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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1극체제, 에너지 전쟁으로 붕괴 중"

[전망] 중ㆍ러, 베네수엘라ㆍ이란의 편대공격 거세

<비밀과 거짓말:'이라크 자유' 작전>에 이어 최근 <지구의 혈액: 고갈되는 석유자원을 둘러싼 세계전쟁>을 출간한 중동문제 전문가 딜립 히로가 이라크 전쟁 이후 미국의 패권이 뚜렷하게 퇴조하는 현상을 집중분석해 주목된다.

딜립 히로는 <비탈길에 선 미국(America on the Downward Slope)>이라는 글에서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 군림해온 미국이 러시아와 중국 등의 도전에 흔들리고 있다면서, 그 배경에는 석유 등 에너지 자원을 둘러싼 전쟁이 힘의 균형을 재편하는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히로는 1991년 소련이 붕괴하면서 미국은 유일한 초강대국이 되었지만 20년도 지나지 않은 지금, 러시아와 중국이 전면으로 나서고, 베네수엘라와 이란이 지역 열강으로 뒤에 서는 대오를 갖춰 미국의 패권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히로는 미국이 세계의 눈과 귀를 가리던 미디어 독점체제도 이라크 전쟁 때 등장한 아랍위성방송 알 자지라 등 대항매체들이 속속 등장해 깨져버렸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히로는 21세기 들어서 국제무대에서 벌어진 굵직한 사건들을 통해 중대한 변화가 진행 중이라고 분석한 뒤, "현대사에서 어떠한 초강대국도 몇 세대를 거쳐 패권을 유지한 사례가 없으며, 미국은 이미 정점이 지난 것은 분명하며 예외적 존재가 될 가능성은 결코 없다"고 결론지었다.

다음은 미국의 진보 웹사이트 <톰디스패치>에 지난 20일 게재한 <비탈길에 선 미국(
America on the Downward Slope)>의 주요 내용이다. <편집자>
▲ 중국의 후진타오 주석과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 지난 8월16일 상하이협력기구 정상회의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1991년 소련이 붕괴하면서 미국은 유일한 초강대국이 되었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10년도 지나지 않아 다극체제로 바뀌고 있다. 러시아와 중국이 전면으로 나서고, 베네수엘라와 이란이 지역 열강으로 뒷줄에 선 형국이다.

왜 이렇게 상황이 빨리 변했는가?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의 수렁에 빠진 것이 큰 요인임에 틀림없다. 브렌트 스코크로프트 전 국가안보보좌관은 최근 "국가 수준도 못 되는 적과의 싸움에서 이기지 못하고 있다"고 시인했다.

이라크를 침공했다가 재앙으로 변한 점령,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어설픈 군사작전으로 미국의 신뢰도는 땅에 떨어졌다. 이라크의 아부 그라이브 수용소와 쿠바의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벌어진 포로 학대, 이라크 하디타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 사건들은 미국의 도덕적 자부심을 망가뜨렸다.

미국의 미디어 독점체제 깨뜨린 알 자지라 위성방송의 등장

국제 무대에서 미국이 위축되는 배경에 다른 요인도 있다. 무엇보다 석유와 천연가스 확보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이 자원을 보유한 나라들의 힘이 전례없이 커졌다. 또한 중국과 인도 같은 인구대국이 경제적으로 급팽창했으며, 특히 중국은 세계의 공장으로 발돋움했다.

그리고 국제TV뉴스에서 미국과 영국의 독점체제가 끝났다. 1991년 걸프전 때 CNN과 BBC만이 바그다드에 특파원을 두었다. 12년 뒤 이라크 전쟁 때는 아랍 위성방송 알 자지라가 등장했다. 알자지라는 미 국방부의 설명과는 반대되는 영상과 사실을 보도했다. 사상 처음으로 전세계 시청자들이 실시간으로 전쟁 상황을 두 가지 버전으로 접하게 된 것이다.

알자지라의 보도가 신뢰할 만하다는 판단에 따라 아랍권 밖의 유럽, 아시아, 라틴아메리카에서도 많은 방송국들이 알자지라의 영상을 내보냈다.

이론적으로 볼 때 케이블TV가 전세계적으로 증가하면서 미국과 영국의 독점체제가 끝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현실적으로는 천문학적인 비용문제가 걸림돌이었다. 석유부국 카타르가 아랍과 무슬림의 시각에서 전세계에 보도하겠다면서 자금을 지원하면서 영어판 알 자지라가 2006년에 등장하자 비로소 독점체제가 깨진 것이다.

곧 이어 프랑스24가 영어와 프랑스어로 프랑스의 시각에서 방송을 하기 시작했으며, 2007년 중반에 이란의 관점에서 영어로 보도하는 프레스TV가 뒤를 이었다. 러시아도 24시간 영어뉴스 채널을 선보였다.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수도 카라카스에 범 라틴아메리카 TV인 텔레수르를 설립하도록 해 CNN과 경쟁하는 스페인어 방송을 개시했다.

