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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도 결국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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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도 결국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입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08/01] 역사학자 이이화씨

안녕하십니까? 박인귭니다. 역사 대중화에 앞장서오며 활발한 저술활동을 펼치고 있는 역사학자 이이화씨가 최근 한 권으로 읽는 우리 역사 에세이를 출간했습니다. 한반도가 형성된 빙하기부터 1987년 6월 항쟁까지의 한국역사를 정리한 이번 저서에는, 우리 역사에 대한 총체적인 관점과 우리 민중에 대한 속깊은 애정이 잘 드러나 있는데요 특히 이번 책은 요즘 같은 세계화시대일수록 올바른 역사의식이 강조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또, 우리의 현재를 일으켜 세우는 진정한 힘이 무엇인지를 되새기게 합니다. 오늘 박인규의 집중인터뷰에서는 역사학자 이이화씨를 초대해 이번에 출간된 저서 '역사'의 내용을 비롯해 여러 가지 역사 관련 현안들과 올바른 역사의식에 대해 얘기 나눠봅니다.

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역사학자 이이화씨입니다. 이이화씨는 1937년 대구 출생으로 어려서는 부친으로부터 한학을 배웠고 20대 이후 혼자 힘으로 40여 년간 한국사를 연구해 오고 있습니다. 역사문제연구소 소장을 역임했고 현재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이사장과 고구려역사문화보전회 이사장 등을 맡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22권짜리 '한국사 이야기'를 비롯해 '동학농민전쟁 인물열전'과 '한국의 파벌' 등이 있습니다.

박인규 : 우선 새로운 저서 출간을 축하드리고요, 한 2년 전인가 큰 수술을 받으신 걸로 아는데 건강은 좀 괜찮으십니까?

이이화 : 감사합니다. 위암 수술을 받았는데 아주 초기 단계에 발견해서 지금 2년 조금 지나니 괜찮습니다.

박인규 : 제가 뵙기에도 얼굴이 상당히 건강해 보이네요.

이이화 : 네. 더 건강해졌다고들 합니다.

박인규 : 그래서 연세가 있으시니 조심하셔야겠네요. 26년간인가 광주 쪽 아치울에 사시다가 거처를 옮기셨는데 괜찮으십니까?

▲ ⓒ프레시안

이이화 :
원래 아치울에서 26년 정도 살았는데, 그때 아까 소개한 22권짜리 한국사를 쓰면서 지방 산골을 돌아다니기도 하고, 또 집 지하실에서 조용한 분위기를 위해서 정말로 22권을 거기서 마친 곳인데, 나한테 개인사로는 의미가 있어요. 그런데 헤이리 임진강가에 예술마을로 이사와서 살아 보니 또 괜찮고. 또 하나는 서울에서 가까운 데서 벗어나려고 노력을 좀 한 편입니다.

박인규 : 혹시 통일시대를 대비해서 북쪽으로 가신 건 아닙니까?

이이화 : 특별히 그런 것은 아닌데 오는 손님들이 있어요. 이사가니까 방문객들이 많습니다. 그럼 내가 안내를 해주면 통일동산이라든가 임진강 유역을 돌아다니면 또 새삼스럽게 통일과 관련된 유적이랄까, 그런 환경들이 보여서 자연스럽게 그런 데 관심을 불러일으킨 부분도 있습니다.

박인규 : 이번에 '역사'라는 책을 내셨어요. 500쪽짜리 굉장히 큰 양인데, 무엇보다도 한국의 젊은이들이 우리나라 역사를 제대로 알았으면 좋겠다는 염원을 담은 책인데, 이 책을 쓰시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습니까?

이이화 : 아까 얘기한 대로 22권짜리를 썼는데 한 권짜리로 만들어 달라는 부탁이 특히 친구들한테서 많이 들어와요. 고민을 좀 했어요. 그 전에는 1945년까지 썼어요. 현대사가 빠져 있었는데 자꾸 어떤 쪽에서는 현대사를 몇 권으로 보충해 달라는 요구도 있었지만 그것은 또 요새 새로 나온 것들이 많이 있어요. 그래서 한권짜리로 쓰면서 현대사를 많이 보탰어요. 또 하나는 제 나름대로 역사 대중화에 관심을 기울여 왔는데 20여 권짜리 다 쓰려면, 다 사라면 어렵잖아요. 또 읽기도 부담스러워요 요새 바쁜 사람들. 그래서 한 한권짜리로 만들어 주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또 보충을 하다 보니 너무 부피가 많아졌어요. 200자 원고지 1700매 1800매 됐어요. 그래서 사진을 빼기로 하고 텍스트로만 채웠습니다.

