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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에겐 건전한 의미의 '개인주의'가 절실히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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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한국인에겐 건전한 의미의 '개인주의'가 절실히 필요"

박인규의 집중인터뷰[08/21]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 펴낸 정수복 박사

안녕하십니까? 박인귭니다.

한국사회를 제대로 보기 위해선 비판적 거리가 필요하다며 한국을 떠나 프랑스 파리에서 연구하고 있는 파리사회과학고등연구원 정수복 박사가 한국인의 사고방식과 행위의 근원을 파헤치는 책을 출간했습니다. 정수복 박사는 한국사회의 문화적 문법을 통해 우리 사회의 정신적 근원을 탐구하면서 건전한 개인주의의 필요성을 제시하는데요. 특히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신정아 사태를 이러한 한국사회의 부정적 문법들이 고스란히 드러난 사건으로 해석했습니다.

오늘 박인규의 집중인터뷰에서는, 정수복 박사와 함께 한국인의 감추어진 초상과 이를 해체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얘기 나눠봅니다. 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파리사회과학고등연구원 정수복 박사입니다.

정수복 박사는 1955년 서울 출생으로 78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고 88년 프랑스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89년 귀국 후 연세대에서 사회운동론, 사회문제론 등을 강의하다가 환경운동연합 시민환경연구소 부소장과 크리스챤 아카데미 기획연구실장, 사회운동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하면서 KBS 대담프로그램과 시사프로그램 진행을 맡기도 했습니다. 2002년 이후 두 번째 파리 생활을 시작한 그는 현재 '사회과학고등연구원'의 초청연구원으로 있으면서 '종교와 한국사회'를 주제로 강의하고 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박인규 : 파리 가신 지가 한 5년 되신 걸로 아는데 이번에 몇 년 만에 들어오신 거죠?

정수복 : 작년에 왔으니까 1년 만입니다.

박인규 : 이번에는 책 때문에 들어오신 건가요?

정수복 : 주로 책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을 출판하고, 또 여러분들과 이 책을 중심으로 이야기 나누려고 들어왔습니다.

박인규 : 지금 계신 데가 파리사회과학고등연구원이라고 알고 있는데 여기가 어떤 곳이고 하시는 일이 어떤 건지 말씀해 주시죠.

정수복 : 파리사회과학고등연구원은 프랑스의 대학 체제 안에서 특별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회과학 전문 석박사과정만 있는 대학원 중심의 학교로서, 레비스트로스, 브루디외 등 프랑스를 대표하는 거장 철학자 사회과학자들이 연구하고 있는 대표적인 인문사회과학 연구소 겸 대학원이죠.

박인규 : 지금 정수복 박사가 거기서 연구하시면서 강의도 하시는 모양이죠?

정수복 : 저는 정식 연구원은 아니고 초청연구원으로 돼 있구요, 올해 11월부터 한국사회와 종교,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을 중심으로 1년 동안 강의할 예정입니다.

박인규 : 이번에 내신 책이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이란 책을 내셨는데, 문화적 문법... 좀 어려운 말이기도 하고, 우선 이게 어떤 것인지 설명해 주시죠.
▲ ⓒ프레시안

정수복 : 문법이라 하면 우리가 말을 할 때 문법이 있어야지 제대로 된 의사소통이 가능하죠. 그렇지만 말을 문법을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말합니다. 문법이 우리 머릿속에 들어와 있는 거죠. 그런데 우리가 사회생활을 할 때도 대인관계나 자기가 인생을 계획하고 실행할 때도 어떤 보이지 않는 문법에 의해서 우리들이 지시를 받고 있다는 걸 제가 파악했습니다. 그것을 여태까지는 사고방식이다 코드다, 등등 여러 가지 말로 불렀는데 저는 이것이 의식하지 않고 저절로 나오는 마음의 습관이라고 생각해서 문화적 문법이라는 말을 제가 만들어내고, 문화적 문법이란 말을 널리 쓰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박인규 : 한국인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의 근원을 파헤치는 책이라고 보여지는데, 이런 책을 쓰시게 된 계기 같은 게 있습니까?

