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박인규의 집중인터뷰에서는 6·15 공동선언 당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을 지낸 황원탁 박사를 초대해 2000년 제1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던 당시를 되돌아보고 제2차 회담의 의미와 회담 때까지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얘기 나눠봅니다.
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황원탁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입니다. 황원탁 박사는 1938년 강원도 평창 출생으로 62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고 2005년 단국대에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육사를 졸업한 후 소위로 임관해 한·미 야전군 사령부 작전 참모부장과 한·미 연합사 작전 부참모장을 역임했고 한국군 장성으로는 처음으로 유엔사군사정전위원회 수석대표를 역임했습니다. 95년 전역 이후 4년 동안 주파나마대사로 근무했고 2000년 대통령외교안보수석비서관으로 재직하면서, 6월15일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킨 주역 가운데 한 분입니다. 이후 주독일대사와 경남대학교 북한대학원 석좌교수를 역임했고 현재는 한성대학교 국제대학원 초빙교수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주로 후진양성에 바쁘신 것 같은데요
황원탁 : 퇴직 이후에 그동안 공직에서 경험했던 것을 가지고 후배들에게 나눠주는 봉사활동을 좀 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2000년 1차 남북정상회담 이후 7년만에야 2차 정상회담이 열리게 됐습니다. 약간 늦은 감이 없지 않진 한데요. 게다가 또 한 달 가량 연기됐는데요, 약간 엉뚱한 생각입니다만 10월 2일부터 4일까지잖아요. 3일이 우리 민족이 시작된 날인데 그 날이 가운데 껴서 남북이 만난다. 그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7년만에 열리는 남북정상회담을 1차 정상회담의 주역 가운데 한 분으로서 어떤 소감이 드십니까?
황원탁 : 참으로 감회가 깊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7년 전 1차 정상회담은 정말로 감동적인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분단 이래 지속돼 온 불신과 대결의 남북관계를 화해와 협력의 관계로 전환시킨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한반도와 우리 민족이 평화통일 과정을 위해서 그 과정을 처음 시작한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어렵게 만들었던 남북정상회담이 7년이라는 오랫동안 열리지 않아서 맥이 끊어지지 않는가 하고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제 2차 정상회담이 열린다고 하니 참으로 반갑고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인규 : 2000년 6월 13일,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순안공항에 내렸을 당시, 저도 당시 TV를 통해서 봤는데요 김정일 위원장이 나와서 두 분이 포옹하던 장면이 생생합니다. 그 당시 김정일 위원장이 직접 공항에 나올 거라는 걸 알고 가셨습니까 모르고 가셨습니까?
황원탁 : 사실은 김정일 위원장이 공항에 나올 가능성은 있다고 믿었지만 사전에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김정일 위원장이 공항에 직접 영접 나온다는 것은 북한에서도 특별한 예우를 차릴 경우에만 해당되기 때문에, 아주 없었지요. 그러나 그보다도 김정일 위원장이 공항에 나왔다는 사실보다도 더욱 놀라웠던 것은, 막 도착해 보니까 인민군 의장대가 사열을 할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이 트랩에서 내리자마자 김 위원장이 영접해서 인민군 의장대의 사열을 받도록 했습니다. 비무장지대를 가운데 두고 서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적대관계에 있었던 상대방 정상으로 하여금 자기네들 군대의 사열을 받도록 한다는 건 정말 놀라운 일이죠. 그래서 저는 그걸 보고, 정상회담이 이번에 성공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박인규 : 황 박사님도 30년 이상 군인을 하셨기 때문에 감회가 새로우셨겠습니다.
그 당시에 공항에서 백화원에 가는데 김대중 대통령께서 김정일 위원장의 승용차에 탔어요. 당시 그걸 놓고 국내에서 말들이 많았습니다. 심지어는 납치된 거나 다름없다. 두 분이 무슨 말ㅆ므을 했는지, 그런 식의 논란이 많았는데 왜 그렇게 된 거였습니까?
