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미노씨입니다. 미노씨는 1975년 대구 출생으로 2000년부터 방송작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2003년 6월, 세계일주여행을 떠났다가 터키의 작은 시골 마을 파묵칼레에 눌러앉았던 7개월 동안의 이야기를 책으로 엮은 <수상한 매력이 있는 나라 터키 240+1>을 펴냈고 이어 아프리카 종단 여행을 하며 아프리카 사람들과 함께 호흡한 8개월간의 이야기를 <미노의 컬러풀 아프리카 233+1>로 펴냈습니다. 숙소에 대한 로망이 담긴 여행기를 쓰고 싶어 하는 그녀는 지난해 겨울, 3년 전의 기억을 안고 유럽으로 날아가 별난 숙소에서 만난 별난 여행자들의 이야기를 엮어 최근 <미노의 별 볼일 있는 유럽숙소여행>이란 책으로 출간했습니다.
박인규 : 본업이 방송작가시라고 들었는데 이미 여행에 관한 책을 세 권이나 내셧기 때문에 제가 여행작가로 소개를 했습니다.
미노 : 감사합니다.
박인규 : 그런데 미노라는 건, 민호인가? 그렇게 들을 수 있을 것 같은에 미노죠? 본명은 아닌 것 같고
미노 : 예. 필명이에요.
박인규 : 필명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나요?
미노 : 고집하는 건 아니고, 일상생활에서 김희정이라는 본명이 주인공이라면 여행에서의 주인공은 미노인 거예요. 제가 전에 미노라는 여자아이를 주인공으로 하는 특별한 여행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모모나 제제 같은 귀여운 느낌의 여행을 하는 여자아이에요.
박인규 : 한국에 있을 때는 김희정이라는 이름의 방송작가지만 외국에 있을 때는 미노가 되는 거군요.
미노 : 예. 그런 거예요.
박인규 : 미노에 특별한 뜻이 있는 건 아니고. 보통 여행에 관한 책이라면 볼거리, 더 나아가 먹을거리를 소개하는 게 보통인데 잠잘 데를 소개했어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미노 : 제가 좀 게을러요. 그런데 여행의 좋은 점 중 하나가 한국에선 게으르면 지탄받고 게으르면 안 되잖아요. 게으르게 집안에 누워 있어도 우울하거든요. 게으른 것 자체가. 그런데 여행을 하면 제가 마음껏 게으를 수 있다는 게 너무 좋더라구요. 아침에 마음껏 늦잠을 자고 밥 한끼 먹는 것도 30분 이상 고민하고, 보통 아침을 후다닥 먹고 나가는데 아침을 먹으면서도 긴 수다를 떨고, 이런 게으른 생활을 할 수 있는 게 여행이잖아요. 그렇게 게으르게 여행하다 보니 바깥에서 열심히 관광하는 시간보다 숙소에서 게으르게 누워 있는 시간이 많았어요. 숙소에 앉아서 숙소에 오는 사람들을 만나고 숙소에 있는 주인들을 관찰하고 숙소에서 벌어진 일들을, 그런 일들을 많이 겪었거든요. 숙소가 여행이야기가 풍부하게 탄생되는.
박인규 : 이야기가 모이는 곳이다. 그런데 한국사람들의 전형적인 여행법과는 다르게 하시는 것 같아요. 한국사람들은 새벽 일찍부터 일어나서 막 다니면서 이른바 증명사진 막 찍고 여러 군데 갔다왔다. 이런 자랑인데 미노씨는 시간이 많았던 모양이죠? 그렇게 게으르게 보내시고
미노 : 처음엔 저도 그렇게 여행했어요. 처음엔 여행을 그렇게 해야 된다고 생각했는데 피곤하고 재밌지가 않더라구요. 여행 갔다 오면... 그래서 나른하게 여행해 보니 재밌더라구요. 요즘 한국 여행자 분들 보면 숙소에서 가만히 안 나가고, 아침에 눈떠서 안 나가고 점심 또 먹고 자다가 다시 일어나서 저녁 먹고 다시 술 마시고, 이런 식으로 장기체류 하시는 분들이 종종 계세요
박인규 : 여행에도 나라별로 단계가 있다던데, 이른바 외국에서 꼭 봐야 될 건 다 보신 거군요. 그리고 나서 느긋하게 즐기는 쪽으로 바뀐 것 같아요. 이번 책을 쓰기 위해서 유럽을 두 차례 다녀오신 걸로 아는데 언제 얼마나 다녀오셨어요?