정수복 : 누가 저보고 물어보는데요, 이 책이 굉장히 두껍습니다. 한 600페이지 되는데 몇 년 동안 쓰셨습니까? 그래요. 제가 2년 정도 썼다. 그러나 머릿속에는 30년 정도 들어 있었다고 답한 적이 있거든요. 그건 뭐냐면 제가 중고등학교 시절을 거쳐 대학에 들어가면서 제가 느꼈던 억압감의 근원이랄까요? 개인적인 삶에서 느꼈던 답답함의 원인이 어디 있는가를 찾아보다 보니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됐죠. 그래서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이 나를 포함한 한국사람들을 어떻게 옥죄고 억압하고 있는지 이런 것들을 연구하게 된 거죠.

박인규 : 책의 서문을 보니까, 30년이라고 말씀하셨지만 고등학교 때부터 뭔가 사회와 어울린다고 합니까? 그렇지 못하신 부분이 있는 것 같고, 그리고 책을 보면 우리 사회가 이른바 근대화가 됐는데 경제적으로는 산업화를 했고 정치적으로는 민주화를 했는데 이른바 인간 개인의 차원에선 근대화가 아닌 것 같다. 그러면서 개인주의가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어요. 사실 우리들은 개인주의라면 약간 안 좋은 것, 좀 얌체 같은, 자기만 위하는, 그런데 정수복 박사가 말씀하시는 개인주의의 의미는 어떤 겁니까?

정수복 : 말씀하신 대로 개인주의는 한국에서 이기주의, 자기중심주의, 무질서, 무정부주의와 동일시되고 곧 악이고 부정적인 사상으로 인식되고 있죠. 제가 이 책에서 제시하는 것은 한국사회에 필요한 건강한 개인주의, 도덕적 개인주의, 합리적 개인주의, 자유와 더불어 책임지는 개인주의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세상에 태어나면서 존엄하고 평등하고 자유롭게 살 가치를 갖고 있고 행복추구권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타인을 존중하고 공동체 의식을 갖고 함께 사회를 만들어가는 책임의식을 동반한다는 거죠. 그래서 인간존엄사상, 인권사상과 더불어 자유와 책임의 사상을 말하고요. 구체적으로 자기가 세상에 태어나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외부가 아닌 스스로 내부에서 만들고 발견하고 그것을 삶 속에서 실현해 나가는 삶의 주체, 자기 삶을 예술로 만들어가는 삶의 주체를 말하는 것이죠.

박인규 : 정 박사님이 이 책을 통해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을 구성하는 요소가 12가지 있다고 제시한 걸로 아는데. 소개를 좀 해주시죠.

정수복 : 짧은 시간에 소개하긴 어렵겠습니다만, 일단 6가지, 6가지 두 개의 범주로 나눠서, 앞의 것을 저는 심층적 문화적 문법이라고 얘기하고요. 이것은 무교라고 부르는 샤머니즘에서 도교, 불교, 유교 등 한국의 종교전통에서 비롯된 문화적 문법을 말합니다. 이게 6가지 있고요, 두 번째는 표층적, 혹은 파생적 문화적 문법이라고 부르는 것으로서 지난 130년여 동안 우리 사회가 서양의 근대성에 기준해서 봤을 때 낙후되고 뒤처졌다는 느낌 때문에 빨리 선진국이 돼야 한다는 역사적 상황에서 만들어진 법칙들이 6가지. 이렇게 해서 12가지로 돼 있습니다.

박인규 : 심층적 6가지, 표층적 6가지.. 잠깐 소개 좀 해주시죠.

