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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공용지의 비극과 디지털 공공재

[김운회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아서']<21>디지털 시대에 공용지의 비극은 해소될 것인가

제 6 장. 공용지의 비극과 디지털 공공재
- 디지털 시대에 공용지의 비극은 해소될 것인가? -

□ 유토피아를 찾아서


토마스 모어(T. More, 1478~1535)의<유토피아(Utopia, 1516)>는 마치 <정감록(鄭鑑錄)>처럼 구성되어 있습니다. 세 사람 즉 여행가인 히드로데이(Raphael Hythloday)(1)와 나레이터(narrator)로 모러스(Morus)와 그의 친구인 자일스(Peter Gilles)가 등장합니다. 여기서 이 모러스는 바로 토마스 모어 자신을 투영한 인물로 그린 듯합니다. 이 책은 두 개의 부분으로 나눠져 있는데, 제1부에서는 히드로데이가 엔클로저운동(Enclosure movement) 등으로 내홍을 겪고 있는 영국 사회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고, 제2부는 히드로데이가 유토피아를 본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히드로데이의 입을 통하여 본 이상향의 모습은 다음과 같습니다.(2)

▲ <유토피아>에 묘사된 이상향(1516초판, 1518판)

무엇보다도 신(God)의 계시 없이 이성(reason)의 지도에 따라 사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 유토피아입니다. 이 유토피아에는 국왕이 없고 사유재산도 없으며, 모든 사람이 똑같이 생산적 노동에 종사하고 하루 6시간 노동만으로 충분하고 남는 시간엔 교양을 쌓습니다. 왜냐하면 인구의 반을 차지하는 여자, 성직자, 귀족, 지주들까지도 모두 노동을 하기 때문입니다. 세습귀족은 없고 건강한 사람으로서 노동을 면제받고 있는 사람은 공무원과 선택 받은 지식 계급 뿐입니다. 각종 귀금속 보석들은 불결한 곳의 부품이나 어린애들의 장난감으로 쓰입니다.

정리 해 보면 유토피아는 도덕적 사회로 최소의 법으로 움직이면서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일을 하는 사회, 귀금속 같은 사치품들을 돌[石]같이 보는 사회, 정신적 쾌락을 추구하면서 여가 시간에는 배움을 추구하는 사회, 종교의 자유가 있고, 공동의 이익을 중시하면서 전쟁을 혐오하는 평화 사회입니다. 다만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에는 노예가 등장하고 있어 마음이 쓸쓸하군요.

토마스 모어는 당시 국왕이었던 헨리 8세의 총애를 받았으나 헨리 8세의 이혼을 반대하고 "영국교회(Church of England)의 수장이 영국의 왕"이라는 법을 지키겠다는 서약을 거부한 죄로 참수되었습니다(1535).

▲ 토마스 모어경
유토피아에 대한 논의는 토마스 모어 이후에도 계속 나타납니다. 로버트 오웬(R. Owen, 1771~1858)은 공업 중심의 '생활 공동체'를 제안하였고 자신의 공장 내에서 노동자를 자애롭게 대우하고 "자발적으로 협동조합을 결성하여 자본가에 대항할 것"을 가르쳤습니다.

프랑스의 퓨리에(Fourier, 1772~1837)는 빈민 출신의 부두 노동자였는데 밀의 가격이 떨어지자 상인들이 그것들을 바다 속에 폐기하는데 경악하고 불로소득을 올리는 상인들을 특히 증오합니다. 퓨리에는 생활 공동체로 농업 중심의 정원도시(Phalan-stere)를 제안합니다. 정원도시는 대개 4백~2천명이 공동생산하고, 사유재산은 주식 형태로 보전됩니다. 그리고 정원도시의 구성원들은 18세~28세까지 노동을 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정원도시는 일종의 조합 형태를 띠고 있어서 중국의 인민공사(人民公司)와도 유사합니다. 정원도시는 1840년대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어서 여러 곳에서 이 같은 시도가 있었다고 하는데 대부분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1) 공용지의 비극(Tragedy of commons)

'공용지(또는 공유지)의 비극'이라는 말을 들으신 적이 있습니까?

어느 시골 마을에 공동으로 쓰는 목초지가 있었습니다. 즉 주인이 없는 목초지인 것이죠. 그러다 보니 마을 사람들이 풀을 아끼고 관리하기 보다는 서로 자기 가축을 끌고 들어가 마구 풀을 먹이니 이 주인 없는 목초지는 곧 황폐해져서 아무도 사용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경우를 우리는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바다의 고기를 남획하여 어족 자원이 고갈되는 경우도 이런 경우죠. 이렇게 멀리 갈 필요도 없고요. 공원에 설치해 있는 공공 화장실을 보면 성한 곳이 없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공용지의 비극이란 소유권이 불명확한 공공자원의 경우 자원의 남용으로 결국 모두가 다 사용할 수 없는 비효율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공용지의 비극을 막으려면 그 사회 구성원들에게 끝도 없는 이데올로기 교육을 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끊임없는 정치교육과 세뇌교육이 필요했던 것이지요. 이것은 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종교이든지 이 같은 형태의 지속적인 세뇌교육만이 그 성공을 보장합니다.

