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요리는 가족애를 나눌 수 있는 훌륭한 기회"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요리는 가족애를 나눌 수 있는 훌륭한 기회"

박인규의 집중인터뷰[09/21] 요리전문가 빅마마 이혜정씨

안녕하십니까? 박인귭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민족의 대명절인 한가위가 다가오면서 오늘부터 고향으로 향한 귀성길에 오른 분들 많을 텐데요 이맘때가 되면 고향집을 찾는 귀성객들의 마음만큼이나 분주해지는 것, 바로 명절음식을 준비하는 주부들의 손길입니다. 해마다 보내는 명절이지만 올해만큼은 좀 더 색다르고 간편하게 명절음식을 준비하고 싶은 마음, 주부라면 누구나 가지기 마련일 텐데요 오늘 박인규의 집중인터뷰에서는 요리전문가 빅마마 이혜정씨와 함께 최근에서 한국으로 시집온 결혼이민여성들을 위한 우리 추석음식 요리강습 얘기와 한가위에 즐길 수 있는 추석음식에 대해 얘기 나눠봅니다

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요리전문가 빅마마 이혜정씨입니다. 이혜정씨는 1956년 서울 출생으로 이탈리아 IFIC 요리학교를 졸업했고 일본의 요리 전문가인 구리하라 하루미씨와 우리 궁중요리 전문가인 황혜성씨에게 사사했습니다. 현재 다양한 요리채널에서 특유의 입담과 손맛을 과시하며 '빅마마의 오픈키친' 등을 진행하고 있고 요리책 '빅마마의 쿠킹다이어리', '빅마마의 꼭 먹고 싶은 요리' 등을 출간했습니다.

박인규 : 빅마마라는 별명으로 많이 알려져 있던데 제가 보기에 체구가 그리 '빅'하시진 않은 것 같은데요, 어떻게 빅마마가 되셨어요?

이혜정 : 다이어트를 해서 체중을 좀 줄였고요, 보시는 것처럼 좀 넉넉해 보인다고 해서 빅마마라는 애칭을 주셨는데요, 사실은 제가 이태리에서 공부할 때 세르지오라는 선생님이 계셨어요. 유난히 한국을 좋아하셨는데 그 선생님께서 제가 아무래도 좀 나이 들어서 유학을 갔으니까 학생들을 챙기고 엄마처럼 따뜻하다고 해서 저한테 큰엄마 같다는, 아주 그냥 어떤 두목의 부인 같다는, 그런 닉네임으로 저한테 빅마마라고 지어 주셨죠.

박인규 : 원래 마피아 보스의 부인이 빅마마라면서요?

이혜정 : 네. 그렇게 제가 배포 크게 한다고 지어 주셨죠.

박인규 : 이탈리아 유학을 상당히 늦게 가신 모양이에요.

▲ ⓒ프레시안

이혜정 :
네. 아이들 다 크고 큰 녀석이 고등학생이 되고 딸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가고 이제 거기까지가 조금 제 할 일을 조금 덜었다고 생각하고요. 그때도 대구에서 요리 선생을 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제가 전공하지 않고 정말 학문적으로 노력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에 조금 제가 불안해졌어요. 그래서 남편한테 허락을 얻어서 유학을 갔습니다.

박인규 : 대개 요리 전문가들은 밖에 나가서 많이 요리를 하시지만 집안에선 지겨워서 안 하신다는데 집안에서 추석상 차리십니까?

이혜정 : 네. 제가 맏며느리라서 어쩔 수 없이 차려야지요.

박인규 : 그럼 요리 전문가의 추석상은 조금 다른가요? 뭔가 특별한 게 있습니까?

이혜정 : 아니에요. 저희 집 추석상은 어머니께서 지내오시던 데다가 이제 제가 요리하니까 같은 음식을 조금 다른 모양, 조금 다른 색을 내서 하는 정도일 뿐이고 저희 집에서 어머니께서 물려주신 차례상을 그대로 하게 되죠.

박인규 : 그럼 거기서는 요리 전문가로서의 개성을 발휘하긴 좀 힘들겠군요.

