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한국경제연구원 김종석 원장입니다. 김종석 원장은 1955년 서울 출생으로 78년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고 88년 미국 프린스턴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 미국ARTMOUTH대 경제학과 교수와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을 지냈고 1991년부터 홍익대학교 경영대학 교수로 재직중입니다. 한국규제학회 회장을 비롯해 행정개혁시민연합 상임집행위원 겸 정부개혁연구소 소장 그리고,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역임했습니다. 지난 4월부터 한국경제연구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박인규 : IMF경제위기가 벌써 딱 10년이 됐네요. 저도 그 날이 생생하게 기억나는데 그 당시 경제학자로서 어떤 느낌이셨습니까?
김종석 : 글쎄요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다고나 할까요? 한국경제만큼은 괜찮을 줄 알았는데, 더군다나 명색이 경제학자고 경제학 교수고 이런저런 자리에서 한국경제를 논했던 사람으로서 굉장히 내가 모르는 게 많구나 하는 자괴감도 많이 느끼고, 그런 계기가 됐습니다.
박인규 : 제가 그 당시 특파원으로 워싱턴에 있었는데요, 97년 초 그 당시 환율이 900원이 될까 말까 했는데 한 기자가 1400원이될 거라는 예측이 있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했는데 연말이 되니까 2000원까지 올라가더라구요. 그 당시에 IMF위기가 올 수도 있다는 예측이 어려웠나요?
김종석 : 사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은 아니었습니다. 이미 97년 봄 태국과 인도네시아가 금융위기에 빠졌고 많은 전문가들이 이게 일종의 독감처럼 북상한다, 다른 나라에 전파될 수 있다는 경고가 있었고. 또 실제로 한국의 정부 안팎에서 위기감이 있어서 그 전부터 노동개혁법이라든가 금융개혁법안을 심의하고 일종의 자구능력이 있었죠.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그 당시가 지금과 같이 대통령선거를 앞둔 정권교체기여서, 어떤 힘든 선택이랄까 결정적인 의사결정을 국가적으로 정부에서 내릴 수 있는 여건이 안 됐던 게 결국 우리가 알면서도 소용돌이 속에 빨려들어간 게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도 좀 있습니다.
박인규 : 어쩌면 정부에서 조금 더 신경쓰고 과감한 대책을 세웠더라면 막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김종석 : 그렇죠. 왜냐면 말레이시아나 홍콩, 대만은 IMF구제금융을 안 받았거든요.
박인규 : 피해갔죠. 10년이 지났습니다. IMF외환위기가 오게 된 가장 큰 원인은 뭐라고 어떻게 정리되고 있습니까 지금?
김종석 : 현상적으로 보면 물론 외환고갈이고 외화자금의 대규모 탈출이죠. 왜 그렇게 됐느냐. 사실 다 아시는 바와 같이 그 무렵 주요 대기업들이 연쇄부도가 났죠. 한보, 기아가 그랬고, 그런 것이 결국 금융기관의 대출이 부실이 된 거고, 그 기업들에 대한 대출이. 결국 금융기관들이 부실해지니까 외국에서 우리나라에 돈을 빌려줬던 외국인 채권자들이 한국으로부터 돈을 되돌려받을 수 없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확산되면서 일종의 엑소더스, 탈출이 발생한 거죠. 그게 증상적인 거고. 한 말씀 더 드린다면 왜 그렇게 됐느냐, 사실 97년 상반기에 한두 개의 대기업 부도 때문이 아니고 다 아시다시피 90년대 이후 우리나라 기업계의 부실채권이 계속 누적됐고 그것을 그때그때 청소를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은행이 점점 부실이 누적되다 보니까 은행 자체의 부실가능성이 있는 차에 덩치 큰 수조 원짜리 기업들 한두 개가 넘어가니까 완전히 금융시스템의 위기로 온 거고 이걸 외국사람들이 본 거죠. 보고 도망나간 거죠.