사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왜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같은 유토피어니즘(Utopianism)이 실패하는지를 쉽게 알 수가 있습니다. 공용지의 비극은 사유재산( private property)이 왜 불가결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구체적인 사례이기도 합니다.

최근 한국의 서울시에서 만들어 놓은 '노들섬 텃밭'도 이와 다르지 않죠. 다음의 뉴스를 보세요.

"2012년 5월, 서울시는 (한강의) 노들섬에 텃밭을 조성하여 도시농업의 상징으로 삼았습니다. 이전의 오페라 하우스 건설 계획을 백지화하고, 그 자리에 약 2만2500여 제곱미터 크기의 텃밭을 조성한 겁니다. 하지만 개장한 지 5개월이 지나자 노들섬 텃밭은 '반쪽 짜리'로 전락했습니다. 노들섬 텃밭은 절반은 시민 600명에게, 나머지 절반은 도시 농업 단체 7곳에게 분양됐습니다. 그런데 양쪽의 차이가 극명합니다. 그 나마 개인이 관리하는 '시민 텃밭'은 대부분이 풍성한 결실을 맺고 있습니다. 하지만 '공동체 텃밭'은 황무지 수준입니다. 관리가 안 돼 말라 비틀어진 작물만 무성하고 잡초가 온 밭을 뒤덮고 있기도 합니다.(<뉴스판>2012.10.3)"

과거 러시아 혁명(1917) 후 수립된 소련의 콜호즈(kolkhoz, 집단농장)는 이론적으로 보면 "해방된" 노동의 결합을 통하여 효과적인 대량생산을 위해 수립된 것인데, 대부분 농민들이 이를 반대하였습니다. 1929년 10월까지 전체 농가의 겨우 4.1%만이 입주하자 그 해말 스탈린(Stalin)은 입주를 거부하는 농민들을 처형하거나 강제수용소로 끌고 갔습니다. 이를 거부했던 농민은 중국의 변경, 폴란드, 루마니아로 탈출했습니다.

▲ 콜호즈를 기념하는 우표(1937)
그런데 이것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농민들은 "이제 더 이상 자신의 소유가 되지 못하는" 해방된 러시아의 가축들을 도살하여, 1929년 당시 3,400만의 두의 말이 1933년에는 1,600만 두로 격감하였고, 이 외에도 3천만 두의 소와 1억여 마리의 양이 도살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1940년 지구 면적의 1/6인 이 국가에 서는 96%의 농업집단화가 강압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국민적 저항을 불러와 러시아 전역에 걸쳐 폭동과 시위가 일어났습니다.

이러한 위기의 상황들에 대하여 소련정부는 비밀경찰 '체카(cheka)'를 선두로 한 내무인민위원회(NKVD) 등의 조직들을 통하여 폭력적으로 진압합니다. 체카의 임무는 "인민의 적은 항상 감시하는 눈이 있다고 느끼게 만들어야 하고 또한 그가 소비에트 권력에 반대하는 어떠한 시도라도 하자마자, 그를 재판 없이 처형하거나 사회로부터 분리시킨다."는 것입니다. 특히 내무인민위원회 소속의 별동단원은 사회적 위험분자로 인정된 사람에 대해서는 법적 절차 없이 체포하여 최고 5년까지 구속하거나, 강제노역장에 보낼 권한을 가지고 있었습니다.(3)

이 사건은 여러 면에서 중요합니다. 인류 최초로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하였지만 사유재산의 폐지가 얼마나 어렵고 힘들고 또한 끔찍한 일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극단적으로 보면, 당시 러시아의 지배 세력인 볼셰비키는 총과 칼을 그 유일한 수단으로 하여 전체 인민들에 대해 '동물적 대상화'를 한 것입니다. 그런 종류의 막대한 인명과 재산 피해를 감수하고 또 그 정도의 강력한 물리적 통제력을 가질 때, 통치 불가능한 사회가 어디에 있겠으며, 그 정도의 물리력을 가진 지배자가 그들의 이상(理想)에 합당한 그들만의 유토피아(<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사회와 같이)를 만들지 못한다면, 그는 확실히 멍청이일 것입니다.

▲ 체카의 설립자 겸 수장 펠릭스 줴르진스키(Felix Dzerzhinsky)와 심볼
사유재산의 폐지 말고도 유토피아를 만들기 힘든 또 다른 큰 이유는 바로 언제든지 나타날 수 있는 관료주의(bureaucratism)입니다. 왜냐하면 사유재산이 폐지되면 결국은 공공재(public goods)의 관리를 누가하는가에 따라 권력이 배분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단순한 사회적 직능과 역할이 바로 권력화되는 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지요. 이게 바로 관료주의입니다. 관료주의가 심해지면 어떤 정책도 먹히지를 않습니다.

