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대통령은 현재 이라크에 배치된 20개 미군 전투 여단 중 내년 7월까지 5개 여단만 철수시키는 등 이라크 상황에 따른 점진적 철수를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이 철수 규모는 올해 증파된 3만 여명 중 일부가 다시 복귀하는 수준이며, 증파 이전에 있었던 13만 여명의 미군은 계속 주둔하는 것이다.
민주당의 전면적 철수 일정표 제시 요구 거부
부시 대통령은 또 자신의 임기가 끝나는 2009년 1월 이후에도 미군이 이라크에 주한미군처럼 장기 주둔할 것임을 시사했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올해 3만 여명의 증파가 효과를 거둬 이라크 주둔 미군 일부가 귀환을 시작할 수 있게 됐다며,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 이라크 주둔 미군사령관이 건의한 점진적인 철군안을 받아들인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퍼트레이어스 사령관은 지난 10, 11일 미 의회 이라크 청문회 증언에서 올해에 증강된 미군 3만 여명을 내년 7월 중순까지 단계적으로 철수하고 추가적인 철군계획은 내년 3월 이라크 사태를 재평가해 결정할 것을 건의했었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 구체적인 철군규모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지만 미 행정부 고위 관계자들은 "올해 크리스마스 이전까지 5700명이 철수하는 등 내년 7월까지 5개 전투 여단 병력이 이라크에서 철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언론들은 통상 1개 전투여단이 4000~4500명으로 구성되며 지원부대가 별도로 편성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내년 여름까지 철군하는 미군 병력은 최소한 2만1500명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부시 대통령은 자신의 이 같은 단계적인 결정이 "이라크에서의 성공이 미국의 안보를 위해 필수적이라고 믿는 사람들과, 군대를 즉각 철수시켜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간에 (이견을 좁히는) 다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부시 대통령의 이 같은 철군 계획에 대해 이라크 미군의 전면적인 철수 일정표를 제시하라고 요구해온 민주당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반발하고 나서 향후 의회와 내년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진행되는 각 당의 당내 경선 과정에서 뜨거운 쟁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결론에 짜맞춘 보고서" 의혹 팽배
이미 부시 대통령이 이번 발표의 주요한 근거로 삼았다는 이라크 주둔 미군 사령관의 현지보고서 자체에 대해 근본적인 불신이 팽배하다. 퍼트레이어스 자체가 전형적인 정치군인으로 그의 현지보고라는 것이 부시 대통령의 의도에 짜맞추기를 한 것일 뿐이라는 비판이 거세게 일고 있는 것이다. 일부 언론에서는 "백악관이 사실상 이 보고서를 작성했다"는 의혹을 보도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미국의 진보적인 싱크탱크 외교정책포커스(FPIF) 연구학자 가레스 포터는 14일 <아시아타임스> 기고문에서 퍼트레이스의 정치성 때문에 미군 역사상 보기 드문 군 내부의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는 내막을 폭로했다. 앞서 지난 9일 <워싱턴포스트>도 팰런과 퍼트레이어스의 관계에 대해 "나쁜 관계라고 말한다면 엄청나게 점잖은 표현"이라고 전한 기사와 연결되는 내용이다.
부시 행정부 관계자들을 소식통을 인용한 포터에 따르면, 지난 3월 이라크를 포함한 중동 지역 전체를 관할하는 미 중부군 사령관에 임명된 윌리엄 팰런은 앞서 1월에 이라크 주둔 사령관에 취임한 퍼트레이어스와 첫 만남을 가진 뒤 퍼트레이어스를 '아첨꾼'이라고 경멸한 것으로 전해졌다.
팰런은 당시 퍼트레이어스에게 "남의 엉덩이에 키스하는 형편없는 자식"이라면서 "너 같은 놈을 증오한다"고 격렬하게 비난했다는 것이다. 팰렁는 이라크 병력을 최대한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퍼트레이어스와는 정반대의 입장을 가졌는데, 부하인 퍼트레이어스가 더 윗선의 비위를 맞추는 게 좋을 것이라고 설득하려들자 격분한 것이었다.