박인규 :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할 당시에 물론 굉장한 위기고 경제국치일이란 말도 나왔지만 일각에서는 잘됐다. 차제에 기업의 투명성이라든가 금융기관의 건전성을 높여야 되는 거 아니냐, 차제에 청소를 깨끗이 하자, 그런 말도 많았는데... 실제로 그런 부분에서 우리 경제에 기여했다고 볼 수 있을까요?
김종석 : 그렇죠. 외환위기가 한국경제에 미친 영향은 명암이 교차한다고 볼 수 있겠죠. 크게 보면 외환위기는 97년 이전까지 한국경제에 누적된 모순이나 전근대성이 일거에 터진 거고, 외환위기를 계기로 소위 구경제질서... 내부지향적이고 도덕적 해이가 만연했던 구경제질서를 끝내고 선진형개방시스템으로 가는 계기가 됐고, 또 실제로 그랬어야만 합니다. 위기가 아니더라도, 그러지 않고서는 우리가 세계 10대 또는 상위권의 복지선진국가가 될 순 없었습니다. 그 계기가 됐는데 그 숙제를 제대로 했느냐, 그것에 관해서는 아마 아직도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할 수 있겠죠
박인규 : 이른바 진보진영에선 IMF위기로부터 신자유주의가 본격적으로 한국에 들어왔다면서 많은 비판적인 시각을 보이는데, 예를 들어 금융부문 같은 경우 너무 헐값에 팔아치우다 보니까 우리나라 금융주권 같은 것이 외국계로 넘어가는 게 아니냐. 지금 우리나라 국민은행이라든가 많은 큰 은행들이 외국계가 갖고 있다 보니까 우리나라 기업을 위한 생산적인 투자를 못하고 있다는 식의 비판이 나오는데,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김종석 : 일부에서 외국계 자본이 우리 은행산업의 절반을 지배하고 있다, 걱정이 된다.... 일리 있는 걱정이긴 하지만 우리가 그 이전에 갖고 있었던 금융시스템은 100% 우리끼리만의 산업이었고 그것이 사실 한국 고유의 문화라고 할 수 있는지 모르겠는데 다 형님 아우고 고향 선배고 동창이고, 그것이 또 기업의 임직원과 은행 임직원과 연결되고 우리끼리만의 기업과 은행산업과 금융감독시스템이 굉장히 배타적이고 내부지향적인, 도덕적 해이가 만연한, 아는 사이니까 돈 빌려주고, 이런 문제가 곪아터진 겁니다. 아까 말씀드린 대로 부실채권이 누적된 것도 그렇고요. 지금은 절반 정도가 외국자본이, 외국계은행이 되다 보니까 옛날과 같은 기강해이랄까, 아는 사람 봐주기의 대출이나 금융관행은 어렵고. 또 굉장히 치열하게 시장을 관찰하는 외국계 자본들이 금융산업에 들어와 있으니까 우리의 토종금융자본이 최소한 따라가지 않을 수가 없죠. 그래서 항상 경제에는 진선진미한 건 없습니다. 얻는 게 있다면 잃는 게 있고 우리나라의 금융산업이 구시대적인 도덕적 해이 때문에 문제가 있었다면 이제는 오히려 절반은 내줬지만 그것 때문에 금융산업이 정상화되는 계기도 될 수 있다. 음양이 교차한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박인규 : 외환위기 맞고 10년이 지났는데요, 최근에 삼성경제연구소인가요? 거기서 양적 성장, 질적 성장, 안전성, 이렇게 평가를 하면서 양적 성장이 가장 큰 문제라는 평가를 내놨던데 현재 우리나라 경제의 상황, 능력이랄까, 어떻게 보십니까?
