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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주·김계관이 환송연에 왜 나왔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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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강석주·김계관이 환송연에 왜 나왔겠나"

[인터뷰] 정상회담 다녀온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노무현 대통령이 2박 3일간의 남북정상회담 일정을 마치고 4일 밤 서울로 돌아왔다. 이로써 '2007 남북정상선언'이라는 결과물을 남긴 정상회담이 막을 내렸다.

<프레시안>은 이번 남북정상회담의 성과와 한계, 2007 남북정상선언의 의미, 현장의 생생한 소식을 듣기 위해 정상회담 특별수행원으로 평양에 다녀온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을 만났다.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 상임의장 자격으로 대표단에 포함된 정세현 전 장관은 인터뷰에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정상회담 도중 일정을 연장하자고 제안한 이유, '정상선언'의 의미, 평양의 분위기 등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다음은 4일 밤 청와대 부근의 한 음식점에서 있었던 정 전 장관과의 인터뷰 전문이다.

-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노무현 대통령의 평양 일정을 하루 연장해 달라고 말한 이유는?

"노무현 대통령이 도라산 보고회에서 '3일 오전 1차 정상회담에서는 난감하고 답답한 얘기가 나왔다'는 식으로 말했다. 김정일 위원장이 북측의 입장을 강하게 얘기한 것 같다. 또 노 대통령도 자기 얘기를 굽히지 않는 성격이니까 김 위원장이 듣기에 답답한 얘기를 많이 했나 보다. 그러니까 김 위원장이 '오늘로 못 끝나겠다. 얘기를 매듭지으려면 하루 더 얘기해서 끝을 내야 하지 않겠냐'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우리 대표단에서는 어찌됐건 끝장을 보자는 얘기니까 그건 나쁘지 않은 반응이라는 말이 나왔었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

- 김 위원장이 강하게 얘기한 건 어떤 내용인가?

"내용을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한 가지 유추할 수 있는 것은 같은 시간에 있었던 7개 부문별 회의에서 나온 북측 대표단의 말이다. 북측 인사들은 7개 분과에서 일제히 '왜 남측은 민족중시 입장을 취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올 코트 프레싱'으로 압박했다. 내가 7개 분과 간사 대표를 해서 잘 안다. 김 위원장도 아마 그러지 않았을까 싶다."

- 민족중시 입장이란 건 포괄적인 의미인가, 아니면 예컨대 남측이 6자회담과 남북관계를 연계시켰다는 것에 관해 비판한 것인가?

"전자다. 2000년 6.15공동선언 이후에도 남측 언론들이 반북적인 보도를 하는 등을 따지면서 민족중시라는 자세와 원칙이 없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기능주의적으로 접근해서 쉬운 일을 먼저 하고 어려운 일을 하자는 입장이지만 북측은 반대다. 언제나 '톱다운' 식이다. 경제협력을 해도 먼저 원칙을 합의하고 그 테두리 안에서 하자는 식이다.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도 전날(2일) 노 대통령을 만나서 그런 얘기를 길게 한 모양이다. '미국 핑계 대지 마라, 개성공단 하자고 했으면 빨리 해야지 자꾸 6자회담 얘기하고 바세나르협정 얘기하면 안 된다. 그건 민족중시 입장이 없어서 그런 거다'라는 얘기 말이다.

그런 식의 얘기가 그 이튿날까지 계속됐고, 김 위원장도 오전 정상회담에서 노 대통령에게 그런 말을 하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노 대통령이 '민족공조와 국제공조가 양립될 수 있는 거다'는 식으로 얘기하니까, 김 위원장이 회담을 하루 더 해서라도 얘기를 끝내자고 말한 것이다."

- 그렇게까지 입장 차가 있었는데 공동선언이라는 결과물은 어떻게 나왔나?

"합의문이 나온 것으로 볼 때 민족중시를 먼저 얘기한 것은 결국 북측의 전형적인 협상 유형이었다는 결론이 내려진다. 북측은 언제나 원칙적인 얘기를 먼저 해서 심리적으로 압박을 하고 실질적인 얘기는 나중에 한다.

또 지난달 30일 합의되고 각국의 승인을 기다리던 6자회담 2단계 합의에 대한 미국의 최종 결정을 보기 위해서 시간을 끈 측면도 있다. 그러다가 김 위원장이 오후에 김계관 외무성 부상(6자회담 북한 수석대표)을 불러 미국도 긍정적이라는 보고를 받고 나서 '좋다. 그렇다면 남측이 가져온 여러 좋은 구상을 한 번 해보자'고 판단했을 것으로 보인다."

