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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경협 만능론, 신자유주의로 빠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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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경협 만능론, 신자유주의로 빠질라

[정상회담, 할 말 있다ㆍ⑨] 북한의 딜레마 직시해야

햇볕정책을 주창한 김대중 정부는 '통일' 담론을 '경제통합' 담론으로 변형했다. 김대중 정부는 평화공존과 경제통합을 '사실상의 통일'로 규정하고 장기적인 시나리오를 개발했다. 그 첫 번째 단계는 남북의 무역자유화로서, 북한을 노동집약적 저부가가치 제조업 생산기지(가공무역형 수출기지)로 전환해 남한 경제의 하위 파트너로 점진적으로 통합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김대중 정부는 한미간의 역할분담론과 정경분리 정책을 제시했다. 즉 군사안보 대화는 미국이 주도하고 남한은 경제협력과 사회문화교류를 주도하며, 정치정세의 변화와 관계없이 남한 기업의 대북한 교역과 투자를 장려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한국의 구상은 자본주의적 사회경제 질서의 확장을 분명하게 지지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전략은 평화공존이라기보다는, 그 외피를 통해 '2국가 1체제'와 같이 사실상의 (흡수)통일의 효과를 획득하고자 하는 시도로서 이해될 수 있다. 김대중 정부는 이러한 방안이 북한의 붕괴에 따른 흡수통일이 수반하는 '불필요한' 경제적·정치적 비용을 절약한다며 보수층의 지지를 얻고자 했다.
  
  현재 2차 남북정상회담을 앞둔 노무현 정부의 전략도 본질적으로는 김대중 정부의 확장판이다. 한반도 핵위기와 동북아시아 평화 같은 의제는 기본적으로 미국의 정책적 의지와 6자회담의 틀이 규정할 수밖에 없으므로, 한국이 독자적으로 운신할 수 있는 폭은 극히 제한적이다. 따라서 남한 정부가 어느 정도 주도성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는 경제협력과 대북지원이다. 이러한 조건은 남북 경제공동체 건설을 강조한 노무현 대통령의 8.15 경축사에서도 자연스럽게 드러났다.
  
  그러나 이번 경축사에는 중대한 강조점의 변화가 있다. 경제협력이 "남쪽에게는 투자의 기회, 북쪽에는 경제회복의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대목에 나타나 있다. 즉 더이상 남북 경제협력 사업이 남한의 일방적인 지원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남한 기업에게도 '비즈니스'로서 상업성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북한이 자본주의 비즈니스의 논리를 이해하고, 이에 걸맞은 파트너로 바뀌어야 함을 함축한다. 또한 북한이 변화의 조짐을 보이면, 남한의 경제력 규모와 국제적 관심도를 고려할 때 북한을 좀 더 폭넓은 개혁, 개방으로 유도할 수 있다는 기대도 담고 있다.
  
  남북 경제협력 사업의 현실
  
  남북경협은 다양한 안들이 제시되고 있으나, 구체적인 진전은 아직까지 매우 더딘 편이다. 일각에서는 남북 철도·도로 연결을 통해 새로운 실크로드를 열자거나, 북한의 풍부한 지하자원을 개발해 한반도 번영을 꾀하자고 주장하고 있으나, 실제로 추진되는 사업은 이와 거리가 멀다.
  
  이는 북한의 전지역을 연결하는 교통망, 전력망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재원이 필요하지만, 국제적인 협력이 없는 상태에서 이를 실현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단은 남한이 보기에 '비즈니스'로서 성공 가능성이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교통망, 전력망 등을 구축해 나가는 것이 타당하다는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 이에 일단은 북한에서 비교적 여건이 좋은 지역을 중심으로 임가공 제조업 육성을 위한 경제개발지원에 나서는 쪽으로 방향이 잡혀가고 있다.
  
  또 대북 경제지원의 성격도 앞으로 변화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북한 식량난 이후 대북지원은 주로 인도적 긴급지원(식량, 의약품 등 구호물자) 위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인도적 지원만으로는 빈곤에서 탈피할 수 없고, 오히려 원조 의존적 체질을 정착시킬 수 있으므로, 이를 해당 국가의 사회경제적 개발을 돕는 '개발지원'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긴급지원의 경우 지원 물품이 취약층에게 제대로 전달되는지를 확인하는 모니터링 정도가 필요하다면, 개발지원의 절차와 조건은 훨씬 더 까다롭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대북 개발지원이 시작된다면, 이는 북한에 대한 '양보'가 아니라 북한의 체제 전환을 위한 세련된 대북정책으로 작동할 것이다.
  
  북한의 현실과 딜레마
  
  북한은 이미 1980년대 중반 이후 합영법 제정, 라진·선봉 자유경제무역지대 설치 등 개혁·개방을 위한 여러 시도를 했다. 그러나 북한 정부의 개혁 정책이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의 계획경제 시스템이 자생적으로 퇴화하고 해체하는 경향이 극심하게 나타났다. 북한의 중앙-도-지방이 관리하는 기업소들이 차례로 붕괴하기 시작했고, 현재에도 공장가동률이 대략 20~30% 정도로 추정된다.
  