이혜정 : 예. 차례상에서는 어머니가 주신대로 저희 집에 내려온 가풍대로 가지만, 손님들이 미리 오시면 작은아버님 숙모님들 오셔서 드실 수 있는 음식을, 그때는 제가 공식적으로 제가 요리 선생임을 자랑하죠. 집안에다가..

박인규 : 최근에 결혼이민여성이라고 합니까? 외국에서 우리나라로 시집온 외국 여성들. 추석 음식 모르실 거 아니에요? 강습하셨죠?

이혜정 : 네. 얼마 전에 그런 행사를 제가 했는데요, 하루는 우리 음식을 그들에게 가르쳤고 하루는 그 나라의 문화를 시어머니가 도와서 그 나라의 음식을 하는 날이었는데요 사실 그동안에 저하고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라고 생각했고 관심조차도 없었죠. 아, 그냥 그렇게들 결혼들 해서 오시는구나 생각했는데요

박인규 : 이번에 처음 만나보신 거죠?

이혜정 : 처음 만나봤어요. 하면서 정말 가슴이 저리도록, 아 우리가 끌어안아야 될 식구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박인규 : 그 분들이 우리 추석 음식을 해보시면서 어떤 반응들을 보이던가요?

이혜정 : 너무 재밌어 했어요 처음에는. 시작할 땐 어려워서 못 한다고 하던 사람들이 너무 잘 따라했고, 우선 우리 문화 안에 들어오려고 하는 그 마음이 너무 커서 오히려 가르치는 제가 뭐가 부족한 게 아닌가, 제가 잘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내내 함께했죠

박인규 : 특별히 어떤 음식을 제일 어려워하던가요?

이혜정 : 그 날 제가 가르쳐 드린 건 세 가지. 전하고 닭찜이라는 걸 가르쳐 드렸는데 그 분들이 전을 지진다는 걸 어려워하더라구요. 그리고 우리 음식에 색을 곱게 내야 한다는 것도 좀 어려웠고 고명을 사용한다는 것도 좀 어려워했어요.

박인규 : 그런 게 자기네 문화엔 없었던 모양이죠?

이혜정 : 그렇죠. 아주 생소했던 거죠.

박인규 : 송편은 안 만들어 보셨어요?

이혜정 : 그 날 송편을 좀 가르쳐 드렸으면 생각했는데, 의외로 시간이 넉넉지 않아서 송편은 그냥 사서 미리 준비해 놨다가 맛을 보여드렸어요.

박인규 : 이번에 처음 시작하셨으니까 앞으로 매년 좀하셔야겠네요. 어떻습니까, 반응들이 계속 좀 배웠으면 좋겠다...

이혜정 : 그렇기도 했구요. 저도 함께한 시간이 굉장히 즐거웠지만 한편으론 조금 이렇게, 아, 우리가 좀 소홀했던 부분이 있었구나. 우리가 그 분들한테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구나 하는 것이 하는 시간 내내 제 마음을 아프게 했는데요, 그 마음이 너무 아파서 내년에 또 하자는 건 제가 조금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요.

박인규 : 너무 가슴이 짠하더라.
추석이 왔는데, 사실은 요즘은 명절증후군, 그래서 사실은 주부들이 별로 안 좋아하시는 것 같더라구요.

이혜정 : 안 좋아하는 게 아니고요 저도 주부잖아요.

박인규 : 똑같은 음식 매일 치르기도 뭐하다 하시는데, 그래도 즐겁게 보내야 되고.
추석 하면 송편인데, 송편 잘 빚으면 예쁜 딸 낳는다는 말도 있긴 합니다만, 요즘은 거의 집에서 빚는 경우가 없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빚을 경우에 어떻게 하면 잘 만들 수 있나요?