김종석 : 외환위기는 사실 나라 전체로 보면 흑자부도였습니다. 우리가 경쟁력이 있었어요. 자금의 불일치였던 거죠. 분명히 갚을 능력도 있었고 받을 돈도 있었는데 단기적으로 미스매치, 당장 내놔라 할 때. 홍콩이나 국제금융시장에서 한국 은행들한테... 대출연장을 안 해준다고 하면 배겨낼 기업이 없잖아요. 그건 국가도 마찬가지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금방 회복했습니다. 그 다음해에 바로 무역흑자 냈고 금년까지 계속 10년째 이어지고 있고 세계에서 많은 수준의, 최고는 아니지만 2600억불이 넘는 외환보유고를 갖고 있고. 경쟁력은 있습니다. 다만 문제는 외환위기 이전에는 어떻게 보면 발전지향적 경제모델로 정부주도하의 금융기관이 기획을 해서 우리나라의 대기업들이 국제무대에 나가서 싸우는, 경쟁하는 이러한 하나의 모델이었기 때문에 기업들이 의사결정이나 투자, 해외진출할 때 정부의 축복, 금융기관의 서포트, 지원으로 얼마든지 해낼 수 있었는데 외환위기 이후에는 방금 말씀드린 대로 금융기관의 절반은 금융감독당국의 말을 잘 안 듣는 외국계가 들어와 있고 정부는 정부대로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교훈도 있고 기업들한테 소위 글로벌스탠더드대로 해라. 정부가 도와줄 수도 없고 알아서 해라, 너희들이 돈 되는 사업 있으면 너희 책임하게 투자해라. 국내가 됐든 해외가 됐든. 이런 시스템의 변화는 장기적으로는 바람직한 겁니다. 그런데 단기적으로 지난 10년을 돌이켜보면 기업들의 과거와 같은 동물근성, 투자근성, 투기근성은 많이 둔화되고. 그것의 누적적 결과가 재무구조는 아주 건전해지고 수익성도 올라가고 덕분에 주가도 올라갔지만 우리나라의 투자율이 현저하게 떨어지고 대기업들은 수천억의 잉여자금을 재테크만 하고 있는 증세가 나타난 거죠.
박인규 : 양적 성장이 줄었다는 건 말하자면 기업들의 과감한 투자가 없다. 그러다 보니 고용도 별로 없고, 투자를 늘려야 된다는 말이 벌써 몇 년 전부터 나오고 있는데 혹시 거기에 대한 묘책 같은 건 없습니까?
김종석 : 기업의 투자현상이라는 것은 경제학계에서 오래 전부터 어떤 원리로 이뤄지는지에 대해서 학술적으로나 실증적으로 많이 연구가 있는데, 가장 핵심적인 건 기업심리입니다. 결국 돈을 벌어서 한탕을 하겠다는 게 투자의 기본원동력이고, 그 배경에 자금조달이나 금리, 또는 기업활동규제라든가 또는 이런 게 있는데 무엇보다도 투자기회입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우리나라의 여러 가지 기업환경이나 정부제도가 기업들로하여금 그나마 투자하는 데 도움이 안 되고 장애되는 요소가 많다는 지적이 오래 전부터 있었고요. 그 다음에 최근에 나타난 게 중국입니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중저가의 제조업, 미디움테크놀로지의 제조상품이 세계시장에서 우리가 상당히 잘 나갔는데 어느 날 갑자기 중국제 저가품목이 우리 시장을 빼앗아 가니까 전통적으로 우리나라 제조업 분야의 중소대기업들이 당황하는 거죠. 이제 뭘 만들어서 먹고 살아야 되나. 그러다 보니까 투자를 소극적으로 하게 되고 그나마 좀 적극적인 기업들은 설비 뜯어서 베트남이나 중국, 인도로 가자는 분위기가 우리나라의 성장잠재력을 떨어뜨리는 요인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박인규 : 중국 말씀도 하셨지만 가계부채가 급증하고 유가가 100달러에 이르고 부동산도 침체돼가다 보니까, 우리 경제가 또 위기 아니냐, 하긴 위기란 말이 너무 많이 나와서 쓰기 뭐하긴 합니다만. 경제학자가 보시기에 우리가 지금 막다른 골목, 위기라고 볼 수 있습니까?