정수복 : 심층적 문화적 문법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첫 번째로 세속적 물질주의라고 제가 부르는데요, 이 세상에서 행복하고 건강하고 아이 많이 낳고 좋은 학교 나오고 좋은 직장 가지고 건강하게 잘 살면 그것이 인생 최대의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것. 이 세상 너머에 있는 절대적이고 초월적인 차원에 대한 생각이 굉장히 빈약하고, 물질적인 만족이 곧 인생의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세계관이랄까 인생관... 이런 것이 무교적인, 샤머니즘 세계관에서 비롯된 것이고 그 위에 유교적인 현실논리가 더해지면서 강화된 요소로서, 가장 근본적인 것으로 세속적 물질주의를 들 수 있죠.

박인규 : 그 다음에는 어떤 게 있죠?

정수복 : 그 다음에는 감정우선주의라고 제가 이름 붙였는데요. 지적이고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사고하기보다는 인간관계에서의 따뜻한 정과 푸근함, 이런 은근함, 이런 인간관계에서의 정서적인 측면이 한국인에게 대단히 중요하다는 거죠. 그래서 이런 감정우선주의, 반지성주의 이런 것이 우리가 갖고 있는 문화적 문법의 두 번째 요소인데 이것도 역시 샤머니즘과 유교적 세계관의 결합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박인규 : 6가지를 다 소개하긴 어렵겠고, 일단 나열만 좀 해주시죠.

정수복 : 그 다음에 가족 중심으로 사회가 움직여지는 가족주의, 가죽주의에서 파생된 것으로 혈연, 지연, 학연을 중시하는 연고주의. 그 다음 나오는 것이 위아래를 가르고 윗사람에게 절대적 복종을 요구하는 권위주의. 그 다음 조화를 강조하고 이견을 용납하지 않는 갈등 회피주의, 이런 여섯 가지가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의 심층적 요소를 이루고 있고요.

박인규 : 표층적인 것은 근대화를 위해서 나온 거라고 말씀하셨는데 어떤 것들입니까?

정수복 : 우리가 근대화를 이루기 위해서 강한 나라가 돼야 한다. 부국강병이라는 걸 130년 전부터 내세웠기 때문에 일단 국가중심주의입니다. 시민사회라든지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보다는 국가가 중심에 딱 자리를 차지하고 이끌고 나가는 체제. 그 다음 우리 민족은 하나라는 민족주의... 저는 거기 감상적인 요소가 좀 있다고 해서 감상적 민족주의라고 부르는데요. 또 뒤처졌으니까 목표를 크게 설정해야 됩니다. 그래서 하면 된다는 의식을 가지고 과도한 목표를 세우는 근거 없는 낙관주의라고 이름 붙였고요. 하면 된다. 뭐든지 세계 최고로 해야 된다는 것이죠. 또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수단방법 중심주의. 이런 걸 들 수 있고요, 그 다음, 목표를 빨리 달성해야 됩니다. 그래서 나오는 속도 지상주의. 그 결과 나오는 것들이 명분을 우리 사회가 요구하기 때문에 겉으론 그럴듯한데 뒤에서는 각자 자기 실속을 차리는 이중규범주의, 이중윤리주의. 이런 것들이 한국사회의 표층적, 혹은 파생적 문법요소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그 12가지 한국인의 특성이랄까... 일단은 굉장히 부정적이라는 느낌이 드는데, 많은 한국분들이 들으면 너무 우리의 자화상을 부정적으로 그리지 않았느냐는 얘기가 나올 것 같아요.

정수복 : 그렇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선진국화를 눈앞에 두고 있는데요, 잘 나가고 있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필요한 건 잘 나가는 걸 격려하고 자부심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안에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남아 있는 부정적 측면들을 청산하지 않으면 더 앞으로 나가기 힘들다는 생각에서, 일단은 제가 한국 사회의 문법이 갖고 있는 부정적 측면들. 혹은 문제시되고 있는 측면들을 이 책에서 제시했고요. 이 다음편에서는 서구의 근대성이 갖고 있는 문제점과 폐해까지도 넘어설 수 있는 우리 한국... 동양 문화전통 속의 긍정적인 측면, 새로운 문명을 제시할 수 있는 측면... 그걸 제시할 예정입니다.