미노 : 2003년에 세계일주여행을 결심하고 갔었거든요. 그때 5개월 동안 유럽을 방황하다가, 방랑하다가 터키에서 한 8개월을 살았어요. 그래서 그때 유럽과 터키 여행을 하면서 숙소 얘기를 하면 참 재밌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작년 겨울에 숙소 이야기를 마무리짓기 위해서 다시 3개월을 여행했었어요.
박인규 : 2003년에 가면서 한 번 쭉 봤고 이번에 마무리로 해서 작년에 갔다 오신 거고. 숙소라고 하더라도, 청취자들의 오해를 막기 위해서, 호텔이나 아주 값비싼 혼자 사는 그런 데가 아닌 거죠? 도미토리라고 하던데
미노 : 예. 배낭여행자들이 모이는 도미토리, 호스텔이구요, 그런 도미토리 호스텔이나 아니면 현지인들이 자기 집을 숙소로 내주는 현지 민박집, 그리고 한국인 민박집도 있고, 다양한 숙소가 있는데 기본적으로 배낭여행자를 위한 숙소에요.
박인규 : 아까 말씀하신 중에 거기 가면 여러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얽힌 사연이 모이는 일종의 여행지 시장이라고 할까 그런 거라고 말씀하셨는데, 하나하나 소개를 좀 해보도록 하죠. 굉장히 희한한 것들이 많이 있더라구요. 무슨 성당의 종탑을 개조해서 만든 호텔도 있고 감옥을 개조한 데도 있고 동굴을 개조한 데도 있고 나무 위에 집을 지은 데도 있고. 굉장히 여러 가지가 있던데, 우선 이런 숙소들은 누가 어떻게 운영하는 겁니까?
미노 : 다 달라요. 예를 들면 암스테르담에 있는 호스텔보트 같은 경우는 약간 암스테르담의 명물이에요. 아마 옛날 옛적에 처음 어떤 분이 시작을 하셨겠죠? 그래서 지금 암스테르담의 항구에 가면 이런 호텔보트들이 열 대 정도 모여 있고, 겨울에는 호텔로만 쓰다가 봄이 되면 출항도 한 대요 그 배들이. 배 위에서 자는데... 그런 호스텔 보트가 있구요. 비엔나에 있는 상당 종탑을 개조해 만들어진 호스텔은요, 이건 공인 유스호스텔이거든요. 국제 유스호스텔연맹에 가입돼 있는. 종지기 할아버지가 운영하시는, 그분은 성당 종탑의 종을 치시는 분인데 그분이 40여 년인가 아주 오랫동안 그 호스텔을 운영하셨어요. 성당 종탑을 개조해 만들었기 때문에 한 층에 방이 하나씩 있어요. 0층부터 9층까지 방이 있는데 여자들은 밑에서부터 방을 내주고 남자들은 꼭대기부터 내줘요. 여자들은 그나마 괜찮은데 남자들은 0층에 있는 부엌까지 내려오려면, 엘리베이터는 없고 계단이 굉장히 가팔라요. 여름엔 에어컨이 없거든요. 그래서 굉장히 고생해서 내려왔다가 뭔가 잊어버렸으면 다시 올라갔다가 또 내려왔다가 이런 거예요.
박인규 : 그런데도 굳이 그 덥고 힘든 곳에 가는 이유는 뭔가요?
미노 : 재미있으니까. 그리고 그 호스텔이 되게 싸요. 2003년 그 당시에는 6유로였거든요. 유럽에서 그 정도면 최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최저가격이에요. 싼 맛에 묵는 여행자들도 있구요. 재밌어서.
박인규 : 종탑을 개조해서 층층이 있다면 종 칠 때 무지하게 시끄럽지 않아요?
미노 : 너무 시끄러워요. 종을 한 번 치면 머리가 어질어질하거든요. 저는 한 3, 4층 정도에 묵었는데 9층 정도에 묵으면 진짜 어지럽지 않을까... 그 숙소 이야기를 읽어보시면 좋을 칠 때의 느낌에 대해서 제가 자세하게 설명해 놨거든요.
박인규 : 감옥을 개조한 데도 있어요... 류블랴나면 어디죠?