▲ ⓒ프레시안

이혜정 :
참 그게 아쉬운 게요, 예전엔 송편이라고 하면 우선 엄마가 햅쌀 사다가, 오려쌀이라고 하죠. 제일 먼저 추수한 쌀 사다가 한 됫박 담가서 빻아다 놓고 추석 전날 아이들과 같이 둘러앉아서 그저 깔깔 웃어 가면서 송편을 빚었잖아요. 그런데 요즘에는 그걸 빚는다는 엄두조차도 못 내고 있는데 사실 저는 송편을 예쁘게 빚고 못 빚고가 문제가 아니고 가족이 함께 안장서 빚어간다는 게, 그 안에 내년에 다가올 일들도 같이 기도도 해보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정말 제가 송편을 빚다 보면 처음엔 쌀을 반죽한 걸 뚝 떼어서 한 덩어리로 시작하지만 점점점 그걸 예쁜 반달 모양으로 만들어가잖아요. 그 반달이 온달 되기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송편을 빚을 텐데, 저한테 예쁘게 어떻게 빚냐고 하시면 저는 드릴 말씀이 없고요. 함께 만드는 그것만으로도 송편은 의미가 있다는 거죠.

박인규 : 요리만큼이나 말씀을 잘하시는 것 같습니다. 저도 사실 초등학교 다닐 때까지만 해도 집에서 같이 만들었던 기억이 나는데 제가 애들하고는 못해본 것 같아요. 그걸 귀찮게 뭘 하냐 사다 먹지...

이혜정 : 우선 그렇게 생각들도 하시고, 집에서 주부들도 워낙 요즘은 다 바쁘시니까 그것까지 하기엔 너무 힘드신데 사실 가장이 그런 날은 좀 준비만 해주면, 우리 같이 좀 빚어보자고 시간을 함께하시면 아마 주부들도 신나게 하실 수 있을 것 같아요.

박인규 : 빚으면서 가족 간에 우애도 느끼고

이혜정 : 그럼요 그럼요.

박인규 : 또 차례상 차리는 것도 쉽진 않은 건데 차례상 차릴 때 주의할 점, 어떤 게 있을까요?

이혜정 : 차례상이라는 건 '가가례례'라고 집집마다 다 다르기 때문에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는 모르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그 옛날 유교에서 내려온 차례상을 하는 가례법이란 게 가정의례준칙에 나와 있잖아요.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돌아가신 조상께서 즐기시던 음식, 가장 좋아하시던 음식, 이런 순으로 가는 게 저는 맞다고 생각하는데, 참 이상하더라구요. 여러 나라 음식을 해보지만 우리..., 특히 명절 음식만큼은 절대로 작게가 안 되고요, 많이 음식을 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다 보면 지쳐서 주부들은 스트레스에 힘들게 되는데 작게 조금씩 이렇게 가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박인규 : 추석 연휴가 올해 같은 경우 5일인데, 차례상 차린 걸 먹지 않습니까. 그럼 똑같은 걸 하루 세끼 먹게 되면 참 지겹거든요. 이럴 때... 대개는 나가서 사먹자는 분들이 많은데, 뭔가 이렇게 특별한 요리를 하면 간편하기도 하고, 추천하실 만한 게 있을까요?

이혜정 : 정말 걱정이 추석이 올해는 좀 빠르기 때문에 날씨가 너무 더워요. 그리고 추석음식은 아무리 작게 해도 하라는 법이 있기 때문에 그것에 맞춰서 아무리 작게 해도 많아지잖아요. 자구 변하게도 돼서 하루 세 번 드시는 게 히든 것보다 사실 음식이 빨리 변해가는 게 더 어려워서요. 저는 이렇게 해요. 오늘쯤 해서 삼촌, 숙모님들 오실 분들이 계시니까 그 분들 오시면 드실 음식을 조금 마른 음식을 준비하죠.

박인규 : 추석 음식과는 별도로.