황원탁 : 저도 그 후에 그런 이야길 들었습니다만, 제가 대통령이 타신 차 바로 뒤에 차를 타고 따라갔는데 두 분이 서로 긴밀한 다른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은 전혀 없었다고 생각됩니다. 왜 그런가 하니 순안공항에서 백화원 초대소까지 가는데 거침없이 걸어가면 15분에서 18분 정도면 도달할 거리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당시 60만 명이라는 많은 인파가 나와서 환영한다고 하니까 많은 인파에 섞여서 차가 조금 가다가 서서 내려서 두 분이 또 같이 손 들고 악수하고. 또 조금 다가가 또 그렇게 하고. 이와 같은 과정을 반복하다 보니 근 한 시간 가까이 걸렸거든요. 그러니까 그 과정이라는 것이 그 분위기 속에서 어떤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박인규 : 어제 민주신당 이화영 의원을 초대해서 이번 정상회담이 이뤄지기까지의 뒷얘기를 들어봤습니다. 그 당시에는 어떻게 해서 정상회담이 가능했는지, 저도 기억이 나는데 김대중 대통령께서 베를린에 가서 이른바 베를린 선언을 하시면서, 그 당시 국내 학자 한 분이 김대중 대통령의 연설을 들으니까 남북정상회담이 될 것도 같다, 그런 말을 했던 기억도 나는데, 실제로 베를린 선언이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건가요?
황원탁 : 그렇습니다. 1차 정상회담은 제가 당시 외교안보수석을 하고 있고 또 제 소관분야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만 1차 정상회담이 어떤 막후교섭에 의해 이뤄진 건 아닙니다. 사실상 정상회담이 이뤄진 과정을 잘 살펴보면 마지막 구체적 일정을 조율하는 협상을 제외하면 투명하게 이뤄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니, 김대중 대통령께서 취임사에서부터 정상회담을 포함해서 남북 정부 간에 대화를 끊임없이 주장해 왔고 또 대북햇볕정책을 추진하면서 북한을 도와주겠다고 제안해 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소위 독미독남이라는 정책을 추진하면서 남한은 배제하고 미국하고만 이야기하겠다는 태도를 취해 왔습니다.
이러는 동안 북한의 사정은 더욱더 어렵게만 되어 갔죠. 거듭되는 수해로 인해 농산물 수확은 줄어들고 도로, 철도, 항만, 통신, 전기 등 사회간접자본이 송두리째 파괴되는 상황까지 오게 됐습니다. 그러다가 2003년 3월 9일, 대통령께서 베를린에 가셔서, 그때 국빈방문을 갔습니다만.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소위 베를린 선언을 하시게 됐죠. 이 선언에서 한국 정부는 북한을 도울 용의가 있다.
그러니 북한은 의심 갖지 말고 나오라고 하는 강력한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또 연설을 하기에 앞서서 하루 전에 이연설문은 판문점을 통해서 북측에 대통령이 이러이러한 연설을 한다는 내용을 내일 한다고 통보했습니다. 이것은 분단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인데, 이건 뭐냐면 우리의 진정성, 북한을 도와주겠다는 진정성을 보여줌으로 해서 북한이 우리를 믿도록 하는 신뢰조성 차원에서 이뤄졌던 겁니다.
그 다음에 연설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오니까, 서울에 도착했을 때가 3월 11이었습니다. 도착하니까 북한에서 정상회담을 논의하자고 하는 메시지가 도착됐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대통령께서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이었던 박지원 장관을 대표로 보내서 정상회담 일자와 장소를 협의하도록 보냈던 거죠. 그 부분만 사실 비공개로 진행된 것이지 그 이전의 성상회담 준비과정은 전부 이와 같이 참 공개적으로 정책적으로 추진됐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박인규 : 오히려 큰 틀에서 보자면 베를린 선언이라든가 그런 공식적, 공개적인 오고감이 회담 성사에 기여했다는 말씀이신데...
황원탁 : 결국 김대중 대통령의 일관된 대북화해협력정책이 북한을 안심시키고 조그마한 신뢰가 조성된 것이죠. 이런 신뢰를 바탕으로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된 겁니다.
박인규 : 그러나 옥의 티라고 할까요?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대북송금 문제가 불거지고 해서, 회담 성사를 위해서 남한 정부가 일정한 액수의 돈을 줬다. 그 부분에 대해선 혹시 아시는 바가 있으십니까?