김종석 : 위기라는 게 재앙 직전이 위기입니다. 외환위기는 사실 위기가 아니라 재앙이죠. 비행기로 말하면 추락한 거고요. 지금 한국경제가 위기냐. 그런 점에서 넓게 해석하면 저는 위기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다. 무슨 얘기냐면 외환위기처럼 급살로 심장마비 같은 충격이 와서 응급실에 갈 수도 있지만 사람들이 자기가 중병이 든 줄도, 암세포가 퍼지는 줄도 모르고 있다가 자각증상이 왔을 때 보니까 이미 손도 못 쓰게 되는 경우도 있거든요. 지금 한국경제가 방금 말씀드린 대로 성장잠재력이 소진되면서 체력이 자꾸 떨어지는 현상이 90년대 이후로 굉장히 나오고 있어요. 2000년대 이후로 상당히 가시화되고 있는데 한국경제의 체질강화 이런 것이 빨리 수반되지 않으면 당장 내년 내후년은 아니지만 언젠가 우리가, 한국경제가 문제 있는 거 아니냐고 얘기했을 때 손도 못쓰게 어려운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계부채나 금융부실 때문에 외환위기가 올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고 봅니다. 외환보유고도 충분하고. 오히려 외환이 너무 많이 들어와서 난리죠. 요즘 원화강세가 그런 거 아닙니까. 그러나 가계부채가 상당 규모로 남아있는 상태에서 요즘 같이 금리가 올라간다든지 또는 담보로 제공한 주택가격이 급락하게 되면 금융기관이 부실채권을 안게 되고, 그렇게 되면 금융기관들이 대출하기 어렵게 되고, 그렇게 되면 좀 경제에 부담이 될 수 있죠. 그러다 단기적인 위기가 있다고 생각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박인규 : 미래의 성장동력을 잡아야 된다면서, IT 이야기도 하는데 앞으로 우리나라가 주력해야 될 성장분야가 있다면, 그런 데 대한 합의가 있나요? 산업계나 경제학계에서...
김종석 : 그게 참 쉽지 않은 것이요. 우리가 어디다 땅을 산다든지 집을 사거나 투자를 한다고 할 때 어디가 돈이 될 것인지 정말 알 수가 없어요. 주식 살 때도 보면 어느 회사 주식을 사야 될지, 어느 펀드를 사야 될지 다 자기가 판단하는 거거든요. 그래서 지금 미래의 우리의 성장동력과 먹거리산업이 뭐가 될 것이냐 하는 얘기는 다 어떻게 보면 학술적 논의 또는 단순한 예측차원이고, 진짜 어디가 될 것이냐 하는 것은 아무도 정확히 예측할 수 없죠. 20년 전에 우리나라가 세계적인 반도체강국이 될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 못했던 거 아닙니까. 이런 것처럼, 결국 무슨 말씀을 드리고자 하느냐 하면 미래의 성장동력은 결국 현장에서 뛰는 기업인들이 제일 잘 안다. 또 무슨 IT, NT, CT, ST, 이렇게 T자 돌림으로 첨단만 가지고 한국경제의 5천만 명이 먹고 사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거다. 역시 금융산업도 우리 미래의 먹거리산업이 될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인적자원이나 여건을 볼 때. 또 조선이나 자동차도 계속 새로운 테크놀러지, 하이브리드차라든가. 조선도 우리가 생각할 수 없는 배의 모양이 나올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현장에서 뛰는 기업인들이 미래에 뭐가 돈이 되고 어디서 우익이 나오는지는 그 사람들이 제일 잘 알고. 심지어 섬유산업이 산업으로 볼 땐 위축됐는지 모르지만 우리나라의 섬유산업 중에는 경쟁력있는 기업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특정 산업으로 우리가 들여다보면 착시현상이 있고요. 그 산업 내의 기업들, 그리고 기업인들이 자기네들의 직관과 투자의욕을 갖고 개척해나가면 신발도 300불, 400불짜리 신발 만들어서 첨다신발 만들 수도 있는 거고요. 그렇게 생각합니다.