박인규 : 원래 통사라는 건 역사 하시는 분들이 거의 자신의 학문생활에서 거의 마지막에 말하자면 정화를 모으는 거라고 하던데요. 이 선생님도 나름대로 마무리를 짓는 거라고 볼 수 있을까요?

이이화 : 앞으로 내가 건강만 하다면 물론 꾸준히 글을 써야지요. 글쟁이가 글 써야지. 다만 지금 말씀하신 대로 통사라는 건 전체사를 보기 때문에, 두루두루 서로 어떤 흐름이랄까 연관성 이런 것과 결부지어서 자기 나름대로의 전체사관이 반영되는 것이기 때문에 단편적인, 가령 예를 들어 특정한 박사논문을 하나 써서 그 부분의 전문가가 됐다는 것과는 의미가 다릅니다. 인생을 돌아본달까, 그것과 마찬가지로 역사를 전체를 한 번 훑어보는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학문적으로 완성도가 높을 때 나이가 들어서 쓰는 것을 대개 기본으로 삼고 있어요. 내 나이가 지금 70이 넘었습니다. 언제 죽을지도 모를 일이니까 변명 삼아 얘기하면 마지막 단계에 썼다고 볼 수 있죠.

박인규 : 통사에는 역사가의 사관,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이냐가 녹아 있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셨는데, 이번 책에서 선생님이 역사를 볼 때 가장 중점을 둔 주요한 것은 이것이다. 민중의 역할 그런 거라고 볼 수 있을까요?

이이화 : 저는 꼭 표현을, 민중이라기보다도 인간이 살아가는 얘기에요. 물론 역사가 인간이 만들어 놓은 것이지만 인간이 때론 갈등을 겪기도 하고 때론 의좋게 살기도 하고 돕기도 하는 과정이에요. 그러니까 인간의 삶이 어떤 것인가. 정치행위나 모든 것이, 저항도 마찬가지입니다. 저항도 자기 권익을 찾기 위해서 하는 것이고, 또 때론 우리나라 같이 강대국 사이에 끼여 있어서 외래 침략을 많이 받기도 하고. 그러니까 우리가 통사니까 전체를 돌아보면서 가장 제가 초점을 맞춘달까? 인간의 얘기를 쓰고 싶은 겁니다. 그걸 좀 리얼하게... 가령 옛날에, 오늘날 노예, 노비 같은 것이 없어졌지만 그 과정은 길었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살았던가. 불평등관계 속에서 새로운 모습을 그리려고 노력한 것이죠. 그러다 보면 오늘날 여전히 불평등 관계에 놓여 있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그들의 처지를 역사를 통해서 비춰볼 수도 있는 거고. 저는 좀 더 인간냄새 나는 역사책을 쓰고 싶은 겁니다.

박인규 : 사람들이 살아가는 냄새, 사람의 느낌을 느낄 수 있는 역사를 쓰고 싶었다.

이이화 : 뭐 근사한 얘기가 아니에요.

박인규 : 역사가가 다룰 수 있는 범위가 현재로부터 언제까지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논란이 있긴 하지만 87년 시민항쟁에서 끝내셨어요. 뒤에 한 20년이 흘렀는데, 그 뒤를 남겨 두신 건 역사로 다루기에는 너무 가까워서 그러신 건가요?

이이화 : 그렇죠. 가령 87년 6월항쟁도... 오늘날은 예전과 달랐어요. 옛날에는 임금이 죽고 난 뒤에 실록을 편찬하고. 그러나 오늘날은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최근대의 역사를 좀 많이 알려줄 필요도 있어요. 그런데 87년 불과 20년인데, 젊은 사람들이 볼 때는 긴 시간으로 볼지도 모르지만 대부분이 활동한 사람들이 많이 살아 있어요. 살아 있는 사람들을 얘기한다는 것은 여러 모로 조금 주저되는 면도 있어요. 그러나 제가 볼 때는 6월항쟁이 하나의 고비이기 때문에 그것까지 끊고, 그 뒤의 얘기는 제가 쓸지 안 쓸지 모릅니다. 또 오늘날 젊은 후배 역사학자들을 보면 매우 의식도 강할 뿐만 아니라 공부도 열심히 해요. 굳이 내가 다 쓸 필요가 있을까 생각도 듭니다.