황원탁 : 사실 그 문제에 대해서 저는 일체 관여한 바가 없고 아는 바가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박인규 : 이번에는 그런 일이 없어야겠죠. 1차 정상회담 당시 옆에서 보신 김정일 위원장이란 분은 어떤 분이었습니까?
황원탁 : 당시에도 그와 같은 질문을 많이 받았고, 제가 또 정상회담이 끝난 바로 직후, 그 다음날 미국에 가서 클린턴 미국 대통령에게 직접 설명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정상회담 결과에 대해서 설명을 마치고 나니까 클린턴 대통령도 저한테 똑같은 질문을 했어요. 저는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런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만, 정상회담 과정을 통해서, 정상회담이 한 4시간 반 정도 휴식시간 30분 포함해서 지속됐는데... 김정일 위원장이 자기 주장을 펴다가도 김대중 대통령이 논리적으로 또 합리적으로 설명하면 자기 생각이 틀렸다... 그러면 그 즉석에서 알았습니다, 알겠습니다 하고 즉시 받아들여요.
박인규 : 쉽게 말해서 말을 알아 듣는 분이군요.
황원탁 : 그래서 상당히 그 자체로 보면 합리적인 사고를 하고 있지 않느냐... 그렇게 봤습니다.
박인규 : 제 기억으론 매들린 울브라이트 미 국무장관도 그 당시 그런 말씀을 하셨던 것 같은데요...
1차 정상회담 주역 중 한 분이신데 스스로 자평하시기가 뭐하긴 합니다만 제 1차 정상회담의 성과라면 무엇이라고 꼽을 수 있을까요?
황원탁 : 우선 큰 틀에서 볼 수가 있습니다. 1차 정상회담의 성과라면 모두에서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우선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분단 이후 반 세기 이상 우리가 분단 상태에 있는데 처음으로 남북 정상 간에 회담이 열렸다는 거죠. 그리고 그 전까지만 하더라도 기억하시겠지만 바로 그 전에 99년에 연평해전이 있었고 북한의 잠수정 침투사건이 있었고, 이러한 북한의 대남도발사건들은 매년 2, 3회씩 있었습니다. 그 이후에 2002년 월드컵 당시에 마지막 날, 준결승하던 날 북한이 보복 차원에서 서해교전을 일으켜서 우리 해군 장병이 희생을 당한 적이 있었는데 그것을 제외하고 나면 그 이전까지는 참 우리가 그렇게 불안한 가운데서 언제든지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상황하에서 살아왔죠.
그러나 2000년 정상회담 이후에 사실 그런 안보불안은 상당 부분 많이 없어졌다고 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서쪽에는 개성공단이 만들어지고 있고 이것이 완공된다면 북한 노동자 35만 명이 거기서 일하게 됩니다. 그리고 동쪽에는 금강산 관광이 이뤄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동해선과 경의선이 연결됐습니다. 민족의 동맥이 연결된 것이죠.
그런데 지금 개성공간이 위치한 곳하고 금강산이 어떤 곳입니까. 6.25 동란 당시 북한이 남침을 할 때 적의 주공이 바로 내려오던 주접근로입니다. 그리고 2000년 정상회담 이전까지만 해도 그 장소에는 북한의 중무장한 북한군이 가장 강력하게 배치돼서 언제든지 우리를 남침할 수 있다고 위협을 주던 바로 그 장소입니다. 그 자리에 지금 개성공단이 들어서 있고 금강산 관광지역이 돼 있단 말씀이죠. 이것이 그야 말로 우리가 안보상황을 검토해 볼 때 얼마나 큰 변화입니까. 엄청난 변화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박인규 : 6.15 선언 이후를 일부에서는 6.15 시대라고 말씀도 하시고 남북 교류가 비약적으로 늘었다고 말씀도 하시고.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관광 같은 남북교류가 늘고 있는데 아직은 우리가 애초 예상했던 만큼 못 나가고 있다고 보시는 분들도 계시고. 2000년 이후 남북 간 교류나 협력의 진척도를 황 박사께서는 만족스럽다고 보십니까 부족하다고 보십니까?