팰런이 이처럼 자신의 부하에게 증오에 가까운 태도를 보인 배경에 대해 포터는 "지난 2월 퍼트레이어스가 이라크 주둔 미군을 증파하는 부시 행정부의 정책을 지지하는데 앞장서기로 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팰런 "파키스탄과 이란이 더 위험하다"
팰런은 중부군 사령관으로서 이라크보다는 파키스탄과 이란 문제가 더 심각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었다. 팰런이 판단하기에, 그가 중부군 사령관에 취임한 3월 경 이미 파키스탄은 오사마 빈 라덴이 이끄는 알카에다가 전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작전을 수립하고 시행에 옮기는 근거지일 뿐 아니라, 핵무기를 보유한 동시에 세계에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매우 불안정한 국가가 되어 있었다.
이라크에 미군이 대규모로 계속 주둔하고 있으면, 다른 지역에 동원할 병력 여유가 없게 된다. 팰런은 가능한 한 이른 시일 안에 성과를 거두려는 목표를 가져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라크에서 '장기전'을 펼치겠다는 개념은 전체의 일부분일 뿐인 이라크에만 매어 있겠다는 것으로 타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팰런은 올해 이라크 증파 계획을 처음부터 반대하면서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단정했으며, 중부군 사령관에 임명되자마자 부하들에게 '장기전'이라는 용어를 삼갈 것을 지시했다. 이 용어는 부시 대통령과 로버트 게이트 국방장관이 대테러 전쟁에 주로 쓰는 것이다.
팰런은 장기전이란 개념은 중동에서 미군이 무기한 주둔할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중동의 민심으로부터 멀어지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에 따라 팰런은 2009년 말까지 이라크 주둔 미군 병력 중 4분의 3을 단계적으로 철수시키는 등 새로운 이라크 정책 수립에 착수했다.
이라크를 둘러싼 팰런과 퍼트레이어스의 갈등은 9월 초에 절정에 달했다. 앞서 부시 대통령과 3자 회동을 가진 자리에서 팰런과 퍼트레이어스가 펼친 견해는 전혀 달랐다.
퍼트레이어스는 이라크 치안상황이 안정단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오랜 기간 이라크 주둔 병력을 최대한 많이 유지할 것을 주장했다. 반면 팰런은 중동의 다른 지역의 잠재적 위협에 대비하기 위한 충분한 병력을 확보하기 위해 이라크에서 전략적인 철수를 할 것을 촉구했다.
포터는 팰런은 '할 말은 하는 강직한 군인'인 반면, 퍼트레이어스는 '정치군인'에 가깝다는 판단의 근거로 두 사람이 고위 지휘관으로 승진해온 과정을 비교하기도 했다.
포터에 따르면, 팰런은 미 해군에서 35년을 경력을 쌓아왔는데, 해군은 전통적으로 승진과정에서 몇 명의 적을 만들 수밖에 없는 치열한 조직 문화를 갖고 있다. 해군 장교가 두, 세 명의 적을 갖고 있지 않다면, 임무를 제대로 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라는 것이다.
팰런은 2005년 2월~2007년 3월까지 태평양 사령관으로 복무하는 동안에도 권력자들에게 당당히 맞서는 인물로 명성을 떨쳤다. 중국을 잠재적인 적으로 간주하는 고위 군 지휘관이나 국방부 고위관료들과 갈등을 무릅쓰고 그는 중국과 유화적인 노선을 강력하게 밀고 나갔다.
지난 2월에는 페르시아 만에 항공모함을 파견하랴는 백악관의 제안에 대해 "그러한 조치는 이란에게 전쟁을 하겠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면서 거부하기도 했다. 나아가 그는 사석에서 옷을 벗으면 벗었지 자신이 사령관직에 있는 한 이란과의 전쟁은 없을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퍼트레이어스는 주로 고위 지휘관의 보좌관직을 거치면서 승진을 거듭했다. 이에 따라 그는 출세를 하려면 고위 지휘관들과 친분을 잘 다져두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부시 대통령의 공식 발표에 앞서 영국 <BBC> 방송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부시 대통령과 퍼트레이어스 사령관에 대한 미국민들의 불신감이 확인됐다.
이라크 치안 확보에 진전이 없다는 응답이 60%에 달하고, 3만 여명의 미군 증파가 아무런 변화를 가져오지 않았다는 답변은 58%인 반면, 좋아졌다는 의견은 28%에 불과했다. 특히 응답자의 53%가 퍼트레이어스 사령관이 이라크 상황을 과장할 것이라고 생각한 반면 정직하게 보고할 것이라고 보는 사람은 40%에 못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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