이혜정 : 그렇죠. 김치는 다 담아 두셨을 테니까 준비해 놓고. 추석날 먹은 음식들은 한 번 차례가 끝나면 바로 다 데워요. 그래서 냉동실에 넣을 것 넣고 드릴 건 드리고 다 나누지만 이제 그때쯤 되면 있는 재료를 가지고 반찬을 새로 만들어 먹어야지요. 저는 전 같은 게 가장 처치하기 어렵더라구요. 그래서 그 전을 좀 저는 숭덩숭덩 썰어 넣고 거기다 가운데다 김치도 양념 좀 해 넣고. 그리고 요즘 버섯 많이 나오잖아요. 버섯 조금... 새송이, 표고버섯 조금씩 썰어 넣고 완자 같은 고기전 가운데 넣고 두부도 제상에서 나오죠. 두부를 큰 냄비에다가 죽 늘어놓고 들깨를 좀 곱게 갈아요. 들깨 갈아서 거기다 불린 쌀 넣고 믹서에 갈아서 쫙 뿌려서 탕국 남은 국물 넣고 들깨와 쌀만 갈아 넣은 걸로도 전혀 별미의 전골이 되거든요. 그런데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김치를 좀 양념 가셔서 씻어서 주물러 놓으면 개운하기도 하고요. 거기다 청양고추 한 두어 개 썰어 넣으면 알싸해서 매끼 올라오던 전이 새로운 버섯전골이 돼서 맛있게 드실 수 있죠.

박인규 : 그런 방법이 있겠군요. 전은 전대로 먹는 게 아니라 새로 찌개를 만들어서 먹는다.
아무래도 추석 되면 계속 삼시세끼 먹게 되니까 폭식하게 되고 심지어 폭음하시는 분도 많은데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요?

이혜정 : 글쎄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이제 정말 1년에 설 명절, 추석 명절 두 번, 명절이잖아요. 그럴 때 조금 넉넉히 드시죠. 드시고 저녁에 동네 한 바퀴라도 걸어 보시고. 가족이 같이. 너무 먹는 것에 대해서 어떡해 살쪄, 어떡해 어떡해 난 조금 먹어야 되는데... 하지 마시고 정말 명절에는 온 식구가 허리끈 좀 풀어 놓으시고, 한 며칠 먹는다고 그게 그렇게 아주 몸에 그냥 누더기가 되겠어요? 그러니까 좀 드시고 저녁에 다 같이 좀 걸어보시죠.

박인규 : 운동을 해라... 그런데 또 많은 분들이 모이면 고스톱 치시느라고....
또 하나 문제는 귀성길 가다 보면 길이 많이 막히잖아요. 심지어 열 몇시간씩 가기도 하는데 가다 보면 심심하기도하고 시간 보내기 위한 주전부리 같은 거 추천할 만한 게 있을까요?

▲ ⓒ프레시안

이혜정 :
많이 있죠. 우선 햇밤 나오는 거 많이 깎으셔서 생밤을 운전하실 때 드시면 밤에 들어있는 펙틴이라는 성분이 졸음도 쫓아주고 굉장히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좋은 성분이 있어요. 또 탄수화물이 주성분이기 때문에 위를 든든히 해서 가는 동안 아주 편안한 마음을, 늘어질 수 있는 마음을 주기도 할 수 있죠. 그래서 생밤 같은 거 깎아서 가져가시는 거 참 좋다고 생각하구요. 아무래도 명절 되면 사과나 배 같은 과일 많이 들어오니까 그 과일을 그냥 생으로 드시면 가다가 깎기도 어렵도 껍질도... 어렵잖아요. 그러니까 이걸 미리 다 깎으셔서 설탕하고 물 반반씩 끓이신 데다가 졸여 가시는 거예요. 여기다가 포도주가 있으시면 좀 넣으셔도 좋고요. 졸여 가시면 갔다오시는 내내 드셔도 변하지 않고 아주 상큼하게 드실 수 있으니까 좋은 방법이죠.

박인규 : 사과조림, 배조림, 그런 게 있군요.
이혜정씨께서는 추석 때 시어머니의 명을 받아서 상을 차리신다고 하셨는데 대개 추석 때 집안일은 여자, 남자 분들은 술을 드시든가 화투를 치시든가 하는데, 집안에서 남편이나 자녀분들이 좀 도와주십니까?

