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아르헨티나 대선은 현 영부인이 대통령직에 도전을 했다는 특이한 사실 외에도 오랜 기간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해 오던 정치세력들이 여권 후보를 지지하고 있다는 특이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정적과의 동거
전통적으로 아르헨티나 정치계는 보수 색체를 띤 라디깔당(UCR)과 중도 좌파 성향인 페론당(PJ)의 대결로 압축되어 왔었다.
하지만 오는 28일 치러질 대선에서 여권 후보인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데 키르츠네르 상원의원은 페론당과 라디깔 세력의 지지를 동시에 이끌어 내는데 성공했다. 양대 정치 세력들과 지지자들을 한데 묶는 통합 효과를 유도해 야권의 도전을 무력화 시킨 것이다.
크리스티나 후보는 지난 7월 대선 출마를 공식화하면서 라디깔당의 중진인사인 훌리오 꼬보스 멘도사 주지사를 러닝메이트로 지명했다. 골수 페론주의자인 크리스티나 후보가 보수층의 표를 염두에 두고 정적이라 할 수 있는 라디깔당의 유력 인사를 전격 기용한 것이다.
아르헨티나 정치계를 대표했던 라디깔과 페론당의 결합은 인지도가 낮은 신생 정당인 중도 좌파 시민연맹(ARI), 정통 우파를 내세운 UNA당 대권 주자들의 도전을 잠재웠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지 정치평론가들은 "이번 대선은 아르헨티나 정치를 대변했던 페론당과 라디깔이 동맹을 맺어 여권 주자인 끄리스띠나 페르난데스 데 키르츠네르를 함께 밀고 있는 모습"이라며 "게임은 이미 끝난 것이나 다름이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를 반영이라도 하듯 공식 유세가 끝난 22일(현지시간) 발표된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여당인 크리스티나 후보가 39.0~47.9%로 선두를 달리고 있는 반면 중도 좌파 시민연맹인 ARI당의 엘리사 까리오 후보는 16%, UNA당의 로베르또 라바냐 후보는 10%, 나머지 군소정당 9명의 후보들은 10% 미만 대의 아주 낮은 지지도를 기록했다.
이 결과만을 놓고 본다면 여당의 크리스티나 후보는 결선투표로 가지 않고 1차 투표만으로도 무난히 당선을 확정 지을 거라는 분석이 가능해진다.
아르헨티나 대선은 후보자가 50% 이상을 득표하면 결선 없이 당선이 확정되지만 40%미만을 득표했더라도 2위 득표자와 10% 이상의 표차가 가면 결선 없이 자동적으로 당선이 확정되기 때문이다.
크리스티나 대선본부의 참모들도 "결선 없이 1차에서 승부를 끝낼 것"이라는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페론당의 통합과 분열
하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특이하게 어떤 후보도 자신이 페론당의 적통이라거나 에비타의 유업을 이어받겠다는 목소리가 없다. 이는 크리스티나 후보 측에서 라디깔당의 지지를 얻기 위해 의도적으로 페론당 색깔을 나타내지 않으려는 이유이기도 했지만, 카를로스 메넴으로 대표되는 자칭 페론당 세력들과 차별화를 노렸다는 평가도 나온다.
지난 1983년 군부가 무너지고 민주화가 이루어졌을 때 아르헨 정치인들은 너도나도 자칭 페론주의자임을 내세워 페론당이 사분오열됐고, 라디깔당 출신인 라울 알폰신은 그 틈을 타 재선을 포함해 8년 가까이 집권했다. 그 후 정권은 페론당으로 넘어가 카를로스 메넴이 10년 동안 집권해 페론당이 통합되는 듯 했다.
그러나 메넴이 지난 2003년 3선을 노리면서 자신이 페론당의 적통임을 주장, 페론당은 지방파와 수도권파로 다시 양분됐다. 대권 후보 역시 2명이 선출되어 서로가 페론당의 적통임을 주장하며 팽팽하게 맞섰다.
결국 수도권파 페론당원들은 승리를 위한 전선당(FPV) 이라는 이름만 바꾼 페론당을 새롭게 결성했고 그때 등장한 대선 후보가 현 대통령인 네스토르 키르츠네르였다. 현재 집권여당인 FPV당은 두 명의 후보를 내기 위해 급조된 또 하나의 페론당이라는 얘기다.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데 키르츠네르는 누구?
칠레에 이어 여성 대통령 시대를 열 것으로 확실시되는 아르헨티나의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데 키르츠네르 후보는 1953년 2월 19일 교육도시인 부에노스아이레스 라 쁠라따시에서 태어났다.
1974년 라 쁠라따 국립대학 법대에 진학한 크리스티나는 페론당 학생조직을 이끌면서 역시 페론당원이었던 현 남편인 키르츠네르를 만나 다음해 결혼을 하게 된다.
페론당의 열성 청년조직이었던 이들은 1976년 군정의 페론당 청년조직 말살이 시작되자 아르헨티나 최남단 도시인 리오 가제고로 피신해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함으로써 군부의 눈길을 피해갔다.
군인들의 감시를 피해 정치활동을 접은 이들 부부는 83년 민정의 등장과 함께 정치활동을 재개, 1985년에는 지방 페론당 지도부를 결성하는 등 페론당 재건에 앞장섰다.
89년 정치인으로 변신한 크리스티나 여사는 산타크루스주 지방의회 의원에 당선되었고 95년에는 연방 상원의원에 진출, 중앙정치무대로 돌아왔다.
수도권에서 인지도를 넓힌 크리스티나 상원의원은 지난 2005년 아르헨티나 정치 일번지라는 부에노스아이레스주 상원의원에 도전, 역대 최고 득표라는 기록을 세우며 당선된다. 이에 자신감을 얻은 크리스티나 상원의원은 이미 대통령에 당선이 된 남편에 뒤이어 대권도전을 선언, 당선은 이미 '떼놓은 당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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