카타르처럼 러시아와 베네수엘라가 이런 방송국을 지원하는 자금은 치솟는 석유가격 덕분에 나온 것이다. 블라디미르 푸틴이 집권한 이후 러시아는 1991년 소련 붕괴로 초래된 경제적 혼란을 벗어나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러시아는 에너지 산업을 다시 국유화하고, 러시아의 외교에 경제무기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2005년 러시아는 세계 2위의 석유생산국으로 떠오르면서 하루 6억7900만 달러를 석유수입으로 벌어들인다. 러시아산 석유를 수입하는 유럽국가들에는 헝가리, 폴란드, 독일은 물론 영국까지 포함돼 있다.

러시아는 천연가스 생산에서는 세계 최대국가다. 러시아에서 생산되는 가스 중 5분의 3은 유럽연합 회원국 27개국에 수출된다. 불가리아, 에스토니아, 핀란드, 슬로바키아가 사용하는 천연가스는 100% 러시아에서 수입되는 것이다. 터키는 66%, 폴란드는 58%, 독일은 41%, 프랑스는 25%를 러시아에서 수입한다.

2006년 러시아의 외환보유액은 1999년 120억 달러에서 3150억 달러로 급증했다. 이런 변화에 힘입어 푸틴은 미국의 부시 대통령과 당당히 맞설 수 있게 됐다.

푸틴은 2007년 2월 독일 뮌헨에서 열린 제43회 국제안보회의에서 "미국은 모든 면에서 국경의 한계를 넘어섰다"면서 "경제,정치,문화,교육 정책 분야에서 미국이 다른 나라에 강요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매우 위험한 현상"이라고 직설적으로 비난했다.

푸틴이 미국의 '1극 체제'를 겨냥해 "한 국가가 모든 것의 중심에 서서 결정하는 세상은 매우 좋지 않다"고 역설했을 때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많은 국가들은 반색을 했다.

미국과 러시아의 역학관계가 달라졌다는 것은 무엇보다 페르시아만의 석유대국들의 반응에서 엿볼 수 있다. 친미 아랍국가들도 이제는 러시아와 석유, 대테러 전쟁, 무기판매 등에서 공동의 현안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걸프연구센터의 압델 아지즈는 "걸프연안 국가들이 유일한 안보보장자로서 미국을 재평가하면서 집단안보체제를 고려하게 되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 "미국의 1극체제 신화는 이라크에서 산산조각 났다"

2007년 4월 러시아는 외교정책보고서를 통해 "1극체제의 신화는 이라크에서 산산조각이 났다"면서 "강력하고 자신감에 차있는 러시아는 세계의 통합을 이끄는 긍정적인 견인차가 되었다"고 선언했다.

미국과 러시아의 긴장이 점증하는 것은 러시아의 여론과 부합하는 것이다. 2006년 8월 G8 정상회담이 열릴 당시 러시아 국민들의 58%가 미국을 '비우호적인 국가'로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7월에는 러시아의 알레산드르 블라디미로프 장군이 러시아 최대 일간지 콤솔스키야 프라우다와의 인터뷰에서 "향후 10~15년 사이에 미국과 전쟁을 벌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에 우고 차베스도 동조하고 있다. 2007년 6월 러시아를 방문한 차베스는 블라디미르 레닌의 정신, 특히 레닌이 주창한 반제국주의에 러시아 국민들이 되살릴 것을 촉구했다. 차베스는 "미국은 러시아의 힘이 커지는 것을 원하지 않지만 러시아는 다시 힘의 중심으로 일어섰고, 전세계가 러시아가 더 강해지는 것을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차베스는 그 자리에서 잠수함 5대를 구매하는 10억 달러 계약을 체결했다. 베네수엘라는 이미 러시아의 무기를 가장 많이 사들이는 두 번째 고객이 되었다. 최대 고객은 알제리다. 이러한 사실은 세계가 다극체제로 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또다른 사례다.

차베스는 지난해 12월 재선에 성공한 뒤 라틴아메리카에 반제국주의 동맹을 구축하는 구상에 박차를 가했다. 볼리비아, 쿠바, 에콰도르, 니카라과, 그리고 아르헨티나 등 라틴아메리카 국가뿐 아니라 이란과 벨로루시까지 포함해 이들 나라와 관계를 더욱 공고히 했다.

지난 6월 차베스가 이란을 방문했을 때 앞서 이란과 베네수엘라가 맺은 180개 정치경제 협력방안들이 구체적인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이란에서 설계된 자동차와 트랙터가 베네수엘라에서 생산되기 시작한 것이다.
▲ 반미전선 구축에 앞장서고 있는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대통령과 이란의 아마디네자드 대통령. ⓒ로이터=뉴시스

차베스는 "이란과 베네수엘라 같은 독립국가들의 협력은 제국주의 정책을 분쇄하고 여러 나라들을 구하는 데 효과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차베스가 계속해서 모욕을 하는데도 부시 행정부의 반응은 미적지근했다. 그 이유는 미국이 소비하는 석유의 60%가 수입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베네수엘라는 캐나다, 멕시코, 사우디 아라비아의 뒤를 이어 미국이 가장 많이 석유를 수입하는 4번째 국가다.