레닌(Lenin)은 관료주의란 잠시라도 방심하면 이내 고개를 드는 것이기 때문에 인민의 사업에 피해를 입히려고 하는 모든 사람들을 체포해서, 혁명인민재판소 앞에 세우고, "관료주의라는 잡초를 계속해서, 그리고 지칠 줄 모르게 뽑아내기 위해서는" 밑으로부터의 인민 통제의 방법은 아주 다양하게 하라고 가르쳤습니다. 레닌은 공산주의자들은 모든 종류의 관료주의에 대하여 투쟁하여 소비에트 기관을 관료주의의 진흙탕으로부터 정화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4) 한걸음 더 나아가 스탈린(Stalin)은 관료주의자들 가운데 "공산주의 관료주의자가 가장 위험한 유형"인데 그것은 "관료주의를 당원신분을 가지고 위장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공산주의 관료주의자들이 우리 내부에는 적지 않게 존재합니다."라고 합니다.(5) 사실 이 시기는 혁명적인 건강성이 상당히 살아있는 시기였기 때문에 더욱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죠.

후일 소련(소비에트 러시아)이 몰락(1991)한 후 여러 차례의 논의 끝에(6) 기업들이나 농장들이 형식적으로는 전체 인민들에게 '사유화'되었지만, 실제로는 전인구의 2% 이하에 불과한 소련의 특권계급인 노먼클라투라(nomenklatura)에 의해 대부분 약탈당하고 말았습니다.(7) 무섭고도 한심한 일입니다[현대 중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중국공산당 서열 3위인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3조 원대 부정 축재설에 휩싸여있습니다. 비단 원자바오(溫家寶)뿐이겠습니까?]. 스탈린의 말이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진리였음이 증명된 것이죠. 이것은 암울한 러시아의 미래를 보여주는 것이 분명합니다.(8) 사유화 과정이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나타나는 '자본의 원시적 축적과정'과 유사하게 판단하더라도 그것은 산업조직의 특권계층 즉 '산업 노멘클라투라(industrial nomenklatura)'를 중심으로 하여야 하는데, 오히려 '산업 노멘클라투라'를 무력화 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고 사유화과정은 대개의 후진국에서 보여지는 바와 마찬가지로 극심한 정경유착으로 이권을 둘러싼 첨예한 파벌대립을 낳았습니다.(9)

나아가 '사유화'의 중추세력들이 가장 비시장적인 속성을 가진 사회주의 관료들이라는 점도 러시아의 위기상황과 직접 관련되어있습니다. 이들이 앞서 지적한대로 "약탈적이고 특권유지를 위한" 사유화의 주체세력임(10)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시장경제화하는데 있어서 긴 시간의 준비작업도 없이 진행되었기 때문에 각 경제주체들 간의 대립은 격렬해지고 취약한 금융부문은 이내 외환위기를 초래합니다.

결국 1998년 8월 러시아는 모라토리엄(Moratorium, 국가부도)을 선언하고 말았습니다.(11) 모라토리엄 선언의 직접적인 원인은 과도한 단기 채무의 상환부담이었지만 그 바탕에는 신자유주의적 경제개혁 과정에서 심화된 러시아 사회의 모순 즉 사유화과정에서 나타난 계급간의 이해관계에 따른 자기상해적(自己傷害的)인 소모전과 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진행된 자본주의화 전략 등이 있었던 것이죠.(12)

결국 우리가 바라는 유토피아의 성공은 끝없는 도덕성 강화교육과 중단 없는 관료주의의 제거에 달려있는데 제가 보기에 이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래서 종교에서는 유토피아는 죽어서만 갈 수 있는 곳으로 상정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마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121∼180) 황제가 독백하듯이 말입니다.

"너는 배에 올라탔었고, 이제 항해를 마치고 피안(彼岸)에 다다랐다. 그러니 그 땅으로 가거라 ! 설령 그곳에 또 다른 삶이 있다 해도 그곳엔 또 다른 섭리(攝理)가 있을 것이요. 영원한 망각(忘却)이 있다하자. 그래도 너는 적어도 오관(五官)에 사무치는 모든 고통과 번뇌(煩惱)에서 자유로울 수 있고, 무감각한 꼭두각시와 같이 너를 이리 흔들고, 저리 흔들어 놓는 모든 정욕(情欲)으로부터 벗어나 이지(理智)의 멀고먼 길, 육신에의 수고로운 예속(隷屬)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터이니.(Thou climbedst into the ship, thou hast made thy voyage and touched the shore : go forth now ! Be it into some other life : the divine breath is everywhere, even there. Be it into forgetfulness forever : at least thou wilt rest from the beating of sensible images upon thee, from the passions which pluck thee this way and that like an unfeeling toy, from thy toilsome ministry to the flesh)"(Walter Horatio Pater, The Divinity That Doth Hedge a King)."

(2) 공공재와 디지털 상품

앞에서 말하는 공용지 즉 공유지는 소유권이 명확하게 지정되어있지 않은 공공자원으로 일종의 공공재(public goods)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유토피아는 일부의 특별한 사적 재화를 제외하고는 주변의 모든 재화나 서비스가 공공재로 공급되는 사회를 말합니다. 문제는 이 공공재에 대한 사회구성원들의 태도도 태도지만 이 공공재 개념이 아직도 불명확하고 이에 따른 이익집단의 논리도 복잡하다는 것입니다.

일단 공공재가 무엇인지 그리고 이것이 사회주의도 다 몰락한 이 시점에서 왜 중요한 것인지를 생각해 봅시다.

