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적인 해상정원을 만든 주인공이 있습니다. 바로 외도의 최호숙 여사인데요. 오늘 박인규의 집중인터뷰에서는 최호숙 여사와 함께 외도에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 비결은 무엇인지 외도를 가꿔온 지난 30여 년 간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최호숙 여사입니다!
최호숙 여사는 1936년 경기도 양주 출생으로 57년 서울 사범학교를 졸업 후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했고 이화여대에서 시청각교육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69년 우연한 기회로 남편과 함께 거제도 남쪽의 작은 외딴섬 외도를 사서 섬 개척을 시작했으며.. 몇 차례 시도했던 농장의 연이은 실패와 해마다 겪는 태풍으로 인한 좌절을 딛고 30여 년 만에 아름다운 해상공원 외도를 가꾸어냈습니다. 1995년에 문을 연 '외도보타니아'는 해마다 1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방문해.. 최근 관광객 1000만 명을 돌파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박인규 : 우선 축하드리고요, 12년 동안 천만 명, 최근에는 연간 백만 명. 대단한 숫자인 것 같은데요, 캐나다의 유명한 부차드가든이라고 있다던데 거기보다도 많다고 해요.
최호숙 : 거기보다는 아마 조금 위에 있다고 봅니다.
박인규 : 지난 30년 동안 고생해오신 걸 생각하면 감개가 무량하시겠어요.
최호숙 : 그렇죠. 정말 누구나 고생 안 하고 사는 사람 있겠습니까 다 고생하고 사는데, 이런 천만 명이라는 손님들이 우리 정원에 왔다 가셨다는 게 기적이고 감사할 일이죠.
박인규 : 천만 명을 돌파하던 날, 천만 명째 되시는 분께 기념품도 드리고 여러 가지 행사를 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그 날 좀 어떤 느낌이셨어요?
최호숙 : 참, 이래서 이런 걸 하는 보람이 있구나. 굉장히 보람도 있고 또 한편으론 앞으로 어떻게 실망하지 않고 더 잘해서 어떻게 손님들한테 멋지게 더 다가가야 되고 우리가 이런 영광을 계속 누릴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도 많이 했습니다.
박인규 : 1969년부터 남편 되시는 분과 가꿔왔는데 제가 알기론 몇 년 전에 돌아가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로 생각 많이 나셨겠어요.
최호숙 : 그렇죠. 우리 영감이 그 자리에 있었으면 더 빛나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박인규 : 저는 사실 외도 근처는 많이 갔었는데 때가 안 맞아서 들어가보진 못했고 밖에서만 봤습니다. 그 작은 섬에 연간 천만 명이면 하루 평균 3천 명 이상 오신다는 건데, 이렇게 많이 오시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최호숙 : 저희들이 시작할 때 그렇게 많은 손님이 오시리라고는 생각을 못했었고요. 어떤 우리나라의 섬문화가 아직은 정착된 게 없고, 또 이런 섬에다가 식물원이라는 걸 처음 보는 것 같아서 , 그런 바다와 산과 아름다운 식물이 조화를 이룬 그런 혜택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박인규 : 외도라는 이름은 얼핏 보니까 바깥섬. 그런 뜻인 것 같은데 사실 그렇게 예쁜 이름은 아닌 것 같습니다. 여기가 거제도도 가깝죠?
최호숙 : 그렇죠. 거제도에서 제일 남쪽에 바깥에 있는 그 등대 바깥에 있는 섬인데, 옛날에는 바깥에 있는 섬이라고 해서 밖섬, 그런데 발음이 힘드니까 그냥 그대로 외도 외도 하는데
박인규 : 외도가 있으면 내도도 있습니까?
최호숙 : 내도도 있습니다.
박인규 : 저는 외도를 들어가보진 못하고 주변에서 배를 타고 한 번 돌아봤는데 상당히 높더라고요. 접근하기가 쉽지 않겠다는 느낌이 들던데
최호숙 : 해발 한 80미터쯤 됩니다. 한쪽이 조금 경사진 데가 있어서 그리 선착장을 해서 올라가시죠 손님들이
박인규 : 현재 외도라는 섬의 크기가 어느 정도 되고, 거기에 최여사께서 심으신 식물들이 어느 정도 되는지 소개 좀 해주시죠.
