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신영길씨입니다. 신영길씨는 1958년 섬진강이 발원하고 마이산이 솟아 있는 전북 진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전북대 상대를 졸업한 후.. 20여 년간 제약업계에서 영업, 마케팅 업무에 종사했고.. 지금은 진단시약 수입판매업체인 (주)다우 바이오메디카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겨울, 처음으로 생업을 벗어난 여행으로 바이칼을 다녀온 이후 그 과정을 <고도원의 아침편지> '신영길의 길따라 글따라'에 연재하고 있으며 최근 그동안 연재했던 글들을 모아 바이칼 여행기, '나는 연 날리는 소년이었다'를 출간했습니다.
박인규 : 반갑습니다. 바이칼이라는 것은 바이칼 호수.. 예전에는 가기 어려웠는데 최근에는 많이들 가시는 것 같아요. 제가 알기론 세계 최대 담수호 정도로 알고 있는데 바이칼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또 이게 우리 민족의 시원이라는 말도 많이 해요. 우선 바이칼 호수를 좀 소개해 주시죠.
신영길 : 바이칼은 시베리아에 위치해 있고 수심이 약 1600미터 정도의 대단히 큰 바다와 같은 호수고. 하늘에서 보면 모양이 초승달 같아서 시베리아숲을 비행하는 반달 혹은 초승처럼 아름답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현지인들 중 브리아트족 말로 표현하면 '바이갈 달라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거기서 유래해서 바이칼이라고 하는데 그 뜻이 멈추는 불의 바다라고... 아마 아주 예전에 화산이 터졌다가 잦아지는 것을 보고 이름을 부르기 시작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박인규 : 제가 듣기로는 우리 민족의 시조가 탄생한 곳이다... 해서 요즘 한국 분들이 많이 가신다는데 실제로 한국인들이 많이 오시던가요?
신영길 : 네. 현지인들이 여행사도 많이 운영하고 있고, 또 숙박시설 등등... 한국인 유학생도 많고 그렇습니다.
박인규 : 신영길씨는 바이칼에 두 번 다녀오셨죠?
신영길 : 네. 작년 2월과 올 2월 두 번 다녀왔습니다.
박인규 : 글을 보니까,' 나는 연 날리는 소년이었다' 책을 보니까 나는 여행이라곤 한 번도 안 해봤다. 출장은 가봤지만 순전히 여행을 위한 여행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원래 처음엔 갈 생각도 안 했는데 갑자기 바이칼호라는 말을 듣고 갈 생각을 했다고 하셨는데 왜 갑자기 바이칼호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드셨어요?
신영길 : 사실은 처음에 제가 이런 여행을 가게 된 건 한 사람을 만난 인연부터 시작했는데요, 고도원의 아침편지 운영자인 고도원씨를 아침편지 마라톤동아리에서 만나셔서
박인규 : 고도원의 아침편지를 혹시 모르시는 분이 있을 것 같아서 말씀 드리는데, 기자 하시던 고도원씨가 글을 여러 분들에게 보내다가 그걸 중심으로 모인 일종의 인터넷 공동체죠?
신영길 : 그렇습니다. 그래서 아침편지 문화재단에서 기획해서 여행을 가는데 저한테 개인적으로 권유를 해서 따라가게 됐습니다.
박인규 : 원래는 사업도 운영하셔서 쉽사리 가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신영길 : 그런데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우리 민족의 시원, 자작나무, 시베리아, 상당히 우리 감성을 자극하는 용어들이 상당히 많아서 매력을 많이 느껴서 따라가게 됐습니다.
박인규 : 바이칼를 가리켜서 세계의 우물, 시베리아의 진주라는 말을 한다는데 실제로 가보시니 어떻던가요?
신영길 : 저는 겨울에만 다녀와서 여름이나 가을 바이칼은 어떤지 사진으로만 봤습니다만. 겨울 바이칼은 참 신비스럽습니다. 바다와 같은 호수 전체가 꽁꽁 얼어서 바늘 하나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언 상태에서 조용히 침묵하는 모습이 참 성스러울 정도로 느껴집니다.