먼저 공공재란 주로 나라에서 국민들에게 공급하는 재화를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개인이 자기 영리를 목적으로 시장에 내다 파는 재화를 사적재(private good)라고 하고, 나라에서 국민들에게 제공하는 것을 사회재(social goods) 혹은 공공재(public goods)라고 합니다. 아담스미스(A.Smith)는 <국부론(The Wealth of Nations(1776)>에서 ① 국방과 치안, ② 공공시설이나 공공 토목사업 등의 부문에 있어서 정당한 정부활동의 개입이 불가피함을 역설하였습니다.

공공재 이론은 아담스미스 이후 리카아도(D. Ricardo), 밀(J.S. Mill), 마샬(A. Marshall), 사무엘슨(P. Samuelson), 머스그레이브(Musgrave)에 이르기까지 많은 학자들이 연구한 분야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공공재가 무엇인지 속 시원하게 해명하지는 못했습니다.

사무엘슨은 '등량소비성(equal consumption)'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공공재 개념을 정식화합니다. 쉽게 말해서 모든 소비자(국민)가 동시에 함께 소비할 수 있거나 동일한 량을 소비한다는 말이지요. 이 말은 결국 한 사람의 소비가 다른 사람의 소비를 감소시키지 않는 성질('비경합성')을 가졌다는 말도 되겠고, 국민 모두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함께 소비해야하는 재화('비선택재')라고도 할 수 있겠군요.

이런 관점에서 보면 가장 이상적이고 전형적인 것은 국방(national defence)이나 한강철교와 같은 교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강철교는 누구나 사용할 수는 있지만 출퇴근 시간(rush hour)에는 사용하기가 힘이 들므로 다른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공공재라는 것을 좀 더 추상적이지만 보다 실질적인 측면에서 머스그레이브(Musgrave)의 견해를 보는 것이 타당하리라고 봅니다.

머스그레이브는 상품과 서비스를 분류하는 기준으로 '경합성(rivalness)'과 '배제성(excludability)'과 이라는 명쾌한 개념을 사용합니다.

'경합성(rivalness)'이란 특정한 재화를 먼저 차지하기 위한 개별 소비자들 간의 경쟁성을 말하는데 이 때의 재화는 수량이 한정되어 있는 경우에만 해당됩니다. 예를 들면 사람은 10인이 있는데 사과는 2개뿐이라면 경쟁률이 5 : 1이 되지 않습니까? 사과를 서로 먹기 위해서 극심하게 싸워야겠죠? 바로 이것이 경합성이라는 것입니다. 정도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상품과 서비스는 이런 경합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배제성(excludability)'이란 개별 소비자가 어떤 상품이나 서비스를 소비할 때 다른 소비자들의 소비가능성의 배제하는 정도를 말합니다. 말이 어렵지만 별 내용은 아닙니다. 내가 사과를 먹으면 그 사과는 다른 사람들이 먹지 못하게 되죠. 어쨌거나 경제학은 쓸데없이 말이 어려워서 탈입니다. 마치 경제학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도록 암호를 사용하는 듯합니다.

대부분의 사적재(private goods)는 경합성과 배제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공공재는 비경합성(non-rivalness)과 비배제성(non-excludability)을 특징으로 하고 있습니다. 즉 그것을 사용하기 위해 남들과 경쟁할 필요가 없으며 내가 사용한다고 해서 남들이 그것을 사용할 수 없는 것도 아니란 말입니다. 이것을 표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이 됩니다.

▲ 배제성과 경합성에 의한 상품과 서비스의 분류

물론 한강대교도 출퇴근 시간에는 사용하기가 어렵고 댐(Dam)을 건설한다고 해서 국민 모두가 그 혜택을 누리는 것은 아니라는 것은 일단 알아 둡시다. 그렇지만 외교나 국방과 같은 공공서비스는 이 두 속성을 완벽하게 가지고 있으므로 순수 공공재(pure public good)로 볼 수 있겠죠? 그리고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이나 서비스는 이 두 속성을 완전히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순수 사적재(pure private good)가 됩니다.

이와 같이 일반적인 상품들과는 달리 공공재(public good)는 비경합성과 비배제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디지털 상품의 경우에도 비경합성(non-rivalness)과 비배제성(non-excludability)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하면 디지털 상품은 그대로 공공재인가요? 그것은 아닙니다. 디지털 상품은 사용할 때 반드시 돈을 지불해야 하는 사적재(private good)이기 때문입니다.

즉 디지털 상품은 겉모양은 완전히 공공재이지만 그 내용은 완전히 사적재라는 것이지요. 한 마디로 뒤죽박죽입니다. 디지털 상품, 예를 들면 MS 윈도(Windows)를 내가 사용한다고 해서 옆집의 홍길동군이 사용할 수 없는 것이 아니고 내가 윈도를 사용하기 위해서 홍길동군과 경합을 할 필요도 없는 상품이지요. 그러나 내가 MS 윈도를 사용하려면 반드시 돈을 지불해야하는 것이지요. 이것이 국방이나 외교와는 다른 디지털 상품의 특징이지요.