- 김 위원장이 오전에 통일 문제를 들고 나와서 남측을 압박했다는 해석도 있었는데

"과도한 추측이다. 정상선언을 보면 정상회담 수시 개최, 장관급회담의 총리급 격상, 경제협력추진위원회의 부총리급 격상, 의회 대화 등이 들어 있다. 그 회의체를 한 덩어리로 보면 일종의 '낮은 단계 남북연합'이다. 그렇게까지 합의했는데 통일 가지고 얘기할 필요가 뭐가 있겠나. 지금 연방제를 주장한다고 해서 북한에 득 될 건 하나도 없다."

- 작년 미사일 발사 후 쌀 차관 중단한 것에 대해서는 문제 삼지 않았나?

"북도 섭섭한 감정이야 있겠지. 그렇지만 국제관계에서 그런 건 금방 잊어버린다. 올해는 특히 수해 때문에 식량 100만 톤을 못 거두게 되어 전체 필요량의 반 밖에 생산하지 못하게 됐다. 그걸 상당부분 보조해줄 능력과 의지를 가진 곳은 남쪽 밖에 없다. 작년에 나온 구원(舊怨) 때문에 그 기회를 놓치면 바보다."
▲ ⓒ프레시안

- 그렇다면 이번 정상선언에 합의한 것은 쌀 지원이 급했기 때문으로도 해석될 수 있을 것 같다.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에 서명해 놓고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던 것처럼 쌀만 받고 정상선언 이행을 게을리 할 가능성은 없나?

"정상선언 이행이 절실한 것은 남이 아니라 북이다. 정상선언에 협조만 한다면 투자성 지원도 들어오고 나쁠 게 없다. 우리는 정상선언에 따른 경제협력을 해 주는 대신 군사적 긴장완화라는 손에 잡히는 결과를 가져오면 된다. 따라서 기본합의서 때와 같은 일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기본합의서가 이행되지 않은 것은 북한 때문이 아니었다. 북한을 편들자는 게 아니다. 그런 해석은 북한만을 액터(행위자)로 보는 잘못된 시각이다.

당시 북한은 기본합의서를 만들어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북미관계 개선으로 넘어간다는 중장기 전략을 가지고 있었다. 기본합의서 서명 후에는 북미관계 개선을 위해 92년 김용순 비서를 미국에 보내 '주한미군이 한반도에 있어도 상관없다'라는 말까지 했다. 그런데 미국은 북미관계 개선에 대한 북의 요청을 거절했고, 나아가 핵문제로 압박했다.

미국이 핵문제를 거론하자 남쪽에서도 92년 말 보수 진영의 반발이 나왔다. 기본합의서 체결의 중요한 조건은 팀스피리트 군사훈련 중단이었는데, 92년 10월 정권 말 상황에서 국방부가 청와대와 상의도 없이 93년 팀스피리트 훈련을 재개한다고 북에 통보해버렸다.

미국은 상대 안 해주고, 남쪽은 미국의 대북 압박에 편승해 팀스피리트 훈련을 다시 시작하니까 북한 입장에서는 기본합의서의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행이 잘 안 된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미국과 한국이라는 액터들의 태도가 좋다. 미국은 조지 부시 대통령 임기 안에 북미수교까지 할 수 있다는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북으로서는 이 시기를 놓치지 말아야 하는데, 그러다고 한국을 건너 뛰어 미국에 갈 수 없다는 것도 분명하니까 이번 정상선언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북도 '통미봉남(通美封南. 미국과만 소통하고 남한은 배제하는 정책)'이 아니라 '통남통미(通南通美)'를 해야 한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 핵문제에 의외로 쉽게 동의한 것 같다.

"정상선언에 협조만 한다면 여러 가지 혜택이 온다는 것, 그리고 남쪽이 정상회담에 임하면서 제일 고심했던 게 핵문제라는 것을 북도 알고 있다. 그 두 가지를 다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남쪽에도 일종의 '생색'을 내줄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물론 핵문제라는 것은 어차피 미국과 얘기하는 것이지만.

핵문제를 확실히 못 박지 못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지만, 6자회담 2단계 합의문이 몇 시간 전에 나왔는데 거기다 뭘 더 얹나. 이행하면 되는 거지.