미노 : 류블랴나가 슬로베니아의 수도인데요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라는 책의 배경이 된 곳이에요. 류블랴나라는 도시가 굉장히 작거든요. 사실 볼 게 별로 없고 전형적인 유럽적 도시인데 이 도시에 있는 호스텔이 유명해요. 예전에 정치범을 수용했던 감옥이었대요. 그 감옥을 류블랴나에 있는 예술가들이 굉장히 예술적으로 새로 리모델링해서 지금 호스텔로 쓰고 있거든요. 방방마다 테마가 달라요. 방방마다 철문이 채워져 있고 마치 감옥처럼 창살이 있는 방인데, 시설은 그대로 있는데 그 자체에다가 방방마다 다른 테마로 예술가들이... 거의 예술이에요 방 자체가. 그래서 어느 것 하나 같은 방이 없고, 옛날 옛적에 어떤 억울한 죄수가 묵었을 어떤 방에 방방마다 다른 특별한 방에 혼자서 창살 사이에 비치는 별을 바라보면서 누워 있으면 기분이 굉장히 묘하거든요.
박인규 : 보통 감옥을 대학이라고도 하던데 정신수양이 좀 되나요? 감옥에 한 명만 들어가서 잡니까, 아니면 여럿이 들어가서 잡니까?
미노 : 거기는 구조를 복층으로 해놔서 윗층 아래층에 살 수 있는데 돈을 좀 많이 내면 독방 하나를 쓰는 것도 가능합니다. 보통은 나눠서 쓰는데 문제는 여자가 걸릴지 남자가 걸릴지 모른다는 거거든요. 외국 숙소의 특징이 남녀를 분리해서 재워야 된다는 개념이 별로 없어요. 왜냐면 우리는 여자이기 전에 배낭여행자기 때문에. 보통 도미토리 같은 경우는... 물론 구분돼 있는 곳도 있어요. 그런데 좀 자유로운 분위기의 숙소들은 방을 빌리는 게 아니고 침대를 빌리는 거거든요. 그래서 류블랴나에 있는 감옥을 개조한 호스텔도 그래서, 달랑 두 명만 한 방을 쓰는데 남자가 걸리면 너무 괴로운 거예요.
박인규 : 동굴에서 그런 숙소가 있다고 들었어요. 그건 어떤 겁니까?
미노 : 그건 터키의 카파도키아 지방에 있는 숙소인데요 굉장히 그 지역 자체가 굉장히 마치 외계도시처럼 생겼어요. 굉장히 특이한 지형이거든요. 바위들이 오랜 세월 풍화작용에 의해서 괴상망측하게 깎였는데요, 예전에 초기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피해 거기다 구멍을 뚫어서 숨어 살았어요. 그것도 신기한데 거기 안에 집처럼 꾸며져 있으니까 더 괴상망측하고 재밌는 지형이 된 거예요. 예전에 기독교인들이 만들어 놓은 동굴집을 호텔로 개조한 곳이거든요. 그런데 그렇게만 얘기하면 굉장히 비쌀 거라고 생각하잖아요. 유네스코에 지정된 곳인데. 그런데 터무니없이 싸요. 그런 특별한 숙소에 한 만원이면 묵을 수 있거든요. 제가 보기엔 유럽에서 최고로 신기하고 재밌는 숙소가 터키 카파도피아 지형에 있는 동굴호텔들인 것 같아요.
박인규 : 지붕도 없이 자는 겁니까? 그런 건 있겠죠?
미노 : 그게 아니라 동굴 안에 들어가서, 그 바위 안에 들어가서 자는 겁니다.
박인규 : 나무 위에 집을 지어 놓은 데도 있다고 들었어요.
미노 : 터키 올림포스라고 지중해 쪽에 있는 작은, 올림포스 유적이 있는 작은 마을인데요, 그 마을에 옛날 옛적에 어떤 분이 시작하셨어요. 소나무 위에 집을 지은 숙소를. 그런데 지금은 전 세계 배낭여행자들한테 유명해져서 굉장히 많은 여행자들이 오로지 그 숙소에서 자보기 위해서 몰려들어요 그 마을에.
박인규 : 거기서 한 번 자보자. 희한한 데니까. 유럽 사람들은 왜 이렇게 희한한 데다가 잠 잘 데를 마련할 생각을 했을까요? 그 운영하는 사람들이 독특한 사람들입니까?