최호숙 : 저희가 한 건 한 48000평 되고요, 저희가 심은 건 수천 종이지만 심었다고 다 되는 게 아니고 항상 자라다 죽기도 하고 우리는 태풍의 영향을 많이 받으니까 그런 태풍이 한 번 오면 식물들이 많이 죽습니다. 그러면 그 보존을 위해서 태풍이 올 땐 그런 것까지도 다 준비하죠. 이것이 희귀한 식물이고 특이한 건데 이게 죽으면 어떻게 될까, 가지도 꺾어서 다시 해놓고 남이 알지 못하는 노력들로 인해서 유지를 하는 겁니다.
박인규 : 말하자면 우리나라 토착식물뿐만 아니라 외국의 이국적인 식물을 많이 심으셨는데 그 중에 살아남은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고
최호숙 : 손님들이 그래요. 자생식물 좋아하시는 분도 많이 계시지만 자생식물을 하는 데 가 참 많거든요. 그런데 이런 외국 식물이나 아열대, 남극 식물을 노지에 심어서 하는 데는 없습니다. 그래서 아열대성 기후가 맞는 우리 거제도만이 할 수 있는 것이고요
박인규 : 아열대 식물 중에서 외도에 말하자면 뿌리를 내리고 살아남은 게 대략 몇 종쯤 됩니까?
최호숙 : 꽃들은 항상 2년생 3년생 이런 건 상관없는데, 나무들은 굉장히 온도에 따라서 살고 죽기 때문에 굉장히 특이한 열대식물을 키우기 위해서는 온실로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것도 있고 그래서 그런 노력이 많이 필요합니다.
박인규 : 해마다 100만 명. 한 분이 10만원을 쓴다고 하면 천억 원의 경제효과다, 그래서 외도가 거제도를 먹여살린다는 말도 있던데 그런 인사를 많이 받으시겠습니다.
최호숙 : 그런 얘기들이 신문에도 나고 인터뷰에서도 나는데요, 그런 것보다도 굉장히 거제도... 또 거제도 하면 외도, 그래서 시너지효과가 있는 건 사실이겠지만 제가 디테일한 계산은 해보지 않고요. 시너지효과가 좋았으면 좋겠습니다.
박인규 : 부군 되시는 분도 그렇고 최여사도 원래는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다고 하셨는데 69년에 어떻게 해서 외도로 들어갈 생각을 하신 겁니까?
최호숙 : 그 당시에는 큰 정보들이 없고 컴퓨터도 없었고요, 영감이 낚시를 굉장히 좋아했어요. 그래서 낚시를 갔다가 파도에 떠밀려서 외도라는 섬에 정박하게 됐는데 그 분위기가 인상적이어서 이런 걸 샀으면 좋겠다. 여기서 고기나 잡고 살면 좋겠다, 이런... 친구하고 둘이서 이런 얘기를 했대요. 그 당시는 섬에 있는 분들은 다 뭍으로 나가는 게 꿈이었거든요. 누구나 다. 그래서 그 당시 어느 할아버지께서 이것 좀 사라고. 나 죽기 전에 도시에 가서 살고 싶다. 그래서 그게 인연이 돼서 먼저는 그 할아버지 땅을 하나 산 거죠. 늙으면 낚시나...
박인규 : 섬 전체를 산 게 아니고
최호숙 : 그렇죠. 그런데 섬에서 한두 사람 빠져나가다 보니까 계속 자기네들이 살기 힘드니까 또 이렇게 해서 28치인가, 필치가 그렇게 많았어요. 그냥 이렇게 이렇게 화전밭 식으로 그 안에... 고구마밭도 있고 채소밭도 있고, 그런 걸 한 3년에 걸쳐서, 그것도 운명인 것 같아요. 뭘 알고 한 게 아니라 거리 같은 걸 하나도 생각을 안 하고 그저 좋다는 것만 가지고 정보도 없고 또 섬이라는 건 살아본 경험도 없으니까 얼마나, 일을 저지른 거죠.