이혜정 : 네. 저는 제가 맏이다 보니까, 또 일하는 사람이다 보니까 미리미리 못하잖아요. 그러니까 명절 때는 도와주지 않으면 할 수가 없는데 정말 다행히 제 남편은 지금 저희 세대를 살아가는 남자 치고는 가정일을 굉장히 잘 도와주는 편이고요. 또 그렇게 함께하는 걸 즐거워해서 사실은 저희 집은 딱 정해져 있어요. 모든 전의 재료에 밀가루 부치는 건 남편이 하죠. 그리고 그 남은 쓰레기 모든 것은 아들 녀석 퇴근해서 돌아오면 갔다 와서 버리게 돼 있구요. 딸아이는, 올해는 딸아이와 같이 추석을 지내게 돼서 저는 그게 정말 너무 기쁜데요, 딸아이는 요리 공부를 하고 있으니까 저랑 처음부터 끝까지 같이 만들게 되죠. 저희 집은 분업이 아주 철저히 잘 돼 있습니다.

박인규 : 저는 추석 때 그냥 밤만 깎았는데 사실 그동안. 많은 집에서 아직도 주부들이 명절, 심지어는 싫다. 이러는데,

이혜정 : 저도 싫어요.

박인규 : 그래도 힘든 와중에도 즐겁게 보낼 수 있는 비결이랄까, 그런 게 좀 있을까요?

이혜정 : 즐겁게 보낼 수 있는 비결은 제일 첫 번째가 가족 모두가 주부의 노고를 알아줘야 한다는 거죠. 그 중에서도 정말 남편이 한 번 칭찬 한 번 해주고 남편으로부터의 고마움을 한 번 들으시면, 글쎄요 제 경우에는 어떤 힘든 것도 그냥 정말 신이 나더라구요. 근데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그렇게 고스톱만 치시고 술이나 드시고 하시면 저는 정말 남편이 원수보다 더 미울 것 같긴 한데요. 글쎄요, 이럴 때일수록 온 가족이 손을 합치는 게 좋겠지만, 우리는 관례적으로 맏이 집에서 제사를 모시잖아요. 차례를. 그러다 보면 맏동서는 정말 나 혼자만 힘들다고 생각하잖아요. 정말 동서한테 조그만 선물이라도 하나 해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면 저는 명절이 더 있어도 좋을 것 같은데요...

박인규 : 가장 좋기로는 가사일을 분담하는 것이고, 분담이 어려우면 하시는 분에게 고맙다고 마음의 표시를 하는 것.

이혜정 : 그럼요. 그럼요.

박인규 : 그런 방법이 있겠군요. 저는 사실 요리에는 문외한입니다만, 이혜정이라는 분을 브라운관에서 본 게 한 몇 년, 오래되지는 않은 것 같아요. 연세에 비해서는 요리 전문가로 데뷔하신 게 늦으신 걸로 아는데 늦깎이라고 들었는데 어떻게 요리전문가가 되신 거예요?

이혜정 : 요리 전문가가 된 건 제가 사실 결혼해서 아이 엄마가 되면서부터 요리 전문가가 됐죠. 그런데 그걸 제가 제 직업으로, 세상 살아가는 수단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건 39살 돼서인 것 같아요.

박인규 : 늦었군요. 제가 듣기로는 대학 다닐 때 전공보다는 요리가 하도 좋아서 무슨 호텔에 가서 외국인 주방장한테 배워 달라고 하셨다고 들었는데요,

이혜정 : 네. 제가 대학 1학년 입학하면서 이제 바로 제가 조선호텔에 찾아가서, 무작정 찾아갔어요. 갔더니 한동안 방송에서 유명하셨던 조안리라고 하는 그 분이 조선호텔에 사무실을 갖고 계셨는데, 저는 그 분 말이면 조선호텔이 다 듣는 줄 알고 그 분한테 무조건 가서 선생님, 요리 좀 공부하게 해달라고 부탁을 드렸어요. 그랬더니 선생님께서 저를 그때 그 미스터 켈러라는 독일 주방장이셨는데요. 그 분이 계시는, 찬 음식을 하는 오드볼이라는 에피타이저 같은 그런 걸 하는 식당에 저를 소개를 해주셨어요. 그래서 그 분 밑에서 제가 한 달, 여름방학 동안 혹독한, 하루 700개 계란 까기를 시작했습니다.

박인규 : 하루 700개요, 가능합니까?

이혜정 : 하게 되더라고요. 첫날 한 사흘을 700개씩 계란 까기를 시키시는데

박인규 : 몇 시간이나 걸립니까?