황원탁 : 보는 사람의 각도에 따라서 만족이다 불만족이다 이렇게 얘기할 수 있지만 우리가 2000년 이전과 이후를 비교해서 본다고 할 것 같으면, 비록 시작에 불과하지만 이것은 엄청난 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작이라는 건 무슨 뜻이냐면, 바로 우리가 평화통일을 향해서 한 걸음 한 걸음 발전돼 나가고 있고 지금 통일과정에 진입됐다고 보는 겁니다. 통일과정의 시작으로 치면 엄청난 변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한반도 평화통일을 논한다고 하면 우리의 통일이라는 건 EU... 유럽연합과 같은 방식으로 해야 됩니다. 다시 말하면 정치적 통합을 이루기 전에 먼저 경제적 통합을 해서 남북한 주민들이 서로 왕래하고 자기가 살고 싶은 곳에 살고, 또 자기가 가서 일하고 싶은 곳에 가서 일하는 경제통합체가 먼저 이뤄진 다음에 정치적 통합으로 가야 되거든요. 우리가 그 길을 가는 과정에 있는 겁니다. 벌써 진입한 겁니다. 그 진입이 바로 6.15정상회담을 통해서 이뤄진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지금 벌써 통일과정에 진입돼 있고 그 과정은 시작됐다. 그런 면에서 보면 1차 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의 발전은 엄청난 변화라고 설명 드릴 수가 있고.
지금부터든, 그동안 지나간 몇 년 동안은 우여곡절이 있어서 여러 가지 국내외 정세 때문에 남북 관계가 좀 더 기대만큼 발전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북한 핵문제도 해결 단계에 들어가고 있고 미국도 미국 정부의 대북정책이 강경정책에서 조금 더 북한과 관계를 개선하는 방향으로 바뀌어 가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서 그동안의 조금 미흡했던 남북 관계를 더 활성화 시킬 수 있는 모멘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박인규 :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2000년 6.15 공동선언으로 통일의 물꼬를 텄다면 이번 제 2차 남북정상회담을 통해서 그걸 더 확대 발전시켜야 할 텐데요 일단 2차 정상회담과 관련된 논란 중 하나라, 시기가 대선을 앞두고 있다는 점을 들어서, 1차 정상회담이 총선용이라면 이번 회담은 대선용이라는 비판이 많이 있는데, 그런 국내정치와 관련된 비판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황원탁 : 보는 사람에 따라서, 특히 정치를 하시는 분들은 모든 문제를 자기의 정치적 이해관계라는 입장에서 보려고 하겠죠. 그러나 남북정상회담이라는 것은 모두에서도 말씀드렸지만 한반도의 운명을 좌우하는 전쟁과 평화의 문제를 이야기하게 되고. 또 평화통일을 위해서 우리가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며 또 우리 민족의 진로가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 토의하는 자립니다. 이런 문제는 우리의 국익과 바로 밀접히 관련 있는 문제들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정상회담을 정파적인 이익, 이해관계에 따라서 해석하는 건 온당치 못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이 문제는, 정상회담만은 여당 야당이라는 정파의 이해관계를 초월해서 초당적으로, 그리고 전 국민이 다 같이 힘을 모아서 정상회담이 성공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박인규 : 큰 틀에서 보자. 지난 8일 정상회담 발표가 나오면서 의제를 정하지 않았다는 발표가 나오니까 일각에선 어떻게 회담에 의제가 없을 수가 있느냐. 말하자면 의제를 구체화해야 된다는 지적들이 나왔는데, 1차 정상회담 때도 그렇게 의제를 정해 놓고 시작했습니까? 일부에서는 정상회담은 의제란 것이 따로 있을 수가 없고 모든 얘길 할 수 있다고 하시는데, 1차 정상회담 때의 경험을 봐서는 어떤 식으로 의제를 조정하는 게 좋다고 보십니까?