박인규 : 처음부터 해상식물원을 만들겠다, 그런 계획은 아니었다고 들었습니다.
최호숙 : 그런 건 아니고 농장 하려다가요. 왜 남자들이 농장 하고 싶어하잖아요. 여자들은 시골에 가면 일하기 싫어서 안 하지만 남자분들은 그런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농장을 하나 꾸미고 싶다. 그리고 노년 보내고 싶다. 그리고 거기서 낚시하고 싶다. 그래서 간단하게 생각한 거죠.
박인규 : 감귤농장, 돼지농장 이런 거 시도하셨는데 다 실패하셨다고
최호숙 : 감귤 농장은 그 당시 어느 신문에 거제도도 제주도 같이 밀감이 된다, 이런 게 눈에 띄었을 때 눈이 번쩍 띄었고. 그러다가 밀감이 어느 때 한파가 세게 추위가 와서 다 얼어 죽으니까 어떡하나 했는데 누가 또 돼지를 키우면, 그래서 그것도 시작했어요. 그랬더니 이게 유통이 안 되잖아요. 섬에서는 나르려고 먹이도 날라야 되고 그래서 한 100마리 1년 동안 키웠는데 그것도 다 실패했죠.
박인규 : 그럼 지금의 해상식물원으로 해야겠다고 마음먹으신 때는 언젭니까?
최호숙 : 그건 동백나무를 길러도 보고 자체운영을 좀 하고 싶어서, 그러다가 그것도 안 되니까. 그런데 약간 관광의 붐이 그 당시 조금씩, 관광이라는 걸 그 전엔 몰랐는데 뱃놀이 수준의 관광이었지만 손님들이 해금강을 돌아다니더라고요. 그래서 아 여기다 이걸 해보자, 그러고선 했는데 아마 그게 이 식물원의 기초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있어요. 돼지 기르고 하면서 밀감농장 하던 그 흔적들이 남아서 외도가 다른 데하고는 다른 농장으로 기억들을 하고 가고 구경을 하시죠.
박인규 :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입장료 받는 섬이라고 알려져 있던데
최호숙 : 뭐 시설이 없으니까요. 그리고 오시는 분들은 꼭 배를 타야 되니까. 그래서 거리도 멀고 배도 타셔야 되고 또 우리는 여러 가지를 관리하니까 힘도 들고. 그리고 개인이고 하다 보니 입장료를 받고 있죠.
박인규 : 30여 년간 가꾸셨기 때문에 어딘들 정이 안 가는 데가 없겠지만 외도 중에서도 특히 여기는 자랑할 만한 데다, 아름다운 데다, 어떤 뎁니까?
최호숙 : 저희가 자랑은 아니고 하다 보니까 남의 흉내도 내고 자연에 맞춰서 하다 보니까 비너스가든이 있거든요. 그게 아마 외도를 대표하는 가든이 될 것이고. 또 천국의 계단이라는 게 있어요.
박인규 : 비너스가든이라는 데는 희귀한 식물을 많이 심어놓은 데인가요?
최호숙 : 거기는 주로 잔디와 동백프레임을 통해서 조각하고 어프로치를 시킨 것이죠. 그래서 좀 더 이국적이고, 사람들이 불란서나... 뭐 이렇다고 얘기하는 것이 아마 그 비너스가든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인규 : 그리고 천국의 계단은 어떤 뎁니까?
최호숙 : 천국의 계단은 거기가 다 45도 이상의 경사기 때문에 편평한 밭이 없어요. 그래서 계단에 돌을 쌓아서 죽 내려오면서 또 올라가면서 꽃을 볼 수 있는 그런 것을 사람들이 좋아하시더라고요.
박인규 : 제가 매낸 외도 근처에 마산을 갈 일이 있어서 친구가 외도를 가보라고 권했는데 3월 초에 갔더니 지금은 가봐야 별로 안 예쁘다, 그러면서 5월을 얘기하던데 5월이 가장 좋을 땝니까?