미노 : 그런 게 아니라 유럽에 워낙 배낭여행자들이 많아서 그런 것 같아요. 전 세계에서 배낭여행자들이 몰려오니까. 그리고 다른 아프리카나 아시아나 다른 쪽에는 숙소가 많아도 그렇게 테마숙소가 아직 발달하거나 하는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아요. 특색 있는 숙소가 많이 발달한 곳이 유럽...
박인규 : 이번에 이 책에서 소개한 독특한 숙소가 몇 개나 되죠?
미노 : 스물 몇 개 되는 것 같아요. 삼십 개 가까이.
박인규 : 개인적으론 스물 몇 개 중에서 어디가 가장 좋았어요?
미노 : 그냥 평범한 숙소인데요, 부다페스트에 5유로 민박집이라고 있어요. 하룻밤에 5유로인데요, 일본여행자를 만나서 따라간 곳인데 갔더니 일본 여행자들만 우글우글 몰려 있는 어떤 더러운 방이었어요. 너무나 꼬질꼬질한 방이었는데, 그것도 제가 만일 혼자 갔다면 절대 찾을 수 없는 부다페스트 어느 복잡한 골목 한 가운데 있는 구석진 곳에 있는 방이었어요. 골방 같은 곳이었는데 거길 갔더니 일본 여행자들이 젊은 여행자들이 밖에도 안 나가고 하루 종일 골방에 숨어 사는 거예요. 그래서 왜 안 나가냐 했더니 자기는 이러려고 왔대요. 일본에서 이미 밖에 나가서 뭘 해야 되고 뭘 해야 되는 것에 너무 시달려 왔다는 거예요. 자기 소원은 어딘가에 처박혀서 가만히 있어 보는 거래요. 그런 여행자들이 모여 있는 골방이 부다페스트에 있더라구요.
박인규 : 여행의 컨셉이 굉장히 많이 달라졌군요. 우린, 무조건 가서 다니고 어디 갔다 왔다 사진 찍고 이런 거였는데 제가 본 것 중에는, 로마의 한국인 밥아줌마와 잠아저씨인가? 굉장히 마음씨가 좋다고 써있던데 한국 사람만 많이 모이나요?
미노 : 파리와 로마는 한국인 민박집에 학생들이 주로 가요. 왜냐면 현지에서 값싸고 위치 좋은 숙소를 구하기가 쉽지 않거든요. 그리고 워낙 한국인 민박집이 경쟁적으로 많이 생겨나서 서비스가 좋아요. 일단 아침 저녁 밥을 주고, 간식도 챙겨 주고, 투어 같은 것도 주선해 주고, 세탁도 무료로 해주고 이런 식으로, 공짜로 인터넷을 쓸 수 있고 그런 서비스가 좋아서 그쪽으로 많이 가는데요, 그 밥앤잡 아저씨 아줌마는, 한국에서 아저씨는 방송국 기자였대요. 그리고 아줌마는 출판사에 계셨던 분인데 오랫동안 친구셨대요. 그런데 두 분 다 남들처럼 사는 게 싫었대요. 어느 날 결혼해서 아파트 평수를 늘이고 냉장고 큰 거 사고 TV 큰 거 사는 삶을 살고 싶지 않아서 각자 짝을 서로서로 찾았던 거예요. 그런데 그 사람이 바로 옆에 있었다는 걸 발견하고 두 분이 결혼하신 다음에 한국에서의 모든 삶을 접고 이탈리아로 가셔서 민박집을 열었거든요. 그래서 퍽퍽하게 돈을 모아야겠다든가 그런 게 없어요. 그래서 거기 가면 정말 퍼주거든요. 너무 퍼줘서 걱정될 정도, 저러다가 망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막 퍼주세요.
박인규 : 저도 한 번 가봐야겠네요. 90년대에 배낭여행이 처음 시작될 때는 여행사에서 한 달 하면 호스텔 정해 주고 따라다녔던 것 같은데, 안 가봤습니다만. 지금 말씀 들어보니 여행하는 배낭여행족들의 패턴이랄까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미노 : 네. 장기체류가 많아지고 있죠. 어딘가에 오래 머무는 게요, 그곳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방법이거든요. 어딘가에 가서 동상 하나 보고 사진 찍고 오고 그렇게 하면 나중에 한국에 돌아와서 기억에 남는 게 사진 밖에... 그런데 어떤 곳에 오래, 한 곳에 적어도 일주일 이상 머물다 보면 그곳에서 가장 맛있는 제과점이 어딘지 알게 되고 그곳에서 가장 걷기 좋은 산책길도 알게 되고, 그러면서 그곳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그곳에서 내가 좋아하는 뭔가를 어떻게 찾을 수 있는지, 그런 걸 알게 되는 것 같거든요.