박인규 : 그렇다면 한국인의 사고방식, 행동양식에서 긍정적인 부분들은 어떤 게 있을까요?

정수복 : 앞에 열거한 파생적 문법 가운데서도, 속도를 강조한다든지 하는 것이 정보화사회를 앞당기는 요소가 됐구요.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이 다 있습니다 여러 가지로. 감정우선주의라는 것도 서양사람들의 개인주의가 갖고 있는 냉랭한 인간관계를 넘어서 훈훈한 관계를 맺게 되는 좋은 측면들이 있죠. 전부 긍정 부정의 측면이 있으나 다른 것들은 다소 문제되는 측면들을 부각시켰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박인규 : 그런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을 말씀하시면서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을 가장 잘 드러내는 사건이 황우석 사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건 어떤 의미입니까?
▲ ⓒ프레시안

정수복 : 제가 이 책을 쓰고 있는 도중에 황우석 사건이 발발이 돼서, 그 문제를 책 서문에 썼습니다만, 황우석 사태는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 가운데 특히 파생적 문화적 문법의 여러 요소들을 고스란히 드러내 주는 아주 좋은 보기라고 봅니다. 그것은 국가가 중심이 돼서 부국강병을 이루려면 기술이 개발돼야 되고 그러기 위해서는 민족주의적 감정을 동원하고 그러기 위해서 근거 없는 낙관주의, 우리가 세계 최초로 선진기술을 개발한다는 낙관주의. 그 다음 수단방법 중심주의... 윤리성이고 도덕이고 고려하지 않고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이런 것들. 그리고 이중윤리주의. 겉에 발표한 것과 뒤에 실속이 달랐다든지. 제가 말한 문화적 문법이 고스란히 드러난 아주 대표적인 사건이었죠.

박인규 : 최근에 신정아 교수 등 이른바 허위학력 문제가 나오고 있는데 이런 부분은 어떻게 해석하십니까?

정수복 : 그것도 요즘 제가 언론매체에서 얘기하고 있고, 원인과 대책을 보면, 원인은 우리 학벌주의에서 찾고 있고 대책은 검증시스템을 제대로 만들자는 수준에서 얘기하고 있는데, 그런 논의들보다 더 심층적인 원인을 찾아봐야 된다고 봅니다. 학벌중심주의 이전에 저는 한국사회가 갖고 있는 문법적 요소들이,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이 그 밑에 고스란히 작동하고 있다고 보는데요, 개인적 차원에서도 과도한 목표를 설정해 놓고 그걸 빨리 달성해야 된다는 강박증에 걸려 있거든요. 능력과 자격을 갖추지 않은 사람이 자기 능력보다 과도한 목표를 세워 놓고 달성하려고 하다 보니 생겨나는, 거기에 문법적 요소들이 작용해서 근거 없는 낙관주의, 수단방법중심주의, 이중윤리주의 이런 것들이 고스란히 작동하고 있는 거죠. 그것은 황우석 사태나 신정아 사태뿐만 아니라 한국인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문화적 문법이기 때문에 이 문법이 고쳐지지 않는 한 신정아 사건과 황우석 사태 같은 것이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박인규 :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는 산업화, 또 민주화까지 이뤘는데 개인 차원에서의 자각이랄까요? 그게 안 되는 이유는 뭡니까?

정수복 : 우리 사회가 앞서 말씀드렸지만 개인주의는 개인중심주의와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는 자기중심주의라고 생각해서 개인의 중요성과 존엄성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개인을 가족과 소속집단과 학교와 국가와 민족에 종속시켜서 주체적이고 자발적으로 판단하고 행위하는 개인들을 장려하지 못하고, 관계를 중심으로 관계의 조화를 유지하기 위해선 개인이 참아야 된다, 희생해야 된다는 논리가 아직까지도 강조되고 있는 사회기 때문에, 공동체논리를 강조하기 이전에 개인중심주의, 개인의 존엄성, 개인의 가치를 더욱 강조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는다면 자기 스스로 판단을 내리고 책임지는 개인주체 형성이 어렵다고 봅니다.