최호숙 : 4월 15일에서 5월이 제일 좋죠. 5월은 육지에도 많은 꽃이 있습니다만 그 꽃들이 다르죠. 왜냐면 바다와 이런 조화를 이루다 보니까 육지에서 보는 것과 다르고
박인규 : 외도의 꽃 중에는 우리나라에서 볼 수 없는 이국적인 꽃들이 많을 거 아닙니까? 그 중에서도 관광객들에게 권하고 싶은, 이 꽃을 꼭 봐야 된다 이런 게 있습니까?
최호숙 : 물론 해마다 다르죠. 그 중에서 '보틀브러시'라고 '병솔'이라는 꽃은 정말 환상적인 꽃입니다. 그것도 옛날엔 우리가 보지도 못한 건데 그런 것들이 시장에서 일반화돼서 볼 수 있는 거지만 아직도 좀 희귀하죠. 그런 것들이 이제 나무로 자라고 있고요. 예를 들어서 발렌타인자스민이라든가, 그렇지 않으면 여러 가지 꽃들이.. 남극식물입니다 이게 보통. 그러면 남극식물들은 굉장히 색깔이 정열적인 게 많습니다. 열대지방... 굉장히 꽃 색깔들이 정열적이죠. 그래서 우리는 아주 작은 꽃도 좋지만 눈에 탁 띄어서 관광객들이 쉽게 보고 사진도 찍을 수 있고. 새로운 꽃들을 보고 가신다는 건 새로운 지식이 하나 얻어지는 거거든요. 그래서 그런 것들을 해마다, 금년엔 뭘 주제로 해서 멋들어지게 사람들이 구경하고 갈 것인가에 대해서 항상 생각을 합니다.
박인규 : 말하자면 테마를 바꾸시는군요. 지금 가을에는 별로 볼 만한 꽃은 없겠네요
최호숙 : 가을이 참 멋있어요. 가을에는 나무꽃들도 늦도록 피는 것도 있지만 세이지 종류가 참 멋지게 핍니다. 세이지 종류도 몇 십 가지거든요. 그런 것들이 굉장히 보랏빛을 띠고 강렬한 바다색과 조화를 해서 가을이 좀 여름엔 좀 덥고요. 가을이야말로 여행하기 제일 좋고, 또 와서 꽃도 굉장히 새로운 꽃들을 볼 수 있는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박인규 : 해상정원에 오신 분들이 거길 보다 보면 보고 나가기보다 여기서 하룻밤 자고 싶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은데 잘 수는 없습니까?
최호숙 : 그런 분들이 많아요. 그런데 저희가 그런 숙박시설이 없으니까요, 정말 안타까워서 이런 데서 하루 자고 가야지 멀리서 와서 그냥 가기 뭣하다고 하는데 그 건너에 요즘은 많은 숙박시설이 있으니까요. 저희는 좁은 데서 또 이렇게 손님들을 맞이하려면 여러 가지 우리가 준비할 게 많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런 모든 것이 좀 자연스럽질 않아서 그냥 지금 이 스타일로 우리가 해야 되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박인규 : 아직은 당일 들어갔다가 나올 수밖에 없는
최호숙 : 그렇죠. 한 시간 반 동안 들어갔다가 그냥 나오시는 거죠.
박인규 : 최호숙 여사는 지금도 외도에서 생활하십니까 어떠십니까?
최호숙 : 저희는 항상 살지만 요즘엔 서울도 왔다 갔다 하고, 또 거제도도 왔다 갔다 하면서, 저는 뜨내기 같이 왔다 갔다 해야 새로운 것도 보고
박인규 : 많은 연구를 하시는군요 다니시면서.
최호숙 : 그렇죠. 나름대로 연구죠.
박인규 : 부부 두 분이서 한 섬을, 작은 섬이지만 아주 아름다운 해상정원으로 가꾼다는 게 참 쉬운 일은 아닌데 어떤 기업이나 지방정부의 도움도 없이 어떻게 해서 가능했다고 생각하세요?