▲ ⓒ프레시안

박인규 :
역사학자가 아니라 하나의 시민으로서 질문 드린다면, 시민항쟁 이후 많은 사람들이 민주화가 됐으니 삶이 좋아질 것이다 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그때의 기대와는 많이 달라진 것 같다. 요즘의 그런 여러 가지 정치적 논란들을 보시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이이화 : 저는 생각이 좀 다릅니다. 6월항쟁 이후 우리는 독재군부를 다 청산했어요. 절차민주주의가 진전이 된 것이죠. 세계에서 손꼽을 정도로 우리는 민주화된 국갑니다. 다만 분단이라는 민족모순을 겪고 있을 뿐이지 동남아시아나 뭐 예를 들 필요도 없어요. 다만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민주절차를 제대로 이룩했다고 해서 민주의식이 높은 수준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너무 지역이기, 자기 집단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그런 것들이 너무 과도할 정도로 표출되고 있어요.

박인규 : 그런 걸로 실망할 필요 없다. 제대로 나아가고 있다.

이이화 : 그런 현상들이 있긴 있지만 시간이 흘러가면서 우리가 또 반성하고, 또 사회는 새롭게 자꾸 개혁해나가야 됩니다. 역사도 마찬가지, 과거의 얘기가 묵은 것이 아니라 개혁이라든지 역사적 진전 문제를 미래와 연결시켜 보는 것이기 때문에 오늘날 현실 문제도 조금 더 일반시민적인 그런 것보다 역사학자나 이런 사람들이 좀 냉철하게 평가하는 그런 단계로 가야 된다고 봅니다.

박인규 : 말씀하신 중에 우리가 상당한 정도의 절차적 민주화를 이뤘고 문제는 분단모순을 말씀하셨는데 이번에 발해사에 관해서도 많이 쓰셨어요. 그런 것도 말하자면 우리가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 중에서 남북 문제가 중요하다고 보시는 겁니까?

이이화 : 이런 문제들이 아까 질문하신 것은 우리 민주항쟁과 오늘날의 민주주의, 민족 내부적인 문제와 결부된다는 것. 지금 일본에서도 교과서에서 우리 역사를 굉장히 왜곡되게 다뤄왔어요. 또 중국에서는 엉뚱하게도 고구려가 자기네 역사니, 또는 요하문명권, 백두산궁전까지 만들어 가면서 우리나라 단군 문제까지도 자기네 역사로 포함시키는 엄청난 작업을 벌이고 있어요. 이런 것을 보면 제가 표현을 어떻게 보면 역사전쟁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습니다. 심각한 문제들이에요. 다 미래의 문제와 결부되고 있는데, 우리도 역사학자만이 아니라 시민차원에서도 여기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왜 그게 부당한가에 대해서, 또는 나중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이런 문제와 결부시켜 생각해봐야 합니다.

비근한 예를 들면 엊그제 일본 교과서는 군위안부 문제를 계속 부정해 오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미국 의회에서 이게 통과됐어요. 사과와 함께, 정말로 자기가 역사의 죄인이라는 걸 인정해야 되는데, 일본 군국주의 자녀세력들이 인정하지 않으려는 겁니다. 그런데 이건 너무나도 분명한 사실이거든요. 이런 문제들이 바로 미래의 역사와 상당히 연관지어서 봐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중국과 일본에서 벌이고 있는 역사왜곡을 우리는 제대로 인식하면서 남북이 공조해서 우리가 어떻게 통일해야 될지를 고민해야 된다고 봅니다.

박인규 : 이번에 책을 쓰신 이유 중 하나가, 역사의 대중화.. 역사를 좀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 정규 중고등학교 교과과정에 국사 시간도 없고, 뭔가 우리가 역사교육에 등한하지 않냐는 비판이 있는데 이 선생님 보시기에 어떻습니까?

이이화 : 제가 역사책을 쓴다고 해서 교과서적 이기주의적인 발상으로 말하는 건 아닙니다. 역사는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면 누구든지 그 기초를 알고 있어야 돼요. 가령 예를 들면 아까 중국 얘길 했는데 중국에서 조선족들에게 우리말도 쓰게 하고 풍속도 지키게 합니다. 그런데 딱 하나 못하게 하는 것, 한국사를 가르치지 않습니다. 신강 위구르족 같은 사람들은 우리 조선족보다 훨씬 많아요. 천만 명 넘어가는데 거기는 말까지도 못 쓰게 합니다. 아예 학교에서 가르치질 않아요.