박인규 : 수심이 1600미터면 사실 바다나 다름이 없는데 2월이면 제일 추울 때 아닙니까? 2월에 가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신영길 : 아마 이르쿠츠크에서 알혼섬, 바이칼의 중심인 이 섬으로 들어가려면 얼음 위로 차를 타고 가야 되는데 안전사고 문제 때문에 가장 꽁꽁 얼 때를 택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박인규 : 바이칼호 위를 차를 타고 알혼섬까지 간다. 알혼섬이라는 데가 굉장히 중요한 데인가 보죠?
신영길 : 거기가 아마 굉장히 영적으로, 현지인들 브리아트족에게는 굉장히 영적인 성지와 같은 곳입니다.
박인규 : 브리아트족은 저희가 항상 우리 민족의 시원이라고 해서, 혹시 한국사람하고 생김새가 비슷합니까?
신영길 : 예. 생김새는 굉장히 비슷합니다.
박인규 : 말 같은 건 어때요?
신영길 : 말도 어원이 굉장히 비슷한 게 많고, 그쪽에 있는 성황상이나 솟대랄지, 우리 민속신앙과도 상당히 연관이 있어서, 또 유전적으로도 분석해 보면 몽골리안의 시조가 그쪽이라는 설이 있는 것 같습니다.
박인규 : 바이칼호는 우리 민족의 시원이기도 하고 말하자면 거의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청정지대 중 하나라는 말도 하고. 그래서 굉장히 많은 동식물들이 있다는데 겨울이어서 보셨는지 모르겠네요. 어떻습니까?
신영길 : 거기서 파는 건 봤고 박물관에서 봤는데, 신비스러운 것이 바다표범이 거기 삽니다. 담수호임에도 불구하고, 네루파라는 바다표범. 또 거기서만 존재하는 생물들도 있고, 그래서 생태학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 호수라고 합니다.
박인규 : 바이칼을 많은 분들이 최근에 다녀오신 걸로 알고 있는데, 신영길씨는 글과는 관련이 없는 세일즈맨 활동을 하셨는데 그 분이 쓴 책이 지금 굉장히 많이 팔렸다고 들었습니다. 책이 얼마나 나갔습니까?
신영길 : 몇 만 부 나간 것 같습니다.
박인규 : 글을 쓰셔야겠다는 생각이 든 이유는? 어떻게 보면 글과 인연이 없는 분 같은데, 여행도 인연이 없다가 갔다 오시고, 또 글도 쓰시고. 말하자면 나로 하여금 글을 쓰게 한 어떤 힘 같은 게 있었던 모양이죠?
신영길 : 그게 고도원님 표현에 의하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제 안에 그런 게 축적돼 왔고 잠재돼 왔는지 잘 모르겠는데 아침편지 마라톤 동아리라는 사이트에다가 제 달리기 소감 같은 걸 몇 차례 짧은 글을 쓴 걸 보고... 아마 거기서. 그 분 표현에 의하면 문제를 발견했다.
박인규 : 고도원씨가 권유하셔서.
작년에 가셨을 때는 8박 9일인가요? 많이 가신 건 아닌 것 같은데 올해 또 가셨어요. 올해 또 가신 이유는 뭡니까?
신영길 : 또 가고 싶고 그립고 그렇습니다. 그 시간이 되면.
박인규 : 두 번째 가보니 어떻던가요?
신영길 : 처음에는 그저 흥분된 기분이 상당히 많았고. 이번엔 추려서 보고 싶은 곳을 더 집중적으로 보니 훨씬 더 좋았습니다.
박인규 : 바이칼호는 굉장히 큰 호수인데, 가면 어떤 걸 봅니까? 알혼섬 같은 성지도 가보시고
신영길 : 겨울 바이칼은 얼음이 상당히 좋고. 얼음 자체가 좋고. 그 다음 이르쿠츠크에 자작나무숲이 있습니다. 영화 닥터 지바고 배경으로 나오는 그 자작나무숲 정경 그대롭니다.
박인규 : 책에 보니까 정비석님의 산정무한을 인용하시면서 여성의 속살과 같다는 표현도 쓰셨던데 실제로 그렇습니까?
신영길 : 실제로 그렇습니다. 나무의 귀족이라고... 속살이 백계 러시아 미녀들처럼 굉장히 하얗고 참 늘씬하고
박인규 : 자작나무는 제가 알기론 백두산에도 굉장히 많다던데 혹시 백두산엔 가보셨나요?
신영길 : 백두산엔 못 가봤습니다.