차베스가 '유일한 초강대국'에 타격을 주려는 구상에 중국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2006년 8월 지난 7년 간 4번째에 해당하는 중국 방문길에서 차베스는 3년 내에 중국에 대한 석유 수출량을 현재보다 3배 많은 하루 50만 배럴까지 늘이겠다고 발표했다.

차베스는 미국에 대한 석유수출 의존도를 줄이고자 했고, 중국은 미국의 영향력이 강한 중동에 대한 석유수입 의존을 줄이고자 하는 이해관계가 서로 맞아떨어진 계악이다.

중국은 나아가 베네수엘라 오리노코 유전 개발을 위해 베네수엘라 국영석유기업 페데베사와의 협력관계를 맺고 13개의 석유시추탑을 건설하고, 18개의 유조선을 판매하기로 했다.

중국의 국영석유기업 페트로차이나의 성장도 눈부시다. 2007년 중반 페트로차이나는 전세계 에너지기업 중 시장가치로 엑슨모빌에 이어 2위로 등극했다. 10대 에너지 기업 중 미국이 5개를 차지하고 있지만, 중국도 페트로차이나를 포함해 3개나 되었다.

중국의 외환보유액은 1조 달러를 넘어서며 일본을 제치고 세계 1위가 되었고, 국내총생산(GDP)도 독일을 능가하며 세계 3위의 경제대국으로 떠올랐다.

중국 주도의 외교안보체제 상징하는 상하이협력기구

중국은 외교 분야에서도 1996년 상하이협력기구(SCO)를 주도하면서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SCO는 마약밀수와 테러에 대응하기 위한 협력기구로서 러시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등 인접국가를 회원으로 출발했다.

그 후 중국과 인접하지 않은 우즈베키스탄도 회원이 되었고, 2003년에는 SCO가 지역경제협력기구의 성격이 추가되면서 파키스탄, 인디아, 몽골 등 인접국가뿐 아니라 이란까지 옵서버 자격으로 끌어들였다.

미국도 옵서버로 참여하기를 원했으나 거부당했다. 동남아시아연합(ASEAN)에서 옵서버 지위를 누려온 미국으로서는 당혹스러운 사건이었다.

2007년 8월초 키르기스스탄의 수도 비슈케크에서 SCO 정상회의가 열리기 전날 러시아의 남부 첼랴빈스크시에서 정회원국 6개국 모두가 처음으로 참가한 작전명 '평화임무 2007'이라는 합동군사훈련을 실시했다. 키르기스스탄의 에드난 카라바예프 외교장관은 "SCO는 국제안보에 중대한 역할을 맡고 있다"고 말했다.

2006년말 베이징에서 개최된 중국-아프리카 포럼에는 아프리카 53개국 중 48개국의 정상들이 참여했다. 중국이 아프리카 대륙에서 외교 경쟁은 물론 석유 등 자원외교에서 미국을 비참하게 따돌린 사건이다.

아프리카의 석유, 철광, 구리, 면화 등을 수입하는 대가로 중국은 저가의 상품을 판매했고, 아프리카 국가들이 도로,철도,항만, 수력발전소, 통신설비, 학교 등을 건설하고 개량하는 사업에 협력했다. 중국의 국제문제연구소에서 아프리카 전문가로 일하는 왕홍이는 "다른 나라에게 자신들의 이데올로기적 가치와 정치체제를 강제하려는 서구적 접근방식은 중국이 용납할 수 없는 것"이라면서 "우리는 상호발전을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강조했다.

중국은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석유를 운송하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인도 벵갈만에서 미얀마를 거쳐 중국 남부의 위난성을 잇는 송유관 건설에 착수했다. 이러한 사업은 미국이 미얀마를 고립시키려는 계획에 차질을 가져다주었다. 수단이 미국의 제재를 받자 중국에 석유를 수출하는 아프리카 선두주자가 된 것처럼 중국이 미국의 대안세력이 된 것이다.

나아가 중국의 석유기업들은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에서 서구 기업들과 치열한 석유자원 개발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중국의 석유외교가 미국, 서유럽과 충돌양상을 빚으면서 중국이 사업을 벌이는 몇몇 나라들은 미국과 유럽의 제재를 받을 정도로 치열해 중국과 미국의 에너지 전쟁은 격화되고 있다.

중국은 군사 현대화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07년 1월 중국은 위성 요격실험을 처음으로 성공시켜 군사기술력을 과시했다. 중국의 공식적으로 밝힌 국방예산은 450억 달러로 미국의 4590억 달러의 10분의 1도 안 되지만, 2007년 5월 미 국방부의 한 보고서는 중국이 영토와 자원 분쟁에 대비해 대만해협을 넘어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겨냥해 군사력을 확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대사에서 어떠한 초강대국도 몇 세대를 거쳐 패권을 유지한 사례가 없다. 미국의 지도자들은 미국은 예외라고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이미 정점이 지난 것은 분명하며 오래된 역사의 패턴에서 벗어나 예외적 존재가 될 가능성은 결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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