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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는 다 좋은 것인가?

한반도브리핑 <63> 남북정상회담의 의제가 평화라면

평화는 다 평화인가? '냉전의 섬' 한반도에 갑작스러운 평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반가운 일이다. 그런데 평화는 다 좋은 것인가?

한국전쟁 이후 적대관계를 청산하지 못하고 있는 북과 미국이 관계정상화 의지를 내세우고 있고,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종전선언의 가능성마저 언급했으며, 지난 2월 6자회담에서는 한반도 평화를 위해 북핵 폐기에 관한 6자간 합의가 이뤄졌고, 8월말 남북정상회담에서도 평화선언 내지 평화체제의 문제가 주요 의제로 떠오르고 있는 평화의 시절, 과연 평화가 무엇인지 도전적으로 물어본다.

노르웨이의 저명한 평화학자 요한 갈퉁 교수는 평화를 '적극적 평화'와 '소극적 평화'로 구분한다. 후자는 전쟁이 없는 상태, 분쟁이 진행되고 있지 않는 상태를 의미한다면, 전자는 국가 간 혹은 집단 간 상호 협력적이고 지원적인 상생관계의 상태를 의미한다고 거칠게 요약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소극적 평화는 현재 폭력이 사용되지 않고 있다는 '폭력의 부재' 상태에 방점이 찍힌다. 반면 적극적 평화는 당장 주먹이나 무기를 휘두르는 집단이 없더라도 존재할 수 있는 '구조적 폭력', 즉 인간성을 온전히 마음 놓고 발현할 수 없도록 만드는 사회정치적 구조마저도 없이 인간과 인간이, 인간과 자연이 교통하며 상부상조하며 '상생'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무장지대'인 비무장지대는 소극적 평화의 '결정체'이다. ⓒ프레시안

갈퉁 교수의 개념은 한반도의 상황에 주요한 시사점을 던져 준다. 한반도를 가르고 있는 비무장 지대는 소극적 평화의 결정체이다. 한국전쟁을 끝내지 못한 채, 전투 행위만을 중단한 정전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군사분계선이 그어지고, 그 양쪽으로 비무장지대가 만들어 졌다. 그러나 폭력의 부재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은 비무장지대를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무장지대, 가장 위험한 지대로 만드는 역설적 결과를 가져왔다.

한국전쟁 이후 '평화'를 위해 미국은 군대를 파견하고 핵무기를 배치했고, '평화'를 위해 한국은 군대를 키우고, '평화'를 위해 북은 선군정치를 내세웠다. 모두가 추구했던 평화는, 폭력의 부재에 급급한 소극적 평화였고, 결국 북의 핵무장까지 초래하고 말았다.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에 대비하라'는 구호 아래 세계 많은 국가들이 '평화'를 위해 무기를 만들고, 군대를 유지하고, 전쟁준비를 했지만, 한 나라의 전쟁준비는 상대국의 전쟁준비를 자극하는 안보딜레마를 초래했고, 전쟁을 준비하면 전쟁을 하게 된다는 역설을 낳게 되었다.

'소극적 평화'는 더 큰 폭력을 낳을 위험성을 잉태하고 있는 것이다.

곧 있을 남북정상회담, 이어질 6자회담, 가능성이 모색되고 있는 4자 외무장관회담 등은 이 소극적 평화를 보다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정치적 환경과 제도적 틀을 만드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북은 더 이상 핵무기를 만들지 않고, 미국은 북의 안보를 보장해주고, 남북은 군비통제 장치들을 만들어 '평화'를 보다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상황이 된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이제는 남과 북이 스스로에게 물을 시간이 되었다. 이러한 '소극적 평화'의 안정적 운영에 만족할 것인가, 아니면 '적극적 평화'의 길로 성큼 들어설 것인가?

한반도의 '구조적 폭력'을 풀어나가는 것이 적극적 평화라면, 한반도 안보불안의 구조적 원인인 분단상태를 해소하는 것은 적극적 평화의 내용이 될 수밖에 없다.

금강산과 개성은 통일지향적 공간이 확대된 것일 수도 있고, 한국의 자본이 북의 영토를 잠식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개성공단을 위한 북한 인민군의 후방 배치가 북한으로 가는 길을 뚫은 것이 될 수도 있고, 평화의 영역을 확장한 것일 수도 있다. 북방한계선(NLL)도 고수하고 지켜내야 할 영토, 그래서 귀한 젊은이들의 목숨이 바쳐졌고 앞으로도 바쳐질 위험성이 상존하는 '소극적 평화'의 영토로 남을 수도 있고, 아니면 적극적 평화를 만들어 내는 공간이 될 수도 있다.

분단이라는 현실이 한반도라는 공동의 자산을 갈라놓고 있는 현실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서해에서, 동해에서, 또 도처에서 분단의 현실을 뛰어 넘는 '통일형 자산'을 만들어 내는 것이 적극적 평화의 길일 것이다.

미국과 북한 사이에, 미국과 한국 사이에, 동북아시아에, 남북 사이에, 남과 남 사이에, 사람과 사람 사이에, 사람과 자연 사이에 적극적 평화를 채워 넣는 길은 전인미답으로 남아 있다.

한반도가 일본 식민지에서 해방된 지 62주년을 맞는 지금, 그러나 아직까지 분단되어 있는 오늘, 다시 묻는다. 한반도의 평화는 소극적 평화가 될 것인가, 적극적 평화가 될 것인가? '분단 관리형 평화'로 갈 것인가, '통일 지향적 평화'로 갈 것인가? 오늘 한반도는 다시 중대기로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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