박인규 : 그럼 앞으로 백두산에도 가셔서 여행기를 쓰셔야겠네요.
이번 책이 바이칼 여행기인데, 바이칼 여행기라고 하기에는 제목이 좀 독특해요. 약간 연관이 없는 것 같은데 '나는 연 날리는 소년이었다'를 책 제목으로 잡으셨어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신영길 : 연 날리는 소년이었다. 조금 쉽게 생각하면 꿈꾸는 소년이었다라는 의미인데요, 제가 사실 바이칼 호수에서 얼음... 가장 깊다는 곳에서 얼음명상을 하면서 문득, 이 얼음이 깨지면 어떻게 될까를 생각을 하다 보니 마치 큰 바다 위에 떠있는 조그마한 잎새처럼. 그러면서 정말 중요한 게 뭘까라는 걸 생각하게 됐고. 어렸을 땐 상당히 행복하다고 느꼈는데 살아갈수록 어릴 때보다 가진 것도 많고 이룬 것도 있지만 행복하지 못한 이유가 뭘까라는 걸 생각하다가, 그게 꿈이 아닐까. 어렸을 때는 꿈을 꿨기 때문에 행복했는데 지금은 그러질 못하고 있다. 꿈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어렸을 때 꿈꿀 때 사용했던, 혹은 가까이 있었던 고향, 어머니, 선생님, 연, 그런 것들이 아주 막 샘솟듯이 솟아났습니다. 그래서 나는 꿈꾸는 소년처럼 살아가야지라는 뜻에서 그렇게 제목을 붙였습니다.
박인규 : 바이칼호의 얼음 위에서 어렸을 때를 생각하신 거군요. 얼음명상이라고 하셨는데 어떻게 하는 겁니까?
신영길 : 대부분의 사람들이 명상을 체험을 못했으니까 저희 같은 경우에는 인도자가 다 주문을 합니다. 가슴에 못을 상상한달지, 용서해야 될 사람 혹은 그리운 사람 그런 것들을 다 들춰내면서, 때론 용서하고 때론 후회도 하고 참회도 하고, 그렇게 이끌어 줍니다.
박인규 : 그런 걸 바이칼호의 얼음 위에서... 굉장히 추워서 딴 생각 안 날 것 같은데...
신영길 : 전혀 딴 생각 안 들고, 굉장히 신비스럽습니다.
박인규 : 깥에서 그냥 비바람 맞으면서.어느 정도 시간이나 하십니까?
신영길 : 30분 정도 합니다.
박인규 : 저희가 월요일부터 쭉 특별기획을 하는데, 첫날 나오신 분이 비슷한 연배의 여자 분이신데 유럽의 순례자들이 다니는 카미노 데 산티아고에 다녀오셨는데 그분도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끝에 가서는 자기를 찾은 것 같다고 하셨는데, 어렸을 때를 생각하면서 본 모습을 찾은 것 같다. 그런 말씀이신 것 같네요.
최근에 돌아가신 금아 피천득 선생님... 우리나라 수필의 가장 최고봉이라고도 하는데 피천득 선생께서도 신영길씨의 글을 읽어보셨다는 말이 있습니다.
신영길 : 아마 피천득 선생님 제자 분께서 아침편지 독자였던 것 같습니다. 제가 연재하는 동안 몇 편을 인쇄해서 선생님께 읽어드렸더니 매번 참 좋다고 말씀하셨고요. 또 책 나오자 마자 그 분과 동행해서 한 번 찾아뵈었습니다. 인사를 드렸더니 참 좋다고 하셨습니다.
박인규 : 고도원의 아침편지에 연재를 하셨다가 책이 나왔다고 하셨는데, 신영길씨의 팬이 굉장히 많다고 해요.
신영길 : 많은것 같습니다.
박인규 : 고도원의 아침편지에 글을 쓰시기 시작한 게 언제부터세요?
신영길 : 작년 바이칼 다녀온 뒤부터였습니다.
박인규 : 그러면 이제 한 1년 반 되셨는데 좀 얼떨떨하지 않으십니까? 말하자면 본업이 아니셨는데
신영길 : 얼떨떨하구요. 예.
박인규 : 그 전에도 글 같은 걸 써보신 적이 있으세요?
신영길 : 없었습니다.