박인규 : 한 마디로 주마간산식 여행에서 한 곳을 깊이 느끼는 식으로 바뀌는 군요.
미노 : 예. 그런 여행자들이 많아지는 것 같아요.
박인규 : 여행과 관련된 책을 이미 세 권이나 내셨고 첫 번째 책이 '수상한 매력이 있는 나라 터키 240+1' 했는데, 이걸 보니까 2003년 6월에 세계일주 여행을 떠났다가 터키에 있는 작은 시골 마을 파묵칼레라는 데서 7개월을 살았어요. 세계일주여행 떠난 것도 희한하지만 파묵칼레라는 마을이 대체 뭐였길레 7개월 동안이나 사셨는지, 뭐하고 사셨는지 궁금하네요. 어떻게 또 책이 되고
미노 : 처음에 여행을 5개월 정도 하니까 너무 피곤했어요.
박인규 : 방랑했다는 그 경유지가 파묵칼레였다.
미노 : 원래 계획은 터키와 중동을 거쳐서 아프리카까지 내려가는 거였는데 너무 피곤한 데다가 유럽이 좀 사람들이 차가워요. 그래서 외로웠거든요.
박인규 : 만나서 얘기하고 이러기가 어려운가요?
미노 : 예. 배낭여행자들을 만나긴 쉬운데 현지인들을 만나서 친해지기가... 먼저 다가와 줘야 되는데 그렇지 않더라구요. 그런데 터키는 너무 저를 좋아해 주는 거예요. 원래 터키 사람들이 동양 여자를 굉장히 예쁘다고 생각해요. 특히 한국을 굉장히 좋아해요. 옛날에 6.25 참전했다는 형제의 나라라고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한국 여자를 특히 좋아해요. 굉장히 잘 해주거든요. 그러니까, 외롭게 몇 개월을 지내다가 갑자기 한꺼번에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들을 만나니까 너무 좋은 거예요. 움직일 필요가 없겠더라구요. 가만히 있으면 누가 밥도 주고 선물도 해주고 어디 데리고 나가고 싶어 하고. 그래서 거기에 파묵칼레에 있는 호텔에 살았는데 거기 살면서 그 마을 사람들이 거의 가족처럼 친해졌어요.
박인규 : 7개월 동안 뭐 하고 지내셨어요?
미노 : 쉬었는데요
박인규 : 7개월 보내기 쉽지 않았을 텐데
미노 : 그게.. 정말, 내가 별 할 일 없이 7개월을 어느 낯선 나라 낯선 마을에서 보내는 게 굉장히 즐겁더라구요. 너무너무 재밌더라구요. 내가 뭔가를 해야 된다는 강박관념이 없잖아요. 가만히 있기만 하면 되고, 만날 하는 일이 사람들과 모여서 놀고 수다떨고 그런 거거든요.
박인규 : 호텔에서 지내셨다던데 비용은 어떻게
미노 : 밥을 공짜로 얻어먹었구요. 그리고 저는 여행자들이... 보통 한국인과 일본인들이 많이 오거든요. 유럽 사람들도 많이 오지만. 그런 동양인을 맡아서 관리해 주고, 그런 식으로 여행하는 여행자들도 꽤 많아요.
박인규 : 그래도 파묵칼레가 마을로서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으니까 7개월 동안 있었겠죠?
미노 : 예. 거기가 그냥 작은 시골 마을이에요. 그런데 관광지가 있어서, 특이한 석회궁으로 이뤄진, 굉장히 아름다워요. 하얀색 물웅덩이가
박인규 : 카파도키아 같은 곳인 모양이죠? 거기도 물웅덩이가 생겼다더니..