박인규 :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을 말씀하셨는데요, 북한 같은 경우는 이미 한 60년 전부터 사회주의를 표방했고, 북한의 경우도 우리하고 차이가 없습니까? 그쪽은 보시기에 어떻습니까?

정수복 : 사회주의 이념이라는 시멘트를 가지고 국민들을 응결시키고 있는 북한체제 역시 저는 유교와 무교가 중심이 된 한국사회의 문화적 문법의 응결체를 파괴하지 못하고. 그 위에서 사회주의 이념을 도입해서 사회를 재구성했기 때문에 수령중심주의라든지 전체주의적인 사회라든지, 지나친 민족주의라든지, 이런 병적인 요소들이 남한사회와 형태는 약간 다르지만 거의 비슷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고요. 그것은 북한사회주의체제 뿐만 아니라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이른바 한민족 네트워크라고 부르는 세계에 나가 있는 한국인 공동체의 구성원들에게도 일정한 정도로 나타나고 있다고 봅니다.

박인규 : 예를 들면 미국이나 러시아라든가 외국에 나가 있는 한국인들의 사고방식, 말하자면 그 나라 사회의 개인주의랄까, 그것을 따라가지 않는다고 보시는 겁니까?

정수복 : 그렇습니다. 역시 외국에 나가 있는 분들도 개인보다는 가족을 굉장히 강조하는 가족중심주의고요, 합리적이기보다는 감정적이고 정서적인 측면이 매우 강하고요. 그 다음 위계질서를 따지는 권위주의 요소가 남아 있고요. 여러 가지 기타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의 요소들이 다소 변형된 형태지만 본질적으로는 비슷한 형태로 남아 있습니다.

박인규 : 정수복 박사께서는 89년도에 한국에 들어오셔서 2002년에 나갈 때까지 대학 강의도 하시고 시민운동도 하시고 KBS에서 방송도 하셨는데, 책을 보니까 말이죠. 본인의 경험.... 본인이 고등학교 때부터 한국사회의 억압을 느꼈다고 말씀하셨는데 89년 이후 한국사회 생활에서도 굉장히 그런 경험들이 이번 책을 내게 되는 중요한 바탕이 된 건 아닙니까?

정수복 : 이 책에 자전적 요소가 있다는 얘기를 여러분들이 하시는데요, 그것도 제 책 서문이나 일정한 부분에서 제 개인적 경험이 이 책을 쓰게 되는데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를 밝혔습니다. 제가 1961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했고, 그때 박정희 대통령이 주도한 5.16쿠데타가 일어났고, 79년 대학생활이 끝날 때까지 박정희 치하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니 저는 박정희의 아이들 세대라고 할 수 있죠. 저희가 느끼는 억압은 박정희 권위주의 독재체제가 갖고 있는 억압성이라고 할 수 있지만, 너무 쉬운 답이었고. 그것이 민주화 과정을 거쳐서 80년대 사회운동 과정을 거치고 민주화 과정을 거침에도 불구하고 90년대 들어서서도 계속 억압을 느끼고 있거든요. 그럼 이것은 독재체제나 권위주의 체제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차원의 문제일 것이다. 그래서 저는 정치적 차원이나 경제적 차원의 설명이 아니라 문화적 차원에서 한국사회가 갖고 있는 어떤 억압성을 밝혀 보려고 한 것이죠.

박인규 : 말하자면 나는 왜 이 사회에서 억압성을 느끼는가, 그런 걸 문화적 문법이라는 것으로 해석하셨는데. 아시아 같은 경우 개인주의가 발달하지 않은, 예를 들어 일본이나 중국이나 그런 부분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연구를 해보셨습니까?

정수복 : 예. 파리에 제가 살고 있는 동네에 일본 기업가들이 돈을 출자해서 만든 파리일본문화연구원이라는 데가 있습니다. 제가 집앞에 있으니까 자주 가서 일본에 대한 영어권, 불어권 연구들을 많이 참조했는데요. 이 책을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입니다만 뒤에는 한중일 삼국의 문화비교를 밑에 깔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공통적인 요소들이 발견됐구요, 다소의 차이점이 있지만 한,중,일, 또 베트남까지 포함한 유교문화권의 공통적인 요소가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됐습니다.