이 공공재의 성격을 띤 디지털 상품의 등장은 기존의 경제학 지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듭니다. 확실히 무언가 새로운 영역의 이론적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3) 인터넷과 공공재

인터넷이 등장한 초기엔 많은 디지털 상품들이 무료로 제공되었습니다. 그래서 일부 학자들은 이를 선물 경제(膳物經濟, gift economy)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선물경제는 디지털경제의 주요 특징 중 하나는 광범위하게 제품의 무료공급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인터넷이 활성화됨에 따라서 특정한 신기술이 아닌 디지털 상품들은 수명도 매우 짧아지게 됩니다. 그래서 기업들은 한 단계 더 높은 제품을 개발하면서 바로 이전의 버전(version)을 무료로 공급하거나 광고수익만 지향하면서 각종 프로그램을 무료로 제공하는 비즈니스가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이드(Lewis Hyde)는 이러한 무료화현상을 선물경제(gift economy)라 한 것입니다.(13) 디지털 시대의 초기에 나타나는 이 같은 현상은 한편으로는 행복과 부를 순환시키고 창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람들에게 많은 희망을 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기는 합니다. 이렇게 무료로 제공된 디지털 상품은 공공재의 의미를 가질 수도 있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각종 인터넷의 정보들을 무료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가령 각종 포털 사이트는 많은 정보들을 사실상 무료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쇄물로 된 신문들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신문을 구독하지 않은 가정들이 거의 없었는데 요즘은 신문을 보는 가정들이 별로 없는 실정입니다.

물론 국가에서 인터넷 인프라스트럭처(infrastructure)를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세금이 들어갔겠지요. 그런 측면에서 국가가 제공하는 인터넷 인프라스트럭처는 분명히 공공재입니다. 설령 민간 기업들이 인프라스트럭처를 구축한다 해도 그 비용과 인터넷을 통해서 이용할 수 있는 정보와 지식의 량에 비한다면 "사실상 공공재"로 볼 수도 있습니다. 한국의 경우, 한 달 신문 구독료 정도로 수천∼수만의 언론 기사와 정보 자료들을 모두 공짜로 사용하는 것이 아닙니까?

<한국인터넷 백서(2011)>에 따르면, 2009년 현재 전세계 인터넷 이용자수는 19억 명에 이르고 있고 인터넷 이용율은 27%에 달하고 있습니다. 2010년 한국의 경우는 국민의 거의 80%인 3700만여 명이 인터넷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노인층의 인구를 감안하면, 한국은 가히 '인터넷 천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같은 정도로 인터넷을 사용한다는 것은 그 만큼의 인프라스트럭처가 구축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 세계와 한국의 인터넷 이용자 수 변화 추이 ⓒ방송통신위원회·한국인터넷진흥원

그리고 세계경제포럼(WEF, World Economics Forum)에서 각국의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도와 경쟁력을 평가한 네트워크 준비지수는 138개국 가운데 스웨덴, 핀란드, 미국, 한국 등이 톱(TOP) 10위의 국가로 나타났습니다. 즉 한국의 디지털 역량이 세계 10위권의 수준이라는 말입니다.

▲ 세계 네트워크 준비지수(디지털 역량 평가) ⓒ세계경제포럼(WEF,World Economics Forum)

그리고 광대역 통신 즉 브로드밴드(Broadband)로 하나의 전송매체에 여러 개의 데이터 채널을 제공하는 것으로 초고속 인터넷 인프라스트럭처를 말하는데 이에 대해서도 세계는 경쟁적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한국 초고속 인터넷 가입자 수 ⓒ한국인터넷 백서(2011)

2010년 현재 한국의 초고속 인터넷의 가입자 현황을 보면 1700만 가량의 국민이 이용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같은 인프라스트럭처 덕분으로 수많은 디지털 콘텐츠들을 한국인들이 소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이 '포르노그라피의 천국'이 된 것도 이 같은 인프라스트럭처의 발전과 관련이 있습니다.

▲ 주요 국가들의 브로드밴드 정책 ⓒ<한국인터넷 백서(2011)>

세계의 주요국들은 초고속 인터넷 인프라스트럭처를 구축하기 위해서 국가적으로 엄청난 비용을 쏟아 붓고 있습니다. 또한 다른 나라를 기술적으로 이기기 위해 각종 전략들과 산업스파이들을 동원하고 있는 등 극심한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이 현상을 경제학적으로 말하면, 각국의 정부들이 그 만큼의 공공재를 국민들에게 제공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특히 정부가 제공하는 전자 서비스의 이용을 보면 다양한 범위에서 이용률이 증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전자정부 서비스 이용률 ⓒ<한국인터넷 백서(2011)>

전자정부의 서비스 이용률을 보면 주로 세금과 관련된 부분과 허가, 입찰과 관련된 부분이 많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같은 전자 서비스 증가는 기존의 관료주의적인 폐단들을 막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과 같이 관료주의의 병폐가 극심한 나라에서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일반적으로 보면, 관료들의 부패가 가장 극심한 영역이 주로 G2B 즉 정부와 기업 간의 거래(허가, 승인, 조세, 조달)였는데 이 분야를 공공의 인터넷 망을 통해서 전자화하여 처리하게 되면 부정의 소지나 관료들의 도덕적 해이(道德的解弛, Moral Hazard)를 방지할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주어진 시간에 정부의 해당부처의 입찰 공고가 나면 다수의 기업들이 전자적으로 즉각 참가하여 모든 것이 전자적으로 처리되어 부정의 소지가 급감하게 됩니다.