이런 것은 무엇을 의미하냐, 중화주의적 발상입니다. 그런 때에 자기 역사를 국내에서 소홀하게 취급하는 것은 교과서 이기주의하고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물론 이 다양한 사회에서 여러 전공분야가 있어요. 그러나 자기 역사는 기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너무나 한때 공무원, 외국유학시험 뭐뭐 해서 역사를 다 가르쳤었어요. 그러다 어느새 슬금슬금 빠져나가서 이제는 학교 교과서에서도 필수가 아니에요. 근현대사는 선택으로 가기도 하고. 그럼 오늘날 중고등학교에서 대학입시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대학입시에서 점수가 잘 나오고 유리한 쪽으로 가게 돼 있는 거죠. 그래서 우리나라 역사 교과서가 어떤 점에서 소외받고 있다는 판단이 듭니다.

박인규 : 정부 차원에서 학생들에게 역사를 좀 더 많이 가르치는 것이 중요한 것과 함께, 역사가 대중화 되지 못한 이유 중 하나가 역사학자들이 역사를 너무 고답적으로 기술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하시는 것 같은데...

이이화 : 예. 어떤 점에서는 저보고 재야사학자라고 하니까 말 함부로 자기중심적으로 얘기하기가 껄끄러울 때가 있어요. 그러나 저는 분명하게 얘기하면 아까 국사교과서 얘기가 나왔지만 너무 딱딱합니다. 재미가 너무 없어요. 그러니까 학생들을 유도할 수가 없어요. 문장이나 내용이라든지 또는 연대만 쫙 늘어놨다든지 이거 반성해야 합니다. 왜 그러냐, 대중화라는 건 대중과 어떻게 공감대를 갖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인데 문장도 어렵고 딱딱하고 재미가 없다면 그걸 어떻게 역사책을 읽게 할 수가 있느냐는 말이죠. 그러니까 그런 점에서 우리가 내용 구성도 구성이지만 문장이라든지 단어 하나도 너무나 일상적인 용어를 많이 쓰고, 자꾸 사전 찾아봐 가면서 역사책을 읽는 건 너무 부담스럽지 않습니까.

박인규 :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이번에 나온 역사라는 책은 본인이 자평하시기에 얼마나 친근하게...

이이화 : 아직도 한계가 많이 있어요. 그렇긴 하지만 끊임없이 시도는 해야 됩니다. 만화도 우리나라 역사를 소재로 한 것들이 많은데, 일본 만화작가들과 만나서 대화를 했는데 세계에서 일본만화가 제패를 하는데 딱 한국만화를 못 따라가는 게 있답니다. 역사라든가 이런 쪽의 학습만화는 못 따라온답니다. 그러니까 이런 방법도 필요한 거예요. 다양하죠. 영상매체를 통해서라든가, 정말 오늘날은 많이 진전됐습니다. KBS에서 하는 역사스페셜 같은 것도 많은 시청자를 확보하고 있어요. 그러나 앞으로 이 문제를 조금 더 과학적인 접근방식이 필요합니다. 정말 대중화할 때는 어떤 기법이 중요한지도 세밀하게 따져봐야 됩니다.

박인규 : 역사에 관해선 저희가 좀 더 깊이 연구해야 되는 측면도 있고 널리 알려야 될 측면도 있고, 저희가 해야 될 일이 많은 것 같습니다.

개인적인 질문도 좀 드려볼까 합니다. 이이화 선생님은 예전까진 주로 재야사학자로 불려왔는데, 아버님께서 위정척사파 학자시고 주역사상의 대가이신 야산 이달 선생님이신데, 어렸을 때는 아버님하고 그렇게, 말하자면 친하시지는 않았다는 것 같아요.

이이화 : 한문만 가르쳤어요. 학교 정년기 때에,

박인규 : 학교를 안 보내셨습니까?