박인규 : 그 공통적인 요소가 어떤 겁니까?

정수복 : 그건 역시 국가중심주의와 민족중심주의로 돼 있고요, 감상주의... 감상적 측면이 강하다는 것과 더불어 가족을 강조하고 국가, 집단을 강조하는, 개인주의의 부재라는 것은 한, 중, 일 3국의 공통적인 문화적 문법이라고 할 수 있죠.

박인규 : 프랑스에서 공부하셨고 지금도 사시기 때문에, 프랑스의 문화적 문법은 어떻습니까?

정수복 : 개인주의에 기반하고 있죠. 프랑스혁명의 이념이 자유, 평등, 박애인데 그것은 개인들이 주체가 돼 있습니다. 그래서 불란서에서는 어린 아이들이 태어나서 초등학교 들어가기 이전에도 그 아이가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결정하도록 장려합니다. 그래서 세 살짜리 아이가 어느 가게에서 어떤 물건을 고를 때도 부모가 골라 주지 않고 아이에게 고르게 하고, 그 아이가 어떤 걸 선택했을 때 얘가 벌써 자기가 뭘 원하는지 안다고 칭찬해 줍니다. 그래서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중요한 과정에서의 결정은 개인이 선택하고 개인이 책임지는 이런 바탕으로 사회가 짜여져 있죠.

박인규 : 이게 자칫하면 말이죠... 말하자면 서구를 지나치게 미화하는, 말하자면 유럽이면 다 잘난 거냐, 이런 식의 비판이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은데...
▲ ⓒ프레시안

정수복 : 많이 받았습니다. 제가 불란서에 전체적으로 아마 10년 이상 살았고 서구에서의 체험을 바탕으로 쓴 게 아니냐는 말씀을 하시는데, 불란서에는 10년 살았고 한국에서는 40년 살았기 때문에 제 기본적인 사고는 한국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유럽과 한국을 간략하게 비교하면, 한국사회는 집단 혹은 공동체가 강조돼서 개인이 약화돼 있고 개인이 제대로 탄생하지 못한 사회라면, 서구사회는 개인이 너무 강해서 여러 가지 폐해가 나타나고 있는 상황이죠. 그러니까 한국사회는 공동체논리를 약화시키고 개인을 강화시켜야 되는 상황이고 서구사회는 개인주의가 지나쳐서 그야말로 병폐를 이루고 있는 부분이 많거든요. 항우울제 사용 증가나 범죄 마약의 증가, 이혼률 증가라든지 여러 가지 부정적 요인들이 개인 때문에, 개인주의가 강해서 나오는 거거든요. 서구사회는 한국사회에서 공동체와 집단을 강조하는 요소를 배워야 되고. 한국사회는 유럽으로부터 개인의 탄생을 장려하는 여러 가지 문화적 요소를 배워야 되는 거죠.

박인규 : 보다 더 개인을 존중하고 인정하는 사회가 돼야 한다.

정수복 : 개인과 공동체, 개인과 사회는 서로 균형을 이뤄서 개인을 존중하는 사회, 사회를 존중하는 개인. 이렇게 균형을 이룬 상태가 돼야 되는데 지금 한국사회는 개인이 너무 일그러져 있고 찌그러져 있는 상태라고 봅니다. 그 대신 서구는 개인이 너무 강조돼서 공동체가 약화된 상태에 있죠.

박인규 : 그 객인의 자율성과 독자성을 존중하는 사회가 된다는 것이, 존중합시다! 그래서 되는 건 아닌 것 같고요. 책을 보면, 예를 들면 여성이나 신세대가 그런 좋은 의미의 개인주의를 키워나가기 위한 주역이 될 수 있다고 하셨는데, 그건 어떤 의미인가요? 어떤 의미에서 여성과 신세대에게서 가능성을 보신 겁니까?

