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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체제를 넘어 2013년체제로 나아가자

[창비주간논평] 단순한 후보 단일화가 아닌, 대선 이후 개혁연합으로 공고히 해야

초미의 관심사인 야권 대선후보 단일화 TV토론이 오늘밤(21일) 열립니다. 1987년 YS·DJ의 후보 단일화 실패로 불완전하게 출범한 '87년체제'는 한국사회의 발전에 기여함과 동시에 많은 한계를 낳았습니다.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2013년체제'라고 부름직한 새 시대의 길목에 서 있습니다. 지금의 야권후보 단일화에 어떤 역사적 책무가 걸려 있는지, 그 협상 당사자들과 이를 지켜보는 우리는 어떤 마음가짐을 지녀야 할지 당부하는 글을 권해드립니다. 최근 발간된 <창작과비평> 2012년 겨울호(158호)의 '책머리에'에 실린 글입니다.

87년체제는 김영삼과 김대중의 단일화 실패로 인해 민주화투쟁의 성과가 미흡하고 왜곡된 형태로 제도화됨으로써 시작되었다. 이 실패의 그늘은 어둡고 깊었다. 독재와의 투쟁 속에서 야당-재야·시민사회운동-대중을 아우르며 형성된 최대 도전연합은 이후 민주화를 이끌 사회세력연합으로 발전하는 대신에 전에 없이 반목하며 흩어져버렸다. 반독재투쟁 속에서 민주적 감수성을 단련한 자유주의세력이 독자적 정체성을 가지며 발전하기는커녕 지역주의에 편승해 권력을 재생산하는 퇴영적인 존재가 되었으며, 3당합당이나 DJP연합처럼 보수세력과의 타협 속에서 겨우 정치적 대안을 조직할 수 있었다. 이로 인해 개혁적 자유주의세력과 진보진영 사이에도 심대한 분열이 일어났다.

이런 과정에서 우리가 치른 것은 재벌 중심의 경제구조의 심화나 수구적 사회세력의 존속 같은 사회경제적 대가에 한정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심리적 대가가 컸다. 과거의 정치적·사회적 악행에 대한 청산과 평등하고 공정한 삶으로 나아갈 길이 비틀리게 된 원인의 일부가 민주개혁진영 내부에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었으며, 그것이 주는 자존감의 상처는 컸다. 또한 지도자들의 이기심과 오판이 열성적 추종자들을 경유해 대중 속으로 파고들어감으로써 사회적 분열도 증폭되었다. 이후 우리는 사회개혁의 비전과 담론, 정당 그리고 사회집단이 제대로 정렬되지 않고 어긋나는 착종과 혼동의 긴 시간을 겪어왔다.

▲ 민주통합당 문재인(왼쪽) 대통령후보와 무소속 안철수(오른쪽)후보 ⓒ프레시안(최형락)

87년체제의 성립과 탈피의 움직임

하지만 이런 87년체제의 제약을 넘어서려는 탈피의 운동도 지속되어왔다. 이 움직임은 민주화 이후 최초로 대규모 반동을 시도한 이명박정부하에서 문턱을 넘기 시작했다. 체제 변동을 이끄는 담론의 수준에서도 박정희체제를 넘어 87년체제 내내 영향력을 발휘했던 보수적 성장주의 그리고 보수파가 주도한 신자유주의가 설득력을 상실했다. 그 대신 수평적인 사회적 유대에 터한 복지, 평화 그리고 정의의 담론이 헤게모니를 획득했다. 2008년 도심을 밝힌 촛불항쟁에서 모습을 드러낸 대중의 직접행동은 일관성있는 투표와 정당 및 정치 혁신의 요구로 발전했다. 그렇게 해서 담론-정당-시민사회운동-대중을 연결하는 최대 도전연합이 1987년 6월항쟁 이후 처음으로 재출현했다. 그리고 87년체제로부터의 탈피 운동을 새로운 체제 수립으로까지 밀어붙일 수 있는지 시험하는 단계에 접근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87년체제의 출범기에 마주쳤던 지도자 문제를 다시 대면하고 있다.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회동이 이루어졌으며, 회동 직후 발표된 합의문은 그 전에 엷게 퍼져 있던 긴장과 불안감을 상당부분 씻어내렸다. 이로써 체제 전환을 향한 또 하나의 중대한 고비를 넘어섰다. 단일화 실패 속에 출범한 체제를 단일화를 통해 극복할 길이 열리고 있는 것이다. 분명히 문, 안 두 후보는 양김보다 정치적 훈련이 모자라고 그들만큼 확고한 지지세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감히 말하건대 이들은 바로 그 미약함 때문에 도리어 우리에게 더 위대한 것을 선물할 수 있다.