최호숙 : 특별한 솜씨로 한 게 아니고, 우리 보통 사람들이. 또 우리 영감은 학교 수학선생을 했고 나는 초등학교 선생 18년을 했는데 내가 무슨 특별히 환경이, 전공을 한다든가 환경적으로 도움받은 건 아니고요. 외도라는 이 척박한 섬을 우리에게 쥐어지다 보니까, 갖고 있다 보니까 거기에 대해서 연구와 노력과 살기 위한 여러 가지 발버둥을 치다 보니까 아마 다른 분들이, 아, 이게 자기네도 좀 할 수 있고. 또 이렇게 자연스럽고 바다가 있고 그러니까 좀 다른 곳보다는 감명을 받으신 것 같아요. 그런 게 아마 좀 새롭지 않았는가, 누구나 노력 다 하지만 참 행운이죠 저희에게는.
박인규 : 행운이라고 하십니다만 30년 동안 들어간 공이 있었으니까 가능했겠죠.
최여사께서 외도 들어가실 때가 30대셨던 것 같은데, 선생님이셨고. 그동안 해상정원을 가꾸셨으면 사실은 꽃이나 식물에 조예가 있으셨어야 되는데 그전에 그런 경험이 있으셨나요?
최호숙 : 그런 건 없었고 호기심을 많이 가졌죠. 제가 경기도 양주군 회천면 봉양이라는 시골에 살았는데, 6.25전쟁 이후 그 동네에 미군부대가 고개를 넘어 들어왔었어요. 거기서 미군들이 그 당시 우리나라에는 잡지가 없었고요. 그래서 그 미군들이 보고 쓰레기 버린 걸 쓰레기통에서 주워서 거기서 세계의 패션이나 그런 걸 18살에 처음으로, 문화적인 충격을 굉장히 많이 받았죠. 그래서 군인들이 듣고 다니는 fm라디오라는 것도 봤고 또 컨트리송이라는 것도 들었고. 그래서 저의 안목이랄까, 이런 생각이 박힌 건 미군부대들이 들어오는 기지촌에서 얻은 것이 아마 제 배경이라고 할 수 있죠. 그래서 음악도 좋아하게 되고 호기심이 더 많아졌죠. 그 그림을 통해서
박인규 : 뭔가 서양적 문화에 대한 동경 같은 게 있으셨군요.
최호숙 : 아마 저도 그랬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런 게 많았죠. 그래서 그것에 대해서 패션에 대해서도 좀 알았고 저녁마다 헌 잡지를 초롱불 밑에서 보면서 아마 거기에서 어떤 꽃이라든가 이런 걸 많이 봤어요. 새로운 꽃이 있다는 걸. 그래서 다른 사람보다는 정기적으로 공부하지 않아도 그런 어떤 문화가, 예술의 전당이나 이런 데서 꽃피는 게 아니라 시골 마을에서도 호기심이 많았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박인규 : 호기심도 많았지만 그걸 또 현실로 옮길 수 있는 의지 같은, 끈기가 필요했겠죠.
최호숙 : 저는 하여튼 그렇게 열심히 새로운 일이 좋더라고요.
박인규 : 요즘 소득수준이 올라가면서 웰빙이라고 하죠, 참살이라고도 하는데 뭔가 무인도를 사서 나만의 공간을 만들어 보겠다, 이런 분들이 많다고 해요. 그런데 사실 섬을 사서 가꾼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은데, 선배로서 만약에 무인도를 사서 자신의 공간으로 가꾸려면 어떤 걸 조심해야 된다든가 이런...