과거에 컴퓨터 공학이 기업경영에 대거 도입되면서 등장한 칼스(CALS) 즉 컴퓨터 병참관리(Computer Aided Logistics Support)(14)나 경영정보시스템(MIS)에서도 일찌감치 추진된 전자 자재구매(MRP) 즉 자재소요계획(MRP, Material Requirement Planning) 등도 이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물론 현대의 부품들이 워낙 많고 종류도 다양하여 인간이 관리하기 힘들기 때문에 컴퓨터의 힘을 빌린 것도 맞지만, 이를 통해서 기업들은 자재의 구매와 관련하여 기업 내부에 발생할 수 있는 각종 부패의 고리를 잘라낼 수가 있었습니다. 이것이 점진적으로 발달한 것이 바로 ERP 즉 전사적 자원관리(ERP, Enterprise Resource Planning)입니다. 즉 우리가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기업 관리 시스템이지요. 흔히 인트라넷(intranet)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그 기능을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게 부르는 것뿐입니다.

ERP는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모든 자원에 대해 그 기업의 경영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이루어지는 모든 활동을 컴퓨터시스템을 통하여 처리하는 통합시스템입니다. 바로 이 ERP가 DBMS 시스템 통합(SI)의 가장 구체적인 형태인데 이것은 바로 기업의 원활한 자재·구매활동을 위해 제안된 MRP(Material Requirement Planning)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MRP가 점차 발전해 생산전반의 관리개념인 MRP-II (Manufacturing Requirement Planning, 제조 소요계획)로 확대되었고 이후 회계, 인사 등 기업전반의 업무를 다루는 시스템으로 확대된 것입니다.(15)

그런데 제가 지금 분석하고 있는 공공재들은 이전의 공공재와는 매우 다른 특징들이 나타납니다. 아직까지 세계적으로 합의된 적합한 용어는 없지만 일단 디지털 공공재(DPG, Digital Public Goods)라고 합시다.

첫째, 디지털 공공재는 이전의 전통적인 공공재와는 달리 공용지의 비극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와는 반대로 지식(knowledge)이 확산될 때 나타나는 현상과 같은 시너지 효과(synergy effect)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둘째, 디지털 공공재는 단순히 국민들에게 디지털 인프라스트럭처를 제공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기반 시설을 확충하는 효과와 기술 발전에 중요한 펌핑 효과(pumping effect)를 제공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지식의 공유에서 나타나는 효과와 사실상 동일합니다. 즉 펌프에서 물을 받으려면 약간의 물을 먼저 펌프에 부으면 지하의 물이 쉽게 퍼 올려지는 것과 같은 현상이라는 말입니다.

셋째, 디지털 공공재는 막대한 경제적 효과가 나타날 수 있어 이전의 경제 문제들을 해결할 가능성이 나타난다는 점입니다. 즉 사회 전반적으로 디지털화되면 공간적 이동에 따르는 각종 부담이 급격히 감소하고 부동산 문제와 같은 각국의 고질적인 문제들이 둔화되어 서민생활의 질을 높여줄 수가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부동산 가격 하락에 따른 새로운 경제 위기가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넷째, 기존의 공공재의 증가는 필연적으로 관료주의의 확산과 고착화를 초래하지만 디지털 공공재는 오히려 관료주의를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는 점입니다.

다섯째, 디지털 공공재의 확산은 이전과는 다른 형태의 반사회적인 문제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즉 신판 오스트라시즘(Ostracism, 마녀사냥)이나 각종 마타도어(Matador, 흑색선전) 등의 확산, 인터넷 또는 스마트폰(smart phone) 중독현상, P2P의 증가로 인한 반사회적 콘텐츠(예를 들면, 포르노그라피)의 확산 등이 사회적 문제가 된다는 말입니다.

이상의 내용으로 보면 또 하나의 거대한 패러다임이 붕괴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경제학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공공재 이론을 가지고 공공재만 분석하다가는 낭패가 된다는 말입니다. 디지털 상품들이 고개를 쑥 내밀고 있고 디지털 공공재는 이전과 같이 공용지의 비극과 같은 문제점들이 나타나지 않고 오히려 시너지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디지털 공공재는 이전의 공공재와는 달리 관료주의를 오히려 뿌리 뽑을 수 있는 안전장치가 된다는 것입니다.

□ 필자주석

1. 히드로데이는 그리스어로 헛소문을 퍼뜨리는 자라는 의미이다. 이 책에서는 히드로데이는 유토피아의 내용을 영국에 도입하자고 주장하는 반면 모러스는 보다 신중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2. 유토피아의 원 제목은 De optimo rei statu, deque nova insula Utopia 로 라틴어로 저술된 것이다. 여기에서 '유토피아'란 "어디에도 없다"라는 의미로 모어가 직접 만든 말이다. 제1권은 사회의 현실에 맞지 않는 엄격한 법률, 무위도식하는 다수의 귀족, 전쟁을 좋아하는 군주, 양털 값이 올라 밭과 땅과 목장까지 넓혀 가는 지주, 사유재산 등 영국사회의 현실에 대한 매우 강한 비판을 담고 있다. 제2권에서는 히드로데이가 본 '유토피아' 섬의 도시·인간·풍습·제도·법률 등이 서술되어있다. 문화적인 면에서 결혼은 여자 18세, 남자 22세에 달하지 않으면 허가가 안 되며, 이혼은 원칙적으로 허가되지 않는다.