황원탁 : 1차 정상회담 때도 마찬가지고 이번 회담도 마찬가집니다만, 남북한 정상회담에서 논할 수 있는 문제는 이미 정부에서도 발표했는데 평화, 번영, 통일입니다. 이 세 가지 단어 속에 한반도에 관련된 우리 민족의 장래와 관련된 모든 문제들을 다 여기 포함시켜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의제는 이미 결정됐다고 봅니다. 두 정상이 모이게 되면 세세한 구체적인 문제를 가지고 서로 논하는 것이 아니고 이러한 큰 틀에서 우리 민족이, 또 한반도가 나아가야 할 진로에 대해서 서로 의견을 교환하고 또 국제정세에 대해 서로 의견을 나누고. 그래서 서로 공감대를 넓히고 인식을 같이 하고. 그리고 그런 인식을 바탕으로 해서 구체적으로 우리가 발전시켜 나가야 할 분야가 어떤 분야냐, 이렇게 방향을 제시하는 거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의제 문제에 대해서는 그렇게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 같고, 특히 노 대통령께서 지난 8.15 경축사를 통해서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무리하게 욕심내지 않겠다. 어떤 역사적인 전기를 만들기보다는 역사적 순리가 현실화되도록 노력하겠다. 지당한 말씀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그 저는 그 문제에 대해서 염려하지 않습니다.
박인규 : 한민족의 평화와 번영과 통일이라는 큰 관점에서 두 정상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함으로써 신뢰를 쌓고 서로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이번 정상회담에 대해서는, 일각에서는 정상회담을 정례화하는 것만 해도 큰 수확이라고 보는 시각이 있는 반면, 북핵 폐기에 대해서 확실한 약속을 받아 와라. 이런 쪽도 있고 더 나아가서 차기 정부에 부담이 되는 약속을 해선 안 된다. 굉장히 이번 회담이 이뤄야 될 목표에 대해 여러 가지 의견들이 나오고 있는데 황 박사께서 보시기에 이번 회담에서 최소한 이것 정도는 이뤄야겠다고 한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황원탁 : 앞에서도 간단이 말씀 올렸지만 정상회담이라는 것은 만남 그 자체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양측의 정상들이 모여서 서로 여러 가지 현안 문제들에 대해서 의견을 나누고 또 공감대를 넓혀 간다는 자체, 그리고 그런 과정을 통해 서로 신뢰를 돈독히 하는 그 자체가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서나 또 우리나라의 평화적 통일을 위해서나 대단히 중요한 것이죠. 그래서 그 자체로서 대단히 의미가 있는 거고.
두 번째는 이와 같은 정상회담을 제가 보기에는 그렇기 때문에 자주 할수록 좋다고 봅니다. 그렇죠. 자주 할수록 좋은데, 이것이 1년에 한 번씩은 꼭 해야 되겠다는 식으로 정례화 한다... 이러한 문제는 사실 과정이나 절차의 문제가 아니고 여건의 문제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래서 그런 여건을 잘 조성해서 계속해서 정례화하도록 노력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만약 그런 문제가 이번 회담에서 구체적으로 합의에 이른다고 하면 큰 성과의 하나라고 볼 수가 있겠죠.
두 번째, 북핵 문제도 앞서 말씀드린 평화, 번영, 통일이라는 의제 속에 다 포함시켜서 이야기할 수 있는 내용이거든요. 왜냐 하면 우리나라에 평화를 정착시키는 데 있어서 북핵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평화가 정착이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문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리라고 봅니다. 세 번째, 다음 정부에 부담이 될 수 있는 문제를 이야기하면 어떡하나 우려하는 분들이 있습니다만 제가 보기에는 이번 회담에서 다음 정부에 부담을 주도록 합의할 수 있는 사안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 점은 염려 안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박인규 : 아마 현 노무현 정부에서도 황 박사님께 여러 가지 자문을 구하러 오실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이 자리를 빌어서 이번 정상회담에 임하는 당부랄까요, 그런 말씀 간단하게 부탁드리겠습니다.
황원탁 : 이번 정상회담에 임하는 자세는 앞에서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이미 노무현 대통령이 8.15 경축사를 통해서 정상회담에 임하는 자세를 이야기한 바가 있습니다. 저는 그분의 말씀에 조금도 토를 달고 싶지 않아요. 그대로만 한다면 반드시 정상회담은 성공하리라고 봅니다.
박인규 : 이번 2차 정상회담이 잘 마무리돼서 한민족의 평화와 번영과 통일에 기여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황원탁 : 감사합니다.
박인규 :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오늘은 지난 2000년 6·15 공동선언 당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을 지낸 황원탁 박사와 함께했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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