박인규 : 예전에는 정부에서 어떤 분야를 집중 육성하겠다고 해서 돈도 대주고 그랬지만, 그런 방식이 아니고 각 개별기업들이 잘 뛸 수 있도록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게 중요하겠군요.
김종석 : 결국 선진국의 성장동력은 집중보다는 분산돼서 던져보고 그 중에 되는 산업 몇 개가 크면서 전략산업이 되는 패턴이더라고요. 그래서 이제 우리나라의 성장전략도 특히 산업 분야에서는 집중보다는 넓게 던져놓고 어디서 승자가 나오는지 보자. 다만 그 전제가 되는 건 기업들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자유롭게 상업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기업환경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박인규 : 서민들 입장에선 말이죠. 수출이 3000억 달러가 된다고 해도 아무리 특정 기업이 순이익을 내도 이게 서민들한테 안 온다. 양극화 아니냐. 서민들의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 줘야 한다. 그런 괴리가 생기는 건 어떻게 풀어야 됩니까?
김종석 : 양극화라고도 표현하고 윗목까지 안 더워진다는 비유도 있습니다만 경제현상이 그렇습니다. 모든 사람을 동시에 잘 살게 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건 어느 나라나 어느 시대나 그랬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생각해볼 것은 경제가 어려워지고 경기가 침체되면 가장 소득이 작은 사람이 타격을 입습니다. 잘 사는 사람은 외식 한 번 덜 나가면 되지만 못 사는 사람은 굶는다고요. 그러니까 결국 경제가 계속 활성화되면서 그 소득이 확산되는 것이 현실적으로 또 이론적으로 맞고요. 다만 확산되는 속도를 좀 빠르게 하자는 차원에 정부의 역할이 있는 것이지, 이것이 재배분으로 될 수 있는 것은 아니고요. 서민들에게 보다 많은 경제적 기회가 돌아가도록 해주고 서민들 또는 소외계층이 경제적 기회를 누릴 수 있도록, 균등한 경제적 기회를 가지고 그 사람들이나 그 사람들의 아이들이라도 다시 중산층이나 상류층으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하는, 이것이 바람직한 접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박인규 : 김종석 원장님은 우리나라 경제학계에서 규제경제학 1세대로 꼽히시는데, 규제라는 게 사실 정부가 하는 거 아닙니까? 규제 문제에 들어가기 전에 우리나라 산업의 성장, 양극화 해소 이런 부분에서 정부가 좀 역할을 해야 되는 게 아니냐는 의견들이 많은데, 앞으로 경제가 나아갈 방향에서 정부의 역할이 어떻게 나아가는 게 바람직한 겁니까?
김종석 : 결국 소득은 시장에서 나오는 거고요. 일자리는 기업이 만드는 거거든요. 그래서 일자리창출만큼 확실한 복지정책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경제가 활성화되고 일자리가 만들어져야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많은 고민,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세계경제가 내년에 좀 둔화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수출이 둔화될 것이기 때문에 이를 상쇄하려면 내수가 살아나야 됩니다. 그래야 일자리도 창출될 거고. 내수에서 가장 중요한 건 민간소비와 기업투자인데 소비, 민간소비라는 것은 급등, 급락하는 변수가 아닙니다. 역시 내수에서 투자, 기업들의 설비와 기술투자, 이게 내수부양에 아주 중요하고. 또 투자가 살아나면 장기적으로 생산성이나 국가경쟁력도 올라가니까, 그래서 투자규제를 풀고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고. 이런 관점에서 정부부문이 지난 수년 동안 과도하게 비대해진 것은 이런 차원에서 좀 우려할 만한 일입니다. 세금부담이 증가하고 하는 것도 국가경쟁력 향상에 장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인규 : 아까 말씀하시면서도 기업이 좀 신바람나게 투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라고 말씀하셨는데, 기업계에서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 그런 걸 슬로건으로 내세우면서 우리나라가 규제가 너무 많아서 기업하기 힘들다, 그런 말씀도 하시고. 김원장께서는 우리나라 규제 중에서 상당 부분이 불량규제다.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불량규제라는 건 어떤 겁니까?