3. 이 당시 소련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안택원 편역, <소련정치의 체계적 이해>(경남대학교 극동 문제연구소, 1986), 67∼116쪽. 김학준,<소련정치론>(일지사, 1976). Osborn, The Evolution of Soviet Politics, 1974, pp.58, 78. Jesse Clarkson, A History of Russia. (NY,Random House, 1966)p.492.

4.<레닌 전집> 26권, 294쪽 및<레닌 전집> 27권, 266쪽. 나아가 레닌은 노동조합에서 조차 극심한 관료주의가 나타난다는 점을 개탄하고 있다. 즉 "나는 우리 인민위원회, 그것도 모든 인민위원회 내부에 많은 관료주의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하여,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노동조합 안에도 그에 못지않은 관료주의가 존재한다는 것은 예상하지 못하였습니다. 이것은 엄청난 수치입니다."(<레닌 전집>35권, 409쪽).

5. 공산주의청년동맹의 제8차회의(1928년 5월)에서 행한 스탈린의 연설.<스탈린전집> 11권, 63쪽.

6. 당시 사유화의 기본방향은 1990년 당시 옐친 러시아대통령을 비롯한 개혁파의 지지 하에 샤탈린(S. Shatalin) 등에 의해 작성된 <500일 경제개혁안>에 제시된 원칙에 바탕하고 있었는데 동 개혁안은 사유화의 방식으로서 ① 사유화 대상기업의 경영자 및 노동집단으로의 무상이전 ② 모든 국민에게 사유화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시한다는 것 ③ 국가기업의 매각 등의 세 가지를 제시하고 있었다. Yavlinsky, G. & Fedorov B., 500 Days Programs : Transition to the Market, (한종만譯) <소련의 시장경제로의 이행>(열린책들, 1990) 94쪽.

7. 러시아의 사유화의 진행과정은 1995년을 기준으로 크게 두 단계로 나누어진다. 1992년부터 1995년 전반기까지의 1단계 사유화는 주로 경영자, 노동집단,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진행되었으며, 1995년 주식담보 대출방식이 동원되면서 국내 은행 및 외국자본을 대상으로 대규모 국가기업이 매각되는 제 2단계 사유화가 진행되었다. 그런데 실제로 러시아의 사유화는 흔히 '노멘클라트라 사유화' 혹은 자생적 사유화(Sachs, J.D., Privatization in Russia : Some Lessons from Eastern Europe, AEA Paper and Procee- dings, Vol.32, No.2, May 1992, p.43), 심지어 약탈적 사유화라고도 지칭되는 형태로 소연방 해체 이전부터 사실상 전개되고 있었다(Clarke, S., Book Rview : Blasi, J.R, et al, Klemlin Capitalism, The British Journal of Sociology, Vol.49, No.1, 1998). 러시아는 사유화법령이 시행될 수 있는 여건이 충분히 마련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서둘러 사유화에 착수하였는데 불발 쿠데타 후인 1991년 10월 28일 옐친은 "우리가 신중하게 사유화를 논하는 사이 과거의 기득권층이 국가재산을 탈취하고 있으므로 서둘러 개혁파가 사유화의 주도권을 장악해야 한다."는 방침을 발표하고[이병로, <에또러시아>(미래M&B, 1998), 107쪽], 이어 11월에 사유화를 주관할 국가재산관리위원장에 추바이스(Anatoly Chubais)를 임명하였다.

8. 보스렌스키(Voslensky)는 소비에트연방에 있어서 권력은 소비에트(soviet) 수중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당 지도부 즉 노멘클라투라 계급(관리자 계급)의 수중에 있다고 잘라 말하였다(下권 p94). 그에 의하면 사회주의의 잉여생산은 노멘클라투라를 위해 생산되는 것이며 그것은 '수익'으로 그들에게 돌아가지만, 그것은 '이윤'의 다른 명칭에 불과하다는 것이다(上권 p286). 이것은 궁극적으로 생산력 발전도 억압하게 된다. 이 노멘클라투라는 인텔리겐차의 집단의 새로운 지배 계급으로 당시의 소련이 하나의 귀족사회를 이루고 있음을 보여주는 충격적인 사례였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은 동료들과 기존의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면 자신의 지위를 충분히 유지할 수 있으며(上권 p175) "사실상" 세습이 가능하고(上권 pp198- 200) 인원수는 극비이나 대체로 전체인구의 1.2∼2% 미만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노멘클라투라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권력일 수밖에 없다. 이것은 마치 봉건적 귀족계급과 유사한 형태의 계급적 이해를 가지고 있음을 의미하는 충격적인 예이다. 보스렌스키는 사회주의적 소유는 노멘클라투라의 소유라고 극언하기도 하였다. Voslensky, Michael.S. Nomenklatura (차근호外譯)<노멘클라투라- 소련의 붉은 귀족>(서울 : 명문당, 1988) 上, 下.

