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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찍었던 할배할매들 "때려 죽여도 박근혜 안 찍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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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찍었던 할배할매들 "때려 죽여도 박근혜 안 찍어"

[대선후보들은 모르는 원전의 속살·③] "전기 펑펑 쓰는 서울사람들은 모르지요?"

- 대선후보들은 모르는 원전의 속살
<1> "부품 빼돌려 지은 원전, 공사자가 무섭다며 이사가기도…"
<2> '천년고도' 경주, '핵폭탄 타이머' 재깍재깍

"언제 우리가 정치인들 믿고 살았습니꺼. 그냥 우리끼리 가는 거라예. 여 사람들 지난번에 다 이명박이 찍고, 한나라당 찍었심니더. 근데 그 사람들, 우리같이 힘없는 촌사람들 이용할라꼬만 했지. 이제 됐심니더.

보소, 우리끼리 이 산에 만날 지게 지고 벽돌 날라 농성장도 짓고, 이래 꼬부랑 할매들이 나무 붙잡고 울고. 서울 사람들 전기만 펑펑 써대지 이런 거 모르지요? 우리 촌사람들 이래 억울한 거 모르지요? 우린 이 송전탑 필요읍다 아닌교."


지난 17일,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 사연리 동화마을에서 만난 김태연(52) 씨는 연신 "억울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베잠방이에 물든 황토물이 빠질 새도 없이, 그저 묵묵히 열심히 일하며 일생을 가꿔왔다는 밀양주민들. 가지고 있는 작은 땅과 집, 마을을 자손들에게 남기고 세상을 뜰 수 있단 것을 '축복'으로 여기며 살아왔다고 했다.

그런 소박한 마을에 약 7년 전, 우뚝 솟은 산자락을 꿰뚫고 논밭을 빗겨 치며 초고압 송전탑이 들어선단 계획이 '통보'됐다. 울산 신고리 원자력발전소에서 경남 창녕군 변전소까지 이어지는 765킬로볼트 송전탑 161개 가운데 69개가 밀양에 건설된다는 소식이었다. 이렇게 울산에서 만들어진 전기는 밀양 등지를 지나 수도권 대도시로 수송될 예정이다.

마을 주민들은 억울했다. '끼익 끼익'하는 음산한 소리를 밤낮으로 내고, 발암 물질로 알려진 전자파를 사방으로 내뿜을 송전선로. 그리고 그 선로를 연결할 아파트 50층 높이(약 100미터)의 철탑과 그것이 만들 거대한 그늘. "그 아래에서 어떤 아이가 마음 편히 뛰어놀고, 어떤 농작물이 탈 없이 자랄 수 있겠느냐"고 사연리 이장 양윤기(64)씨는 토로했다.

이날 양 씨는 "우리는 한여름 한기가 느껴질 정도로 에어컨을 쓰지 않았고, 한겨울 반팔을 입고 다닐 정도로 히터를 쓰지도 않았다. 24시간 내내 휘황하게 불을 밝히는 네온사인은 이 마을 어디에도 없다. 우리는 이런 거대한 전기를 써본 적도 없고, 필요하지도 않다"는 내용의 '동화전 마을 송전철탑 반대 싸움의 기록'을 단어 하나하나 힘주어 읽어나갔다.

▲ 밀양시 단장면 사연리 동화마을 주민은 송전탑 건설 현장에 오를 때마다 이렇게 징을 친다. 자신들이 산 정상에 있음을 알리기 위함이다. ⓒ프레시안(최하얀)

미끄러지고, 굴러떨어지고…벽돌 600장 지게로 날라 만든 '성지'

글을 다 읽은 양 씨는 소주 한 잔을 돼지머리 앞에 올려두고 절을 했다. 이날은 동화전 마을 주민들이 송전탑 96호기 건설현장에 새로운 움막(농성장)을 완성한 것을 기념해, 고사를 지내는 날이었다.