미노 : 조금 다른데 여기는 마치 스키장 같은 산이 하나 있어요. 설산, 눈이 덮인 산 같은데 그게 눈이 아니고 석회바위 같은 거예요. 그게 물웅덩이가 패여서 파란색 물이 담겨 있거든요. 그게 온천수에요. 그래서 여름엔 거기서 목욕도 하는데 전 세계에서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요. 그래서 호텔들이 많이 생겼어요 그 마을에. 그 마을에 있으면 마을 사람도 사귈 수 있고 전 세계에서 몰려온 배낭여행자들도 만날 수 있고
박인규 : 많은 사람을 봤겠군요. 저희가 월요일부터 여름특집이라고 해서 여러 가지 여행하시는 분들을 모셨는데, 제가 보니까 여자분들이 여행을 많이 가시는 것 같아요. 한국만의 특징인가요?
미노 : 그런 것 같아요. 외국에도 여자 혼자서 여행하시는 분들이 많긴 한데요, 한국에 특히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혼자서 여행 다니시는 분들을 굉장히 많이 만났거든요
박인규 : 왜 그렇죠? 여유가 많아서 그런가? 그런 건 아니겠죠?
미노 : 20대 후반이 되면 경제적 여유가 생겨서 가는 것도 있는데요, 한국에서 여성이 사회에서 30대 이상이 돼서까지 성취감을 느끼면서 일을 하기가 힘들잖아요. 아직까지는 벽이 많고, 20대까지는 멋모르고 일만 하다가 서른 넘어가면 승진이 힘들다든가 이런 벽을 느끼면서, 참 한국사회 자체가 여자에게 가혹한 것 같아요. 남자보다.
박인규 : 대개 30대 초반이 되면 남자보다 길이 많이 막힌다. 그런 느낌이 작용한다. 미노씨도 그래서 여행 가신 겁니까?
미노 : 그런 건 아니구요, 저는 일반 회사원이 아니라 방송작가다 보니까 그런 건 아니었구요. 저는 그냥 심심했어요. 저는 남들이 살아가는... 제가 제일 무서웠던 게 뭐냐면 새벽 한시까지 여의도의 높은 빌딩들에 불이 쫙 다 밝혀져 있는 것. 사람들이 뭐 때문에 저렇게 열심히 일만 하나, 이 늦은 밤까지, 그런 게 저는 무서웠거든요. 그렇게 살아야 되는 게 너무 답답하고, 조금 재밌고 신나게 살 수 없을까. 아직도 저는 일만 하고 살고 싶진 않아요. 신나고 재밌게 살고 싶거든요.
박인규 : 본인이 여러 차례, 7개월, 6개월, 3개월씩 여행을 다니셨는데, 본인의 삶에서 여행이라는 게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보세요?
미노 : 지금은 장기여행을 시작한 지 한 4년쯤 됐는데요, 지금 와서는... 재테크를 포기하게 된 것? 제 친구들이 지금 살고 있는 패턴을 저는 이미 한참 벗어났어요. 2년 전에 아프리카 여행을 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어요. 나중에 한국에서 돈을 벌고 살 수 없으면 아프리카에서는 자원봉사를 하면서 평생 사시는 분들이 많아요. 이렇게도 살 수 있는데, 사는 방법은 굉장히 다양하잖아요. 꼭 정해진 방법으로 살아야 되는 건 아니니까
박인규 : 많은 분들이 사실은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을 말하면서 여행을 얘기하는데 실제로 행동에 옮기는 분들은 많지 않은 것 같아요. 돈 문제, 시간 문제...
마지막 순서의 마지막 순간이니까 여행을 해보시면 이렇게 달라진다. 그런, 여행을 떠날까 말까 고민하시는 분들을 위해서 조언을 마지막으로 한 말씀 해주시죠.
미노 : 조금쯤은 자기를 놓아주고 자기를 내버려 뒀으면 좋겠구요, 한국에서 배우는 행복의 방법보다 세상에는 더 많은 행복의 방법이 있다는 걸 보게 되거든요. 느끼게 되고. 그래서 아마 돌아오면 조금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예요.
박인규 : 1년에 한 번 쯤은 철이 없어져 보자. 그러면 다른 사는 방법이 보인다. 청취자들께서도 한 번 생각해 볼 제안인 것 같습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미노 : 감사합니다.
박인규 :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오늘은 여름특별기획『평범한 사람들의 특별한 여행이야기』 마지막 시간으로 유럽에 있는 각양각색의 별난 숙소에서 만난 별난 여행자들의 이야기를 엮어 여행기를 펴낸 여행작가 미노씨와 함께했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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