼 정규헌 선생입니다. 정규헌 선생은 1936년 충남 청양 출생으로 전기수였던 부친 고 정백섭씨를 따라 11살 때부터 고향을 중심으로 이곳저곳 다니며 전기수로 활동했습니다. 그러나 대중매체의 보급으로 낭독문화가 점점 사라지면서 1968년 마지막 공연을 끝으로 대전과 군산에서 30년간 직장생활을 했습니다. 최근 40년 만에 서울 인사동 경인미술관에서 열린 우리나라 옛소설 전시 개막전에 초청돼 우리시대 마지막 이야기꾼으로서의 공연을 가졌습니다.

박인규 : 지난 달 말 전기수 공연을 가지신 걸로 아는데요, 어떤 자리였죠?

정규현 : 인사동 아단문고라는 데서 초대를 해서 가서 소개한 일이 있었습니다.

박인규 : 68년에 마지막 전기수 공연을 하시고 거의 40년 만에 다시 공연하신 건데 어색하달까 힘들지 않으셨나요?

▲ ⓒ프레시안

정규현 :
그때 몸에 배서 그런가, 크게 당황하거나 하진 않았어요.

박인규 : 어느 이야기를 하셨습니까?

정규현 : 그 당시에는 장화홍련전에서 장화가 계모의 모함을 쓰고 억울하게 죽는 장면을 한 대목 했습니다.

박인규 : 그 자리에 외국인들도 꽤 많이 왔던 걸로 아는데 반응들이 어떻던가요?

정규현 : 그 말씀을 하시니 말이지... 저도 이거 하는 것을 정말 참 우물 안 개구리 같이 생각했는데, 외국에서 오신 분들이 한국에는 이렇게 책을 음악적으로 읽는 풍속이 있었느냐고 하면서 굉장히 감탄들 하고 참 신비스럽게 대해주더라고요. 그래서 사진도 많이 찍고 그분들과 대화도 많이 했습니다.

박인규 : 굉장히 관심이 많았군요. 요즘 사람들은 사실 전기수가 뭔지 잘 모를 텐데, 우선 전기수가 뭔지. 한자로 어떻게 쓰는 겁니까?

정규현 : 전기수라고 하면, 처음에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다시피 그 당시 저도 한 300명 사는 동네에 살았는데. 그 당시는 한글이라고 않고 언문이라고 했어요. 한문은 한문이라고 하고. 언문 하는 사람도 불과 한 5, 6명밖에 안 됐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우리가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우리나라 사람을 일컬어 동방예의지국이라는 호칭을 썼어요. 그 동방예의지국이라는 건 우리 자신이 만든 말은 아니고, 또 그 말이 어떤 국제적으로 공인된 바는 아닙니다만 조선 사람들은 예절을 잘 지키고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도하고 이웃 간에 화목하고 이런 모든 면에서 질서를 지킨다든지 이런 것들이 참 훌륭하다 해서 조선 사람들은 동방의 예의지국이라고 했는데. 제가 그걸 생각해볼 적에, 글을 모르면 야인이란 말이에요. 야인이라는 것은 문화인이 아닌, 짐승과 비슷한 사람이다, 사리판단을 못하고 자기 이익만 추구해서 행동하는 이런 것인데, 어떻게 해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글도 모르는 사람들이 동방예의지국이라는 그런 참 훌륭한 사회생활을 하고 살았는가 생각해 볼 적에, 참 저도 어려서 책 읽을 적엔 몰랐어요. 또 두 번째 느낀 건 이번에 외국 사람들한테 느낀 건데 책을 읽을 적에 내가 내 자신만 체득하고 내 자신만 이해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서 책을 읽어주는 데 이것을 또 듣기 좋으라고 음악적으로 읽어준단 말이에요. 또 한 가지는 이 고담소설은 즉 사필귀정이고 고진감래, 이런 것들이 교과서입니다.

박인규 : 옛날 재미있는 소설들을 동네 분들이 글을 잘 모르시니까 글 아시는 분이 리듬을 섞어서 재밌게 읽어주는 분들을 전기수다. 정 선생님은 어떻게 해서 전기수 일을 하시게 됐어요?

정규현 : 제가 글을 일찍 깨우쳤어요. 11살 때부터 책을 읽었는데, 어느 땐가는 아버님께서 보시고 참 칭찬을 해 주시더라고요. 제법 잘 읽는다고. 그리고 또 어느 대목에선 이건 이렇게 하라고 지시도 좀 해주시고

박인규 : 말하자면 읽는 방법이 있군요.