오늘 김계관 외무성 부상한테 물어보니까 자기들은 이번 6자회담 합의문에 아주 만족한다고 했다. 북이 해야 하는 불능화는 연말까지라는 시한이 명시됐고, 미국이 해야 하는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는 연말이라는 문구 대신 불능화와 연계한다고만 명시됐더라도 상관없이 (이행)하겠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 환송 오찬에 핵협상 라인인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과 김계관 부상을 앉혀 놓은 것은 핵문제와 관련해 남쪽이 가지고 있는 불안한 시선을 의식한 것이다. 남북관계와 핵문제를 연계해서 해결하겠다는 상당히 의미심장한 사인이다. 2000년 정상회담 때는 핵협상 라인 사람들이 안 보였다."

- 이번 6자회담에서는 수석대표들끼리 합의문을 타결해 놓고도 본국의 승인을 받는 시간을 뒀는데 북한 때문은 아니었던 건가?

"미국 때문이었다. 그런데 미국도 부시 대통령이나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을 설득해야 하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니었다. 시리아-북한 핵협력 커넥션 의혹을 제기하는 네오콘(신보수주이자), 북미관계 개선에 대한 불안한 시선, 북한 때리기로 먹고 살아야 하는 군산복합체의 불만이 있기 때문에, 시간이 좀 필요했던 것이다. 핵협상 라인이 합의문에 일사천리로 사인하고 돌아오면 불만이 더 거세질 수 있기 때문에, 뭔가 고심하는 듯한 제스처를 한 것이었다. 북한과 너무 짜고 치는 것처럼 보이면 안 되니까."
▲ ⓒ프레시안

-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낮으니까, 정상선언에 대해서도 시큰둥한 여론이 있다. 그렇다면 합의 이행의 추진력이 문제인데

"돈이 들어가는 일이 일부 있으니까 남북관계발전기본법에 따라 국회 비준동의를 받을 필요가 있을 수 있다. 정부도 그런 생각을 하는 것 같다. 그런데 한나라당 빼고는 이번 정상회담에 다 갔다 와서 비준동의는 어렵지 않을 것 같다. 또 후속회담에서 손에 잡히는 성과를 내면 추진력이 생길 것이다."

- 이번 회담 과정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정상선언 내에서 보자면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경제와 군사 문제를 융합시키는 패러다임을 정립한 것은 굉장히 의미있다. 군사적 보장문제에서 북이 딴 소리를 못하도록 경제협력을 묶은 것이다. 남북관계는 그 패러다임으로 가야 한다. 동북아 평화체제도 안보협력기구가 아니라 안보경제협력기구가 돼야 한다. 유럽의 협력이 지속가능했던 것은 그런 방식을 택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경제와 평화를 맞바꾸는 문제를 쌀이나 비료를 주고 군사적 긴장완화에서 협조를 받자는, 소위 반대급부적 차원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서해 특별지대는 평화와 경제를 구조적으로 결합시켰다.

서해 특별지대는 경제적으로도 남쪽에 많은 이득을 준다. 이번에 특별수행원으로 간 건설업계 대표와 그저께 저녁에 밤새 얘기를 했는데, 한국 건설업계가 지금 골재 때문에 난리란다. 그래서 임진강-예성강-한강이 만나는 곳에 퇴적된 골재를 가져오면 엄청난 이익이 된다고 했다. 거기 모래는 강의 모래가 바다로 나오는 것이라서 싸고, 질 좋고, 한국 건설업계가 20년간 쓸 수 있을 정도로 양도 많다. 북한은 북한대로 항만을 개발한다거나 해서 엄청난 이득을 볼 수 있다."

- 합의 외적으로는 어떤 게 인상 깊었나?

"2000년 정상회담 때는 연도에서 환영하는 사람들이 김정일을 연호했는데 이번엔 그러지 않았다. '조국통일', '환영', '만세'만 외쳤다. 참 큰 변화라고 생각했다. 손님을 불편하지 않게 하려는 일종의 배려라고 봤다.

2000년에는 환송 때는 연도에 사람들이 안 나왔는데 이번에는 환영 때 나온 사람들이 다 나왔다. 그런 걸 보면서 진심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이번 합의만큼은 어렵지만 잘 실천해 보자는 뜻으로 기분 좋게 보내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우리 언론에서 회담 분위기가 가라앉았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두 번째는 차분할 수밖에 없다. 애를 낳아도 첫애 때와 둘째 애 때는 다르다. 또 김정일 위원장이 7년 세월이 지나서 그런지 더 늙어 보였고, 피곤해 보였다. 핵문제, 경제, 수해 같은 것 때문에 노심초사해서 그런 게 아닌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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