이혜정 : 하루 한 여섯 시간 정도 제가 깐 것 같아요. 그때 까고 나니까 손에 막 달걀 껍질에 피가 나기도 하고 많이 갈라져 있었는데 그 분이 그땐 그렇게 귀한 오렌지를 저한테 정말 일을 잘한다고 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야 이렇게 제가 하고 싶은 요리도 하고, 하면 결과가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고, 난 이거 할거다. 이렇게 생각하고 열심히 했습니다.

박인규 : 대학 때부터 요리에 뜻을 두고 그렇게 말하자면 모진 고생을 하면서 오리를 하셨는데 39살까지는 가정주부로 지내셨어요. 그러다가 갑자기 어느날부터 요리의 기술을 알려주는 전문가가 되셨는데 어떻게 하다가 되신 거예요?

▲ ⓒ프레시안

이혜정 :
제가 아이 두 녀석을 낳고 사는 동안은 제 가족이 제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는 게 제일 행복했죠. 이렇게 하면서 기회 있을 때마다 요리 공부를 열심히 해서 우리가족이 좋아하는 요리의 레시피를 쭉 모으고, 한 3000개 정도 되더라고요. 그러던 중에, 정말 인생이라는 게 삶이 제 뜻대로만 꼭 되지 않는 계기가 있었어요. 남편이 대학에서 산부인과를 전공했는데요, 절대로 개업하지 않고 대학에 가고 싶다는 의지가 있어서, 자기 모교에는 못 남고 대구에 있는 영남대학에 가게 됐죠. 그럴 때는 제 인생이, 아 내가 왜 대구까지... 이렇게 생각하고 정말 슬픈 마음으로 갔는데, 가면서 지내는 대구의 생활이 아무도 아는 사람도 없고 친구도 없고 이웃도 없으니까 저는 제가 제일 잘하는, 매일 음식 만들어서 남편 오기 기다리고 아이들 해 먹이고 이러면서 이제 동네에서 저희 집이 고소한 맛이 나는 집으로 소문이 난 거예요. 그랬던 때에, 그 전에 MBC에서 아주 유명한 아나운서로 일했던 김보경이라는 아나운서가 대구 MBC에 와서 일하게 됐어요 결혼하면서. 그때 그 김보경이라는 아나운서가 저를 발견하고 대구 MBC에 소개했죠.

박인규 : 평범한 가정주부였다가 갑자기 그 날로 요리 전문가가 되신 거군요.

이혜정 : 그 날로 하루아침에 제가 스타가 됐는데 정말 세상일이란 게 참 억울할 게 없다는 생각을 하는 게요. 제가 표준말을 하고 서울에서 자라고 한 것이, 표준말을 한다는 게 대구에서 이점이 됐어요. 그래서 제가 또 방송일을 하게 됐죠.

박인규 : 이탈리아 유학은 그 뒤에 가셨다고 들었어요.

이혜정 : 네. 요리선생 하면서 방송하면서 좀 유명해져서 돈을 아주 제법 벌었죠. 그러다 보니까 저는 길에 나가면 사람들이 다 알아보고 대구에선 꽤 아주 유명한 사람이 됐지만 제 마음 속으로는 과연 내가 하고 있는 이 학문적인 게 과연 근거 있는 이야긴지, 정말 내가 밑이 찬 요리선생인지 제 자신이 조금 불안해졌어요. 그래서 남편을 졸랐죠. 아이들도 고등학교에 가고 중학생이 되고 했으니까 남편이 조금만 고생해 주면 공부를 조금 더하고 싶다. 그래서 열심히 벌었던 돈을 주머니에 꿍쳐 넣고 이태리로 공부하러 가게 됐습니다.

박인규 : 얼마나 가 계셨어요?

이혜정 : 왔다갔다 왔다갔다한 기간은 한 2년 정도인데요, 사실은 2년 내 있지는 못했고요. 3개월 있다가 여기 와서 2주 있다가 또 가서, 김치 담아 놓고 또 이태리 가고 이렇게 했습니다.

박인규 : 예전엔 요리 전문가 하면 한식 전문가, 궁중요리 전문가, 양식 전문가 이런 식이었는데 요즘은 그런 구분이 없어졌나요?