앞서 오전 10시 반, 주민들은 시루떡과 과일, 소주 등을 배낭에 짊어지고 산꼭대기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여느 등산로와 달리 산길은 가파르고 미끄러웠다. 젊은 기자에게도 좀처럼 쉽지 않은 길이었다. 군데군데, 산에서 굴러떨어지지 말라고 앞서 올라간 주민들은 땅에 지팡이를 일렬로 박아놓았다. 나무 사이사이를 흰 노끈으로 연결해놓기도 했다. 한 손으로는 지팡이를, 한 손으로는 노끈을 쥐고 오르는 길. 그래도 미끄러지기 일쑤였다.

이런 산길을 동화마을 주민들은 매일같이 기어오른다고 했다. 73세 엄복이 할머니가 지난 7월 37도의 폭염 속에서 이 길을 오르고 정상에서 쓰러졌다. 정상에서 인부들과 몸싸움을 벌이던 70대 어르신들을 위해 식수를 나르던 양 씨는 산 중턱에서 탈진해 바위 위로 굴러떨어졌다. 지난 1월 "내가 죽어야지 이 문제가 해결되려나"라고 읊조리다, 결국 자신의 몸에 시너를 붓고 분신한 이치우 어르신도 이 길을 오르곤 했다. (☞ 관련기사 : 74세 노인의 분신 자결, 그곳에 가보니)
▲ 송전탑 96호기 건설현장에 새로 마련한 움막을 짓는 데 사용한 지게들. ⓒ프레시안(최하얀)

주민 손장규(46) 씨는 산길 초입에 모아놓은 지게들을 손으로 가리켰다. "지게 본 적 있습니꺼. 저게 지게입니더"라고 그는 말했다. 요새는 쉽사리 볼 수 없는 나무 지게. 주민들은 16kg에 달하는 벽돌 600장을 하나씩 지게에 얹어 지고 산을 올랐다고 했다. 이 일에는 전국의 중·고등학생, 시민사회단체 회원 등 200여 명이 힘을 보탰다. 추운 겨울, 마을 어르신들이 산 정상에서 변고를 당하지 않도록 불 때는 구들방도 만들었다. 그렇게 송전탑 96호기 건설현장에 '황토 움막'이 새로 들어섰다.

김정회 투쟁위원장은 "지금도 여 와서 고생한 사람들 생각하면 눈물이 나고 목이 메입니더"라며 황토 움막을 '성지(聖地)'라 불렀다. 그는 "이자 여가 거대한 국가권력에 맞서 싸우는 성지입니더"라며 "다 이기고 나도 (송전탑 백지화가 성사돼도), 이 움막은 안 부실 겁니더. 자손 대대로 우리 할매 할배들이 이래 싸웠다 알려주는 우리 마을의 산 역사로 만들 겁니더"라고 말했다.

김 씨는 고사 상에 소주를 올리고 무릎을 꿇고 앉아 외쳤다. "천지신명께 삼가 고하나이다. 오늘 축복받은 기일을 맞아 96호 현장을 지키는 구들방 초소 준공을 천지신명께 삼가 고하고자, 술과 과포를 정성껏 마련하였으니, 부디 흠향하시고 저희 기원을 들어주소서. 저희 밀양 땅에 생명을 죽이고 재산을 빼앗아가고, 주민이 서로 헐뜯고 싸우게 하는 76만5000볼트 송전탑 공사를 전면 백지화하게 하시옵소서."

▲ 송전탑 96호기 건설현장. 이 구덩이가 송전탑 발 하나가 들어가는 자리다. ⓒ프레시안(최하얀)

산 정상에는 송전탑 시공업체가 헬기로 가져다놓은 포클레인 등 건설 자재들이 이곳저곳에 나뒹굴고 있었다. 주민들에 따르면 현재 송전탑 95·96호기 공사는 일단 정지돼 있다. 지난 10월 국정감사를 몇 주 앞두고부터 갑자기 공사가 중단됐다고 했다. 요즘은 시공업체 직원 두세 명이 "다른 건설현장으로 장비를 옮겨야 한다"며 가끔 농성장에 나타난다고 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시공업체가 장비를 다른 현장으로 옮기는 것도 허락하지 않고 있다. 전직 초등학교 교장 선생이었던 고준길(70) 씨는 "우리도 이래 아픈데, 저거 갖꼬 어데 가서 또 사람 직일라고. 안 된다. 저거 아무데도 못 가져간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벌금 걱정이 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우리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주는 게 국가의 책임"이라고 답했다.

