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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모든 건 탈레반에"…'책임'과 '역할'의 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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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모든 건 탈레반에"…'책임'과 '역할'의 혼동

피랍 사태 '미국역할론' 차단 논리 개발한 듯

미국의 반격이 시작됐다. 아프가니스탄 인질 사태 해결을 위해서는 아프간 정부의 사실상 지주인 미국이 모종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여론에 대해 "인질 석방을 위한 모든 압력은 탈레반에 가해져야 한다"며 적극 반박했다.

"인질 안전에 대한 부담과 책임은 납치범에"

리처드 바우처 국무부 남·중앙아시아 담당 차관보가 선봉에 섰다. 그는 2일 한국인들이 미국의 더욱 적극적인 역할을 바라고 있다는 지적에 "미국은 한국 및 아프간 정부와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면서 "모든 책임은 탈레반에게 있다"고 맞받아쳤다.

바우처 차관보는 "중요한 건 우리가 한국 및 아프간과 아주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이번 일을 저지른 건 미국이나 아프간, 한국이 아니라 탈레반이고 인질 석방을 위한 모든 압력은 탈레반에 가해져야 한다는 걸 명심하자"고 강조했다.

바우처 차관보는 또 이번 사태는 아프간 땅에서 일어난 일이고, 아프간 당국이 사태해결을 위해 적극 노력하고 있음도 유념하자며 미국은 '제3자'에 불과하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한국은 인질 석방을 위해 미국 정부가 '테러범과의 협상불가 정책'에 융통성을 발휘해주길 바라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이런 끔찍한 일을 저지른 건 탈레반이고, 탈레반에게 압력과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응수했다.

그는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이 이번 주말 미국을 방문하는 중에도 인질 사태가 해결되지 못하고 추가 희생자가 나올 경우 곤혹스럽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대해 "이번 일은 그가 한 게 아니라 탈레반이 저지른 것이고, 아프간 정부는 사태해결을 위해 책임있게 대처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그는 따라서 "압력은 무고한 사람들을 인질로 잡고 있는 탈레반과 납치범들에게 가해져야 하며, 유일한 실질적 해결책은 그들이 풀려나는 것 뿐"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톰 케이시 국무부 부대변인도 뒤를 이었다. 그는 미국은 한국 및 아프간 정부와 긴밀히 협력하며 탈레반이라는 '공동의 적'에 맞서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진력하고 있다며 "인질들의 안전에 대한 모든 부담과 책임은 납치범들에게 있다"고 강조했다.

케이시 부대변인은 미국이 이번 사태를 심각히 우려하면서 할 수 있는 최선의 협력을 다하고 있음을 거듭 밝히고 "인질들의 안전에 대한 궁극적인 책임은 탈레반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원인 추궁은 다양…'美역할 있다'는 일치
▲ 한국인 피랍자 가족들이 1일 오후 광화문 미대사관을 방문, 사태 해결을 위한 미국 정부의 협조를 요청한 뒤 기자회견을 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피랍 사태에 대한 미국의 최초 입장은 '한국-아프간과 협력중', '조기석방 촉구', '탈레반 규탄' 등 기본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7월 31일 한국이 아프간 정부에 탈레반이 요구하고 있는 '인질-수감자 맞교환'을 받아들여 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지자 미국은 곧바로 '테러집단과 협상은 없다'며 한국의 요청을 거부할 것을 아프간 정부에 사실상 지시했다.

그러던 미국은 2일 마침내 탈레반에 대한 군사적 압력을 배제하지 않겠다는 강수를 들고 나왔고, 그와 동시에 모든 책임은 탈레반에 있다는 대응 논리를 개발해 '미국역할론'을 적극 반박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인질 석방을 위해 미국이 최소한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논리에 대해 납치의 '책임'과 석방 노력에서의 '역할'을 한데 뭉뚱그려 말하는 것은 '미국역할론'을 피해가기 위한 전술에 불과할 뿐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피랍 사태의 책임이 어디에 있느냐에 대해서는 다양한 시각이 존재한다. 일차적으로는 미국 말대로 납치·살해의 주체인 탈레반에게 책임이 있다. 또 미국의 대테러전이 가져온 아프간의 불안정이 피랍의 근본 원인이라고 주장하는 한국 진보진영의 목소리도 있다. 이들은 한국군을 아프간에 파견한 것도 문제의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이슬람 문화에 대한 이해 없이 상대방에게 개종을 강요하는 한국 기독교의 무모한 선교활동 탓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같은 시각들은 각기 어느 정도의 설득력과 한계를 모두 가지고 있다.

하지만 현재 일고 있는 미국역할론은 '누가 납치를 불러왔나'를 따지는 게 아니라 우선 인질을 무사히 구출해 내는데 있어 누가 무엇을 해야하는지를 따지는 측면에서 나온 것으로, 미국이 '인질-수감자 맞교환'을 용인하지는 못하지만 최소한 묵인이라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책임'과 '역할'의 의도적 혼동

이 같은 주장은 보수진영에서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국회 5당 대표로 구성된 방미단에 한나라당 김형오 원내대표가 참여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들은 2일 미국에서 니컬러스 번스 국무차관과 면담하기 직전 "미국이 이제 좀 더 구체적으로 움직여줘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나머지 21명의 인질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중앙일보>는 3일 '인질 사태, 미국의 역할을 기대한다' 제하의 사설에서 "상황이 절박하니 (미국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 달라는 것"이라며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한국인들의 처지를 헤아려 원칙을 지키면서도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지 함께 고민해 보자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도 2~3일자 사설에서는 미국책임론·역할론이 행여 반미열풍으로 번질까 노심초사하고 있지만, 7월 27일자 사설에서는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린 것은 미군이었고, 지금은 나토군 위주의 국제안보지원군과 미군이 탈레반 소탕 전쟁의 주축 역할을 맡고 있다"며 "상반되는 요구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져 있는 아프가니스탄과 미국 정부가 보다 인간의 생명을 중시하는 쪽으로 결정을 내리고 한국 정부를 지원해 주기를 바란다"고 미국역할론을 제기한 바 있다.

평화나눔공동체와 범종단협의회, 무슬림 등 미국 워싱턴 일대 종교단체 지도자들이 3일 백악관 앞에서 인질들의 조속한 석방과 미국의 적극적인 개입을 촉구하는 기도모임을 개최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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