이혜정 : 요즘은 요리라는 게 한 장르가 돼서요, 정말 요리 선생이라고 하면 어느 종류든지 다 할 수 있구요. 또 나름대로의 자기 색깔을 내기 때문에 요즘엔 퓨전이라는 새로운 단어가 생겼죠. 그러다 보니 어떤 요리를 해, 이게 아니고 요새는 내가 할 수 있는 요리는 어떤 거야...를 줄 수 있는 세상이 됐죠.

박인규 : 예전엔 시집을 가려면 적어도 집안에서 최소한 김치는 담그고 장까지는 못 가더라도 기본적으로 요리를 했는데, 요즘은 사실 거의 젊은 여성들이 일을 한단 말이죠. 그러다 보니 요리 하면 굉장히 알레르기 반응이 있는 것 같아요. 요리는 나는 못하는 거야, 그리고 요리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게 있는 것 같은데, 이혜정씨 같은 경우 전문가시니까 즐겁게 하시겠지만 젊은 엄마들, 젊은 여성들이 요리와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는 겁니까?

이혜정 : 이런 것 같아요. 왜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는다고, 음식도 자랄 때부터 쭉 엄마 밑에 따뜻한 밥과 국을 먹어본 사람은 내가 먹어야 할 음식이 따뜻한 밥이고 따뜻한 국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고 편안하게 매식도 하고 살아온 집에서는 그냥 먹는 거라는 건 그저 먹거리, 이런 정도로 생각하잖아요.

박인규 : 돈 많이 주면 사먹을 수 있는 것.

이혜정 : 그렇죠. 이런 게 요즘 제가 부족한 점이라고 생각하는 가장 아쉬운 점이고요. 저는 엄마 밑에서 혹독한 삶을 살았죠. 김장 담그면 같이 거들어야 되고 장만을 같이 해야 되고 그랬지만 요즘은 다들 바쁘시니까 예전처럼 김장도 많이 안 하죠. 또 다들 일을 하고 있으니까 일에 맞춰서 모든 게 간소화하다 보니, 결혼해서도 충분히 할 수 있으니까 지금은 공부할 때, 공부할 때, 이렇게 시기를 놓쳐가더라구요.

박인규 : 그러니까 어머니들이 집안에서 요리를 좀 가르쳐야겠군요.

이혜정 : 그렇죠. 그리고 음식이라는 게, 사실은 꼭 요리가 아닌 음식, 먹거리가 되더라도 그 한 가지로 모든 가족이 나눌 수 있다는 걸 심어줬으면 좋겠는데 요즘은 각자 해결하는, 그저 빵 한 조각 국수 한 그릇으로 해결하는 습관이 흔하게 가다 보면 아쉬운 점이 있죠.

박인규 : 요즘은 맛있는 거 먹으려면 나가서 비싼 거 사먹으면 되지, 이런 생각들 많이 하고 있죠 사실. 따님도 요리 공부를 하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엄마의 영향인가요?

이혜정 : 네. 아무래도 그렇겠죠. 26살 된 딸아이가 있어요 그런데 대학에선 생물학을 전공했어요. 학교 다닐 때 공부도 아주 곧잘 하고 자기가 의과대학에 아빠를 따라서 가고 싶어해서 그러려니 생각했는데, 졸업할 해 느닷없이 오래 생각했다면서 요리를 하겠노라고 결정하더라고요. 그래서 아빠는 조금 서운했나봐요. 저희 남편은 조금, 아들 녀석도 지금 기자의 길을 가고 있으니까 조금 자식 중 하나는... 이렇게 생각했는데 그래도 딸아이가 생각해서 내린 결정이니까 아주 반가운 마음으로 도와줬죠. 그런데 사실 어미 된 제 마음에서는 아주 든든하고 좋은 마음도 하나 있고요. 사실은 그만큼 또 애처롭기도 해요. 이런 삶이 사실은 건강도 해야 되고 본인이 노력도 해야 되는 일인데 과연 이 힘든 일을 할 수 있을까...