단일화 과정의 계산보다 중요한 '개혁연합'의 형성

이미 시작된 '새정치 공동선언' 협상에 이어 벌어질 단일화 협상 그리고 대선 승리를 향해 가는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여러가지 문제들이 출현할 텐데, 이와 관련해 두가지 점을 말해두고 싶다. 우선 단일화 방식을 둘러싸고 이런저런 계산이 있을 수 있다. 두 후보가 대의를 지향하며 계산을 억제하려 해도 지지자와 대중에 의해서 그리고 새누리당과 보수언론의 부추김을 통해서도 계산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고 계산은 불신을 자아내는 통로 구실을 할 것이다. 이때 요구되는 것은, 한편으로는 각자가 승리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가질 수 있는 공정한 규칙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후보나 지지자들 모두 자기 쪽이 질 가능성을 허심탄회하게 수용하는 마음가짐이다.

다른 하나는 단순한 후보 단일화가 아니라 현재의 도전연합을 대선 이후 개혁연합으로 공고히하는 작업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권력은 나눌 수 없는 것"이라는 억견을 넘어서는 일도 필요하다. 생각해보면 그런 말 자체가 권위주의적 통치의 유산일 뿐이다. 민주화란 권력의 분점과 분권화이며 궁극적으로 권력 형성과 행사가 시민 모두에게 분산되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중요한 것은 권력을 나눈다는 것이 아니라 나눌 만큼 신뢰한다는 것, 그리고 나눔을 통해 더 큰 씨너지를 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단일화 경쟁에서 진 후보와 그 세력이 대선 승리 이후에도 국정에 참여할 길을 폭넓게 여는 창의력있는 정치적 실험이 모색되어야 한다. 그럴 때 단일화 결과보다 가치와 정책의 연합이 더 중요해지고 단일화 승부에 대한 집착을 떨칠 수 있다.

한국 민주주의와 세계사적 전환의 의미

그렇게 해서 단일화에 이어 민주진영의 대선 승리가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해방 후 한국사회에서 민주파가 단독으로 집권에 성공하는 첫번째 사례가 된다. 그런 경우에도 여전히 여소야대의 국회 상황이 기다리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안철수 현상으로 대변되는 정당혁신과 정치혁신의 움직임은 대선 승리를 이룰 경우 현재의 정당체제 전반을 새롭게 재구성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런 견지에서 현재의 단일화 논의가 민주적 세력연합에 조응하는 대안적인 정당운동을 구상하고 지향하는 쪽으로 확장될 필요가 있다. 이런 흐름이 결실을 맺는다면 새누리당 또한 현재의 틀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도 대선 승리는 2013년체제를 수립하는 초석이라고 할 수 있다.

눈을 밖으로 돌릴 때도 체제 전환의 의미는 중대하다. 87년체제는 냉전 속에서 이룩된 성과였다. 그래서 체제의 내적 한계와 외적 제약요인 때문에 분단체제를 동요로 이끌긴 해도 결정적 전환을 이루기 어려웠다. 하지만 지금은 동서냉전이 종식된 지 오래임은 물론 자본주의 세계체제 변화의 폭과 깊이가 심대해지고 있으며,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과 북한 모두 앞서거니 뒤서거니 권력교체 시기를 경과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공고한 민주적 세력연합에 기초한 새로운 민주정부의 탄생은 한반도발(發) 세계체제 변동의 계기가 될 수 있으며, 분단체제의 질곡을 결정적으로 돌파하는 시대를 열 수 있다.

이렇게 커다란 가능성과 기회가 우리 손 안에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가능성과 기회의 포착 가능성이 현재의 정치 과정에 참여한 모든 이들의 미시적인 행위와 발언에서의 신중함, 창의력 그리고 열정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도래한 미래를 현실화하는 것, 87년체제로부터의 탈피를 2013년체제의 수립으로 잇는 것, 문턱을 마침내 넘는 것, 그것이 지금 우리가 해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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