김종석 : 규제종합연구를 한국경제연구원에서 지난 4개월 동안 했는데,
박인규 : 이번에 보고서도 나왔죠.
김종석 : 네. 5025개 규제를 전부 점검했는데, 바로 없앨 수 있는 규제는 10개 중 하나 정도더라구요. 물론 한 3분의 1 정도가 불량규제로 판단됐습니다만. 지금 불량규제가 도대체 무슨 규제를 얘기하냐고 하시는데, 우선 법에도 없는 간섭들이 많습니다. 소위 말하는 행정지도라는 명목으로, 나가서 그냥 관존민비의 논리에 의해서
박인규 : 말하자면 공무원들의 과도한 개입 같은 것...
김종석 : 법적 근거도 없이 가서 지시, 통제하는 게 많고요. 그 다음에 기준과 절차가 모호한 규제 들이 있습니다. 되는지 안 되는지, 오죽하면 우리나라 관청에선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다... 이런 말이 나오는 규제들은 일단 불량한 겁니다.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기업 하면서 가장 많은 애로가 뭐냐 하면 이게 되는지 안 되는지 모호하다.
박인규 : 분명히 법에는 없는데 공무원 마음대로 왔다갔다 하는
김종석 : 재량권이 많은 거죠. 그래서 규제리스크라는 말을 외국사람들이 제일 많이 씁니다. 외국보고서를 보면 한국의 경제문제의 가장 핵심이 뭐냐. 규제리스크가 많다. 선임자와 후임자의 해석이 다르고, 되는 줄 알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안 된다고 하고. 이런 게 불량규제고요. 그 다음에 비현실적인 규제들이 많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사업하시는 분들, 이런 규제 때문에 짜증 많이 나실 텐데 이게 뻔히 안 되는 줄 알면서 안전규제라든지 환경규제, 이런 규제들이 들어오면 참 준수율이 낮죠. 지키는 사람도 없고, 또 단속나가서 잡으면 왜 나만 잡냐고 하고, 이런 것이 불량규제고요. 그리고 많은 규제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을 잠재적 범법자로 만드는 규제들이 있습니다. 일단 다 나쁜 사람들이니까 동작그만 하고 내가 하나하나 판단해 주겠다. 출자총액금지가 그런 거고요, 수도권입지제한도 그런 겁니다. 사전규제입니다. 원칙금지 예외적 허용, 이런 것들도 불량규제라고 할 수 있고
박인규 : 지금 그렇다면 5000여 개 중에서 약 10% 정도는 없애야 될 것이고 3분의 1 정도는 개선돼야 할 거라고 보고서를 내셨는데, 그게 현 정부에서 채택이 되나요? 어떻습니까?
김종석 : 제가 듣기로는 정부당국에서 상당히 비중을 두고 검토 중이고, 현재 저희 연구원하고 유기적으로 자주 연락하면서 일선 담당부서와 협의 중인데요, 현 정부의 규제개혁 의지는 저는 있다고 봅니다. 특히 총리님을 중심으로 한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있고. 저희가 연구한 결과는 현 정부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다음 정부까지 이어지는 일종의 규제개혁로드맵, 또는 요리책이라고나 할까요. 그런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출총제, 수도권규제, 그런 말씀을 하셨는데 다 논쟁적인 주제긴 합니다만...