박인규 : 할 수 있을까, 전문가로서.
이혜정씨는 요리 배운다고 했을 때 집안에서 되게 혼났다고 들었는데 따님한테는 그러시지 않았겠죠?

이혜정 : 그럼요. 이제 세상이 달라졌고 이제는 세상이 필요로 하는 한 문화가 됐잖아요. 그러니까 지금은 저는 아주 환영하죠. 그런데 제가 대학에 갈 때는 부모님께서 요리라는 게 그저 불고기가 갈비찜 정도라고 생각하셨으니까 그런 건 나중에 해도 된다고.

박인규 : 요즘 대개 맞벌이 부부기 때문에 사실 웬만하면 사먹자. 그러는데 바쁜 와중에도 주부로서 남편이나 가족들한테 맛있는 요리를 쉽게 해줄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방법이랄까, 어떻게 하면 되는 걸까요?

이혜정 : 이렇게 생각해요. 저는 밖에 나가서 요리도 하고 어떤 것도 하지만 음식이라는 게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하고 나눌 때 정말 제일 좋은 음식이잖아요. 그렇게 생각하면 바쁘더라도 사실 주말 같은 때 몰아서, 음식을 저장할 수 있는 법을 생각하면 요리가 그다지 어렵지 않죠. 저는 요즘 일을 하니까요, 국을 일주일에 세 가지씩 두 주일분을 짜서 돌려가면서 만들어서 얼려 놓죠. 얼려 놓는데 우유팩을 사용하시면 굉장히 쉽게 하실 수 있어요. 1리터 짜리 우유팩 하나면 네 식구 먹을 수 있는 국의 양이 나오거든요. 그래서 미역국 하나, 북어국 하나, 소고기무국 하나. 이번주에는 이렇게 끓여 놓은 게 저희 집 식단인데요, 이렇게 해놓은 걸 세 개... 한 번 끓여서 두 통씩 넣어 놓으시면 일주일 먹을 수 있죠. 밥도요, 사실 그때그때 해먹는 게 제일 좋지만 바쁘다 보면, 그래도 사서 먹기 싫잖아요. 그래서 저는 밥을 해서 얼려 놓죠 요즘엔.

박인규 : 아, 그 저장하는 방법을 알아야 요리를 할 수 있겠군요. 사실 요즘은 식구가 적어서 한 번 하면 버리게 된다고 하더라고요.

앞으로 요리 스튜디오도 만드실 계획이라고 들었고요, 앞으로의 계획하고, 한가위 맞아서 청취자 분들한테 요리의 즐거움에 대해서 마지막으로 한 말씀 해주시죠.

이혜정 : 저는 이제 정말 딸아이가 이제 대학을 졸업했어요. 그래서 그 딸아이와 함께 일할 스튜디오를 지금 과천에다가 짓고 있어서 아마 올 연말이면 다 완공될 것 같고요. 그곳에서 그녀석이랑 정말 요리를 하고 싶은 친구들한테 교본이 될 수 있는 그런 레시피를 많이 만들어내야겠죠. 또 하나는 정말 제가 아이들의 엄마로, 또 한 사람의 아내로 살아가는 삶이 지금 요리와 함께하면서 정말 너무 행복했어요. 제가 이렇게 행복했다고 하는 말이 청취자 분들께 얼마만큼 진실로 다가갈지 모르지만, 지금 살아가는 삶이 가족 안에서 너무 행복하거든요. 맛있게 맛없게가 중요한 게 아니고 가족 안에서 따뜻한 찌개 한 그릇으로 나눌 수 있는 것이 요리라고 생각하시면 아주 신나게 좀 하시면 되고요. 가족들도 조금 짜더라도, 조금 싱겁더라도 정말 맛있게, 아주 사랑을 함께 느끼면서 드시는, 그렇게 격려해 주실 수 있으면 주부들은 누구나 다 요리선생이에요.

박인규 : 요즘 바쁜 젊은 주부들을 위해서 간편하고 색다른 레시피들을 많이 개발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이혜정 : 그렇게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오늘은 요리전문가 빅마마 이혜정씨와 함께 한가위에 즐길 수 있는 추석음식에 대해 얘기 나눴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