정규현 : 예. 그래서 읽었더니 참 아버님께서도 칭찬해주실 뿐 아니라 인근에 소문이 아니까, 아버님을 초대하긴 좀 부담스럽고 그런 데서는 저를 초대해서 저도 가서 책 좀 읽어주고 그랬습니다.

박인규 : 68년에 마지막으로 전기수로서 일하셨다는데 그때는 언제였습니까?

정규현 : 그 당시는 우리나라가 신문화가 점차적으로 보급되면서 자연적 국가에서도 새마을운동이니 이런 것들, 신문화가 보급되면서 농촌에도 라디오를 많이 듣게 됐어요. 그래서 그런 문화에 밀려서. 또 글 하는 사람도 점차로 많이 생기고 그러니까 자동적으로 전기수라는 책 읽어주는 그런 세월이 지나더라고요

박인규 : 그럼 예전에는 그런 전기수 일을 하나의 직업으로 생업을 하시는 분들이 꽤 있었다는 얘기네요?

정규현 : 그 당시는 그걸 직업적으로 하는 분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저는 전문적인 그런 생활을 안 했습니다만. 우리 아버님께서도 한 번 출타하시면 보통 한 파수 만에도 오실 때도 있고, 어떤 때는 보름, 어떤 때는 한 달 만에 오시는데 오실 때는 귀한 물건도 좀 가져오시고 돈도 마련해 오실 때도 있고, 그런 일이 종종 있었어요.

박인규 : 한 파수라는 건 어떤 건가요?

정규현 : 은연중에 나왔는데, 지금은 보통 일주일간이라고 하죠. 일주일이 7일간 아닙니까? 한파수라고 하면 한 장 동안을 한 파수라고 해요. 말하자면 5일장이니까. 이번 장에서 다음 장이 5일 간이니까 한 파수는 5일 간이라는 말을 그렇게 쓸 수 있어요. 한 파수 만에도 오시고 어떤 때는 보름 만에도 오시고. 잊혀져가는 말이 되겠네요

박인규 : 마지막 공연 그때가 우리 나이로 23살이시니까, 말하자면 전문적 전기수가 되시기 전에 그런 문화가 사라져갔기 때문에 못하시게 됐군요. 20대 초반까지 전기수 역할을 하시면서, 전기수들이 어떤 이야기들을 주로 읽어줍니까?

정규현 : 제게 지금 남아있는 책이 한 50여 권 되는데, 그 당시 춘향전 심청전은 물론이고 조웅전, 신유복전, 별주부전, 장끼전 수없이 많습니다. 많은데 이것들을 책보따리. 지금은 가방이 있지만 그땐 보따리에요. 보따리에 넣어가는데 때에 따라선 주민이 요구할 때도 있고.

박인규 : 어떤 걸 읽어달라.

정규현 : 그렇지 않을 적에는 책가방 속에서 꺼내서 읽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박인규 : 지금도 혹시 기억이 나시나요? 그 당시에 어디 가서 전기수로서, 공연이랄까요 책을 읽어주시던, 주로 어떻게 하게 됩니까? 청을 받나요?

▲ ⓒ프레시안

정규현 :
그 당시는 농촌에 지금은 각 회관 같은 게 있지만 그땐 회관이 없었고, 좀 밥술이나 먹는 집에는 사랑방이 있었어요. 사랑방 거기에 모이면 자동적으로... 지금은 텔레비전 보다가 지금은 인터넷들 하느라 젊은 사람이나 나이 먹은 사람이나 집에서 꼼짝 않고 컴퓨터만 두드리고 앉았지만 그 당시는 사랑방에 모여야만 정보교환을 했습니다. 때에 따라선 어느 지방은 지금 전염병이... 더군다나 전기수로 다니는 양반들은 방방곡곡을 다니니까 그 양반들이 정보가 아주 풍부하게 있었어요. 그 얘기 들으려고 많이 모이는데, 어느 지방은 지금 전염병이 도니까 그 지방은 가는 걸 삼가라. 또 동네에서 모이면 어느 날은 우리 동네 무슨 행사가 있으니까 동네 분들은 그 행사에 참석해서 해줘야 한다. 또 어느 양반이 병환이 위중하니까 우리가 내일은 거기 가서 문병도 하자, 이런 생활정보를 많이 교환도 하고. 그러다 보니까 사랑방에서 책도 거기서 읽었습니다. 사랑방에서 만날 정보교환만 하는 게 아니라, 어제 저녁에는 미인과 마적을 읽었으니까 오늘 저녁엔 별주부전을 읽어달라고 하자. 또 그것을 읽고 나면 다음, 어제 그저께 저 너머 동네에서 무슨 책을 읽었는데 굉장히 재밌었다고 하더라, 그 책을 오늘은 빌려다 보자, 이런 식으로 책을 서로 교환해 가면서도 읽고. 주민들의 하나의 생활문화였습니다 그때는.