저희가 수도권규제 때문에 김문수지사를 몇 번 모셨거든요. 수도권규제는 어떻게 돼야 된다고 보십니까? 어디선 역차별이라고 반발하고 있고, 지방에서는 수도권만 잘 먹고 잘 살자는 거냐는 반론도 나오는데요
김종석 : 제가 이 분야 전문가로서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규제개혁에 논쟁이 붙으면 '풀어라 안 푼다'로만 가는 흑백논리가 안타깝습니다. 사실은 수도권 인구집중이 문제가 아니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문제는 지금의 방식이 합리적이고 효과적이고, 우리 발등 찍는 거 아니냐라는 데서, 이게 과학과 논리와 이성의 영역입니다. 전문가들끼리 계산해보고 따져보고 합리적으로 해야 되는데 이게 일단 정치권으로 들어가면 이상해집니다.
박인규 : 수도권 과밀화를 막겠다는 취지는 맞는데 그것을 위한 방식이 영 합리적이지 않다.
김종석 : 지금 방식은 네거티브싸움입니다. 못하게 하면 지방으로 갑니까? 외국으로 가죠. 출총제도 마찬가지에요.
박인규 : 그럼 김원장님이 보시는 수도권규제를 막기 위한 합리적이고 효과적인 대책의 큰 방향은 어떤 겁니까?
김종석 : 모든 전국을 같은 생활권이고 같은 특징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데서 오는 오류인 것 같아요. 수도권이 다르고 호남권, 영남권, 강원도권이 다르고 각자 자기 지역에 맞는 특성화지역을 가지고 삶의 질을 높이고 소득을 높이는 게 맞지, 수도권에 꼭 있어야 되는 R&D센터나 물류센터를 수도권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안 된다, 저쪽 남쪽으로 가라고 하면 이게 성립이 안 된다는 거죠.
박인규 : 현실의 구체적인 면을 도외시한 규제가 많다
김종석 : 그렇죠. 그래서 득보다 실이 많으니까 비용편익분석을 해서 차분하게 논리와 이성으로 해결하고, 수도권규제를 푸냐 안 푸냐 하는 흑백논리는 아니다 이거죠
박인규 : 대학교수로 계시다가 한국경제연구원 원장 맡으신 지가 한 7개월쯤 되셨는데요.
앞으로 10년, 우리가 제대로 나가야 될 것 같은데 경제를 보시면서 우리 경제가 어떻게 나아가야 될 지 생각하신 게 있으면 말씀해 주시죠.
김종석 : 학교에서 이론으로만 보다가, 강단에서 학생들만 대하다가 재계, 연구원에 와보니까 정말 참 부지런하게 치열하게들 사시는구나 하는 걸 느꼈고요. 이게 우리 한국의 위기극복의 원동력이었고 오늘의 우리가 있게 한 배경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되기 때문에 앞으로 한 10년 내에 우리가 현재 서유럽국가 수준의 생활수준 , 한 4만불 정도의 국민소득을 달성하지 못하면 우리가 영원히 중진국에 머물러야 할지도 모릅니다. 언제부턴가 한국사회에서 기업인들은 기업의욕을 잃었다. 근로자들은 근로의욕을 잃었다. 국민들은 불안하다. 이것이 저희가 잃어버린 게 아닌가, 지난 10년 동안. 저는 이것을 되찾으면, 그리고 다시 한 번 잘 살아보자는 의욕을 가지고 게으름피우지 않고 떼쓰기와 우기기 없이 성실하게 일하자는 분위기가 우리 사회에 다시 확산되면 저는 우리가 선진복지국가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외환위기는 다 끝난 게 아니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박인규 : 전경련이라는 데가 우리나라에서는 정말 내로라하는 기업들이 모이는 데 아닙니까. 앞으로 기업들의 투자의욕이 날 수 있도록 묘책을 발견해 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김종석 : 잘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오늘은 '외환위기 10년' 기획인터뷰.. 그 첫 번째 시간으로 한국경제연구원 김종석 원장을 초대해 외환위기 10년이 우리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앞으로 우리 경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인지 얘기 나눴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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