"여 사람들 다 이명박이 뽑았심니더"

주민들은 밀양 송전탑 백지화 투쟁이 궁극에는 탈핵 정책과 맞닿아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4년 전에 부산에서 밀양으로 귀농했다는 남한우(65) 씨는 "저거도 새끼 있잖아"라고 호통치며 "우리가 (자연을) 빌려서 쓰는 긴데, 언제고 터질 저 핵발전소를 지어 후대에 물려준다는 게 말이 안 되쟤"라고 말했다.

그는 "(밀양 주민들이) 촌놈들이니께, 돈으로 달래고 주먹으로 협박하믄, 하나둘 꼬리 내리게 돼 있단 심산이 분명하다"며 "그런데 우리는 선례를 남기고 싶다 이거라. 돈 더 받자고 이라는 게 아니라, 잘못된 거(핵발전소와 송전탑 건설)를 우리 할매 할배들이 막았다 이런 선례 말이여"라고 말했다.

남 씨는 지난여름 동화마을 할머니에게 송전탑 시공업체가 한 비인간적 대우도 털어놨다. "그놈들은 나무를 반만 잘라. 그럼 꼬부랑 할머니가 지팡이를 짚고 거길 뒤뚱뒤뚱 가서 그 나무를 부등켜안아. 그럼 고 옆에 나무로 옮겨 가서 반만 잘라. 그럼 할머니가 다시 뒤뚱뒤뚱 가서 그걸 껴안아. 그럼 또 다른 나무, 또 다른 나무, 그렇게 워리 워리 이리 오너라 놀려 먹는겨"라고 남 씨는 말했다.

김태연 씨는 "그때는 마이 외로웠재"라며 싸움 초기를 회고했다. 김 씨는 "여 사람들 80%가 지난번에 이명박이 찍었다 안 하요"라며 "철탑 막아 달라고 국회에 계신 높으신 분들한테도 얼매나 부탁했는데…"라고 말했다. 밀양 송전탑 대책위 이계삼 사무국장도 이날 "보험 파는 세일즈맨처럼, 국회 의원실 문 두들기며 귀찮아하는 사람들에게 밀양 상황을 설명하곤 했다"고 말했다.

김 씨는 "그 사람들 이쟈 못 믿는다 나는"이라며 "이번 선거 때는 때려 죽여도 박근혜는 안 뽑는다"라고 말했다.

▲ 고사를 지내는 밀양 주민들. ⓒ프레시안(최하얀)

두 동강 난 마을, 곪아가는 상처

저녁 6시, 마을 주민들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는 마을 주민(반대 주민)들이 꽹과리와 북을 들고 송전탑을 찬성하는 주민(찬성 주민)들을 일일이 방문하던 도중에 벌어진 일이었다. 주민들은 "누가 도장을 찍었고, 안 찍었고 다 안다"고 말했다. "한전 회유에 넘어간 사람들 때문에 울화가 치민다"고 말하는 주민도 있었다.

"동네 민심을 혼란시키는 000는 동네를 떠나라! 떠나라!"

반대 주민들은 꽹과리·북을 치며 동네를 돌다 한 번씩 멈추어 이렇게 소리를 질렀다. 그러다 한 찬성주민과 반대주민 사이에 몸싸움이 붙었다. 찬성주민은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럽니꺼. 살아야 될 거 아입니꺼"라고 소리 지르기도 했다.