정수복 : 제가 문화적 문법 12가지를 제시했습니다만 이 문화적 문법을 수호함으로써 이득을 얻는 사람들은 대개 남성장년층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사회를 주도하는.

박인규 : 이른바 기득권층인가요?

정수복 : 기득권층보다 더 넓은 개념으로, 한국사회의 기득권층이 아니라 중간층이나 하층이라고 분류되는 사람들도 연고주의나 가족주의를 똑같이 다 활용합니다. 그것을 활용함으로써 살아갈 수 있고 이득을 누릴 수 있다는 건 득권층을 넘어서는 한국사회 전체의 문제라고 보고요. 그 안에서 다소 억압감을 느끼고 그걸 고치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저는 여성층이 남성가부장제와 남성중심사회에서 느끼는 억압 같은 걸 더 느낀다고 보기 때문에 여성들이 남성보다는 연고주의나 이런 게 약하거든요. 비판력도 있고. 그래서 여성 중심이 되고. 그 다음 아버지 세대나 윗사람들보다는 신세대, 젊은 세대들이 여러 가지 인터넷이나 MP3라든지 개인적인 장비들을 많이 갖고 있고. 그것을 통해서 기성세대가 갖고 있는 문제점들을 넘어서려는 노력들을 이곳저곳에서 보이고 있기 때문에 여성과 신세대가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이 갖고 있는 문제점을 고쳐나갈 수 있는 주도층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집단이라고 보는 거시죠.

박인규 : 좀 엉뚱한 질문일 수도 있지만, 올해 대선인데 어떤 대통령이 되는가에 따라서도 그런 개인주의를 좀 발전시킬 수 있다... 그게 가능합니까? 그런 부분은 어떻게 보세요?

정수복 : 저는 개인주의라는 것이 하나의 삶의 양식이라면, 삶의 양식을 우리가 배우고 전수받는 곳은 일단 가정이고요, 학교 교실이고, 종교가 있는 분들은 종교사원이나 교회가 될 것이고. 그 다음 대학에서의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역할이 중요하죠. 인간이 어떻게 살 것인가.. 인간학으로서의 인문학. 그 다음 우리가 하고 있는 이런 매스미디어... 대중매체들에서 어떤 인간, 어떤 삶을 살 것인가. 오늘보다 나은 내일의 삶을 위한 방향과 지침을 어떻게 찾을 것인가를 많이 생각하게 하는 시간과 공간들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박인규 : 이번에 내신 책.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이라는 건 어떻게 보면 쓴소리 위주로 이런 건 고쳐야 된다고 말씀하셨는데. 앞으로 한국인이 사고방식이나 행동양식에서 좋은 측면에 대해서도 연구를 해보신다고 하셨는데. 앞으로 계속 파리에 계시면서 어떤 작업을 계획하고 계신지 마지막으로 좀 말씀해 주시죠.

정수복 : 제가 파리에 살면서 파리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니까 파리 시내를 제 발로 곳곳을 걸어다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파리 곳곳을 산책을 했구요, 그 산책을 바탕으로 파리의 역사, 도시공간, 문화에 관한 파리3부작이라는 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파리를 소개하는...

정수복 : 파리를 소재로 하는 문명비판서, 역사문화를 탐구해 보려고 합니다. 서구문화의 중심인 파리에서, 공간을 배경으로 해서 쓰여지는 것이죠.

박인규 : 그 책을 내년 정도면 볼 수 있을까요?

정수복 : 3부작이니까 여러 권으로 쓰여질 예정인데요, 내년 여름에는 한 권 발간할 예정입니다.

박인규 : 저는 아직 파리를 안 가봤습니다만 언제 한 번 가면...

정수복 : 한 번 오시면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박인규 : 예.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오늘은 최근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이란 책을 출간한 정수복 박사와 함께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정신적 문제의 뿌리를 찾아내고 건전한 개인주의의 필요성에 대해 얘기 나눴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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