최호숙 : 땅 갖고 계신 분들은 많은데 어떻게 해야 되나. 요즘엔 디자이너들도 많으니까 큰 문제는 아니지만 제가 항상 이런 걸 하시고 싶으면 여행을 좀 많이 하십시오. 해외여행도 중요하지만 우리나라도 이제 국내에도 볼거리가 많으니까 여행을 많이 하면서 그려보십시오. 그림을 못 그려도 나는 뭘 하고 싶다는 거, 그래야 더 즐겁습니다. 누가 해준 것보단 내가 그래도 뭘 하고 싶다는 의지가 중요하니까. 그리고 그 나머지는 요즘엔 꽃도 일반화된 게 많으니까 일단은 뭘 하고 싶은지를 제가 항상 권하고. 재밌다고 하죠 제가, 물귀신작전으로 이런 것을 많이들 흥미를 가지고 들어와야 동료가 생기는 거 아닙니까? 그래서 제가 항상 추천하죠 좋다고. 건강관리도 잘 되고 명퇴도 없고 아주 좋은 거라고 그러죠.
박인규 : 우선 머릿속에 자기가 어떤 공간을 원하는지 그려야 되겠군요.
최호숙 : 그래야 더 즐겁죠 일하기가.
박인규 : 그런데 현실적으로 전력이라든가 물이나 상하수도시설, 여러 가지 위생시설이라든가 그런 게 불편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데 그런 건 큰 문제는 없습니까?
최호숙 : 예를 들어, 그렇다고 생각해요. 원시시대에도 우리가 살았듯이 인간은 다 적응하게 마련인 것 같습니다. 불편하지만 끝없이 발전해가면 끝없이 그것만 쫓아다니잖아요. 모든 걸 포기하면 컴컴한 섬에서도 행복합니다.
박인규 : 또 그런 편의시설이 없는 것도 나름대로 사는 멋이 될 수가 있다.
이제 천만 명이 됐으니까 외도보타니아 해상식물원의 새로운 시기가 열린 것 같은데, 앞으로 외도보타니아를 더 가꾸기 위한 나름대로의 계획이 있으실 것 같은데
최호숙 : 꽃이나 이런 것들은 어느 정도 경험들이 축적돼 있으니까 큰 문제는 아니고요. 이제는 좀 문화적으로 음악적으로 이런 걸 좀, 섬문화하고 어프로치 시켜서... 그래서 지금 현재 야외음악당, 그래서 좀 색다른 음악당을 하나 지어서 한 번 운영해 보는 게 꿈이 아닌가 해서요. 그런 면에서 접근하고 있고 또 지금 국립공원 안에는 우리가 하고 싶다고 하는 게 아니에요. 굉장히 인허가가 까다롭습니다. 그래서 허가는 들어갔지만 다시 반환된 서류도 많아서, 차차 그걸 풀어가면서 해야지요.
박인규 : 야외음악당은 언제쯤 완공됩니까?
최호숙 : 그게 이번 10월에 착공했으니까 아마 한 2년 후쯤 될 것 같아요. 2년 후면 어떤 한 프로를 좀 해서 유명한 곳으로 만들고 싶죠.
박인규 : 끝으로 혹시 못다 하신 말씀 있으시면 해주시죠.
최호숙 : 이런 관광사업을 하다 보니까, 우리나라의 관광수준이 세계화되지 않았습니까? 도시에서 시골까지 다 해외관광을 하는데. 우리 국가에서도 이제는 외국관광객 모셔오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나라의 관광객들을 우리나라에서 수용하는 것, 이런 것도 굉장히. 볼 만큼 많이 봤으니까, 그래서 우리가 더 박차를 가해서 잘 해야만 국제화도 물론이지만 국내관광도 더 안정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인규 : 최호숙 여사를 보니까 관광사업이라는 건 돈이 많거나 힘이 센 기업이나 지자체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개인이라도 아이디어가 있고 그걸 옮길 수 있는 끈기가 있으면 얼마든지 관광사업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최호숙 : 이건 좀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고 자기 취미하고 연결할 수 있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우리나라는 3300개 섬이 있는데 이걸 좀 더 잘 조화시켜서 하면 우리가 외국 나가지 않아도 우리나라 솜씨들이 좋지 않습니까, 그래서 될 것 같아요.
박인규 : 앞으로도 외도보타니아를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해상식물원으로 키워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최호숙 : 고맙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오늘은 외도보타니아 최호숙 사장과 함께 외도에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 비결은 무엇인지, 외도를 가꿔온 지난 30여 년 간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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