박인규 : 나이가 사실은 50 가까이 되셨는데, 그때부터 쓰셨는데 왜 그럴까요? 신영길씨가 살아온 길, 경험, 이런 것들에 많은 분들이 공감해서 그럴까요? 왜 나의 글들이 이런 반응을 갖고 왔을까 생각도 해보셨을 것 같은데요
신영길 : 제 친구 중에 문학도가 있어서 제 글을 얼마 전에 만나서 이런 식으로 표현해 주던데요...
아마 제 글 취향이, 소위 58년 개띠니까요.
박인규 : 우리나라에서 제일 많다는 그 나이 또래
신영길 : 네. 산업화와 민주화 시대에 소외됐던, 조금은... 열심히 살았지만 가슴에 아련한 슬픔 같은 걸 갖고 있는 분들에게 상당히 어필하는 것 같다고 평을 해주더군요.
박인규 : 글을 지금도 계속 쓰시고 있습니까? 바이칼호는 끝났을 테고
신영길 : 쓰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몽골에서 말타기. 역시 아침편지 문화재단에서 주관해서 다녀온 여행기를 쓰고 있습니다.
박인규 : 바이칼호는 떼신 거고 몽골을 갔다 오셨군요. 언제 갔다 오셨어요?
신영길 : 지난주에 돌아왔습니다. 8박 9일로요.
박인규 : 몽골을 갔다 오시니 어떻던가요?
신영길 : 몽골도 참 좋습니다. 몽골은 아무 거칠 것 없는 평원에 아주 깨끗한 하늘, 딱 두 가지만 있거든요. 그러니까 참 호연지기도 기를 수 있는 것 같고 마음의 상처, 좌절감, 그런 것이 대자연을 접하면 자연적으로 치유되는, 그런 걸 그렇게 피력하는 분들을 많이 봤습니다.
박인규 : 이번에 쓰신 책, 나는 연 날리는 소년이었다. 여기에도 몽골 이야기가 조금 나오던데...
그때 갔다 오신 감동 때문에 또 이번에 갔다 오신 모양이군요. 계속 연재하고 계신 겁니까?
신영길 : 예.
박인규 : 혹시 이 방송 들으시는 분 중에 신영길씨 살아온 이력이나 이런 걸로 봐서는 나랑 좀 비슷한데 이 양반이 글을 잘 쓴다니까 한 번 좀 읽어보고 싶다. 그런 분들 위해서는 어디... 고도원의 아침편지를 치고 들어가서 보면 되는 겁니까?
신영길 : 네. 고도원의 아침편지를 치시면 뜹니다.
박인규 : 저도 사실은 바이칼호에 다녀왔다는 분들 얘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아직은 못 가봤구요.
특히 우리 민족의 시원이라니까 한 번은 가봐야겠다고 생각이 들어서, 실제로 어떻게 가게 되는지, 시베리아 열차를 타고 몽골 거쳐서 가신 것 같은데 여기서 바이칼 호수까지 가려면 어떻게 합니까?
신영길 : 두 가지 길이 있는 것 같은데요, 블라디보스토크로 가서 거기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는 방법이 있고
박인규 :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거기까지 얼마나 걸립니까?
신영길 : 거긴 잘 모르겠습니다. 그쪽으로 안 가보고 저는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이르쿠츠크까지 가는 대륙횡단열차를 타고 갔는데요, 횡단열차만 꼬박 24시간 걸립니다.
박인규 : 이르쿠츠크에서 바이칼호까지는 금방인가요?
신영길 : 거기는 접해 있습니다. 이르쿠츠크와 바이칼호는 접해 있고 알혼섬까지는 한 6시간쯤 다시 버스를 타고 가야 됩니다.
박인규 : 알혼섬까지 버스로 간다는 건 육로로...
신영길 : 네. 육로로 갔다가 다시 얼음을 타고 갑니다.
박인규 : 아... 그 시베리아 횡단열차, 24시간 타고 가시면 풍경이 어떻습니까?
신영길 : 야간열차만 들어도 저는 가슴이 뜁니다만, 야간열차... 처음에 사람들이 타고 난 뒤 서너 시간 동안에는 굉장히 마치 낭만열차를 탄 것처럼 다들 흥분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너무 단조로운 모습하고, 그때부터는 사실 철창과 같은 곳이 됩니다. 그래서 자연히 명상이 되고요, 열차 안에서
박인규 : 요샌 우리나라 KTX가 나와서 어딜 가도 3시간 이내에 가는데 24시간을 가려면 지겹다는 생각이 들겠네요.