  과거 북한이 제시한 공식통계에 비추어 볼 때 왜 이렇게 갑작스러운 붕괴 사태가 발생했는지 납득하기 어렵지만, 최근 분석에 따르면 성장률 하락이 시작되는 '데드-크로스'가 이미 1960년 초반일 가능성도 있다.
  
  이에 따라 북한 주민들은 생존을 위해 합법, 반합법, 불법적인 다양한 방식으로 원시적인 형태의 시장경제적 활동에 참가하게 되었고, 이것이 다시 계획경제를 위축시키는 악순환이 나타나고 있다. 또한 1990년대 이후로 북한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대규모 수해 사태 역시 경제위기를 직접 반영하는 산림황폐화의 큰 영향을 받았다. 북한은 7·1 경제개선 조치를 발표해 이러한 상황을 인정하고 적응하려는 태도를 보였으나, 북한의 경제상황은 크게 개선되지 못하거나 더욱 악화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북한이 직면한 딜레마는 '시장경제' 요소를 도입하는 개혁이 반드시 경제성장으로 귀결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1968년 헝가리의 '신경제 메커니즘'이나 1985~87년 이후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는 현재 북한이 추진하는 것보다 훨씬 더 광범위한 개혁조치를 구사했지만 경제회생을 가져다주지 못했다. 이로 인해 오히려 기존 메커니즘과 새로운 메커니즘의 충돌이 발생하거나, 소득격차 확대와 인플레이션 심화로 인한 대중소요가 나타나기도 했다. 이런 현실 때문에 일각에서는 북한의 '개혁 후 붕괴 시나리오'를 제시하기도 한다.
  
  북한의 대외 의존과 경제개혁의 상관성
  
  북한의 개혁·개방을 주창하는 이들이 던지는 궁극적인 질문은 이렇다. 북한은 정치적 안정과 인민의 경제적 피폐 상황을 맞바꾼 현재의 상태를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정치적 불안정성을 어느 정도 감수하더라도 과감한 개혁·개방으로 북한 경제를 되살리고 인민의 생활상을 개선할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우선 국제통화기금(IMF)과 동유럽 경제의 관계를 한 번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폴란드와 헝가리에서는 경제위기가 닥친 1980년대 초반부터 IMF의 활동이 시작되었고, 1980년대 말 본격적인 경제개혁을 시작한 대부분의 동유럽 국가도 IMF의 지도를 받게 되었다. (북한 역시 1971년 서방 각국으로부터 대규모 차관을 도입하고 대서방 무역 확대를 추진했지만, 1977년 이후 외채 상환 불능 상태에 빠지면서 대서방 경제교류를 중단했다.) 당시 IMF의 압력 하에 동유럽에서 추진된 개혁은 ①가격자유화, 임금자유화, 무역자유화, 기업경영 자율화, ②거시경제적 안정화, ③국가기업의 사유화, ④시장경제 운영을 위한 제도적 장치와 기구의 확립 등이었다.
  
  이는 1997년 외환위기를 통해 한국이 직접 체험한 것과 본질적으로 동일하며, 저개발국의 경제발전을 위해 도출된 1989년의 워싱턴 컨센서스와도 동일하다. 세계 경제개혁을 주도하는 자들은 저개발 국가든, 기존 사회주의 국가든, 아니면 선진국이든 간에 각국에게 적합한 특수한 경제정책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으로 바람직한 단 하나의 경제정책(신자유주의!)이 있다는 관점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개혁이 경제적 생산의 감소, 인플레이션과 실업의 증가, 계층 간 경제적 격차의 확대라는 파괴적인 효과를 낳은 것 역시 분명한 사실이다. 워싱턴 컨센서스와 IMF 경제개혁의 입안자들은 이러한 부정적 효과는 경제의 체질개선을 위한 일시적 혼란일 뿐이고, 이러한 어둠의 터널을 뚫고 나오면 건전한 경제성장이 가능하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그러나 과연 그들이 주장이 사실이냐는 문제는 세계의 민중운동이 세계적 불평등성의 증대와 빈곤의 심화를 고발하는 것처럼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명백하다.
  
  현재 남북 경제협력 사업은 1단계로 북한을 남한 경제의 '후배지'로 육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으며, 북한경제의 통합 과정을 통해 세계경제체제로의 편입을 유도하겠다는 장기적 전망을 제시하고 있다. 나아가 남한의 여러 기관들은 이러한 전망이 북한이 선택해야 할 '유일한' 대안인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더욱 심각한 문제는 북한이 점점 더 대외 의존적인 경제구조로 바뀌고 있고, 남한과 국제경제기구의 지원 없이 버틸 수 없는 상태로 악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북한 경제의 해체와 퇴화냐, 신자유주의 개혁이냐는 질문은 서로 다른 모습의 재앙을 강요하는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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