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道)란 도대체 무엇인가?
도에 대해서는 아득한 세월 전에 노자(老子)가 이미 다 말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자 '도'에 대해 또 다른 얘기들과 해석들이 무수히 있었고 그 바람에 '도란 무엇인가'에 대해 본의 아닌 많은 오해들이 생겨났다.
그간 유교나 불교의 철학을 통해 '도'를 얘기한 자 많았고, 현대에 이르러서는 기독교의 정신과 결부 짓는 이 또는 서구 철학의 정신, 나아가서 힌두의 세계관에서 도를 말하기도 했다. 다양한 입장에서 다양한 생각을 얘기했음이니 세상을 보는 눈과 행복에 이르는 길은 더 풍부해졌지만 더러는 '도'로부터 더 멀어진 면도 있다.
필자가 여기서 '도'에 대해 하는 얘기가 감히 정답이라고 얘기할 자신은 없다. 다만, 여러분들이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 '도'에 대해 생각하고 행복의 길을 열며 스스로를 정리할 수 있는 간략한 단초로서 '도'란 무엇인가에 대해 얘기하고자 할 뿐이다. 아주 단도직입(單刀直入)적으로 말이다.
'도'란 무엇인가?
'도'란 계절의 순환이고 그 순환을 경험하는 인간들이 느낄 수밖에 없는 세상의 자연스런 이치이다.
봄이면 만물이 태어나고 여름이면 약동하며, 가을이면 시들고 겨울이면 어느새 사라진다. 하지만 이것이 '도'는 아니다, 그냥 단막극일 뿐이다.
중요한 점은 겨울에 사라졌던 만물이 봄이면 다시 등장한다는 데 있다. 이로서 영원한 순환의 고리를 이어가니 그로써 '도'가 된다.
계절의 순환, 즉 '도'는 만물을 낳고 기르며 때가 되면 죽인다. 죽이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다시 낳는다.
수 십 년을 사는 인간은 한 해의 순환으로 생성소멸을 마치는 것이 아니니, 계절의 순환으로부터 벗어나 있다는 착각, 강 건너 불구경이라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인간의 수명도 결국은 한정되어 있다.
수 십 년에 걸치는 생명이지만, 그 또한 자연의 순환처럼 태어나 자라서 성숙하면 또 다시 늙고 병들어 죽는 것이 삶의 본디 모습 아니겠는가. 죽음은 개인에게는 모든 것의 끝이지만, 자식을 낳아 생명을 이어가니 종국에 가서는 순환인 것이다.
개체로서는 유한(有限)이지만 생명 그 자체는 불멸(不滅)인 것이다. 이 두 가지를 모두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도'의 온전한 모습을 보는 것이다.
개체로서 우리는 유한(有限)함을 알기에 무한(無限)을 바란다. 이 지점에서 욕망은 출발한다.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궁극에 가서 유한을 유한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개체를 떠난 마음, 즉 비운 마음으로 세상을 보면 도의 묘한 이치를 볼 것이요, 개체의 욕망으로서 본다면 그 언저리를 보는 것이라고 노자는 말하고 있다. 도덕경 첫 부분에 실린 문장, '상무욕이관기묘, 상유욕이관기요 (常無慾以觀其妙, 常有慾以觀其徼)'가 그것이다.
따라서 생명 현상의 유한함과 불멸함을 함께 보는 것이 바로 '도'를 보는 온전한 시각이다.
이에 대해 노자는 '이 두 가지는 같은 것에서 나와 다르게 불리는 것이지만, 이 두 가지를 하나로 볼 수 있다면 오묘함을 얻은 것이다. 이 오묘하고도 오묘한 이치는 모든 신비(神秘)의 실체로 들어설 수 있는 문(門)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다시 돌아와서 얘기지만, '도'는 계절의 순환이고 그 순환의 수레를 타고 생명은 생성(生成)과 소멸(消滅)을 거듭한다.
하지만 소멸로서 끝이 아니고 또 다시 때가 되면 태어나며 이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한다.
변하는 순환의 과정은 어느 한 순간도 같은 것이 없지만 전체로서의 순환 그 자체는 변함이 없으니 변하는 그 모습이나 전체로서 변함이 없는 그 모습이나 모두가 '도'인 것이다.
'도'는 이처럼 지극히 단순한 것이고 그 단순함에 대한 통찰이기에 아득한 세월 전에 노자가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지금까지의 말을 이해했다면 도를 깨쳤다 하기에는 다소 무리이지만, 이미 노자가 말한 중묘지문(衆妙之門)에 들어선 것이다.
이미 문안으로 들어섰으니 그럼 좀 더 진도를 나가보자.
'도'를 인식하는 것이 왜 중요한가?
이 세상 어느 것도 배워서 쓸 데가 없으면 배울 필요가 없는 것이다. 배운 것은 뽑아먹고 우려먹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도'에 대해 배우는 것도 쓸 데가 있어야 하고 또 당연히 쓸 데가 있다. 있어도 제법 크게 있다. 쓰기에 따라 무한정 무진장인 것이 '도'이기 때문이다.
'도'에 대해 잘 알게 되면 얻을 수 있는 그 공용(功用)은 대략 다음과 같다.
무엇보다도 한 번 얻은 삶을 잘 누리다 갈 수 있으니 그것이 하나이다.
다음으로 세상의 그 어떤 것이든 그 변하는 이치, 생겨나고 성숙하며 때가 되어 시들고 결국 없어져버리는 모든 과정과 단계를 알 수 있어 그로서 세상을 내다볼 수 있게 되니 매사에 여유가 있게 된다. 그것이 둘이다.
또 나아가서 변화를 보아 그 기미(機微)를 휘어잡으면 크건 작건 이득도 볼 수 있으니 그것이 셋이다.
그리고 변화의 과정을 알게 되면 스스로의 나아감과 물러섬, 즉 진퇴(進退)를 자유자재할 수 있으니 그것이 넷이다.
마지막으로 영문 모르고 온 세상이지만 갈 때가 되었다 해도 그리 애태우지 않고 편히 갈 수 있으니 그것이 다섯이다.
이만하면 '도'를 알고 배울 만한 가치가 충분하지 않은가!
그럼 다음 글에서는 '도'의 실제 운행하는 이치가 무엇인지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겠다.
그리고 어느덧 필자의 이 칼럼도 오늘로서 299 회를 채우고 있다. 이제 슬슬 정리하기 시작해야 한다고 여긴다.
필자의 계획은 360회, 원의 내각이 360도이고 한 해의 어림 숫자인 360일, 60 갑자가 여섯 번 돌아가는 회수에 맞추고자 한다. 따라서 앞으로는 속도를 좀 올려서 한 주에 한 번이나 두 번 정도 글을 올리고자 한다.
간단히 앞으로의 글 내용에 대해 간단히 밝히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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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가 또 다시 휘청거리고 있지만 겁먹을 필요 없다. 우리 증시는 내년이나 후년 초까지 어떻게 해서든 3300-3400 포인트 정도까지 상승하도록 프로그램 되어 있으니, 이번 조정에서 얼마를 내리든 마지막 바겐세일 기간이 될 것이다. 이 기간에 잘 사면 재미를 볼 것이다.
(전화:02-534-7250, E-mail :1tg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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