신영길 : 네. 굉장히 지겹고 답답하고 캄캄하고 그렇습니다.
박인규 : 처음에는 막 들뜨다가 서너 시간 지자면 다시 자기 속으로 들어오게 되는.
이르쿠츠크라는 데는 바이칼호 옆이라고 하셨는데 독립운동사나 근대사를 보면 이르쿠츠크라는 얘기가 많이 나와요. 사회주의운동도 하시고... 이르쿠츠크는 어떻던가요?
신영길 : 굉장히 아름답고, 유럽풍의 도시입니다. 시베리아의 파리라고 불린다는데 아마 역사적으로는 데카브리스트 당원이라고 1800년대 재정러시아 시대 때 귀족장교들이 반란을 일으켰다가 들켜서 그 분들이 유배를 온 곳이 시베리아였는데, 그 분들이 형을 마치고 그곳에 계속 머무르면서 아주 격조 높은 문화 교육도시로 발전시킨 것 같습니다.
박인규 : 우리 예전 사회주의든 독립운동 하시던 분들의 유적 같은 것도 남아 있던가요?
신영길 : 남아 있을 것 같은데 저는 거기까지는 못 봤습니다.
박인규 : 책에 보니까 바이칼 호수하고 앙가라강인가요? 전부 다 강은 들어오기만 하고 나가는 강은 앙가라강 하나뿐이라던데 설명 좀 해주시죠.
신영길 : 총 336개의 강이 바이칼로 들어오는데 실제 유출되는 강은 앙가라강 하나뿐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자칫 구조적으로 보면 상당히 퇴적한달지 부패하기 쉬울 것 같은데 바이칼이 그렇게 청정호수로 남아있는 게 상당히 신비스러운 것 같습니다.
박인규 : 앙가라강이 말하자면 바이칼 호수의 물이 나가는 유일한 통로인 셈인데, 그것 때문에 거기 얽힌 전설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신영길 : 예. 그게 아마, 신이 335개의 아들과 한 명의 딸을 두었는데 정혼을 다른 남자랑 했던 것 같습니다. 딸을. 그런데 딸은 다른 남자를 좋아했다가 가출하게 된 거죠. 그런데 아버지가 돌을 던져서 죽은 것 같습니다. 그 딸 이름이 앙가라강이고 거기 보면 큰 샤만바위라는 큰 돌이 있는데 그 돌을 던져서 그렇게 됐다는 전설이 있는 거 같습니다.
박인규 : 앙가라강이 바이칼호 인근에 사는 주민들한텐 특별한 의미가 있겠군요.
신영길 : 예. 굉장히 특별한 의미가 있고 애절하고. 그래서 그런지 앙가라 처녀가 도망가려고 해서 그런지 유속이 굉장히 빠르고, 숨겨주려는 듯이 안개가 늘 껴있습니다. 그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박인규 : 알혼섬이라는 데가 가장 성지가 되는 데고 호수 가운데 있는데 겨울에 차를 타고 들어간다고 하셨는데, 알혼섬, 앙가라강 말고 바이칼호에서 가볼 만한 데가 어떤 데가 있습니까?
신영길 : 자작나무숲이 참 아름답습니다. 특히 달빛에 젖었을 때 보면 아주 아름답습니다.
박인규 : 부르한 바위라는 건 어떤 겁니까?
신영길 : 부르한 바위가 알혼섬 안에 있습니다. 영적으로 상당히 의미가 있는
박인규 : 거기 가서 좀 빌고 오셨습니까?
신영길 : 예. 사실은 거기서 명상을 합니다. 그 시간이 황혼이 딱 지는 시간에 하는데, 바람이 굉장히 많이 붑니다. 바람고지여서...
박인규 : 대략 기온이 어느 정도 됩니까 2월이면..
신영길 : 한 영하 20도 내지 30도
박인규 : 많이 춥군요. 한 50년 가까이 생업만을 하시다가 바이칼 호수를 두 번 갔다 오시고 몽골도 갔다 오시고. 그렇게 여행을 하다 보니 삶을 대하는 태도랄까 많이 달라지는 걸 느끼세요?