한 찬성주민의 신고로 6시 15분경 경찰이 현장에 나타났다. 성난 주민들은 경찰을 향해 "어디 잡아가 봐라 이놈들아. 우리가 잘못한 거면 잡아가란 말이다"라고 외쳤다. 주민 강귀연 씨는 "이렇게 꽹과리 치며 돌아다닌 것은 오늘이 처음"이지만 "주민들 사이에 감정의 골은 깊어질 대로 깊어졌다"고 말했다.

남 씨는 깊어진 감정의 골이 오래 남을 것을 염려했다. 그는 "이렇게 싸우는 사람들이 평생을 같이 자라고, 학교 다니고, 서로 농사 돕던 그런 사이"라며 "한 가족처럼 지내던 마을 공동체가 한전의 막무가내 공사로 두 동강이 났다"고 말했다.

그는 "마을 어른들은 두 동강 난 마을을 제일 걱정"한다며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나더라도, 이 앙금은 오래오래 갈 것"이라고 말했다.

▲ 동화마을 어린이들. 왼쪽부터 박진서(5), 손주석(12), 김윤겸(9), 박정재(11), 김모경(13), 손지혜(9) 어린이. 모경이는 이날 "송전탑에서 전자파가 나오면 우리 마을 사람들 다 병에 걸릴 거예요"라고 했다. ⓒ프레시안(최하얀)

"양심 있다면…전기 많이 쓰는 여의도에 원전 짓자고 하자"

저녁 6시 40분, 서울에서 출발한 제4차 탈핵희망버스가 동화마을에 도착했다. 이 버스에 탑승한 50여 명은 앞서 이날 오후에는 경상북도 경주시 월성 원자력발전소를 찾아 월성 1호기의 완전 폐쇄를 촉구하는 '장례식' 퍼포먼스를 벌였다.

주민들은 천리길을 달려온 희망버스 참가자들에게 따끈한 국밥을 대접했다. 고준길 씨는 "여러분이 이렇게 와주시니까, 우리가 하는 일이 '정의롭다'는 확신이 든다"며 "처음에는 나라 하는 일을 막아도 되는 건가 우리 노인네들은 망설였는데, 감사하다"고 말했다. 고 씨는 "우리를 바라보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안다"며 "그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싶다"고도 말했다.

이에 희망버스 참가자들은 "오히려 우리가 감사하다"는 뜻을 전했다. 하승수 녹색당 운영위원장은 "밀양에 계신 분들이 감사하실 필요가 없고, 오히려 우리 외지 사람들이 주민들께 감사 드려야 한다"며 "밀양에서 송전탑을 막는 싸움을 못했다면, 신고리 원전도 사회적 이슈가 안 되고, 그냥 공사가 진행됐을 거다"라고 말했다.

2018년과 2019년 각각 완공 예정인 신고리 원전 5호기와 6호기는 지난 1월 밀양 이치우 열사 분신 사건 이후 그 필요성이 줄곧 도마에 올라왔다. 결국,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 후보와 무소속 안철수 후보는 최근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을 담은 에너지 정책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주민들과 환경단체들은 신고리 5·6호기 건설이 중단되면 밀양 송전탑도 필요가 없으므로 백지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관련기사 : "수도권 전기 공급하느라 지방 사람은 죽어갑니다" )

희망버스 참가자들 사이에선 도시에서 쓸 전기를 위해 지방 주민들을 그만 희생시켜야 한단 목소리도 나왔다. 김종철 진보신당 대표 권한대행은 "양심이 있는 서울사람이라면, 밀양 송전탑 싸움을 보고 스스로 반성해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며 "그렇게 전기를 펑펑 쓰고 살고 싶으면, 밀양 주민들 고생시키지 말고 서울 여의도에 원전 짓자고 해라. 그게 양심적인 것 아니냐"고 소리를 높였다.

▲ 지난 17일 저녁 7시께 제4차 탈핵희망버스 참가자들과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프레시안(최하얀)

- 후쿠시마를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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