9. 러시아의 사유화 과정에는 하버드 대학의 국제개발원 (Institute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 연구팀이 깊이 개입하였다. 당시 츄바이스(Anatoly Chubais)가 사유화를 주관하는 '국가재산위원장'으로 임명되었는데, 이것의 정치적 함의는 산업기반시설의 파괴를 무릅쓰더라도 가장 강력한 정치적 반대 세력화할 수 있는 '산업 노멘클라투라'를 무력화해야한다는 정치적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Clarke, S., 1998, 및 Sachs, J.D., 1992 앞의책, p47.

10. 옐친을 포함한 개혁파들은 매우 관료적인 '제도권 출신'이다 러시아에서 사적 자본가계급을 배출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회집단은 사회 노멘클라투라라고 지적되지만 그 구조와 경제 교류방식은 여전히 행정 지령적이다 (Gimpel'son,V., "New Russian Enterpreneurship ", Problems of Economic Transition, Vol.36, No.12, April 1994. p.31).

11. 러시아의 모라토리엄의 선언과 1997년 7월 태국 바트화의 가치폭락으로 시작된 아시아 금융위기(인도네시아, 한국)와는 연계성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가 필요한 상황이다. 그러나 아시아 금융위기가 일본, 미국과 연계된 상황인 것은 확실하기 때문에 미국이 러시아의 자본주의화에 깊이 개입한 점을 고려한다면, 러시아의 금융위기 또한 이와 무관한 변수가 되기는 어렵다. 그러나 러시아경제 자체가 세계자본주의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미미하기 때문에 세계의 실물생산이나 자금흐름에 직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바는 크지 않았다.

12. 보다 구체적으로 ① 기존 체제에서 기업과 집단농장의 유보기금 외에 자본주의적 조세개념이 부재한 상황에서 사유화와 가격자유화가 진행되자 정부의 재정적자는 계속 증가하고, ② 화폐금융부문의 취약성과 관련하여, 기술적인 수준에서 러시아 환율제도의 경직성이 있었으며, 보다 근본적인 요인으로 ③ 국제금융시장의 불안정성 등을 지적할 수가 있다. 특히 가격자유화와 사유화 바우처(voucher) 발행으로 인하여 루블화가치는 폭락하였고, 인플레이션을 진정시키기 위해 러시아정부가 2∼3년간 루블화 환율의 안정에 지나치게 집착함으로써 외환보유고를 소진하였으며 투기 자본의 루블화 공격을 자초하였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배경으로서 러시아 은행제도의 난맥상, 그리고 그에 따라 러시아경제에 여전히 남아있는 비화폐적 특성을 지적해야 할 것이다. 사회주의 몰락 이전의 소련의 정치경제학교과서에 따르면 "사회주의 하에서 화폐는 근로인민의 이익에 맞게 계획경제를 수행하기 위한 수단이다."라고 한다. 이에 따라 소연방이 해체될 때까지도 국가기업 간 거래는 단일 국립은행인 고스방크(Gosbank : 구소련의 국립은행, 현재는 중앙은행)의 구좌를 통해 청산되는 비화폐적인 장부상의 거래였다. 기존 체제에서 신용 할당과 이자율은 중앙 및 지역별로 계획당국에 의해 정해졌는데 실제로는 명확한 원칙과 지침이 없어서 대부분 산업별 지역별 로비와 인맥에 의해 결정되고 그 과정에서 국가보조금 형태로 신용이 제공되기도 하였다.(김윤자,「러시아의 신자유주의」,<한국사회경제학회, 연구논문집(1999)>102쪽.)

13. Kevin Kelly<디지털 경제를 지배하는 10가지 법칙>(황금가지, 1998) 98쪽.

14. CALS는 그 개념이 진화되어 왔기 때문에 한 마디로 정의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CALS의 개념은 1985년에 처음으로 미군 내부의 업부 개선에 중점을 둔 개념으로서 무기매뉴얼의 디지털화 등 컴퓨터에 의한 병참지원(Computer Aided Logistics Support)이라는 명칭으로 출발하였다. CALS는 정보시스템을 이용하여 종이 없는 전자적 통합물류·생산·유통시스템을 구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즉 상품의 설계, 개발, 생산, 판매, 유지·보수, 폐기 등 상품의 전수명주기에 걸쳐 기업 활동 전반을 전자화하는 것이다. CALS는 이후 지속적인 조달과 제품의 라이프사이클 지원(Continuous Acquisition and Life cycle Support, 1993)이라는 개념을 거쳐 광속거래(Commerce At Light Speed : 1994 이후 현재까지 전자상거래 및 결제의 속도화 · 효율화)라는 개념으로 진화하였다.

15. ERP의 목적은 기업 내의 모든 자원을 파악하고 자원의 효율적인 활용을 통해 빠르게 변하는 환경에 신속하게 대응함으로써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인프라스트럭처를 구축하는 것이다. ERP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한 회사가 최적업무프로세스를 구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어 각 기업의 업무프로세스를 ERP 소프트웨어에 맞게 변경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어 업무혁신(business process reengineering)의 한 방법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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