박인규 : 저도 어렸을 때 외가에 갔던 기억이 나는데 대개 겨울철에 많이 하셨겠네요. 한가해질 때

정규현 : 그렇죠. 지금부터 시작되겠네요. 입동이 지나면 거의 추수가 마무리되니까. 입동 지나면 내년 농번기가 될 때까지 사랑방 생활을 다 했죠.

박인규 : 전기수로서 책을 읽어주시면 들으시는 분들이 어떤 대가 같은 걸 지불하시나요?

정규현 : 저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전문적인 직업으로는 안 했고 그 당시 나이가 또 많지도 않고 11살 때부터 했으니까. 더러 귀한 물건도 얻어 쓰기도 하고 때에 따라서는 시장 같은 데서 밥도 사줘서 먹기도 하고, 지어온 옷도 더러 얻어 입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박인규 : 저도 사실은 전기수께서 어떻게 책을 읽는지는 들어본 적이 없어서, 이왕 방송에 나오셨으니까, 길게는 못하더라도 한 번 읽어주시죠. 어떤 부분을 해주실 건가요?

정규현 : 그러시죠. 심봉사가 부인을 매장하고 와서 한탄하는 대목을 조금 읽어보겠습니다.

* 이때에 심봉사는 부인을 매장하고 공산야월에 혼자 두고 허둥지둥 돌아오니 부엌은 적막하고 방은 텅텅 비었는데 향은 그저 피어 있다. 빈 방 안에 꽃도 없이 혼자 앉아 온갖 슬픈 생각 할 제 사람 없는 동안에 아기를 데려다 보아주다가 돌아와서 아기를 주고 가는지라 심봉사 아기를 받아 품에 안고 지리산 갈가마귀 물어던진 듯이 혼자 우뚝 앉아 슬픔이 청천한 품 안의 아이 치우쳐 우는 것이었다. 심봉사가 기가 막혀 아기를 달래는데 아가 아가 우지 마라 너의 모친 먼 데 갔다. 너도 너의 모친 잃고 슬픔에 겨워 우느냐 우지 마라 우리 마라 네 팔자가 얼마나 좋으면 7일 만에 어미 잃고 강보 속에 고생하겠느냐 우지 마라 우지 마라 해당화 봄나비야 꽃이 진다 서러워마라 명년 3월 돌아오면 그 꽃이 다시 피느니라 우리 부인 가신 데는 한 번 가면 못 오신다 어진 심덕 착한 행실 잊고 살 길 전혀 없다 해가 져도 부인 생각 빗소리도 부인 생각 짝 잃은 외기러기 명사 백해 바라보고.... 북천으로 향하는 양 내 마음도 너도 또한 임을 잃고 임 찾아 가는 길이냐 너 하나와 비교하면 두 팔자가 똑같구나

이런 식으로 읽었어요

박인규 : 이야기에 가락이 얹어진다는 점에서는 판소리와 상당히 비슷하네요

정규현 : 판소리 말씀이 나왔으니 말이죠. 판소리가 다 여기서 나온 겁니다. 별주부전에서

박인규 : 말하자면 판소리의 더 원형 모습이다.

정규현 : 말하자면 심청전에서 심청가가 나왔고 춘향전에서 춘향가가 나왔고, 수궁가는 별주부전에서 나왔고 적벽가는 삼국지에서 나왔고. 이렇게 모든 판소리의 원조는 고담소설입니다. 그런데 고담판소리는 흥미가 진진하고 추임새나 여러 가지가 청중들을 굉장히 간절하게 흥미를 돋우지만 책 읽는 건 거기에 비하면 상당히 무의미해요.

박인규 : 듣기로는, 예전에는 아주 탁월한 전기수들은 대금 같은 것도 같이 연주하셨다고 해요.

