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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세대, 그리고 반전세대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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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세대, 그리고 반전세대의 등장

김민웅의 세상읽기 <257〉

전쟁의 종료와 함께 '전후(戰後)세대'라는 말이 등장하는 것은 어느 나라나 공통된 현상입니다. 전쟁의 충격과 유산, 그리고 후유증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를 고뇌하는 세대라는 점에 그 특징이 압축됩니다. 전후 세대의 자식들도 이들의 생각에 영향을 받습니다.
  
  문제는 전후 세대가 전쟁에 대한 성찰을 어떻게 하는가에 있습니다. 전후 세대는 반전세대와 전쟁의 능력을 길러야 한다는 세대로 나뉩니다. 미래의 불안에 대한 대처의 방식이 양극단으로 분리되는 것입니다. 진보주의자들은 평화체제의 열망을, 보수주의자들은 냉전체제의 구축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베트남 전쟁이 끝나자 미국에서도 변화가 일어납니다. 한쪽에서는 전쟁을 반대하는 모든 논의와 노력들을 집대성하는 방안을 모색합니다. 그러나 다른 한쪽에서는 베트남 전쟁의 패전을 미국의 힘을 최대한 활용하지 못한 결과로 보고 강력한 군사력을 향해 치닫습니다. 오늘날 네오콘의 군사철학입니다.
  
  일본에서도 패전 이후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헌신하는 이들과, 새로운 방식의 군국주의 국가 건설을 향해 매진하는 세력으로 나뉘게 됩니다. 한국전의 경험이 전후세대 속에 녹아들어간 방식도 이와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전후 세대는 자신들의 경험과 불안을 해결하는 방식을 놓고 둘로 갈라졌습니다.
  
  "너 전쟁 겪어봤어?" 하는 말은 전후세대에 대한 이념적 기득권처럼 행세되기도 했습니다. 전쟁을 겪지 못한 세대는 전쟁과 평화의 논쟁에 끼어들 자격조차 갖지 못한다는 식의 논리였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러한 생각이 이들 전후 세대의 반발을 사고 이들을 반전세대로 길러 왔다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전후세대는 더는 전쟁이 없어야 한다는 생각에는 일치합니다. 그러나 '필요하다면 전쟁을 할 수 있다'는 쪽과 '어떻게든 전쟁만은 피해야 한다'는 쪽으로 갈라지기도 합니다. 전후세대 이후 반전세대의 등장은 그래서 매우 의미가 있습니다. 전쟁을 막는 것은 반전사상의 유포가 가장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전쟁의 기초가 되는 무기를 버리는 쪽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날로 최신의 무기로 무장해서 서로를 견제하여 전쟁을 막을 것인가의 문제는 그 나라의 기본과 미래의 모습을 전격적으로 다르게 만듭니다. 우리가 일본을 경계하는 까닭은 분명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바로 그 일본을 우리가 닮아가고 있다면?
  
  우리 안에 네오콘의 군사철학이나 일본 우익의 국가주의 논리가 대세를 쥐게 해서는 안될 겁니다. 그건 본질적으로 누군가를 진멸시킬 적으로 규정하고 자신을 지고지선(至高至善)으로 만들어 버리는 논리이자, 동시에 자기도 모르게 자신을 기괴한 괴물로 변모시키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반전평화의 세대의 등장, 아니 궁극적으로 반전평화의 시대, 그것이 우리의 안전과 미래를 진정 보장해주는 가장 강력한 힘입니다. 평화를 위해 핍박받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미래의 세계는 그들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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