▲ ⓒ프레시안

이이화 :
아예 일본 식민지 시대에는 일본놈 된다고 해서 해방 후에는 서양놈 된다고 해서 안 보내고 이 핑계 저 핑계... 아주 지나칠 정돕니다. 본인이 절대로 어떤 근대 물질, 예를 들면 소금으로 평생 이를 닦았지 치약으로 닦는 걸 거부한 분이에요. 지나치죠. 그래서 제가 열 한 대여섯 살 때 사춘기가 된 뒤에 동네 내려가 보니까 다 학교 다니고 있는데, 나는 한문만 알고... 가출했어요. 학교를 다니려고. 가출해서는 6.25 때인데 참 어려울 때잖아요. 요즘 같은 시대도 아니에요. 요즘도 고학하기가 단순치는 않지만, 그래서 부산 가서 고아원 돌아다니면서 학교를 보냈죠. 거짓말을 했죠. 부모가 멀쩡히 살아 계신데도 전쟁고아라고 거짓말을 하고, 그래서 학교를 다녔어요. 그리고 난 뒤에...

다만 제가 아버지한테 덕을 본 것은 두 가지입니다. 16살 초반까지 한문을 배웠으니까 나가면 한문은 내가 내 또래에선 최고입니다. 다른 것만 좀 보완하면... 그런 부분도 있었죠. 또 한 가지는 우리 아버님이 지나치게 고집쟁이이긴 하지만 양심적이면서 동시에 민족의식이라고 할까? 또는 민중에 대한, 자기는 가난한 양반집 아들로 태어났지만 민중에 대해서 많이 고민했어요. 주역도 바로 그런 의미를 갖고 있어요. 후천사상이라든가 변혁적인 요소가 있거든요. 그런 점에서 생각해 보면 아버지한테 좀 영향을 받지 않았나. 다만 물질적으로는 한 개도 받은 게 없습니다.

박인규 : 어떻게 보면 어렸을 때는 아버지께 섭섭하셨을지 모르지만 실제 하시는 일은 우리나라 것, 우리나라에 대해서 공부하시는 것은 비슷하단 생각이 드는데, 역사를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하시게 된 계기가 있습니까?

이이화 : 제가 중학교 고등학교 다닐 때.. 대학도 중퇴를 했는데 문학공부에 열중했어요. 한문 아는 애가 엉뚱하게 또 까뮈니 사르트르니 이런 쪽에 빠지기도 하고, 한동안 습작도 많이 했어요. 그때 학생잡지 같은 데에

박인규 : 한때 대학도 그런 쪽으로 다니시고

이이화 : 그랬어요. 그런데 20대 중반쯤 와서 분단이라는 문제, 또 식민지 잔재라는 문제, 이런 것들이 막 얽혀 있었어요. 이럴 때 가만 생각해 보니 내가 정말로 뭘 앞으로 제대로 전공해야 될지 고민했어요. 제가 사실 아까 말한 대로 한문을 또 조금 아니까 국사를 해야 되겠다. 통일을 하거나 이럴 때. 우리는 외세에 너무 치여 왔고 그렇기 때문에 국사논문을 찾아다 읽었죠. 계속 읽었죠. 순전히 독학이죠. 물론 고등학교 다닐 때 정도야 국사 시간에 조금 하긴 했지만, 그러나 읽다 보니까 또 쓰고 싶은 생각이 또 나요. 남이 쓴 거 보니까 시원찮은 기분도 들어서 쓰기 시작했죠. 자꾸 쓰니까 나중에 이름을 역사학자라고 붙여 주더라구요. 그렇게 흘러왔어요.

박인규 : 이이화 선생님은 한때 재야사학자라고 했다가 요즘은 역사학자라고도 하고, 그 이유 중 하나가 간판이라고 합니까, 학위가 없으신데. 어떻습니까, 요즘 몇몇 대학에서 가짜학위 소동이 굉장히 크게 나서 사회적인 문제로까지 대두되고 있는데 그런 학력위조... 또 학력위조가 문제냐 학벌만능주의 문제냐 또 이런 논란이 있는데, 그런 걸 보면 여러 가지 드시는 생각이 많을 것 같아요.

이이화 : 실제 많습니다. 저는 스스로 너무 가난했기 때문에 대학을 중퇴했는데 그 뒤 직장 다니면서 야간학교도 갈 수 있었고 대학원도 입학할 수 있었고. 또 하나는 우리 때는 돈 조금 내면 학교 다 들어갑니다. 그런 시대였어요. 그러나 제가 역사학자의 길을 걸으면서 굳이 내가 다시 그런 학위를 따야 될 필요가 있느냐. 정말로 역사학자는 글을 써서 대중에게 보여주면 되는 겁니다. 영향을 끼치면 되는 거예요. 그런 입장에서 제가 공부하다 보니까 굳이 학위를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안 했는데, 지금은 조금 나이가 들고 솔직히 말해서 좀 유명해지고 하니까 괜찮지만, 그 전에는 도대체 인정을 잘 안 해줘요. 다만 40대에 글을 쓸 때, 잡지사에서... 신동아라든지 월간 중앙 이런 잡지들에 제 글을 연재할 때 제 글이 좀 좋다 이래서 인정을 받은 것이지. 그 사람들도 어떤 사람은 얘기해요. 학교 뭐 나왔냐 학위 뭐 했냐. 얘기 들어보면 황당하죠.