정규현 : 그런 일이 있었어요. 대금을 불기도 하고 단소나 대금 같은 걸 보따리에 찔러서 다니다가 읽기도 했는데 저는 그런 경지까진 안 갔고요. 그런 걸 하다가, 아마 그 생활이 지속됐으면 그런 걸 했을는지 모르죠. 그러나 저는 하다가 중간에 다른 생활전선으로 들어가서 벌어먹고 사느라 책 읽는 것은 오래 하지 못했습니다.

박인규 : 혹시 정규헌 선생님처럼 옛 소설을 가락을 얹어서 전기수로서 읽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신 분을 만나보셨습니까?

정규현 : 근래 못 만났어요. 한 몇 년 전에 어느 곳에 계신다고 해서 가봤더니 그 양반도 작고하셨더라구요. 그런데 저는 11살 때부터 읽었으니까 아마 감이 책을 읽는 사람 중에서는 나이가 아마 어린 사람이라고 생각됩니다. 왜 그런가 하니, 그 당시 우리 아버님 나이도 근 40 넘어 50 하셨지만 다른 분들도 저보다 한 20년 내지 30년 연상들이거든요. 그러면 거의 다 작고하셨고 생존해 계시다 하더라도 눈이나 발음이나 이런 것들이 제대로 원활하지 못하니까 아마 책은 못 읽을 겁니다 지금은. 그래서 감히 지금 책 읽는 사람을 저도 만나지를 못했고, 또 혹시 계시다 하더라도 제가 챍 읽는 사람 중에는 나이가 어린 사람 아닌가 생각합니다.

박인규 : 전기수가 말하자면 판소리의 원형이라고 볼 수 있다고 하셨는데, 그런 옛 소설, 전기수들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갖고 있는 교훈이랄까요? 어떻게 보세요?

▲ ⓒ프레시안

정규현 :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얘기책은 모두가, 악한 일을 하면 나중에 반드시 악한 죄를 받고, 착한 일을 하면 반드시 착한 복을 받고. 또 남에게 억울한 일을 하면 반드시 재앙을 받고. 이렇게 모든 것들이 사필귀정이고 고진감래의 교과서라고 봅니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한 동네에서 살면 이런 얘기책에서 그것이 체득이 됐는지 모르지만 제가 볼 때는 얘기책 밖에는 없는 것 같은데 얘기책에서 그런 것들이 체득됐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죠. 동네사람들 어려운 일 있으면 공동으로 도와주고 품앗이도 하고 두레도 하고 이렇게 해서. 품앗이라는 것도 그래요. 지금 선생님은 일을 잘 하시고 저는 선생님의 3분의 1밖에 못하는 존재라고 해도 3분의 1만 하는 존재도 같이 거기서 공동생활을 했어요. 두레라는 것도 역시 그래요. 한 동네에서 두레가 나면 한 파수고 두 파수고 이렇게 계속 목표한 일이 끝날 때까지 공동일을 하는데 그 두레에 참석 못하는 집도 많아요. 말하자면 호주가 아프다든지 그 당시에는 들일은 여자는 안 했어요. 남자만 하니까, 어느 집은 부인만 사는 집이라든지. 지금으로 말하면 독거노인들, 이런 집은 동네사람들이 가서 무료로 해주기도 하고 그랬어요. 이런 순박한 문화들이 전해준 얘기책도 큰 역할을 하지 않았나 그런 생각도 해봅니다.

박인규 : 요즘은 도시생활이긴 합니다만 혹시 정 선생님이 글을 읽으신다고 해서 이웃에서 읽어달라든가 그렇게 해보신 경험은 없습니까?

정규현 : 그런 일도 많이 있죠. 사랑방도 초대받아서 가고

박인규 : 최근에는요?

정규현 : 최근에는 별로 없고, 공주 가서 몇 번 발표한 일이 있고요. 또 지방행사 때 더러 가서 발표한 일이 있습니다.

박인규 : 판소리 하시는 분들은 나름대로 특기, 잘 부르시는 소리가 있다던데 정규헌 선생님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 있습니까?

정규현 : 저는 신유복전 같은 걸 상당히 좋아해요

박인규 : 어떤 이야기기에 좋아하시죠?

정규현 : 유복이가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유복이거든요.

박인규 : 유복자 할 때 유복이군요.