신영길 : 여행을 왜 이제야 하게 됐을까 싶은 그런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조금 더 젋었을 때 시작했다면 훨씬 더 의미있는 삶을 살지 않았을까 생각을 하게 됩니다.
박인규 : 여행을 하면 아름다운 경치도 만나고 새로운 좋은 사람도 만나고,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나를 만나는 거다, 그렇게 얘기하던데 실제로 그런 느낌이 좀 드시던가요?
신영길 : 그렇습니다. 결국 자기 자신한테 돌아온다는 말처럼 자기 자신을 찾는 것 같고. 또 아름다운 자연풍광을 만나면서 자기 마음속에 응어리져 있던 것들이 치료되는 듯한 것들을 많이 느끼게 됩니다.
박인규 : 지금은 스스로 업체도 운영하시고 인가 작가가 되셔서 글도 쓰시고 하시는데, 이번에 나온 책을 보니까 IMF사태 당시에 실직도 하시고 상당히 어려움도 많이 겪었던 것 같아요. 당시에 어떠셨습니까?
신영길 : 제가 제약회사를 다녔는데요, 비교적 잘 나갔었습니다. 당시 부장이었는데 다른 입사동기들보다는 진급도 빠르고 잘 나갔었는데, 그때 제가 마흔이 되던 1998년에 실직을 하게 됐습니다. 그때 저뿐만이 아니고 실직을 당한 사람들이 참 많았었는데, 그때는 정말 암담하고 캄캄했던...
박인규 : 그 이후 지금 다시 본인의 사업체를 가질 때까지 어떻게 극복을 해오셨습니까?
신영길 : 그때 여기저기 이력서를 수십 군데 넣기도 하고 제 몸으로 직접 다니면서 알아도 보고 그러다가 저를 뽑아준 회사가 다행히 있었고요. 그 회사를 다니다가 제가 창업을 다시 몇 년 전에 했습니다. 다시 또 실패하고, 다시 또 조그마한 회사에 들어가서 있다가 3년 전에 옛날 직장동료들과 같이 현재의 회사를 설립해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재취업, 창업, 실패, 다시 또 창업. 지금 하시고 있는 기업은 잘 되고 있나요?
신영길 : 잘 되고 있습니다.
박인규 : 그런 과정들을 겪으시면서 인생에 대해 많은 걸 생각하셨을 것 같아요.
신영길 : 그렇습니다. 처음에 대기업의 중견간부로 있을 때만 해도 참 이런 어려움을 몰랐는데, 그 이후로 약 10여 년 동안 작은 회사도 가보고 창업도 해보고 또 다른 회사도 가보면서 지금의 회사를 준비하는 과정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박인규 : 열심히 샐러리맨으로 활동하다가 실직도 해보시고 창업도 해보시고. 우리나라의 보통사람들의 초상인 것 같아요.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고 가족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고 그러다 보면 자기가 없어지는 그런 것이기도 하고. 제가 보기에는 신영길씨는 바이칼 호수에 갔다 오시면서 나라는 게 이런 거였구나, 그걸 느끼신 것 같은데. 차제에 우리 수많은 수백만 동료 샐러리맨 동료들한테 진짜 제대로 사는 건 이런 거다. 말씀해 주시죠.
신영길 : 지금은 예전과는 달리 평생직업도 평생직장도 없다는데, 그런 현실을 일단 받아들이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하는 게 제일 중요할 것 같습니다. 조금 슬프거나 좌절스럽거나 실망스러운 일이 있어도 너무 주저앉지 말고. 무슨 뜻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절대로 희망을 버리지 않고 견디다 보면 그게 오히려 전기가 돼서 좋은 계기가 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신영길 : 기본적으로 가족과 직장을 위해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겠지만 그래도 1년에 한 번씩은 자기를 위한 여행도 하시고, 특히 힘들어 하시는 동료 샐러리맨들을 위해서 좋은 글을 많이 써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박인규 : 감사합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오늘은 여름특별기획『평범한 사람들의 특별한 여행이야기』그 네 번째 시간으로 '시베리아의 진주'라고 불리는 바이칼 호수를 다녀온 신영길씨와 함께했습니다. 내일은 마지막 시간으로 유럽여행의 다양하고 특색있는 숙소에 대한 책을 펴낸 여행가 미노씨와 함께 합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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