박인규 : 실제로 말하자면 좀 젊으셨을 때 그런 역사학자로 활동하실 때 학위가 없다는 것 때문에 불편하시거나 차별 같은 걸 느끼셨습니까?

이이화 : 많이 했죠. 거기에 또 한 가지... 학벌 자체에도, 어디 예를 들어 신문사에 시험을 보려고 해도, 그때 솔직히 말해서 고등학교 출신자들 시험은 한국일보 밖에 없었습니다. 그 외에는 다 응시자격조차 없어요. 그러니까 아무리 실력이 있으면 뭐합니까. 내가 동아일보에 좀 올래 있었는데 그때는 다른 방식으로 특채 형식으로 들어갔죠. 그래서 하는 일이 뭐냐 하면 전부 이 관련된 거예요. 국학 관련이라든지 고전 문제라든지, 그런데 이 일하는 것에서 인정하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이력서를 보고 학벌을 가지고 이정하는 겁니다. 학벌 중에서도 이게 일류 학교나 이류 학교냐 따지는 거죠. 그래서 어떤 때는 억울할 때가 있는 게, 아는 사람 뻔히 있는데, 그 사람들 사실 학교도 제대로 안 다녔으면서 등록금 내서 나중에 다 졸업장 가지고 취직할 때는 그거 다 써먹고 그러더라구요. 그러니까 이런 불평등관계가 어딨느냐.

박인규 : 이번에 쓰신 역사라는 책. 그동안 쓰신 책을 다 세어 보시진 않으셨겠지만, 대략 몇 번째 저서가 됩니까?

이이화 : 한 40에서 50권 정도..

박인규 : 어쨌든 다시 한 번 축하를 드리구요, 앞으로도 하실 일이 많을 것 같은데 특히 역사와 관련해서 어떤 일을 계획하고 계신지 마지막으로 말씀해 주시죠.

▲ ⓒ프레시안

이이화 :
우선 제가 두 가지를 계획하고 있는데, 하나는 동학농민혁명사... 이것을 그동안 많이 써왔지만 정리할 필요가 있어요. 아직도 동학농민혁명 하면 반역자들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라 우리나라 신분제도를 깨는 데에 일선행동으로서는 최초로 벌어진 겁니다. 오늘날 우리가 양반사회가 아니잖아요. 또 하나는 경제적 불평등관계... 옛날에는 토지였잖습니까. 이것을 철폐하려는 운동이었어요. 우리 근대를 여는 시초였기 때문에 이걸 제대로 한 번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두 번째는 개인적인 얘기만이 아니라 제가 겪은 것이 독특합니다. 오늘날 젊은이들이 겪을 수 없는, 아까 말한 대로 학교도 안 보내주는 가정에서 교육도 정상적인 게 아니고 또 6.25 근방에 고아원이라든가 사회 밑바닥을 돌아다니고, 또 재야사학자라고 할까, 하여튼 역사를 해오는 과정들에 얘기가 많아요. 그래서 이걸 민주항쟁이라든지 이런 걸 현장에서도 많이 겪었어요. 이런 얘기를 사회사적 또는 생활사적 입장에서 개인 자서전 같은 걸 쓰고 싶어요. 그런데 그건 내 개인 자랑이라든지 이런 걸 얘기하려는 게 아니라 정말 6.25때 부산 피난도시에서 고아원이 갖고 있던 여러 환경, 이런 것들은 사실 좀 이것도 역사기록입니다. 이런 걸 좀 써보고 싶어요.

박인규 : 모쪼록 건강 조심하시고, 앞으로도 후학들을 위해서 좋은 글 많이 써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이이화 : 감사합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오늘은 역사학자 이이화씨를 초대해 이번에 출간된 저서 '역사'의 내용을 비롯해 여러 가지 역사 관련 현안들에 대해 말씀 나눴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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