정규현 : 예. 그 신유복이 원 생가도 상당히 명문거족이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어려서 돌아가시고 나니까 홀홀단신이 됐어요. 그런데 유모가 기르다가 유모마저도 돌아갔어요. 그러니까 부리던 노비들이나 이런 사람들이 몸만 빠져나가는 게 아니라 재산까지 전부 갖고 나가서 아주 참혹한 인생이 됐어요. 그랬는데, 이렇게 고생고생을 하다가 부인을 잘 만나서 나중에 입신양명도 하고 장군이 돼서 국가에 충성도 하고 이렇게 잘 살았다는 아주 훌륭한 얘기가 있어요. 그런 것들도 좋아하고 그렇습니다.

박인규 : 지금 판소리는 우리의 굉장히 자랑스런 문화유산이라고 해서 세계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 우리의 옛 이야기들을 재밌게 읽어주는 전기수도 충분히 문화적 가치가 있다고 보여지거든요. 이런 걸 보전을 하고 전승해야 될 것 같은데

정규현 : 박선생님, 참 제가 이런 지정을 받든지 안 받든지 간에

박인규 : 문화재 지정 말슴하시는 거죠?

정규현 : 예. 그걸 받든지 안 받든지는 차치하고라도 우리 생활문화에 끼친 영향은 대단합니다.

박인규 : 문화재 지정과 관련해서 신청 같은 걸 하셨나요?

정규현 : 지방문화재로 신청해놨는데 아마 지금 심사 중이니까 어떻게 심사가 나올는지 모르겠어요. 지난번에 외국 사람들도 칭찬해줄 뿐 아니라 이런 훌륭한 문화는 반드시 후세에 전해져야 합니다.

박인규 : 이번 공연을 좀 하시면 약간 그 분들께서도 참작하시지 않을까요? 어떻습니까?

정규현 : 글쎄요. 좀 반응이 많은 것 같더라고요.

박인규 : 전기수의 기능을 배우고 싶어 하는 분이 있습니까?

정규현 : 배우고 싶은 사람은 있죠. 제 손녀 되는 아이도 지금 모 대학에서 조교생활을 하고 있어요. 그 아이도 제법 해요. 와서 할아버지 하는 게 자랑스럽기도 하고 또 저도 읽어본다고 읽는 거 보면 제법 소질도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너 이거 하라 소리는 제가 못하겠더라고요. 왜 그런가 하니 이걸 해서 그 놈이 앞으로 밥을 먹고 살 건지 죽을 먹고 살 건지, 비전이 없단 말이에요. 더군다나 눈도 귀도 황홀한 게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니까 이런 것들은 어떤 사명감을 갖고 내가 이걸 체득해서 할아버지 하시는 거니까 내가 체득해서 나도 이걸 내 밑에 사람들한테라도 전해야겠다 하는데, 제가 이걸 스스로 하라고는 못해요.

박인규 : 그것만 하면 생활이 보장되는 그런 국가적인 지원 같은 게 필요하겠군요.

정규현 : 그렇게만 해주면 참 우리나라의 훌륭한 문화를 이어가는 데에 큰 역할을 하겠죠.

박인규 : 전기수로서 정규헌 선생님이 스스로 책을 읽는 것도 좀 기록으로 남겨놓고 싶으시기도 할 테고 그런 기능이나 이런 것들을 후손에 남겨주고도 싶으실 텐데 마지막으로 그런 부분과 관련해서 하시고 싶으신 말씀 있으면 해주시죠

정규현 : 감히 제가 전기수라는 이름으로 여기 앉아있다는 것도, 어떻게 보면 너무 송구스럽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 못난 사람이 여기 앉아서 옛날 선인들의 훌륭한 문화를 자랑할 수 있다는 것도 저도 역시 상당히 참 보람있는 일입니다. 그렇다고 보면 참 얘기책은 모든 질서와 모든... 함축돼 있는 얘기책이니까 이것이 비록 상업가치는 없고 비록 어떤 것은 없다 하더라도, 훌륭한 문화는 이어져서 상업하는 관심 가진 양반들도 좀 생겼으면 좋겠고, 저도 나이가 70이 넘으니까 좀 초조한 생각이 들어요. 언제 어떻게 될지도 모르고 그러니까 죽기 전에 어떤 기반이라도 마련됐으면 하는 그런 욕심도 있습니다.

박인규 :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라고 할 수 있는 전기수. 우선 제 생각에는 정규헌 선생님이 활동하실 수 있는 공연이 많이 있으면 좋겠고 가능하다면 그것이 문화재로 지정돼서 전승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정규현 : 감사합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오늘은 우리 시대 마지막 이야기꾼인 전기수 정규헌 선생을 초대해 점점 잊혀져가는 우리 문화유산 전기수에 대해 말씀 나눴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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